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연에 대하여 솔새김남식
2014년 7월 13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구름이 가득하고 가끔 햇살이 구름사이로 비추고 있었다.
장마철이라서 비가 내릴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나들이하기에는 구름날씨가 안성맞춤이었다
오늘은 그간 미루고 있었던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천안에서 식당을 하는 그 사람은 일요일에는 좀 한가하다 했기에 오늘이 제격이었다.
그동안 여러날 고민 했던 일을 실천하기로 결심하게 된 동기는 그녀가 보낸 오래된 메일을
우연히 다시 읽어 보다가 밤늦게 결정을 내렸다
결국 더 이상 미루고 머물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열차안에서 읽을 책과 메모지 그리고 볼펜을 넣고 마지막으로 간단한 군것질과 물을 챙겨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늘 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많이 아프다 했는데 혹시 어찌된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그곳을 찾아가는 설레임도 있었다
처음 일년여 인연을 이어가다가 다시 일년여 뚜렸한 이유없이 연락이 투절 되었다
그래서 그만하자는 것으로 알았지만 아팠다는 것을 난 잊고 있었다
일주일 한번은 꼭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는데 그저 어쩌자는 목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진 사람이기에 궁금하였다
헤어짐과 만남이 반복되는 쿨한 요즘 세상이기에 내가 꼭 그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를
여러번 고민하고 계산까지 몇달간을 오랫동안 하게 되었다
서울역에서 무궁화 열차로 환승 하려다가 지하철로 계속 천안까지 그냥 가기로 했다
우선 종로3가에서 1호선으로 갈아 탔다
지하철로 천안까지는 처음으로 가는 길이라 몇시간이 걸리는지 잘 모른다
내가 가고저 하는 곳은 봉명역이지만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천안까지 가는 전철이다
봉명역까지는 천안역에 도착해서 방법을 찾아 보기로 하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신도림역에 도착하니 다른 열차와 환승해서 타는 사람이 많아서 이제는 서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젔다
그리고 이것저것 각가지 물건을 파는 판매 상인들이 5분 단위로 열차안을 부지런히 돌아 다닌다
주로 여름용 우산. 토시. 냉수건. 부채. 접착제등 이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는 농촌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도시의 연장선이었다
서울보다 더 높은 아파트가 있는가 하면 작은 농촌을 지나면 다시 큰 도시가 연이어서 나타났다
하기는 우리나라의 절반 인구가 수도권에 산다고 하지 않은가 말이다
열차는 남쪽으로 내려 가면서 철길옆에 서 있는 전봇대 부지런이 밀어내고 있었다
어릴때 기차를 타면 지나가는 전봇대를 세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녀는 수원여대 79학번으로 직장을 다니다가 남편을 만났고 결혼해서 딸과 아들 하나씩 두었다 했다
천안에서 해장국 집을 하던 중 자궁암이 들어서자 수술하게 되었고
그리고 충북 괴산 칠성면의 어느 작은 암자에서 휴양하던 중 웹셔핑에서 글과 우연히 인연이 되었다
2011년부터 인터넷에서 글을 보고 용기를 얻어 많이 호전 되었다며 그녀는 여러번 감사 표시를 하였다
글의 내용에서 무엇 보다고 동질감이 그에게 호감을 샀던 것 같다
얼마후 병이 호전 되었다며 2013년 천안으로 다시 나와 식당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일년 이상을 이메일 연락을 주고 받았다
말하자면 현대판 펜팔이었다
그녀는 그날그날 자신의 생활을 글로 보내왔고 나는 그것을 답장 해주게 된 것이 호감이었다
되도록이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다행이 종목코드가 서로 잘 맞아 대화가 매끄럽게 잘 되었다
그것이 인연의 전부였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일렀지만 딱히 식당밖에 할 게 없다고 하는 그녀였다
처음부터 식당을 하게된 것이 아니었고 이런저런 사연이 있었다
하여튼 식당을 하다가 병을 얻어서 잡시 휴업을 했다고 하니 딱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력도 아니고 하여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해장국식당이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새 일을 해야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그녀는 피곤한 기색없이 식당 일을 마치고 나면 낮에 있었던 사연을 한밤중이든 새벽이든지 꼭 이메일을 보내왔다
매일 식당을 열어야 되기 때문에 서울 갈 시간이 없다며 천안에 오면 국밥 한그릇 대접하겠다고
여러번 초대 받았지만 천안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차일피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부터 연락이 투절 되었다
이제 그만하자는 줄 알고 한동안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다시 6개월이 그러니까 1년이 훌쩍 지난 그 어느 날인가 문득 그녀가 아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기서 모른채 인연에 끈을 끝내야 하는지 생각하기를 주저하며 다시 또 여러달을 보냈다
이런저런 일로 바빴던 날이 많아서인지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리고 어느날인가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여러번 읽어 보다 문득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있는 곳을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연락이 끊긴지 꼭 1년만에 지금 길을 나서고 있다.
