호박잎
호박잎 / 이동순 가난한 밥상 위에서 쓸쓸하게 차려내는 판잣집 아침 식사 무슨 별것인가 했더니 호박잎이네 똥개네 아부지 피어나지 못한 삶처럼 여기저기 담장 밑 둘레 아무 곳에나 힘겹게 제멋대로 돋아서 사립문 곁으로 기운차게 뻗어가는 한여름 아침 신새벽부터 부지런히 길어다 물 부어주니 여기도 탱글 저기도 탱글 청보석처럼 빛나는 호박 아름다워라 사랑이여 상 위에 올라 드디어 자태를 뽐내는 한여름의 청춘이여 가난한 밥상머리에 똥개네 온가족 둘러앉아 구수한 된장에 푹 담구었다가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워가며 한 장씩 쌈 싸먹는 감격의 호박잎이여 이동순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발견의 기쁨》 등 13권, 민족사서시 《홍범도》(전 5부작 10권), 평론집으로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