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설 수 없는 사랑 솔새김남식
1. 도시탈출
2월로 접어들자 날씨는 한층 누그러지고 있었지만 현우에겐 봄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다음 주면 삼월로 이어지기 때문에 따스한 햇살은 겨울 추위를 충분히 녹이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마음 줌이 인연의 전부가 아니었기에 그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있었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 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 부터 인지 가슴 가득히 혜진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의 시간은 그들을 자꾸 미로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서로 만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 이였다. 마음이 조급해 질수록 현우에겐 그녀가 자꾸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꽁꽁 얼어붙은 혜진이 마음을 녹이기 위해 그동안 고민했고 무던히 애를 쓰고 그리했지만 그녀 마음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다.
현우에겐 그녀가 만족해야 할 어떤 조건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에게 항상 무거운 짐만 가득 안겨 주게 되었고 그런 것들이 늘 미안한 마음에 웃음을 잃고 있었다. 요즈음은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늘도 천천히 퇴근길을 걸어 나오며 그녈 만나야 하는데 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버스 타는 것도 잊고 몇 정거장을 지나쳐 왔다. 정신이 온통 어디로 날아 간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고 다시 사람이 타면 떠나는 버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정류장은 몹시 분주했다. 가판대 신문은 겨울 찬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찻집에도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현우는 애써 그걸 부러워하지 않으려 하였다. 2월의 어둠이 사방으로 내리기 시작했고. 집으로 가는 버스 타기를 망설이던 현우는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겨우 열었다. 상냥한 혜진이 목소리가 귓전으로 따스하게 들려왔다.
"지금 어디예요"
"응! 퇴근 길"
"그래요! 전화 기다렸어요. 보고 싶은데"
"그랬어? 좀 바쁜 일이 있었지"
"내일 주말인데 누구하고 약속은 없지"
"네?"
"아침에 강남터미널에서 기다릴 게 나 올수 있겠지?"
"왜요"
"그냥! 우리 그냥 아무데나 바람이나 쐬러 가지 않을래?"
",,,,,,,,."
"어쩌면 멀리 갈지도 모르니까 알아서 잘 챙겨와"
"알았어요."
"될 수 있으면 9시전에 도착하도록 하고"
"걱정 말아요. 저어 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들어가세요."
"응 알았어"
그제 서야 현우는 전화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현우는 약속이 있으면 어찌하나 걱정 했는데 혜진은 현우의 청을 들어 주어야 했다. 그녀도 그가 몹시 보고 싶었다. 현우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서문동 주점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길목이란 주점에 들렸다 작은 냄비에서 순대국이 끓고 있었다. 물론 소주 한 병을 옆에 끼고 얼굴이 붉어지도록 혼자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주점을 나와 집으로 행하면서 혜진이 모습을 떠 올려본다.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겨울여행을 다녀오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왔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현우는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강남 터미널 그 곳은 언제나 사람이 많이 오고 가는 만남과 작별이 있는 곳 모두들 어딜 그렇게 떠나는지 아침부터 분주하다. 어디를 가야겠다는 정확한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그녀를 만나서 생각기로 했다. 현우는 한쪽 모퉁이에 서 있었다. 출구를 바라보며 문을 열고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하나하나 사람들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빨간 가방을 메고 그녀가 황급히 대합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반가움에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서 위치를 그녀에게 알렸다.
"혜진아 여기야~ 여기!"
"늦었지요? 미안해요"
"아냐 됐어. 나왔으니까"
"일찍 나오려 했는데 집에 갑자기 일이 생겼어요."
그들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작은 무엇인가 있었기에 따스함에 두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달 이상 연락이 없었다. 특별한 어떤 이유는 없었지만 얼마 전인가 작은 다툼으로 뜻하지 않은 오해와 고집 그리고 오기로 한 달을 서로 버티며 연락을 하지 않았다. 서로에 지존심이 그들을 더욱 외롭게 하였고 오해의 골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것을 감싸고 있는 것은 현우였고 사랑을 구걸하는 것도 그였다. 여자가 사랑하는 것보다 남자가 사랑을 구원하는 게 더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다툼이 어쩌면 보이지 않는 마력의 연속이 계속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아픈 데는 없었지"
"네!"
"무척 보고 싶었다."
"......"
현우는 혜진의 손을 꼭 잡는다. 나이에 걸맞게 외로움을 타며 혜진이 앞에선 더 쓸쓸해 보였고 그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가슴으로 훔치고 있었다. 버스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로 걸어갔다. 어디를 가야할까? 뚜렷한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같이 있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자동매표소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다시 매표 안내원이 있는 매표창구로 다가갔다. 그냥 왠지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니 좀 멀어진 두 사람의 사이를 가까이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그러기에 그녀를 터미널까지 나오게 했지만 어디를 떠나야 할 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서성이던 현우는 행선지도 말하지 않은 채 매표소에 돈을 내 밀었다.
"뒷자리로 2장 주세요."
"어디 가는데."
"그냥 좀 전에 팔았던 걸로 주세요."
매표양은 잠시 머뭇하더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표를 밖으로 내 민다. 표를 받아 들고 혜진이 있는 자리에 와서야 천안 가는 버스표라는 것을 현우는 그제야 알았다.
"혜진아 천안에 가자"
"거긴 왜"
"그냥"
혜진은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무언의 대답으로 그냥 그를 따라 가기로 한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뽐아 들고 한 모금 마시면서 좀 기다렸다가 천안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곧 이어 차는 터미널을 빠져 나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창가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제 늦잠 잤더니 조옴 피곤하네."
"저도 집에 아빠 친구들이 오셔서 잠을 못 잤어요."
"그랬어? 천안에 도착하면 깨워 줄께. 자! 응?"
한참을 가다가 옆을 바라보니 혜진이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현우는 자고 있는 혜진에게 커텐으로 햇볕을 막아 주었다. 천안에 도착하면 어디를 가야 할지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냥 천안에 내려서 점심이나 먹고 다시 올라올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나서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기에 어딘가 떠나기 위해 서울을 떠나지 않았던가. 차장가로 스치는 앙상한 겨울나무가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에게 좀 더 가까이하고 싶었다. 흔들이는 그녀의 마음을 잡아놓고 싶다. 아니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을 사실은 돌려놓고 싶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이윽고 차가 천안 시내로 접어들자 그녀를 깨웠다.
"혜진아~ 다 왔어"
"응?"
"그냥 우리 대천 바다에 가자"
"바다에!"
잠에서 일어난 혜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랜 표정이었다.
"그럼 버스가 바닷가에 벌서 도착했단 거야."
"아니, 여긴 천안이야"
"근데 왜 이 차를 탔어. 난 한번으로 가는 줄 알았지"
"천안역에서 대천가는 기차 타야 돼"
"왜 그리 바보같이 그래, 한 번에 가는 걸로 해야지"
"미안해"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 한다고 하는데 정말 걱정이야"
마치 어린애처럼 현우에게 응석도 부리며 반발 비슷하게 하지만 현우는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기분이 않 좋거나 또는 두 사람의 분위기가 좀 심각하고 어색 할 때는 깍듯이 존댓말로 응수를 하곤 했었다.
"꼭 목적지를 정하고 나 온 것은 아야."
"그런데."
"하지만 오면서 생각하니 그곳에 가면 그냥 좋을 것 같아"
“씨이”
“겨울바다 좋잖아”
혜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그곳에 가면 흐트러진 네 마음 꼭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현우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버스에서 내려 천안 역전에 도착하여 열차시간을 확인 해 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구나 좌석도 매진이고 입석뿐이었다. 주말이라 그런 것 같았다. 차표를 구입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대합실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프레트 홈으로 나와 기차에 오르니 서울서 부터 타고 내려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두 사람은 좀 기댈 수 있는 의자 뒤편에 서서 흔들리는 열차에 몸을 맡겼다. 차창 밖으로 군데군데 녹지 않는 흰 눈이 빠르게 스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끔 서로 눈이 마주치면 그냥 싱긋이 웃기도 하고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어떤 애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 같이 있으므로 좋았고 처음으로 느껴 보는 이상한 감정이 현우를 그냥 흐뭇하게 해 주었다. 잠시 열차는 대천에 도착했다. 어느덧 짧은 겨울 저녁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엷게 비추어진 햇살이 영하의 날씨가 더욱 추운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역을 촘촘히 빠저 나와 현우가 앞장서 서 걸어 나오면 그녀가 그 뒤를 천천히 따라 나서고 있었다.
낯선 도시의 이방인처럼, 현우가 발길을 멈추면 뒤 따라오던 사람도 그 자리에서 멈추고, 다시 걸어가면 아무 말 없이 따라 왔다. 마치 어떤 거리감이 있는 것처럼 느꼈다. 저녁 햇살은 역 광장에 나서는 그들을 길게 그림자를 만들어 주었다. 우선 무엇을 먹어야 했기에 역전앞에 있는 좀 괜찮은 식당으로 들어섰다, 마침 손님이 없어서 좀 을씨년스러웠다. 밖으로 나가려 하다가 그냥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사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을 식당주인은 이상한 눈빛으로 처다 보고 있어 몹시 불쾌 하였다. 추위도 녹일 겸 식당에 오래 앉아 있으려 하였으나 식당주인 때문에 바로 식당을 나섰다.
그리고 바닷가로 가는 버스를 올랐다. 버스엔 몇 사람 타지 않았고 차는 떨떨 거리며 시골길을 달렸다. 창가에 기대여 졸고 있는 혜진을 조심스럽게 현우의 어께에 얼굴을 묻게 하였다. 얼마 후 버스가 어항 마을에 내려놓았다. 수평선으로 지는 저녁 해는 쓸쓸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던 추억의 이 바다를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바닷가로 접어들었다. 문득 그 옛날에 즐겨 부르던 바닷가의 추억이란 노래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겨울 파도는 성난 듯 밀려왔다 밀려가고 바다 바람은 차갑게 불어오고 있었다. 겨울 바다를 거닐고 있으려니 마음은 무척 후련했다. 삶의 고뇌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며 사는 밝은 세상이 필요 하다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가 열심히 듣고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가 따분 했던지 현우에게 장난을 청하였다. 모래위에 이름을 쓰면 지우고 다시 쓰면 또 지우고 쓰다 가는 도망가고, 그러면 그 뒤를 따라 가는 정말 영화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즐거운 두 사람의 장난에 무슨 구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신기하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밝게 웃어 주는 모습에서 현우는 잠시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어느덧 해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서서히 황금빛 바다 노을이 검붉게 변하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오는 적막한 겨울바다를 버리고, 이제 사람들도 하나씩 이곳을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혜진아, 어때 겨울바다"
"참으로 좋은 것 같아요. 모두에게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해요"
어둠이 밀려오는 백사장을 나와 두 사람은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 마주 앉았다. 찻집은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위에 있었다. 커피가 나오자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내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아 너무 속상 할 때가 있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없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널 어떡하면 좋을까”
“그냥 내버려 두세요”
얼마 후 추위를 녹인 두 사람은 찻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바닷바람이 차게 불어 왔고 찻집 앞으로 가로등이 길게 비추고 있었다. 시내로 나오는 버스 안에서 집에 가야 된다면 혜진이 자꾸만 보채고 있었다.
"대천가면 서울 가는 기차 있을까요"
걱정스런 얼굴로 현우를 처다 보며 물어본다.
"응 글쎄 나도 잘 모르겠고, 역에 한번 가보면 알겠지"
퉁명스런 현우의 대답 이였다. 집에 가자고 자꾸 조르는 혜진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걱정을 한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시내로 나오는 버스는 텅 비어 있었다. 인적이 없는 거리에는 적막감이 돌았고 사방으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역 전 앞에서 내리자 그와 같이 버스 터미널로 발길을 돌렸다.
"왜 역전으로 안가고 이쪽으로 가"
현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대합실은 텅 비어 있었다. 터미널 벽에 걸린 시계가 7시를 월신 지나서고 있었다. 한쪽에 있는 난로는 더 이상 여행객이 없음을 아는지 까맣게 꺼져 있었다. 그리고 허름한 천정에 매달린 형광등도 수명이 다 되었는지 불빛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쓸쓸함과 적막이 깃든 대합실 이였다. 아침에 서울서 내려와 잠시 머물렀던 이곳을 떠나기 위해서 현우는 난로 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매표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진아 우리 부여에 가자. 응!"
현우는 그녀의 손을 다시 꽉 잡았다.
"거긴 왜요"
"그냥 "
"그냥이 어디 있어요 목적이 있어야지"
걱정하는 혜진이 얼굴을 보자 현우는 마음이 조금은 흔들리고 있었다.
"집에, 내일 가는 거야"
그리고 그녀의 손을 다시 한 번 꽉 잡는다. 그녀를 한참 바라보던 현우는 어떤 결심을 한 듯 매표소로 향했다.
"부여! 두 장 주세요."