그 사람을 만나면 무슨말을 해야할까 그생각을 하며 책을 폈으나 머리속에 들어 오지 않는다
종로 3가를 출발한지 2시간만에 천안역에 도착하였다
종착역인 천안역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있었다
옛날 정거장에 모습은 배웅하는 사람 또는 마중하는 사람들로 정겨운 풍경을 연출했지만
지금은 각자가 알아서 갈 길을 바삐 나서고 있다
대합실 계단을 내려오니 지철을 타고 왔던 다른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목족지로 떠나고 있다
얼핏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니 아우내 장터로 병천 순대국을 먹으러 간다고 하는
노친네들이 몇몇 구룹으로 모여 있었다
대부분 나처럼 나이가 오래된 사람들로 서로간 친구인 것 같다
순대국이야 서울에 왜 없을까마는 서로 벗들과 함께 지하철로 나들이 가는 것도 좋을듯 했다
천안역을 나와서 무작정 길을 걸었다
초여름 날씨가 꿰 더웠다
천안 지리도 잘 모르면서 지례짐작으로 봉명역까지 낯선 거리를 한시간여 걸었다
한낮의 더위에 땀을 딱으며 걸어 가면서 어떤 인연을 바라며 왜 이렇게 힘들게 가야하는지 생각했다
그러나 다 이런게 인연이고 사람 사는게 아닐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이승을 떠나야 나중에 저승에서 할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곳저곳 낯선 거리를 한시간을 배회 하다가 봉명역에 왔을 때 실망하고 말았다
전에 있던 '뼈 해장국' 집이 '고자리 삽겹살' 집으로 업종이 바뀌어 있었다.
아뿔사^^ 가게 전화 번호도 달랐다
아니 이런 낭패가 있으니 천안까지 왔는데 어쩌라
가게 주인이 다른사람 같았다.
결국 내가 늦게 왔더니 이런일이 생긴 것이다
그간 1년간을 질질 끌며 망서리고 갈까말가 했더니 낭패가 되고 말았다
전화번호도 다른 것을 보니 이사를 간 게 틀림 없었다
실망은 물론 이렇게 서운 할 수가 없다
먼 길을 내려 온 보람이 없으니 그냥 길바닥에 주저 앉았다
인연이 두려워서 차일피일 했던게 결국 이런일이되고 말았다
연락이 잘 안되면 이곳에 와봐야 했는데 결단력이 없던 내가 문제였다
가게 주위를 빙빙 돌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혼비하였다
저녁에 술을 파는 곳인지 삽겹살을 먹는 사람들은 낮에는 보이지 않았다
가게안으로 들어서니 주인 아저씨가 손님인 줄 알고 반가이 맞이한다
"여기서 해장국 집하던 아주머니는 어디로 이사를 갔나요"
주인 아저씨는 내 질문의 뜻을 잘 모르겠다듯 하여 다시 천천히 물어 보았다.
