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서/인연에대하여 31

내사랑 백석 김영한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않는 이름 ― 자야 김진향여사 회고록 1995년 발행 문학동네 김진향은 김영한여사의 妓名이다 나는 시인 백석과 1936년 가을 함흥에서 만났다. 그의 나이 26세, 내가 스물 둘이었다. 어느 우연한 자리였었는데, 그는 첫 대면인 나를 대뜸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그리곤 자기의 술잔을 꼭 나에게 건네었다. 속으로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그의 행동거지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자리가 파하고 헤어질 무렵, 그는 "오늘부터 당신은 이제 내 마누라요"하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식은 거의 아득해지면서 바닥 모를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그것이 내 가슴 속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애틋한 슬픔의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

어떤인연(因緣)

어떤 인연(因緣) 솔새김남식 계절을 연주하듯 제법 비가 내리는 창가를 무심히 바라보려니 커피가 부른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버린 우연한 만남 몇 년간 공백이었던 그 사람과 나 수많은 인파속에서도 어~ 상대방도 어머! 비켜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엉킨 생각 속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가 아래 위를 천천히 훑으며 건강을 묻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끄덕였고 예의가 바르고 겸손하며 배려 해주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도 대화가 통 했지만 처음부터 연민의 정은 생각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끊기었기에 그만하자는 줄 알고 다 지워버렸다 그런데 이게 뭐야 건강하기만을 바랐다던 사람 눈앞에 보여 진 어색함을 애써 감추며 태연한 듯 먼 곳을 바라본다 잠시 만남의 색깔이 서먹해지자 머뭇거렸고 갈 길이..

화신처럼 내게 다가온그대

화신처럼 내게 다가온 그대       솔새김남식어느 봄날 화신처럼 당신이 내게 오던 날 너무 기대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은 서로에게 필요한 만큼 주고받는 사랑이길 원했는데 어느덧 떠나야 한다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가신 뒤에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작별이 이렇게 쉽게 다가 올 줄 알았다면 차라리 모른 체 지낼 걸 그랬나봅니다   그리움은 묻고 산다지만 내가 보았던 그대 눈물이 어떤 것인가를 조금은 알게 하였고 순간의 의미처럼 그대가 내게 다가 올 때 마다 마음을 다 주지 못해 정말 미안했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에가고 보내야 하는 아쉬운 이별의 순간에서 심중(心忠)에 흐르는 그대 눈물처럼 인연이 끝이 여기가 아니기를 바라옵니다   눈물을 닦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