"40분 막차예요"
매표소 아가씨는 퉁명스런 말과 함께 표를 내밀었다. 표를 받아 돌아 온 현우는 그것을 그녀에게 내 밀었다. 걱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하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자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차가운 냉기가 차안의 추위를 더 해주고 있었다. 매점에서 사온 빵과 우유를 입에 넣으면서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은 계속하고 있었다.
버스는 출발해서 어둠속을 달리고 있었다. 혜진은 차창 밖을 바라보며 얼굴에는 우수가 가득해 있었다. 벌어진 창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고 달릴수록 차안은 몹시 추웠다.
운전기사는 히터가 고장 나서 미안하다는 말만 할뿐 버스는 고속으로 어둠속을 달리고 있었다. 혜진에게 장난을 청 했지만 반기는 기색이 없다. 차창 밖으로 눈발이 조금씩 날리고 있다. 현우는 남자인 자기가 너무 욕심만 채우고 것이 아니가 생각을 했다. 미안한 마음에 팔을 뻗어 살며시 혜진을 않아 주었다. 그녀는 싫지 않은 듯 현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여 눈을 감고 있었다.
"혜진아, 어쩜 널 좋아하게 될는지도 몰라"
",,,,,,,,,,"
"그것이 내 지나친 과욕일까"
",,,,,,,,."
"니가 싫어하든 말든 그냥 네가 좋아"
그녀는 아무 대답 없이 현우의 어께에 기대여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말들이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들렸는지 모른다, 현우가 또 몇 마디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 에겐 어떤 달콤한 이야기도 들리지가 않았을 것이다. 집에 오늘 가야한다는 생각과 그리고 집에 못 들어간다면 어떻게 집에 변명을 해야 하는지 걱정이었다. 그런 생각을 잠기다가 흔들리는 차속에서 스스로 그냥 잠이 들었다. 따스한 그녀의 체온이 얼어붙은 현우 마음을 녹여주었는지 그도 역시 잠이 들어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스한 체온이 코끝을 찡하게 해주었다. 이제 두 사람은 어딘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버스가 부여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가 지나서였다. 차에서 내리니 겨울바람은 차갑게 불고 있었다. 길은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우선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낯선 길을 걷고 있었다. 밤이 늦어서 거리는 지나는 사람도 없었다. 선뜻 어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두 사람 모두에게 부여는 아주 낯선 도시였다.
"배고프지"
"아네요. 아까 버스 탈 때 우유랑 빵 먹었잖아요."
"그래도 배고프지"
추위가 오늘따라 더 매섭게 느껴진다. 잘 알지도 못하는 밤길을 더 이상 계속 걸을 수는 없었다. 어딘가에 숙소를 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저녁을 먹고 숙소를 정해야 할지 아니면 숙소를 정하고 식사를 해야 할지 현우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들은 낯설고 서먹한 하룻밤을 이곳에서 오늘 보내야 한다. 아직 이런 일이 처음인 두 사람에겐 낯선 일이기에 그렇다고 그런 걸 모르는 그들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그런 것들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붙잡을 수없는 자신의 방황으로 현우는 그녀를 데리고 여기까지 도망 왔다.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현우 생각은 아주 맑고 깨끗하였다. 무작정 걷던 두 사람은 길모퉁이에서 바로 멈춘 곳은 빨간 네온이 빤짝거리는 곳이었다.
"여기 가 볼까"
좋든 싫든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 밤을 보내야 한다. 언제나 그런 곳에 가면 모두가 그랬듯이 주인은 방이 하나 밖에 없다고 했다 아마 있어도 다른 손님을 받기위해 그러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혜진은 무언가 결심한 듯 주인을 바라보더니 현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방하나래도 좋으니 그냥 얻으라는 눈치의 싸인 이였다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키를 받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모델을 다시 나왔다.
"괜찮겠어."
"뭘요"
"방이 하나라는데"
"..........."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마침 식당이 있어서 들어서니 이미 파장인 것 같았다 식사를 주문했다.
"집에 연락 해야지"
현우는 혜진 에게 집에 전화하라고 이르곤 다른 식탁으로 옮겨서 놓여있던 신문을 집어 들었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신문을 그냥 뒤적이며 그녀가 전화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 아마 친구들과 놀다가 너무 늦어서 내일 들어가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못 들은체하며 한쪽 탁자에서 현우는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화를 끝낸 혜진은 아까 보다는 얼굴이 무척 밝아 보였다. 이젠 집에 갈 수가 없으니 모든 것을 체념한 것 같았다.
"혜진아, 미안해. 정말"
"그냥 아무 말 마세요,"
혜진의 하얀 손이 어느새 현우의 입을 가로막고 있었다.
"집에 연락해야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오늘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어."
"저도 잘 알아요."
"미안해."
"우리 걱정 말고 식사나 맛있게 해요. 점심도 잘 먹지 못 했잖아요"
불안해하던 혜진이 얼굴이 밝아 보이자 현우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저녁을 먹고 두 사람은 정답게 손을 잡고 식당을 나서 모델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서니 낯선 자리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혜진은 오히려 현우에게 그냥 괜찮다고 하며 그를 안심시키려 했다.
"혜진아!"
"네?"
"미안해! 정말야"
"알아요. 얘기하지 않아도"
"날 믿고 있지.."
"그래요. 지금 저도 제 마음을 저도 알 수가 없어요."
"그래. 고마워"
그들은 그런 사람들처럼 샤워를 하는 등 요란을 떨지는 않았다. 간단히 세수하고 현우는 방바닥에 혜진은 침대에 누웠다. 사랑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또 온다는 것을, 그리고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현우는 느끼고 있었다. 동정이 때로는 사랑이 될 수가 있고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현우는 그냥 마음속으로 혜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다만 사랑은 서로 좋아하는 것만으로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그런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현우는 그녀에게 그 어느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착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무엇을 요구 할 수가 없었다. 그를 믿고 따라온 그녀에게 무엇을 요구 한다는 것은 또 하나 어떤 죄를 짓고 있는 거 같았다.
헤진도 현우의 그런 마음을 읽었기 때문에 떳떳하게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처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서로를 불신하고 서로 이해하고 믿음을 보이는 것이 그녀를 오래도록 머물게 할 수 있다는 현우 생각이었다. 혜진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현우는 바닥에서 경계의 눈치도 없이 편안히 서로 잠을 잘 수 있었다. 혜진이의 두려움은 벌써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날이 밝았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서로 인사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잠시 요란을 떨며 옷을 입고 있는 그녀를 등 뒤에서 현우는 가볍게 않아 주었다.
"아이! 간지러워요"
하는 혜진이의 천진스런 웃음소리가 현우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현우는 잠시 행복한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너를 바라 볼 수 있다면...." 라는 노래를 현우가 흥얼거리고 있었다.
"혜진아"
"네"
"넌 언제 보아도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거 같다?"
천사 같은 그녀에게 어떤 말이라도 그에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 빨리 어디라도 가요?"
혜진은 어떤 말 대신 빨리 나 가자고 조른다. 처음으로 들어온 낯선 이곳은 그리 오래 있을 곳은 아니었다. 부여의 관광지 부소산을 가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영하의 2월 날씨는 아직은 쌀쌀했다. 아침 햇살이 밝게 두 사람을 등 뒤에서 길게 비추고 있었다. 부소산으로 오르는 길은 눈이 발아래까지 쌓여 있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산에 오르는 사람도 없었다. 정상에 오르니 부여읍이 한눈에 들어 왔다.
"야호!"
부소산의 새벽 아침공기가 메아리로 되돌아 들려왔다. 백제 말기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을 지나 미끄러운 계단 길을 따라 고란사 까지 내려 왔다.
"우리 여기서 기도해요"
혜진이가 현우를 잡아끈다. 고란사의 작은 법당 앞에서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혜진인, 어떤 소원을 빌었어?"
"그냥 올엔 모두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 했어요."
"그래! 모두 잘 될 거야. 그치?"
고란사를 내려 와 작은 숲길을 따라 백마강까지 내려왔다. 강바닥은 꽁꽁 얼어 있었다. 밤새 또 눈이 내렸는지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하얀 솜처럼 뽀얗게 멀리까지 펼쳐 있는 흰 눈은 비단같이 고왔다. 두 사람은 백마강의 하얀 눈길을 거닐고 있었다.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눈사람을 만들며 법석이다 겨울 낚시꾼들이 강위에서 얼음낚시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 고기 많이 잡았어요."
그녀가 강태공들에게 말을 건 낸다.
"아가씬! 어디서 왔어요."
강태공 아저씨가 혜진에게 물어 본다
"서울서요 근데 아저씨 이게 뭐예요"
"응! 그거 빙어야"
"빙어?"
"응, 겨울에 별미로 먹는 물고기야"
현우가 대신 대답을 해 준다 그리고 손을 잡아끌며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강바람이 좀 추운 거 같아요."
"그러지"
현우는 눈뭉치를 던지며 눈싸움을 청했고 그러면 그것을 받아 던지며 망아지처럼 꽁무니를 따라 다녔고 그리고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강바닥에 "사랑해"라고 발로 현우가 눈 글씨를 썼고 그러면 혜진은 그걸 지워 버리곤 했다
"아니"
라고 답 글을 달아 주었다. 그러면 현우는 다시 쓰고 그러면 또 다시 지우곤 그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꽁꽁 얼어붙은 백마강위에서 마치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겨울 강태공들이 한가로이 얼음낚시 하는 모습은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부소산을 내려와 조그만 다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들은 찻집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이제 짧은 여정을 마치고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부여를 출발했다. 오랜만에 외출한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피곤했던지 서울에 도착할 때 까지 버스에서 뒤엉켜 잠이 들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외출외박을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현우는 그것이 궁금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그녀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을 현우는 알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전화 할 때,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집으로 전화하는 것을 현우는 알았기에 그 막음을 하는 것 같았다. 곤란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그 친구가 늘 바람막이를 해주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전화는 오래 계속 되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
"그에게 내가 잠시 필요 할 것 같아서."
",,,,,,,,,,,,,,."
"걱정 마. 알아서 할께"
상대방 전화 목소리는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쪽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는 또렷이 들려왔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돌아와서는 밝은 모습이었다. 집에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하며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현우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잠시 아쉬운 마음은 바람처럼 날리고 있었다. 그가 떠난 빈자리에는 쓸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택시에 그녀를 태워 보내고 현우는 터미널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식당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바라 보다 문득 현우는 그에게 다가서고 있는 자신을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현우의 뇌리에는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있었다. 혜진에게 다가서고 있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은 새벽이 지나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을 뒤척이는 현우를 그녀는 알고 있을까.
2. 봄이 오는 길목
겨울 햇살이 사무실 유리창을 타고 넘어와 현우의 가슴속까지 따듯하게 해 주고 있었다. 어느덧 겨울의 2월은 이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봄은 사람들 가슴속으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언제나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있었으니 봄이 시작 된지 오래 되었건만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도 펑펑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퇴근길 눈을 맞으며 시내로 나왔다 올해는 유난히도 겨울이 추웠고 3월로 접어들면서 주말이면 계속 눈이 내리고 있다. 현우는 안국동에 있는 JES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 물론 혜진이도 같은 회사에 근무한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현우는 10층 해외 무역부에 근무하고 혜진은 9층에 있는 업무부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 마주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간혹 점심시간 지하 아케이트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 때문에 모른 채 하고 지내며 철저히 숨바꼭질을 하며 만남을 하고 했기에 회사 내에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비밀을 지키며 2년간 만남을 하고 있다. 현우는 혜진이 만남을 운명처럼 만난 사람이라고 혼자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어쩜 그들은 오랜 만남을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은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는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가끔은 뒤돌아보며 두려워했지만 다음에 생각해야 할 일이였다.
그녀와 사전에 만나기로 약속이 있었다. 북문 길을 따라서 돌아가면 골목 끝 지점에 예나 찻집이 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그리 크지는 않지만 분위기는 그만이었다. 그곳이 그들만 알고 있는 아지트이다. 지금 현우는 그곳에 가는 길이다. 찻집에 들어서니 혜진이가 먼저 와 있었다. 누구든지 먼저 온 사람은 나머지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서로 약속이 있었다. 실내는 담배연기가 불빛에 반사 되여 눈이 부셨고 사람들은 가득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위치를 알려온다
"여기예요"
"오래 기다렸지"
"아니요"
"눈 지금도 와요?"
"쪼끔..."
"올엔 눈이 너무 많이 와요. 그쵸"
"그려"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여기~~"
"치이"
"우리 저녁 먹고 영화구경 갈까?"
"그래요"
"그런데 뭘 볼까?"
"그냥 대신극장 가서 그냥 아무거나."
"아무거나"
그들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고 밖으로 나올 때 까지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계절을 잃어버린 듯 주말이면 언제나 눈이 내렸다. 그래도 날씨가 포근해서 길은 미끄럽지 않았다.