"가게하던 아주머니가 아팠는데 가게를 접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갔는지 궁금해서 왔어요"
이상하게 처다보던 삽겹살집 주인은 내가 누구냐고 물어본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내게 전해 주는 말은
먼저 하던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는 가게가 급히 나와서 인수 했다고 한다
그외 다른 것은 모르겠다는 퉁하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윤희 엄마라고 모르세요"
"글쎄요"
이제 실망은 두배로 커지고 이런저런 걱정은 증폭 하고 있었다.
혹시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 아니면 아니면 자궁암 수술한 게 재발 되어서 잘못 된게 아닐까?
가게 주위를 배회하며 그냥 서울을 올라가야 할지 아니면 우지할찌 또 머리 속을 어지럽게 했다
아까 천안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병천순대 먹으러 가는 것 같은데 나도 거기나 갈까?
그 생각도 해보았지만 발길이 돌아 서지 않았다
다른 뾰족한 방법이없기에 서울로 그냥 갈까하고 봉명역으로 나 가는 길목에서
싸릿골해장국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우선 배가 고프니 점심이나 먹고 올라 가자 하고는 식당으로 들어 섰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나 순대국 집이 아주 흔하다
8000원짜리 순대국을 다 먹고나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값을 치루면서 물어 보았다
"저 아래 뼈 해장국집 주인 윤희 엄마를 혹시 아시는지요"
그걸 물어보는 나를 이상하듯이 처다 보며 누구냐고 되 묻는다
"그 아줌마 얼마 전에 죽었는데..."
"네!"
나는 아연 질색을 하였다
죽었다니 ....
과로 때문에 자궁암이 방광뼈까지 전위 되어서 그렇고 그렇게 되었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인 아주머니가 해주는데 잘 들려오지 않았다
한번 수술을 했으면 좀 쉬어야 할터인데 억척스럽게 일 하더니 재발 되었다고 말 한다
친척이라면 왜 그것도 몰랐냐며 내게 질책을 하기에 나 또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가 없었다
너무 늦게 찾아 온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담으로 망서리고 있었던 게 불찰이었다
한동안 전화 통화가 잘 되지 않으면 무언가 궁금해서라도 확인하고 찾아봐야 했는데
이제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의 죽음을 애써 부인하지만 사실인 것 같다
일년여 망서림 끝에 천안에 내려온 보람도 없이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되니 마음이 참찹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다시 해본다
용기가 없어서 한사람을 잊혀가고 있다고 자신을 꾸짖어 본다
학생시절의 추억을 기억하겠다 하여서 그 추운 2013년초 겨울 인사동에서 딱 한번 만났다
어떤 감정이 있었던 게 아니었고 글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해서 서로가 편하게 만나는 오누이가 되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 졸업식에 다녀가는 길 이라면서 늦은 오후 차 한잔과 저녁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꼭 한번 천안에 와 주기를 그녀는 바랬다
그후 천안을 가마가마했지만 그것이 일년을 보냈다
무언가 보이지 않은 남녀간의 이성의 두려움이 있었기에 이제껏 망서렸던 게 아닐까 스스로 해석 해본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러저런 사연으로 많은 사람들과 얽히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앞과 뒤를 생각하면 때론 만나는 일에서 주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인연이란 누군가 인연을 주면 받고 안 주면 그냥 거기까지의 인연으로 알고는 모두 잊고 사는 것이다
처음부터 인연이 아니었던지 초록에 맺힌 이슬처럼 순간이었을까
아침부터 일찍 서울에서 내려온 내게는 아주 씁쓸한 하루였다
이제 영영 잊혀져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나와 생각이. 취미가. 느낌이. 낭만이. 모두 맞장구 칠정도로 코드가 맞았다
하지만 그 이상이었지 그 이상의 그 이상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불같은 마음이 예전같지 않았서 일까
내가 배려하지 못한 선입견의 행동으로 말벗의 동행이 되어주지 못한 내가 그녀의 명복을 빌어본다
이루지못한 인연을 그리워하며 최성수의 해후를 들어본다. solsae.k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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