얼마를 더 지나야 완연한 봄이 되려는지 세월을 잊은 채 꽃샘추위가 며칠 채 계속되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밤거리를 누가 보거나 말거나 개선장군처럼 팔짱을 끼고 활보하고 있었다.
음악다방에 들려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제과점에 들려 빵을 먹으며 오랜 시간을 같이하였다. 그녀는 빵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제과점 빵도 좋아 하지만 슈퍼마켓에서 파는 단파 빵이나 크림빵을 더 좋아했다. 현우는 그래서 그녀를 빵순이라 놀리곤 했지만 그녀가 빵을 먹는 것을 보면 참 우습기도 하였다. 빵을 먹을 때는 빵을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빵을 먹을 만큼 떼어서 손으로 입에 가져간다.
어린아이 같은 그런 모습에 현우는 씽끗 웃으며 그녀는 빵의 맛을 음미하면 먹는 거라고 했다. 아무튼 현우가 빵을 두개를 먹을 때 그녀는 한 개를 먹는다. 그래서 현우는 그녀가 빵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그날은 두 사람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으로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봄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진달래가 만발하는 계절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뜻밖에 그녀가 만나자는 문자가 들어왔다. 주말도 아닌데 무슨 좋은 일이 잊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현우는 예나 찻집에 들어섰다. 찻집에 들어서서 혜진이 얼굴은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녀가 화난 얼굴을 하면 언제나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곤 했다. 그녀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이제 만나는 게 조옴 그래요"
"왜 무슨 일 있었어."
",,,,,,,,"
"뭔데! 알아야 대책을 세우지"
",,,,,,,"
"왜 그래 갑자기"
"우리 만나고 다니는 거"
"응?"
"큰 언니가 알고 있어요."
"어케"
"우리를 벌서 여러 번 보았대요."
혜진이가 어떤 아저씨하고 같이 다니는 것을 언니 친구가 터미널에서 봤다며 그것을 언니에게 전해 줬다고 한다. 그동안 혜진이의 행동을 여러 번 의심 했기에 언니는 그것을 모두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고 전혀 그런 일 없다며 언니와 심하게 싸웠다고 했다. 회사직원과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나서 인사한 것뿐이라고 변명 했지만 언니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더 이상 걱정 말고 언니나 빨리 시집가라며 도리어 잔소리를 퍼부었다고 한다. 그녀 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미혼이었다. 이야기 내낸 혜진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만나는 거, 우리 조심하자"
"언니가 내 말을 믿지 않아요."
"이 넓은 서울에서 아는 사람 만나기가 참으로 힘든데"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 엄마에게 말해 버린다고 해요"
"혜진아. 미안해"
"언니 땜에 신경 쓰여요"
"그러긴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죠."
현우는 더 이상 어떤 말을 그녀에게 해줄 수가 없었다. 부질없는 욕심으로 어떠한 부담도 그녀에게 주워선 안 된다고 했지만 모든 게 그에게 달려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 괜한 욕심 이 화를 불러 낼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내심 혜진이가 어떻게 잘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을 그녀에게 요구 할 수는 없었다. 찻집을 나와 저녁을 먹고 나올 때까지 혜진은 사뭇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 조심하자. 회사 직원들까지도 이상하게 바라보니 다 조심하자 응?"
"그래도"
"언니가 직접 본 것은 아니잖아?"
"알았어요."
그녀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리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마 언니가 더욱 의심 할 것 이라고 덧 붙였다. 그래서 며칠 동안 혜진을 만날 수 없었다. 아니 만나려 해도 응해주지 않기 때문에 만나기가 어려웠다. 어떤 목적이 없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망서렸고 현우는 그것을 혼자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의 일념으로 그에게 끈질기게 연락은 계속 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집에서 몹씨 시달림을 받고 있는 거 같았다. 어쩌다 통화를 하게 되면 그녀는 만날 일이 없다고 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며칠 후
그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겨우 설득하여 만나 주겠다는 약속을 겨우 받아 냈다. 그를 이해시키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예나에서 혜진과 만났다.
언니가 그를 감시하고 있다고 혜진은 씩씩 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일찍 귀가를 했고 일요일에도 집에 있었다고 한다. 현우는 그녀의 말을 거의 들어주며 설득하고 있었다. 언니의 감시도 잠깐뿐이니 시간이 지나면 문제없을 거라고 했지만 그녀 생각은 변함없었다. 처음에는 아주 조용한 대화를 시작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의 톤이 높아지고 격렬했다. 한사람은 괜찮다고 하고 다른 한사람은 그것이 아니라는 얘기로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누가 보면 마치 다툼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혜진아. 우리 천천히 한번 생각 해 보자"
"됐어요. 제 마음은 변함없어요."
"언니 때문에 우리가 이리 해야 되니"
"언니 때문도 아니에요."
"그럼 뭐야"
"오래 전 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나지 않기로"
"내가 이러자고 한 것은 아닌데"
"제가 아닌 딴 여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원하는 여자를 찾아보세요."
"인마! 우리 정말 이래야 하니?“
"그럼 어째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차갑고 냉정했다.
"넌 아직 몰라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
"미안해요"
"그동안 어려움 많이 참고 지내 왔잖아. 그리고 난 네게 많은 걸 원하지 않아."
"착각하지 마세요. 전 아직도 누굴 좋아 해본 적이 없어요."
현우를 똑바로 처다 보며 톡 쏘아 붙이는 혜진이 말에 현우는 할 말을 잠시 잃어 버렸다. 그리고 순간 맥이 탁 풀렸다. 더 이상 그를 붙잡고 이야기 할 힘이 없어 졌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끄나풀이 끊어지면 현우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질 것 같았다. 큰소리로 대화하는 두 사람을 사람들이 처다 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예나에 있을 수가 없었기에 찻집을 나왔다. 어둠이 깔린 거리에는 마침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여전했고 밖을 나와서도 대화는 계속 되었다.
"혜진아. 그럴 수가 있어?"
"그럼 어쩌게요"
"그리 냉정하게 쏘아 붙이면 속 시원해?"
"그래요!"
거침없이 그녀의 대답 이였다. 현우는 혜진이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제풀에 꺽 일 때가지 내 버려두면 되는 것을 오히려 화를 부른 거 같았다. 혜진에게 매달리는 비참한 신세 같아서 마음이 우울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현우도 막 지껄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발길은 큰 사거리 앞길까지 들어섰다. 두 사람의 생각과 주장은 굽히지 않고 계속 되었다. 빗소리와 자동차소리가 어울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만족하게 해주지 못해 정말 죄송해요"
"혜진아 우리 좀 진정하자"
"이제 우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이제 제가 만나지 않겠어요."
"정말 그리해야 돼?"
"오늘 사실은 그 말 하려고 나왔어요."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바랐지만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현우도 지친듯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별것 아닌 것처럼 하면 되는데 과민 반응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냥 돌아서기에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면 할수록 아픔만 더 한 것 같았고 그 미움이 깊어지기 전에 무슨 방법을 해서라도 풀어야 했다. 하지만 화를 풀고 돌아서기를 원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언니에게 꾸중을 받고 화풀이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이해 못하는 현우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 했다. 아무것도 어닌 것을 일을 아주 크게 벌린 것 같아 미안했다. 항상 자기편에서 생각하고 또 일방적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우리 이제 만나지 말도록 하자. 그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음 정리를 하자"
"저도 모르겠어요. 내가 왜 이러는지를"
",,,,,,,,,"
"분명히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무엇에 끌리는 것 같아요"
진솔한 혜진이 이야기를 듣고 난 현우는 마음이 잠시 울컥했다.
"너무 걱정 마. 이제 잘 될거야."
현우는 헤진이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비를 맞으면 두 사람은 싸우며 얼마를 걸었는지 옷이 흠뻑 젖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 이제 비는 좀 멎은 것 같았다.
"다리 아프지"
"괜찮아요."
"하도 많이 싸워서 배고프지 않아?"
"미안해요 정말"
"뭐 좀 마실래?"
"아뇨."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 자기 고집을 세우며 의미 없는 말다툼으로 허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튼 미안해"
"알았어요."
"너무 늦었다. 집에 가야지?"
"네"
시계를 보니 10시가 다 되었다. 혜진을 먼저 보내기 위해 지하철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길 건너에서 현우는 다른 길로 발길을 돌렸다. 그냥 집에 가기가 싫었다. 방황을 하고 싶었다. 마음은 찹찹하여서 그냥 무작정 걷고 싶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땀과 비에 젖은 몸으로 털털 거리며 봉래동 큰길가를 걷고 있었다. 지금 순간은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었다. 아직은 다가 설 수없는 그런 뭐가 도사리고 있었다. 어차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자신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우가 헤진을 만나게 된 것도 그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쩜 피 할 수 없는 만남 이라면 거역 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 시간 이상을 걸어왔다. 야윈 얼굴위로 비와 눈물이 흐르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옷은 젖어서 몰골이 아니었다. 왜 그러는지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질 못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아픔이라기보다는 스쳐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추슬렀다.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한 발자국씩 움직일 때마다 바닥으로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다가간다 하여도 이제는 도리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은 누굴 탓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 밤도 영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따스한 몸이 되었건만 늘 무엇에 좇기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사천동에서 내렸다. 그리고 오르막 골목길을 털털거리며 힘없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화사한 봄이 오는 길 위로 잔인한 계절은 현우 곁을 그렇게 쓸쓸하게 지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온갖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픔이기보다는 어떠한 기다림에, 그냥 스쳐가는 과정이라 생각해보지만 지금 이 순간은 모든 것을 그냥 잊고 싶었다. 아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갑자기 현우 곁을 떠나는 서글픈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 열심히 노트에 적고 있었다. 창밖의 가로등이 빗줄기에 실려 유난히 빗나고 있었다. 가느다란 빗소리가 쓸쓸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 해 본다. 현우가 그녀를 만난 것도 그리고 그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쩜 그의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픔이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3. 피할 수 없는 인연
현우와 혜진은 3 년 전 연수동에 있는 서린공원에서 만났다. 공원은 작지만 아담하고 깨끗하여 도시의 사람들이 휴식공간으로 모여드는 곳이다 겨울로 가는 길목이라 날씨는 좀 쌀쌀했지만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듯 일요일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빌딩숲 사이로 엷게 비추는 저녁 햇살이 을씨년스러웠다. 현우는 나이에 걸맞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낙엽을 하나둘 주우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친구 아들의 돌 잔치를 가기 위해 친구 일행들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한쪽 외진 의자에 혼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아가씨를 우연히 발견 했다.
햇살에 비추는 그녀의 옆얼굴 사이로 길게 내린 검은 머리가 너무 아름다워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다. 현우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가 마치 자력에 끌리듯이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친구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싱겁게 아무 말 이라도 건네 보고 싶었다.
"저어, 여기 앉아도 됩니까?"
",,,,,,,,,"
남자들이 흔히 하는 수법이다. 그는 잠시 처다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벙어리인가 왜 대답이 없어요."
"그래요. 벙어리예요"
"아 ! 벙어리는 아니네."
"제가 벙어리 같아요?"
"아네요. 근데 누굴 기다리세요."
"왜 그래요 그게 궁금하세요."
"아 아네요. 그냥, 실은 나도 누굴 기다리고 있거든요"
현우는 그냥 옆에 다가 앉았다. 기다리는 지루함에 좀 어쩌고 싶었지만 현우가 의자에 앉자마자 그녀는 귀찮은 듯 물러나 앉았다. 낙엽이 가을바람에 힘없이 제멋대로 뒹굴고 있었다. 말동무를 하며 어떤 이야기라도 하면서 부담 없이 보내고 싶었다. 현우가 의자에 앉자마자 그녀는 귀찮은 듯 표정이었다.
"아가씬 근데 누굴 기다려요"
"왜 그러세요."
"그냥요"
"아저씨, 참 이상하시네요."
"뭐가 이상해요. 나 나쁜 사람 아니 예요."
"누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어요."
"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친군데요"
"나보다 멋있고 좋은 친구인데 아가씨 소개시켜 줄까요."
"아저씨 친구들은 다 늙었네요."
"아직은 좀 괜찮아요. 노총각이라 좀 그렇지"
"아저씨 같은데요."
"아니,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요. 아, 서운한데 이거"
"미안해요. 호호호"
"오늘 친구 아들 백일잔치 가기로 했거든요"
"네?"
얼마 동안은 그녀와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정말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를 만나게 되자 그녀와의 이야기는 중단 되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 치근 댈 필요가 없었다.
"미안해요"
"아네요."
"그럼 됐어요, 아가씨 그만 갈게요"
"재밌게 보내세요."
"또 만날 수 있길 희망합니다."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아가씨와의 짧은 만남이 싫지는 않았다.
"안녕히 가세요."
상냥한 그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 왔다. 우연한 만남은 그렇게 의미 없이 싱겁게 끝이 났다. 결국 싱거운 사람 되었구나 하며 공원을 내려왔다. 처음부터 그녈 어찌하려고 생각 했다면 재미있었겠지만 현우는 그럴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친구 아들 백일잔치에 다녀와서 변함없는 자기 생활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날의 우연한 만남을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뜻밖에 회사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다시 만나리라는 예측은 전혀 하지 못했기에 현우의 눈을 충분히 의심하게 만들었다. 외래 손님을 배웅 하려고 아래층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는 길 현관 엘리베이터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다. 눈을 의심하며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꼭 한 달 만에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하며 처음엔 현우 자신도 모르게 "어!" 하고 의야 한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우리 회사 직원 이라는 데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과장님 안녕 하세요"
그녀는 현우의 명찰을 보고 재치 있게 인사를 한다. 현우는 무역부 과장이었다.
"우리 회사 직원 이라는데 좀 이상하네요."
"업무과에 입사한지 2주 되었어요"
"아, 그래요."
업무부 정혜진이라고 명찰을 달고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어떤 인연의 끈이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하고 현우의 머리에 스쳐가고 있었다. 한 달 전 서린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가 같은 회사에 근무하게 되는 일도 있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워요"
"저도요"
"그랬군요. 암튼 열심히 하세요"
"과장님, 무역부는 12층이죠?"
그녀는 무역부가 12층에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시간 있으면 올라오세요."
"제가 무역부까지 올라 갈 일은 아직 없어요. 아직 수습이거든요."
"아참 그렇지"
"그날 친구 분과 즐거웠어요?"
"친구와 돌잔치에 가던 길이 었어요. 아참! 퇴근 후에 다른 약속 없으면"
"오늘은 안 돼요.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지나는 회사 직원들 때문에 더 이상 두 사람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혜진은 3층에서 내렸다. 현우가 자리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밖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정말 현우에게 묘한 기분으로 가득했다. 그를 만나고 자리에 돌아온 현우는 기분이 들떠 있었다. 주어진 어떤 인연의 그림자가 그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모두가 만족한 그의 결혼 생활이기에 따로 눈을 떼어 놓을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우선은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인사과에 있는 친구를 통해서 신상을 알 수가 있었다. 입사는 지난 7월에 했고 나이는 24세 , 둘째딸이며 아버지는 공무원이라고 신상명세서에 적혀 있었다. 현우는 이상하게 마음이 흥분되어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퇴근 무렵 커피를 사달라는 뜻밖에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예나 찻집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퇴근길 부지런히 그곳에 나갔을 때는 그가 보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냥 갈까도 했지만 왠지 자리에서 일어서기 무거웠다. 그를 믿기로 했다. 약속시간을 30분이 지난 뒤에 친구들과 함께 그녀가 나타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미안해요’하며 미소를 보내는 그녀에게 현우는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가지 몽탕 쓰겠구나' 하고 은근히 걱정했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 이름도 듣지도 못한 이상한 커피를 시켜 놓고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해숙아 인사해. 우리 아저씨야“
그녀는 현우를 회사직함 과장이 아닌 아저씨로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미스 유 이예요"
"미스 정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해숙씨 만나서 반가워요. 전 박현우 입니다."
"미경아 너도 인사해"
"안녕하세요. 오미경 이예요. 잘 부탁합니다."
"정말 만나서 반가워요. 모두 친한 친구인가 봐요"
"늦어서 정말 미안해요. 애들아 사실은 아저씨가 아니고 우리 회사 무역부 과장님이셔“
“어쩐지 뭔가 좀 이상했고 수상 했어요.”
“정중하게 다시 인사를 해야겠어요. 과장님 혜진일 잘 부탁해요"
“그냥 부담 없이 아저씨라고 해요. 이웃집 아저씨”
“그러죠 ㅎㅎㅎ”
“이쁜 아가씨 만나서 내가 더 기분이 좋아요“
현우에게는 아저씨라는 말이 어떤 격식을 따지는 것보다도 친숙해서 듣기 좋았다. 자리를 옮겨 앉아 저녁도 먹고 맥주도 마셨다. 재미있게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두에게서 오빠라 부르기는 부담이 갔다. 그냥 아저씨라고 하며 그들과 함께 쉽게 친해 질 수 있었다. 물론 밥값 술값을 모두 계산했지만 젊은 아가씨들과 이야기하며 어울리는 기분은 나쁘진 않았다. 그녀와의 만남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작 되었다. 세상은 즐겁게 사는 사람에게는 이런 행운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 친구들과 만난 뒤, 며칠 지난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사실은 그에게 먼저 만나자 하고 싶었지만 회사일이 좀 바빴다. 그녀 친구들에게 바가지 쓴 답례로 저녁을 사 주겠다는 것이었다. 종로 길에 있는 여울목 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지난번에 친구들에게 제 자존심을 세워줘서 고맙고 감사했어요."
"이쁜 아가씨들과 자리를 같이해서 내 자신도 한참 젊어 보여 좋았어요. 그리고 즐거웠고"
"오늘은 제가 저녁식사 대접 할게요"
"그래요? 좋습니다. 참 친구들이 다 명랑해서 좋은 것 같아요. 학교친구"
"네! 학교 다닐 때부터 오걸파라고 해서 함께 돌아 다녔어요."
"재밌네요. 하하하"
"........"
"그런데 둘이 있을 때 호칭을 무어라 할지 모르겠어요. 과장님. 아저씨, 오빠“
“미스 정 편한대로 해요”
“저도 혜진이라고 그냥 불러주세요. 동생같이”
"난 괜찮아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얘기해요. "
직장생활의 지혜와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현우는 회사에서 재미있고 늘 즐겁게 지내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알려져 있었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유모가 가득했고 장난을 청하며 또 응하기도 하며 때론 남에게 지나칠수록 친절한 편이 그에게 결점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시선을 받기도 했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익히기가 어렵기 때문에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 현우는 자신도 모르는 야릇한 생각에 젖어 있었다. 이렇게 그와 앉아 있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엉뚱한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가정에 돌아가면 충실한 남편으로 그리고 자상한 아빠로 자신의 몫은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와는 가끔씩 시간이 허락되는 날은 그를 만날 수가 있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현우가 가는 곳이라면 그는 끝까지 따라 다녔다. 음악도 듣고 커피도 마시고, 또 저녁도 먹고 그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를 만남으로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고 생활에 자신이 생기면서 현우는 회사생활이 즐거웠다.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 했던 것들이 항상 기다리고 있었다.
이성으로의 아무런 감정 표현도 없이 두 사람에 만남의 생활이 일 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 오걸파 아가씨들과 같이 월악산으로 가을 산행을 떠났다. 한번 만난 친구도 있었고 새로운 친구들도 있었으며 모두가 밝고 명랑한 아가씨들 이였다.
혜진은 현우에게 산행에 같이 가자고 졸랐다. 처음엔 여자들뿐이라서 가기 싫었지만 해숙이 친구가 같이 가기를 권했다 산에 가면 쫄랑대며 귀찮게 하는 남자들 때문에 말하자면 들러리로 보디가드로 가자는 것 이었다 현우와 혜진의 관계를 친구들에게 알린 것은 아니지만 두사람 사이를 눈치 챈 친구들이 짓궂은 장난과 이상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닌 대도 친구들은 두 사람을 마치 연인처럼 짓궂은 장난을 시키기도 했다. 그것을 그들의 장난 이라고 생각하며 순순히 응해 주었다. 산행에서 돌아 올 때도 나란히 버스에 앉을 수 있도록 친구들은 배려 해 주었다. 보이지 않는 뜨거운 체온이 가슴에 닿는 듯하여 가슴이 벅차 현우는 그냥 뭉클 하였다. 덜커덩 거리는 버스에서 서로 몸을 기대여 아주 가까운 연인처럼 잠을 잤다. 산행을 다녀온 후로 급격히 친해 질 수가 있었다. 무언가 현우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감정이 떠오르고 감정이 끌리고 있었으나 그것을 억제하며 순수함을 간직 하려고 했다.
그에게 끌리는 감정의 표현을 조금씩 보여주면 아주 작은 친절이 기다리고 있었고 모든 것을 챙겨주고 편하고 부드럽게 해주었다. 그것이 순수함이 아니라 고 하여도 그것을 아니라고 거짓으로는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와는 건널 수 없는 바다이고 다가 설 수 없는 그것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픈 것 같았다. 그해 가을이 서서히 떠나면서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자 날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추웠다.
그리고 그 겨울이 한창이 던 12월의 마지막 주말에 오걸파 아가씨들과 친구들과 궁전에서 송년회를 가지게 되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리고 따끈한 커피를 마섰던 예나 찻집에 까지 혜진은 현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충실한 하녀처럼 그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미리 알고 주위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시선이 쏠리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짓궂은 장난을 섞어 가며 시중을 해주었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성인클럽으로 삼차 술자리 까지 가게 되었다. 그녀가 곁에 있는 현우는 세상의 모두를 얻은 것처럼 착각하며, 환한 웃음을 웃을 수가 있었다. 현우는 자기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그날은 엄청나게 술을 마셨다. 국 궁전회관을 나올 때는 정신이 몽롱하여 하늘이 노랗게 보였고 온몸에 취기가 가득 돌고 있었다. 같이 있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비틀 거리는 현우를 붙잡고 그녀는 귀찮은 기색도 하지 않은 채 밤거리를 정신없이 돌아 다녔다.
"임마, 넌 몰라 내가 왜 이러지"
"정신 좀 차리세요."
"혜진아 저- 어엉 말 으윽 취한다. 미안해 응"
혜진은 귀찮아하지 않고 자꾸만 술 챈 헛소리에 비틀거리는 현우에게 짜증하나 하지 않고
끝까지 시중을 들고 있었다. 현우는 어렴풋이 작은 고마움을 희미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그녀의 착한 마음을 마치 시험이나 하듯이 더 비틀거리며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밤거리를 얼마나 돌아 다녔는지 두 사람 모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겨울 찬바람이 아무리 춥다하여도 혜진이 곁에 있는 동안은 추위를 쉽게 보낼 수 있으리 현우는 생각했다. 혜진은 비틀거리는 현우와 같이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현우를 마중하고 있었다.
“이제 집에 다 왔어요. 혼자 들어 갈수 있지요”
“응 아 이제 술이 깨는 것 같아. 혜진아 미안해”
"어서 내리세요. 저 이차로 그냥 집에 갈게요"
"........“
"조심해서 올라가요. 넘어지지 말고“
현우는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현우는 일부러 술이 더 취한 듯 비틀거렸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혜진에게 잘 가라는 말도 못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서는 술에 더 취해서 정신이 혼미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 제야의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종소리처럼 두 사람의 마음은 사랑스럽고 그저 평화스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아쉬운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현우에는 마침 여동생이 없어서인지 그녀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가는 정을 어찌 하오리까. 돋는 사랑을 어찌 하오리까. 억제하는 것은 조물주의 죄악이로구나. 하필이면 사랑하지 못할 임을 사랑하게 되었는고.
4. 기대 선 사람
한해를 보내고 신정연휴가 지난 며칠 후에 혜진이 생일을 맞이했다. 그들 친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그들과 함께 끝까지 있고 싶었지만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일찍 돌아 왔다. 그날 이후로 현우에 마음은 언제나 밝아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는 몰라도 회사에선 혜진이 생각으로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그렇다고 아내에게서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권태기도 아니었다. 무작정 어찌 하려고 그에게 접근하며 그 이상을 생각하고 만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그를 만나 젊은 세대들의 인생관과 그리고 자신의 인생관을 논하면서 반복되는 직생생활에서의 스트레스를 그와 같이 있음으로 풀어보려 하였다. 또 그런 것은 모두가 바라는 기대였고 그러나 자주 만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 했지만 그것은 마음 뿐 지켜지지 언제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뜻하지 않은 일이 현우에게는 생겼다. 삼월 정기 인사 발령에서 누락이 되었으며 그것도 보직없는 대기 발령이었다. 입사 5년 만에 대리로 승진 되었고 주위에선 곧 과장으로 승진 될 것이라고 예견을 하였으나 모두가 빗나가고 말았다. 행복한 모든 순간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마치 세상이 끝 난 듯한 생각에 어찌해야 할 지 현우는 정신이 없었으며 살아가야 될 모든 힘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회사생활에 자신은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기대에 어긋나고 말았다.
몇 해 전 친구들이 이직을 권했을 때 왜 진작 옮기지 못 했을까 후회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현우 입장은 옮길만한 마땅한 곳이 주위 엔 없었다. 그렇다고 자존심을 앞 세워 지금에 직장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길을 찿기에는 이미 늦었고 서툰 판단으로 거리에 실업자는 되기 싫었다. 어쩌면 그런 것 들은 고용주들의 횡포라고 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현명한지도 모른 일 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어쩌든 어려운 시기였다.
"앞집에 유림이 아빠는 이번에 차장으로 승진 되었다는데 당신은?"
회사에서 현우 위치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아내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현우는 아내에게 미안하기 보다는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고 있었다. 같은 처지에 동료들이 있어서 위안은 되었지만 자기 위치를 찾으려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현우도 제자리에 설 수 있는 힘을 얻으려 하였지만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다. 회사에 출근을 하였지만 현우가 해야 될 일은 없었고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가족들에 대한 책임보다도 자신의 이런 모습을 혜진에게 무어라 설명하고, 이해를 얻어야 할지가 더 걱정이었다.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라고 생각한 혜진이 와의 만남도 이젠 아무 의미 없이 끝나지나 않나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언제나 가정에 충실했던 현우였다. 어쩌다 우연히 그를 만난 짧은 인연이 되었는데 이제 자신이 없어 그의 앞에 나서지를 못하는 것이 아닌가 했다. 자신을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가정생활에 더욱 충실 했다. 그와의 만남은 자신의 일생에 더 없는 삶에 촉진제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하였다. 지금은 혜진을 만나서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어떤 친구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번에 사업을 하겠다며 사표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현우는 그렇지를 못 하였다.
아니 언제 가는 자기를 재신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때 사표를 내는 것이 현명 한 것 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이대로 회사를 떠날 수는 없었다. 신임을 얻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이 현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기발령 소식은 다음날 아침에 회사 게시판에 공고가 되었다. 이제 전사원이 알게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인사 소식을 애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이러한 대기 발령이 있지 않는가 걱정을 하고 있었다. 현우는 갈 곳이 없어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고 조금은 의기 소침 해 있었다. 그런던 어느 날 현우에게 혜진은 다가 와서 위로의 말을 한다.
“미안해! 이런 모습을 보여서”
혜진에 손을 잡고 현우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용기를 가지세요. 모든 일이 잘 될 거예요 ”
그의 위로의 말을 듣고 현우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 앞에 눈물을 보이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누군가 옆에 있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오랜 침묵 끝에 한숨을 쉬고 있는 현우는 마음은 찹찹했다. 더 이상의 아무런 대화도 하지 못했다. 그날 퇴근길에 ‘길목’이라는 주점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곤경에 처해 있는 입장을 서로 이해하며 혜진은 현우의 술친구가 되어주었다. 술 챈 현우의 목소리는 횡설수설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내 쫓김을 받고 있는 자신을 혜진은 지금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을 꾸짖고 있었다. 결국 그날 그가 배웅 할 정도로 엄청나게 술을 마셨고 다음날 회사에 결근 하였다. 현우는 곰곰히 생각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신에 위치를 빨리 찾아 가는 것이 아내에게, 그리고 혜진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회사에 사표를 내려고 하였지만 그것을 적극 만류하였다.
출근하여 하는 일 없이 회사 내를 배회하고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면 된다는 자신을 가진 현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생산현장에 나가서 어려운 일을 하였다. 혜진은 현우의 마음을 아는지 가끔은 그에게 다가 와서 미소를 보여 주며 용기를 주었다. 아직 자신의 위치를 찾기에는 회사에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았다. 가끔은 그와 마주 않는 시간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녀와 자주 만나는 ‘예나’찻집 그리고 서교경양식에서 힘을 달라고 주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YOU NEEDED ME'의 노래를 들려주며 자신을 잃어 않도록 힘을 주었다. 현우의 주문에 혜진은 싫어하지 않은 듯 내색하지 않고 위로 해 주었고 혼자서 걸을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 부담을 혜진에게 안겨 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현우는 그에게 온 힘을 다 하였다.
“혜진아 ! 어쩜 널 좋아 할 런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가끔은 그에게 이런 엉뚱한 말을 하기도 하였다. 결국 그로 하여금 인생에서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어느 때 부터 인지 차츰 충전되어 일어서고 있었다. 혜진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자신의 입장도 모른 채 그에게 매달리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혜진이 베푼 동정으로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현우였다. 그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 주는 것 같아 미만해 하면서도 허공 속에서 자꾸만 그에게 매 달리고 있었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를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가슴은 언제나 우울증으로 가득했고 현우 자신의 결함을 탓 하면서 마치 그녀에게 그것을 부담 시켜 주려는 것 자체가 어쩐지 나쁜 일이였다. 그러나 현재의 입장이 마치 이렇게 되리라고 예언 한 것 처럼 신은 현우에게 혜진을 주었는지 모른다는 정말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그에 대한 생각은 차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를 생각하고 그를 위하고 그를 사랑하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현우는 그런 현실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 겨울여행을 다녀왔었다. 항상 철없는 부질없는 바보스러운 어리석은 생각이라 하면서도, 혜진이에게 자신의 올가미에 씌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올가미를 벗어나려고 하는 혜진과, 언제나 만나면 다툼이 잦았다. 현우의 과욕에서 모든 싸움에 시작이 되었다. 그 날도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생각 하면서도 이상한 감정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툼이 되었던 것이다. 그와 말다툼의 오해를 확인해야 할 필요를 느끼면서도 혜진과 약속이 쉽사리 되질 않았다. 그녀가 보고 싶다는 것 보다도 그녀의 뜻을 알고 싶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다음 날을 기대 하였지만 그녀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나 토라진 사람에게 먼저 만나자고 제의를 했다가 거절하면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세월의 시간은 하루, 일주일 그리고 지나가고 있었다. 혜진이 스스로가 제풀에 걲이 듯 놔두고 싶었지만 현우의 초초한 마음은 모든 것을 허락지 않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하면서, 회사 일에 열중하려 하여도 그 때문에 손에 일이 잡히질 않았다. 현우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언제 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일방적으로 혜진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늘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대의 버스가 지나가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시간은 저녁 9시를 지나고 있었다. 막차까지 기다릴 생각 이었다. 일찍 집에 갔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곧 사랑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되어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버스 정류장을 나서야 했다. 예전에는 집에 있는지도 확인 전화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에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허전한 마음을 억누르고 껌뻑 거리는 신호등을 뒤로 한 채 지하도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맞은편 계단에서 친구들과 벽장대소를 하며 그녀가 올라오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막차를 타려고 오고 있는것 같았다. 친구들 때문에 그에게 기다렸다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못 본 것처럼 외면한 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뜻밖에 현우를 따라 오고 있었다. 늘 그런 것을 원했고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 하였다. 현우는 어쩜 그런 사랑을 오래도록 기다렸을 것이다.
“오래 기다렸어요.”
“,,,,,,,,,,,,,”
현우는 대답을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혜진은 갑자기 현우 손을 잡고 상당공원 근처에 분식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많았다. 잘 먹지도 않는 떡볶이를 우선 그냥 시켰다. 그는 먹지 않고 내게 먹으라고 수저로 권했다.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혜진아! 우리 정말 이래야 돼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지 ?”
“오늘 친구 모임이 있어서 어디에 가는 길이예요”
”참 친구들 미안해서 어떡하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곧 가야 돼요. 애들이 기다려요“
”우리 모든 것을 순리대로 풀자 응!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또 그것이 편 할지도 모르니까“
현우의 어떤 욕심 없이 그리 커다란 부담을 갖지 말고 넓은 도량을 베풀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 만나지 않아야 한다면서, 왜 그런지 쉽게 그렇지를 못하는지,,,,,,,,,,,.”
“혜진아! 어렵게 생각 하지 마.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거 내가 더 잘 알고 있어! 알았지?”
“지금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알았어 네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니 됐어?”
“미안해요 가끔 짜증 내는 것”
“혜진아 어서가봐 친구들이 기다리잖니?”
약속이 있다는 헤진을 오래 붙잡고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바쁜 듯이 뛰어 가는 혜진의 뒷모습을 얼마 동안 바라보다가 현우는 시내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 그를 만난 것은 아주 잘 된 일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은 아주 가벼웠다. 헝클어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부디 사랑을 위해 사랑 하였거든 이별 역시 사랑을 위해 하여 주십시오,’
여러 날 혜진이에게 연락하지 않고 만나지도 못했다. 산에는 초목이 푸르고 계절은 봄을 훨씬 지난듯 한낮에는 제법 더위를 느끼게 하였다. 그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자신없는 현우의 사랑이기에 그에게는 먼저 연락하지 않겠다고 자신을 꾸짖는다. 이제 회사 근무에 충실 하였다. 그러나 퇴근길에는 친구들과 술 한 잔도 했지만 그런 것 들은 현우의 마음을 돌려 놓지를 못하였다. 이제 산과 들에는 봄이 찾아와 벚꽃은 붉게 물들고 개나리는 노랗게 피었다.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에 봄은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 그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이 주일 만에 서교에서 그를 만났다. 오랜만에 밝은 웃음과 즐거운 시간을 같이 할 수 있었다.
“혜진아 ! 우리 더 생각을 많이 하자.”
“,,,,,,,,,”
그녀는 항상 현우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혜진아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연락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안되는 것을 어떡해!”
“사실 저도 그 일로 인하여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요.”
“미안해 혜진아! - 난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못 하겠어 ”
“제 입장에 서서 생각좀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미안해.”
두 사람은 어느새 마음이 하나가 되여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강가엔 분홍빛의 벚이 물들고 개나리는 노랗게 피여 있었고 지나는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에 마음이 편한 한 것을 느겼다. 봄 이라고 하지만 바람은 차가웠다.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현우는 해마다 J시에 열리는 벗꽃 구경을 가자고 그에게 제의를 하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가 화를 내지 못 하도록 차분히 설명 하였다. 그리고 복잡한 생각들을 떨처 버리기 위해 이곳을 떠나자고 하였다. 밤 열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 가면 된다고 했다. 외박한다는 것이 여자에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모르는 현우가 아니었다. 혜진은 한참을 망설였다. 조금은 걱정이 될 것 같아 혹시나 하였으나 뜻밖에도 쉽게 허락해 주었다.
“같이 갈게요”
“미안하다. 혜진아 그냥 내 곁에 있어 주기만 해 !”
떠나 주겠다는 고마움에 현우는 그녀에 손을 덥석 잡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현우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그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가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같고 있는 어떤 그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에게 다가서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시 다가서고 하는 무엇에 쫒기는 사람처럼 제자리 사랑을 하는 것이 현우에게는 초조했다. 그런 것들을 여행에서 다짐하고 싶었던 것 이였다. 그를 마치 어떻게 하려고 음흉한 계획을 꾸미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가로 막는 어둠을 뚫고 따스한 그녀의 마음이 현우 곁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이봄에 어디 라도 훌쩍 떠나고 싶어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한번 준 마음이 인연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현우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향한 마음이 잊히기 전에 어디라도 한번 훌쩍 떠나고 싶었다. 벚꽃 구경하기 위해 8시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는 열차에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행히 차표를 미리 예매했기 때문에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뜻이 하나가 되어 떠나던 날 현우에게는 그동안 얽혔던 오해들이 풀렸으면 생각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 올 때는 혜진이 마음을 좀 더 확실하게 읽어 그로 하여금 자신에 생활이 밝아 졌으면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열차가 출발하자 그는 시종 밝은 모습으로 새벽 몇 시에 그곳에 도착하느냐, 그리고 어디까지 갈 것이고 가는 길목도 잘 알고 있느냐고 물어 오지만, 현우의 생각은 기차를 타기 전에 이미 대구역에서 내리려는 생각으로 머리속엔 가득했다. 그에게는 벚꽃 구경도 중요 하지만 혜진의 생각이 어떠한지, 현우를 어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새벽에 마산에 도착해서 버스타고 가면 된다고 말을 했지만 대구가 가까워질수록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지, 또 그가 화를 내면 어떻게 하지? 하고 자신의 현우는 생각을 걱정하고 있었다. 떠날 때부터 약간 찌푸렸던 날씨는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것이 불빛 속으로 희미하게 보였다. 혜진은 벌써 잠이 들었다. 열차는 어둠을 뚫고 달리고 있었다. 현우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열차 안은 아직도 시끄럽고 기차가 설 때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얼마 후 D역에 내릴 손님은 준비하라는 열차 승무원의 차내 방송이 들려왔다.
“혜진아 ! 이제, 일어나. 다 왔어 ”
“응 . 벌써 마산야?”
“아 - 니 대구야. 여기서 내려야 돼 !”
혜진이의 눈이 갑자기 커다랗게 되면서 이유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마산가는 좌석표가 없었어.”
“그럼 입석이라도 사면되잖아요.”
표가 매진이 되어 부득이 대구로 가는 표를 예매를 했다고 얼버무렸다. 새벽에 도착하면 잠도 못자고 몸이 피곤해 피로가 겹친다고 설명을 하였다. 부득히 대구에서 하루 쉬고 내일 아침에 가자고 하였다. 이런 저런 애기로 설득하는 도중에 이미 열차는 대구역에 도착했다. 프렛트홈에 발을 내리니 땅은 촉촉이 젖어 있고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개찰구를 나올 때까지 계속 그에게 설득을 하니 체념을 한 듯 했다.
언짢은 혜진의 마음이 좀 풀린 것 같았지만 그의 마음이 틀어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역 광장의 시계는 10시가 훨씬 넘었고, 마중 나온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자기 일행을 찾느라 개찰구는 법석이었다.
어디를 가야겠다고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봄비가 내리는 시내를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은 무작정 걸었다. 자정이 가가워 지면서 빗속에 질주하는 차량 소리가 경적을 울릴 뿐 지나는 사람마저 없어서인지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바싹 다가서 따라 오는 혜진을 현우는 등 어깨를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자 혜진이가 싱긋이 웃어 주고 있었다. 비에 옷이 촉촉이 젖어서 인지 아직은 이른 봄이라 그런지 이제 약간의 추위를 느낄 수 있었다. 인적이 거의 끊길 시간에야 두 사람이 쉬일 곳을 찾아 들어섰다. 방에 들어 와니 두 사람은 옷이 흠뻑 젖어 있었고 머리는 흠뻑 젖어 있었다.
“어떻게 하려고 일부러 대구에서 내렸죠?”
방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지도 않고 혜진은 퉁명스런 말을 현우에게 하였다.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어 버렸고 그리고 혜진에게 자기는 결코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얼마 동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모든 남자들은 악마라고 생각하는 혜진, 그리고 여자를 이해해야 하는 현우는 잠시 괴로워했다. 이따금씩 지나는 자동차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은 허황된 것이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육체적 사랑보다 정신적인 것을 요구하는 그는 서로 믿고 따르는 것만 이 진실에 오래 기억 속에서 잊혀 질 수 없을 것 이라는 혜진의 설교에 현우는 고개를 숙인 또 다시 할 말을 잃고 죄인처럼 서 있었다.
“미안해 결코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그것은 혜진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나도 혜진이 생각과 언제나 같아 어떻게 해야 내 뜻을 이해하겠어? 정말 미안해 ”
“,,,,,,,,,,”
“너에게 무리한 요구하지 않아 그렇지만 혜진이의 진실을 알고 싶을 때가 가끔 있어? 그것들은 욕심이라고 생각하고 이해 해 줬으면 좋겠어?”
혜진은 아무 말 없이 현우의 애기만 듣고 있었다. 어떻게 하던지 그에 마음을 움직이려고 현우의 설교는 계속되었다. 혼자의 생각에 이곳까지 왔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였다. 어쩜 그런 것을 알았고 그것이 불쾌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현우는 자신에 존재를 혜진에게 심어주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끝없는 대화는 시간을 계속 붙잡지 못하고 자정을 넘겨 새벽 2시를 가르치고 있었다. 현우의 울적한 마음을 아는지 밤이 깊어질수록 밖은 장대같은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유리 창를 내리치는 빗소리는 나그네에게는 구슬프게 들려왔다. 신문지를 둘둘 말아서 방바닥에 경계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들은 낯선 객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밝은 얼굴로 두 사람은 아침을 맞이하였다. 다음 목적지를 가기 위해 아침부터 수선을 피우고 있었다.
“아직 멀었어요?’
시간에 쫓겨 재촉하는 현우에게 그는 예쁜 미소를 띄우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쁘게 하고 다녀야 같이 가는 사람 체면이 서지요 ”
하늘엔 검은 구름이 몰려가고 봄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M시로 가는 버스를 타자마자 피곤 한 듯 두 사람은 이내 잠이 들었다. 마산에 도착하니 비는 멎었으나 진해로 가는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다. 마산에서 진해로 가는 도로에는 차량행렬로 가득했다. 제왕산 공원에 길에는 오색등이 달려있고 지나는 사람들의 화려한 옷차림은 만개하지 않은 벚꽃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한 낮이 되면서 사람의 물결은 더 많아 졌다. 활짝 핀 벚꽃 아래로 많은 사람들이 거니는 모습은 꽃과 어울려서 아름다웠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꽃속에 파묻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바로 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왔다. 그리고 서울 가는 막차 고속버스를 예매 하였다. 출발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연안부두 길목에 있는 체육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긴 노산 이은상의 시비가 있었다. 멀리 돝 섬 유원지가 멀리 보였다. 어자피 이루어 질 수 없는 것 이라면 가까워지기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도 하였다. 어제 못 다한 이야기를 두 사람은 이곳에서 마무리해야 되겠기에 현우는 발길을 이쪽으로 돌렸다.
늘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모든 일들을 어렵게 생각하기만 하였다. 어떠한 일이든 쉽게 생각하면 그 일을 쉽게 풀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투정을 하면 일은 자꾸 꼬이고 어려워진다는 것을 혜진에게 이야기 하였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면 바람핀다고 하고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에는 로맨스라고 말한다는 소설 속의 애기가 생각났다. 진짜 그녀에게 무엇을 원 하면서도 자신 있게 현우는 나서지 못 하고 있었다.
“난 말야, 지나치게 무엇을 원하진 않아. 그냥 내게 편하게 해 주면 돼?”
혜진은 그냥 듣기만 하고 있었다. 비온 뒤라 그런지 바다 바람은 약간 차게 느껴졌다.
“왜 내가 이러는지 내개 내 자신을 모르겠어! 더구나 가정이 있으면서,,”
“제 마음을 저도 잘 모르겠어요? 늘 경계하며 다가서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이상한 마음이 끌리고 있는 거 같아요.”
“됐어! 혜진아 ”
현우는 버스 시간이 임박해서 체육공원을 나섰다.
“아무튼 그냥 편하게 해주세요. 예전처럼 ”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고 있고, 또 혜진에게 뭘 원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현우와 그리고 혜진에 마음 역시 아직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천천히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가 출발 하려는지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하루의 시간이 아쉬운 듯 지나간 것 같았다. 버스에 올라앉으니 피곤한 몸은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무엇인가 얽혔던 혜진이의 마음을 조금 더 자기편에서 있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 한 것 같았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직도 부족 한 것 같았다. 흔들거리는 고속버스에 짧은 하루의 시간을 접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떠나는 길 보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언젠가는 떠나는 길도 돌아오는 길도 좋은 추억만 가득 채울 수 있는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렇게 끈질긴 인연은 모든 것을 놓아 주질 않고 있었다. ‘흙’이란 작품소설에서 읽은 글이 생각이 났다.
<그 어떤이가 내 가슴 속에 들어옵니다. 들어 와서는 내 가슴 속을 꼭 채웁니다. 내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들어오시는 것 같습니다.>
<임은 바다 저편에 서 있네. 건너가지 못 할 바다. 임은 하늘 저 위에 있네. 오르지 못 할 하늘. 아! 안 뵈올 임을 보았어라.>
4. 살얼음 같은 사랑
시간은 또 두 사람을 붙잡아 주질 않았다. 언제 부터인지 그들은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자 현우의 마음은 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비가 내리던 퇴근 길에 집에 가야 한다는 그를 기다렸다가 만나 서교까지로 왔다. 현우는 이렇게 또 조급하게 쫒기는 사랑을 해야만 했다. 하루를 안 보면 어디 멀리 떠난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을 모처럼 만에 보았다. 사월 둘째 주 일요일 현우는 친구의 약속이 어긋나서 갑자기 혜진이 생각에, 혹시나 하고 예나에서 그녀 기다렸다. 약속을 하지 않고 우연히 만났을 때의 그 생각을 하고, 예나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 곳에는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체취를 생각하며 늘 오면 자리에 않던 곳에 앉았다. 그리고 금방 그가 들어 올 것 같은 생각에 출입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현우의 모습은 측은해 보였다. 배고 푼 아기가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과 같았다. 잠깐만 이라도 그가 우연히 다녀갔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음에 만나면 무슨 심통을 부려서 오늘의 빈 가슴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현우는 생각했다. 너무 집요하게 혜진을 생각하는 것이 바보 인지도 모르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돌아서 왔다.
이튼 날 혜진의 전화를 받고 현우는 엊그제의 일은 까맣게 잊혀버렸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하고 억지로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 라는 것을 또 느꼈다. 현우의 속에는 언제나 심술이 가득했다. 그는 심술을 부려서 먹고사는 심술쟁이 같았다. 오월의 첫 주에는 혜진이 친구들과 현우는 하루를 보냈다. 늘 어디를 가도 셋이 돌아다니는 친한 친구들로 가끔 그들 틈에 끼어서 커피도 마시고 때론 저녁도 먹으면서 좋은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 들과 친할 수가 있었다. 그들과 젊음을 같이하면서 벽장대소를 하면 현우의 마음은 어느새 이십대로 돌아가 곤 하였다. 그의 친구들과 자리를 같이 할 때는 주위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 마음도 편했다.
그의 친구들은 처음 한 시간은 같이 있다가 그 다음은 먼저 자리를 나서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은 혜진과 현우의 시간이 늘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편하게 대해 주고 이해를 하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을 현우는 무척 좋아했다. 그날 저녁 시내에서 혜진이 여동생을 우연히 만났다. 예견된 만남이 아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언니한테 애기 많이 들었어요. ”
바람막이를 한다는 혜진이 동생과 인사를 대충 마치고 현우는 우두커니 옆에 서 있었다. 그들 사이에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기에 현우는 자리를 피했다. 현우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혜진이 동생이 현우를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았는지 조금은 궁금하였다. 그것은 현우의 엉뚱한 생각이었다. 그녀는 가끔 자신의 이야기를 현우에게 거짓말 없이 할 때도 있었다.
“집에서 선보라고 해요”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야지”
“선 본다는데 아무렇지 않아요?”
“그럼 뭐라고 해, 선보지 말라고 하면 안 볼 거야?”
“그래도 ”
“난 혜진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이 하나도 없어”
그러나 현우는 사실 그 뜻은 아니었다. 그녀가 결혼 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 그냥 있어 주기를 은근히 바랬다. 현우의 검은 속마음을 차마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오랫동안 자기 곁에 머물 수 있는 조건을 그에게 부여하는 것은 현우의 몫 이였다.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얼마 전에 선을 봤어요.”
“그런데 왜 맘에 들어?”
“두 번 만났는데 매너도 없고 별로 맘에 들지도 않아”
“혜진아 모두 다 맘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남녀의 만남은 그리 쉬운게 아냐. 뭔가 활짝 열어봐, 먼저 정을 줘 보면 다 좋은 사람이지. 그러면 상대편도 달라 질 테니까”
“아무튼 첫 인상이 싫어요”
“이 바보!”
“아직 인연이 아닌가 봐요 그리고 집에서 점 봤는데 저 한테 이상한 게 뭐가 씌여 있데요. 아마 지금 우리를 애기하는 것 같아요”
현우는 혜진에게 그냥 좋은 이야기만 해 주었다. 그냥 이대로 오래 있어 주기를 원 한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를 못했다. 잔인한 사월을 보내고 어느새 초여름으로 들어섰다. 요즈음은 그를 만나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돌아가고 그를 만나면 무언가 잘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항상 아쉬움에 헤어지고 나면 빈 가슴을 채울 수 없어 가끔 소주를 마시며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떠날 것을 미리 알고 우리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하자’ 라는 싯귀가 생각났다. 정말 사랑이란 악마의 덧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혜진의 유혹에 빠져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현우가 그를 유혹하여 사람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깊이 사랑하는 것 만큼 이별은 두 배라는 것을 모르는 현우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수은주가 3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으로 다가왔다. 리듬 없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한계를 느끼며 모든 일이 간혹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모든 일이 쉽사리 풀릴 것 같았지만 언제나 반복적인 생활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혜진이의 모습이 문득 떠오르고 있었다. 아마 현우 곁에 혜진이 있고 그가 현우를 생각 해 주고 있다는 자신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이 한 몸 빈손이 된다 하여도 혜진이 곁에 있다면 두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아마 왕관도 버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따라 나선 오스트리아의 어느 임금처럼 걱ㄹ 원했다.
시간은 어느새 유월도 지나 칠월로 접어들었다. 며칠 전 부터 지루한 여름 장마가 시작 되었는지 며칠 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지나면 못 다한 사연들이 남아 있어 늘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혜진에게 미안해하는 것도 언제나 똑 같았다. 혜진이 현우를 사랑 해 준 것 만큼 그를 사랑 해 주리라는 것도 변함없었다.
그러나 다가서면 그가 멀어지고 다시 다가서면 멀어 지는것 같아 항상 살얼음 디딘 초초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 에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요구는 두 사람에게 부담 이었다. 뚜렷한 목적없이 시작 한 것은 아니지만 현우에게는 무작정 혜진이 필요했다.
여름휴가를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을 해야 되겠는데 용기가 없었다. 이야기 할 기회가 주어지지 도 않았다. 몇 번의 여행에서 얻어진 것보다도 잃은 것이 많다는 알고 있는 현우는 다시한번 그녀의 마음을 움직여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지만 놓치고 말았다. 늘 만나면 말을 못하고 혜어졌다. 현우에 뜻을 읽지 못하는 혜진이 미웠다. 어느덧 출발 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모처럼 다시 만나 무심천 밤 바람 길을 나섰다가 그와 이야기를 하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설명을 할지를 몰랐고 말을 꺼내면 화를 내지 않을까 두려웠다.
아무런 말도 하지를 못 했다. 휴가를 며칠 남지 않았고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현우는 마음이 조급했다. 오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다시 만날 시간이 없었다. 서교에 와서도 혜진은 현우의 눈치를 모르고 있었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휴가를 같이 떠나자는 이야기는 뒤로 하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현우는 혼자 휴가를 가자고 해 보지만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가로 막고 있었다. 다음날 예나에서 혜진이를 만났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예나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혜진아 여름휴가 동행 해 주지 않겠니?”
“같이 가자고? 싫은, 딴 생각이 있어서 아녜요?”
“그런 뜻을 절대 아니야. 예전에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받아 드릴지 몰라서 사뭇 망서렸지 ?”
“, , , , , , , ,”
“그리고 덕분에 회사 일도 잘되고 있고. 아뭏튼 혜진이가 고마워서 그래 ,,,,,,,”
현우에겐 정말 오랜 고초가 끝났다. 회사에서 그를 다시 인정했고, 그리고 다음 달엔 보직이 결정되어 있었다. 고행을 같이 했던 동료들 중에서 그가 제일 먼저 회사에서 신임을 얻게 되어 무엇보다도 기뻤다. 그것은 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지만, 보이지 않게 뒤에서 힘이 되어준 혜진의 역할이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기 때문 이었다. 휴가에 대해 현우는 천천히 설명을 하였다. 그가 이해하고 승락 할 때까지 충분히 구체적으로 목적지와 필요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날은 듣기만 하고 대답은 듣지 못 한 채 헤어졌다. 결국 휴가 출발 이틀 전에 그의 최종 결심을 들을 수가 있었다. 밤차로 마산을 경유하여 해금강, 그리고 진주를 거쳐서 남해대교와 여수 오동도, 그리고 구례 화엄사까지 긴 여정의 계획이 결정이 되었다. 누가 뭐라 하여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5. 추억 여행
여름휴가를 떠나기 위해 저녁 10시쯤 역전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한 사람은 앞 문으로 또 한 사람은 뒷문으로 서로 다른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각자 버스에 올라섰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는지 현우는 버스 안을 살폈으나 다행히 아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여행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출발 할 때부터 잔뜩 흐린 날씨는 약간의 비를 내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문제 되지 않았다. 역전에 도착 하니 다행히 비는 그쳤다. 새벽에 출발하는 마산행 열차를 타기 위해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광장의 침침한 가로등 불빛은 피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떠들썩한 사람들 사이에 신문지를 깔고 그들과 같이 자리를 깔고 합석을 하였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새벽에 출발하는 무궁화 열차에 오르자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아랫 역에 가 있었다. 떠들썩하던 열차의 사람들도 이젠 잠에 취해 있지만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혜진아! 같이 가게 돼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좋다.”
“아저씨 마음을 전 도대체 이해 못 하겠어요”
“시간이 흐르면 다 알게 될거야. 어떤 것이 혜진을 위하는 것인지를,,,그리고 여행은 결코 헛데이 하고 싶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그것도 아니고 ”
“,,,,,,,,,,,,,,,,”
“어떤 상황이 전개 된다 하여도 지금에 이 추억은 잊혀지지 않을거야 아마!”
“집에선 친구들과 같이 가는 줄 알고 있어요”
“식구들을 속였다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그것은 혜진이가 선택한 것이고 혜진이 인생이니까”
사실 현우를 따라나선 혜진은 자신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현우를 좋아하고 만나는 것 그 모두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자책하고 꾸짖지만 어떤 마력의 힘이 혜진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
“혜진아 모르겠어! 내가 왜 이렇게 다가서고 있는지를,,,,.”
현우는 혜진의 손을 꼭 잡았다. 희미한 열차의 불빛 속에서도 혜진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제가 이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항상 미안해요 ”
“또 그런 소리 !”
“,,,,,,,,”
현우는 혜진의 입을 막았다. 헤진의 마음은 그것을 미안 해 하면서도 현우와 같이 있기를 원 했는지 모르는 일 이였다. 그것은 헤진도 현우를 싫어 하지는 않았다 혜진은 현우를 사랑하기 보다는 좋아하고 있었다. 그냥 평범하고 친절한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혜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열차는 여름 밤공기를 가로 질러 계속 남으로 달리고 있었다.
“혜진아 아무 생각 말고 내일을 위해 한숨 잠이나 자자 응?”
“무슨 내일 이예요 오늘이지 ”
“아참 그렇치”
내일을 기다리는 현우는 혜진을 끌어 않듯이 꼭 않았다. 진한 여자의 향기가 현우를 뭉클하게 하였다. 열차에서 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녀의 입술 위에 또 하나를 얹혀 놓고 싶었다. 그녀의 향기를 맡으면서 잠이 들었다. 열차는 새벽 4시쯤 마산에 도착 했다. 기차홈에 내려서니 열차에서 내린 피서객들로 가득 하였다. 역 광장은 새우잠을 자는 사람과 아침 손님을 부르는 경상도 사투리의 호객 목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딜 가실 계획 입니까? 최종 목적지가 어딥니까? 하며 초면인데도 서로 아는 척하는 모습들은 정말 정겨웠다. 충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어둠이 막 걷히는 5시40분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을 때는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사람들은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었다.
고성 읍내에 들어서자 날씨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산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충무까지의 거리가 뜻하지 않게 코카콜라를 실은 트럭이 빗길에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를 만났다. 마산을 출발 한지 4시간이 지난 아침 9시에 충무에 도착했다. 다행히 비는 멈추고 따가운 여름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해금강을 가기위해 항구 터미널로 향했다. 어디를 가나 모두 바쁜 사람들 이었다. 아직 피곤하고 잠이 덜 깬 모습 이었지만 해금강으로 떠나는 배에 올랐다. 바다 먼 곳 까지 바라 볼 수 있는 좌석에 두 사람은 앉았다.
“혜진아 좋지 ?”
“좋아요, 휴가는 아주 좋은 것 같아요 마음의 여유도 있고”
“저 멀리 수평선 끝에 홀로 서 있는 거 보이지 응?”
“누군데 ?”
“누군지는 모르지만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데”
밝은 모습으로 현우에게 짓궂은 장난을 하고 있었다. 충무를 떠난 지 한 시간 후에 비진도라는 섬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그리 크지 않은 해수욕장이 있었고 충무시내 사람들이 주로 찾는 조용한 곳으로 비교적 깨끗했다. 뒤편으로 나 있는 방파제 길을 따라 벼랑 사이 길로 이어지는 길은 추억을 만들기에는 좋은 곳 이었다. 엷게 낀 구름 사이로 젊음의 여름은 더위와 함께 모두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를 바라보니 모두가 현우것 같았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에서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강열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비진도의 초라한 어촌은 피서객으로 가득했다. 비진도에서의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해금강으로 향했다. 섬과 섬 사이를 빠저 나와 풍랑과 거센 파도에 깍인 기암절벽의 해금강을 만나자, 그 짧은 순간을 놓칠 수가 없었다. 섬의 남쪽 끝 해금강은 언제나 관광객의 발 길이 머무는 곳이다. 피곤하고 지친 여행길에 식사가 변변치 못한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 돌아오는 길에 혜진은 배 멀리를 했다.
몹시 아파하여 승무원에게 도움을 청 했지만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돌아오는 뱃길은 아픈 사람에겐 더욱 멀게 느껴졌다.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토하고 말았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현우는 그가 빨리 괜찮았으면 했다.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그를 앉고서 진정 시키려 애를 썼다. 얼마 후 충무에 도착 하였을 때는 그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옆에서 바라보는 현우도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빨리 괜찮았으면 하였다. 집에 돌아가자고 할까봐 걱정을 하며, 우선 그를 데리고 근처 다방으로 갔다. 몸이 편안 하도록 하고 시원한 보리차를 그에게 권했다. 보리차를 마신 혜진의 축 늘어진 모습에서 얼굴엔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현우는 더욱 걱정이 되었다. 무슨 말이라도 시키려 하면 그는 벌컥 화를 내곤 하였다.
“말시키지 마! 시이-, 아파 죽겠어!”
그러나 현우는 그래도 걱정에서 한마디 한다.
“뭘 먹어야 기운 차리지? 어제 잠을 못자서 배 멀리 하는 것 같아. 다른 데 아픈데 없지?”
대답도 없는 그를 붙잡고 현우는 자꾸 지껄인다. 멀리서 바라보던 다방 아가씨는 그냥 한참 두면 나아진다고 하며 걱정 말라고 현우에게 이른다. 답답한 현우는 밖으로 혼자 나왔다. 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울여 가고 있었다. 8월의 여름은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현우는 낯선 시내를 한참 돌아다니다 문득 약방이 눈에 띄여 약을 샀다. 다방에 돌아와 보니 혜진은 좀 낳은 듯 TV를 보고 있었다.
“난 아파 죽겠는데 어디 갔다 와요?”
“응, 약 좀 사왔어?”
“약 사러 가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면 아픈 사람 다 죽겠다”
“미안해. 응? ”
다방에서 한시간 이상을 보내고 나서야 혜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냥 다방에 계속 있겠다는 혜진을 간신히 달래서 다방을 나섰다. 기분도 바꿀 겸, 천천히 해저터널이 있는 곳 까지 걸었다. 길게 그림자가 내려진 충무 거리를 돌아 다녔더니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 가고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더 이상 갈 곳을 잃어버린 두 사람은 충무를 떠나기로 하였다. 시외 버스터미널로 발길을 옮겼다. 충무를 떠나기 위해 더위가 누그러진 오후 늦게 진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저녁 바람이 시원스럽게 해 주었다. 아파서 그 동안 먹지 못 했던 혜진은 저녁을 아주 맛있게 먹어 주어 그것이 고마웠다. 오색 불빛이 아른거린 진주의 여름밤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남강에서 불어 오는 강바람은 시원하게 해 주었다. 밤길을 걷는 두 사람은 잠시 행복에 젖어 있었다. 낯선 곳에서 또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아주 예쁘게 화장한 모습에서 현우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고 있었다. 그와 긴 눈웃음으로 잠시 행복에 젖어 있던 현우는 말을 건냈다.
“오늘 기분 어때? 좀 피곤하지?”
“어제 미안했어요.”
“뭐가 ?”
“정말 미안해요. 속상하게 해서 ,,,,”
“알면 됐어요! 근덴 난 누그던지 아프다고 하면 싫트라 !”
“알았어요”
초라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맞있게 먹었다. 그리고 촉석류로 향해 걸었다. 남강 기슭에 있는 촉석루는 박물관. 전망대, 논개사당 그리고 쉴 수 있는 여휴 공간이 있는 공원 이었다. 촉석루에서 밝은 혜진의 모습을 보고 있던 현우에게는 잠시 행복에 젖어 있었다. 촉석류 구경을 하고 진주를 출발하기 위해 터미널로 갔다. 거기에도 피서객들로 가득하였다. 사람들 모두가 얼굴에서 땀이 흠뻑 젖어 있는 데도 마냥 즐거운 모습 이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서 여름은 정녕 젊음의 계절 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하였다. 12시에 출발하여 남해 고속도로를 따라 남해대교 까지 오는 버스에서 혜진과 현우는 뒷좌석에 아주 편안히 앉았다. 손뼉을 치며 신나게 떠들며 노래를 하였다. 이번 여행 길에서 처음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천하를 얻은 것처럼 떠들고 있는 두 사람을 앞좌석 사람들이 좋치 않은 모습으로 휠끔 처다 보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남해의 연육교 다리 위에서도 장난은 계속 되었다. 남해의 떠나 오후 늦게 순천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여수로 향했다. 언제 이 순간들이 다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한자리에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혀 질 수 없는 추억의 길로 남겨 놓고 싶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이라는 것을 현우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순간순간들이 아쉬움과 착각에 있었다. 그와 거니는 지금의 이 거리는 모두 낯선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혜진과 현우의 두 사람을 더욱 가까이 있게 해 주었다. 출발해서 다음 목적지, 그리고 다시 출발해서 또 다음 목적지를 옮길 때마다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만원버스에서도 빈자리의 좌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쩜 그 빈자리가 현우의 마음을 알고 있듯이 두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여수에는 저녁때 도착하였다. 방파제 길을 따라 오동도에 도착하니 낚시꾼들이 섬 기슭으로 가득했다. 우선 유람선으로 오동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오동도의 산책길을 따라 거닐었다. 어느덧 저녁노을이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가려진 여수시는 일찍 해가 지는 것 같았다. 오동도에서 시내로 돌아오는 방파제 길엔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혜진아 무슨 걱정이 있니?”
“,,,,,,,,,,,,,,,,,”
조금전까지만 해도 어두운 눈빛이 없던 혜진에게 걱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냥 먼 산을 바라보며 혼자서 걷고 있었다. 돌발적인 혜진의 모습에 현우에 기분은 나빠 질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화엄사에 들렸다가 올라가자 응?”
“,,,,,,,,,,,,,,,,,”
“혜진아! 노을이 참 참 아름답다 그지?”
“, , , , , , , , , ,”
혜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걷고 있었다.
“두려워 하지마.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니까? 서툰 짓을 하지 않을게.”
오동도 방파제 길을 벗어나 좁은 해변도로를 지나니 여수 역전이 멀리 보였다. 즐거운 여행길에 흠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현우는 생각했다. 도시의 거리에는 가로 등에 불빛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역전에는 여행에서 돌아가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우울한 현우의 마음에 돝을 달아주었다. 두 사람은 우두커니 식사를 하기위해서 그냥 앉아 있었다. 종업원이 갔다 주는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는 현우에게 저녁식사를 하던 중년부부가 묻지도 않은 말을 걸어왔다.
“휴가 재미있습니까?”
“예?”
아마 그들처럼 여름피서 나온 부부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기들에 지금까지의 여행을 자랑하고 있었다. 더구나 여러 곳을 다녀왔다고 하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데도 자꾸 말을 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야간열차로 올라갑니다. 부디 즐거운 여행 되도록 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들이 식당을 나서자 현우는 맥 빠진 사람처럼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나오니 저녁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혜진아! 어쨌든 우리 기분을 풀자 응?”
“알았어요.”
다음날 아침 현우가 눈을 떴을 때는 혜진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언제 일어났어 깨우지 않고?”
“난 아파 죽겠는데, 자는 사람을 어떻게 깨워요?“
혜진은 억지로 먹은 저녁밥이 채어서 잠을 못 잤다고 한다. 바늘로 따고 등도 두드려 주어도 배는 여전히 아프다고 어린 아이처럼 칭얼대고 있었다. 여러 방법으로 응급조치를 하였다. 아픈 것이 조금 진정하자 숙소를 나섰다. 아침 해는 이미 머리 위에 올라 와 있었고 오늘 따라 팔월의 햇살이 무척 따라 따갑게 내리 쬐고 있었다.
“혜진아 늦장 부리면 오늘 못 간다.”
“안돼요. 오늘은, 아파 죽겠어요.”
”골부리면 떼 놓고 갈 거야”
“싫어! 난 지금 아프다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계속 아프다고 어린아이처럼 하고 있었다. 어찌나 그의 응석이 심했던지 택시기사까지 빙그레 웃어 주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우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된장찌개를 시켰으나 수저를 조금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빈속에 차 타면 멀미 한다고 꾸중을 권했다.
“못 먹겠는데 어떻게 해요. 혼자 많이 먹어요”
그는 먹기 싫은 것을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현우는 그가 남긴 밥까지 몽탕 먹어 치웠다. 그가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지만 보이자 않았다. 이리저리 한참을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뜻밖에도 막 돌아 나온 길목 미장원에 있는 혜진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바보같이 미장원에 간다고 그러지. 얼마나 걱정 했는지 아냐?”
미장원 아주머니가 현우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미안해요 머리 손질을 하고 싶어서”
“혜진아 미장원 보다 급한 것은 병원이라구? 참! 아프지 않아 ?”
“좀 괜찮은 것 같아. 걱정마.”
배고픈 것 보다 예쁜 것이 더 필요 했던 혜진은 미장원을 찾았고, 그의 천진스런 밝은 웃음에 현우는 그런 것을 좋아 했는지 모른다. 아침의 헬슥했던 모습과는 달리 전혀 다른 보습으로 혜진은 변해 있었다. 좀 생기 있는 얼굴에 아무 일이 없을 것 같아 현우는 안심했다.
“난! 아침밥 다 먹고 왔어.”
“그래요? 아주 잘했어요.”
결국 아침 배탈 소동 한바탕 한뒤 여수를 출발하여 화엄사에 도착한 것은 오후 시간이었다. 지리산 화엄사에도 여름휴가를 떠나온 사람으로 가득했다. 화엄사의 경내를 돌아서 계곡이 흐르는 곳에 발을 담그고 잠시 돌아 온 길을 생각하며 회포에 시간을 보냈다. 젊음이 넘치는 해수욕장 못치 않게 산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깊은 산속에서 들리는 매미소리, 산 내음 그 모든 것 들이 여름휴가를 떠나 오게 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계곡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어디 다녀 오셨어요?”
“이제 어디로 가실 계획입니까 ?”
“나 배고파”
칭얼대는 그녀를 데리고 산채 식당으로 들어섰다. 다리도 아프고 좀 쉬면서 천천히 식사를 하려고 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문 밖으로 보이는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한가로히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었다.
“어때 맛있지 혜진아?”
“바닷가의 음식은 좀 그런 것 같아요 ”
점심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전주에 도착하니 서울행 막차가 떠났다하여 연무대를 경유해 집으로 가는 막차를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여름의 긴 여정이 이제 모두 끝나는 것이다. 며칠 이나마 같이 있던 그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또 헤어져야 했다. 조금만 더 하고 아니, 오랜 시간을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것은 혼자만의 욕심 이였다. 떠나오면 돌아 갈 길이 있는 것을 모르는 현우가 아니었다. 누구나 만나면 헤어져야 하고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아쉬움 속에 인생을 늘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했다. 출발에서 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의 모든 일이 현우의 머리속에 스쳤다. 마음의 요동을 억제하는 사이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이였다. 지나친 욕심은 자칫 돌이 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고 커다란 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현우는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허락 해 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생각하며, 그를 언제나 편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다짐 해 본다. 터미널에서 그가 떠나자 현우는 어쩐지 찹찹하고 쓸쓸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없다는 것이 그를 쓸쓸하게 해 준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인지 그는 모르고 있었다.
항상 그와 같이 있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이 다 부질 없는 일이다. 그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리 하고 있는지 자신에 마음을 것 잡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에는 외로움이 구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항상 무엇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불안한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피서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집에서는 믿고 있었다.
“집에는 아무 일 없었지?”
“무슨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 그런 소리를 해!”
“식구들에게 언제 관심이 있었나요”
“미안해 언제 한번 틈내어 시골이나 한번 가자구”
저녁을 먹고 있는 현우 옆에서 아내는 투정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다리고 있는지 현우는 궁금하였다. 현우는 늘 미안해 하면서도 아내에게 잘 해 주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내에게서 얻지 못한 그 어느 것이 있기에 현우는 지금 방황하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아내 모습을 바라보니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미안 하였다. 잠자리에 누우니 온몸에서 피로가 전신에 와 닿는데도 눈은 감기지 않고 머릿속에는 잠념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행복했던 며칠간의 여행은 추억 속에 묻히고 있는 것 같았다. 현우는 혜진이도 현우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고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
혜진과 장난치던 것들이 현우의 머리속을 막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혜진이의 모습이 구름처럼 밀여 왔다 밀려가고 있었고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넌? 내게 뭐 줄래?
환타, 아이스크림, 쪼코렛
또 뭐? 줄래
콘스넥 새우깡
그런 것 말고 더 좋은 거 없어 ?
좋은 거 뭐야?
있잖아, 네가 제일 중요 하다고 생각 하는거?
중요 하다고 생각 하는거 ?
응! 마음 줄게
네 마음?
응!
진짜로 언제까지 줄래
영원히 영원히
네 마음 변하면 알지
응!
또 뭐 줄래
그거면 됐잖아,
우리 노래하자 응? 우리 같이하자 응 ?
별처럼 아름답던 사랑이여 꽃처럼 아름답던 사랑이여
다시한번 내 가슴에 돌아오라 사랑이여 내사랑, 아! 사랑은 타버린 불꽃 아 ,,,,”
6. 여름밤의 전쟁
여행을 다녀온 뒤, 어느 날부터인지 혜진에게 서서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현우는 알고 있었다. 무슨 이유 인지는 모르지만 조금씩 태도가 변하는 것 같았고 만나면 웃음을 주던 것도 차차 없어지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그녀의 투정이겠지 하고 며칠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더구나 변하는 모습이 날이 갈수록 뚜렷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아는 척을 하면 냉정한 목소리는 현우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어서 조급하였다.
“집에 무슨 일 있어? 요즈음 우울해 하고 있잖아!”
“왜 신경써요”
톡 쏘아 붙이는 혜진이 목소리에 현우는 기가 죽어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눈치만 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 것들이 오래 될수록 서로의 벽은 두터워졌다. 마음이 변하게 된 이유를 현우는 알 수가 없었다. 혜진을 만난 지난 몇 년 동안 수차례의 이별 예고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슬기롭게 위기를 넘겼지만 지금은 달랐다.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늘 알면서도 망설였고 그때마다 그를 놓아 주지 않으려 갖은 방법을 동원 하였었다. 가는 사람을 붙잡는 것 처럼 자신이 초라해 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매번 무엇 때문에 부정하고 또 망서리고 있는지 현우가 바보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선 혜진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퇴근길에 가까운 식당에 마주 앉았다. 오늘 따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것 같있다. 현우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도대체 어떤 이유인지 그에게서 변명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혜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을 다그쳐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분위기를 바꾸면 어떤 애기라도 하겠지 하고 저녁을 먹고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마찬가지 였다. 혜진의 묵비권 행사에 현우는 머리끝까지 화가 올라 있었다.
“무슨 일인지 내게 말해 줄 수 있겠어? 도대체 이유가 뭐야 왜 말을 하지 않아!”
현우의 큰 목소리가 조용한 찻집을 험악하게 만들고 큰 소리에 사람들이 처다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혜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더 이상 그와 대화를 계속 할 수가 없었다. 또 그를 이해해야 된다고 현우는 생각 했다. 지나친 욕심이 혜진이 마음을 흔들리게 한 것은 아닌지 하고 자신을 탓 하면서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채 찻집을 나섰다. 현우는 생각을 한다. 집에서 현우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결혼문제로 새로운 상대자가 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좋은 길을 택하라 일렀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우가 원했던 진실은 아니었다. 헤어지기 위해 연극을 미리 부터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가혹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냉전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어쩌다 그와 만나서 아는 척하고 접근 하면 그는 ‘왜 신경을 써요’하는 무관심한 행동에 현우에겐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현우에게 돌아 오는 것이 득인지 실인지도 모르고 있는 바보 같았다. 예기치 않았던 혜진의 행동에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히는 것 같았다. 웬지 현우는 주위 사람들이 밉고 귀찮아 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와의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던 혜진을 정류장에서 만났다. 현우를 보자 혜진은 깜짝 놀라는 표정 이였다. 어떤 말이라도 대답을 들어야 속이 시원 할 것 같았다. 차가운 겨울 얼음이 어느 봄날 제풀에 녹듯이 그냥 스스로 풀어지도록 현우는 내 버려두지 않았다. 그를 멀리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것을 따지는 것 부터가 나쁜 것 이라 하면서도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혜진아 잠깐 애기 좀 하자.”
“왠 일 이세요?”
정류장 한쪽 모퉁이, 희미한 가로등이 비춰 주는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여기서 못 만나는 줄 알았어?.”
“일찍 들어 가세요”
“왜 나를 멀리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데”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갑자기 두 사람에게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알고 싶어”
“이젠 모든 것이 싫어 졌어요. 이제 됐어요?”
“그런 대답 어디 있어?”
그는 그냥 무조건 싫다는 대답으로 귀찮다는 듯이 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런 막연한 대답이 어디 있냐고 되물었건만 그의 대답은 그냥 싫다는 것이었다.
“왜요! 싫은 것도 싫다고 하지 뭐라고 해요”
“우리가 이러자고 한 것은 아니잖아 ?”
갑자기 현우는 화가 머리 끝 까지 올라 있었다.
“착각하지 마세요.”
“이러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맘이야. 우리 차분히 처음부터 이야기하자고 꼭 이렇게 해야 돼?”
“알고 지낸 것이 지금은 후회가 돼요 ”
“그래 좋다. 이렇게 해야 속이 시원해?”
“제가 뭘요”
“더구나 요즈음은 아무런 연락도 없어서 더욱 그래!”
“,,,,,,,,,,,,,”
“뭐는 어떻고 설득력 있게 행동하면, 나도 이렇게 하지 않아!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지 않아?”
“미안해요. 전 그러지 못해서”
무엇인가 그의 결심이 단단하고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혜진이의 작은 마음이 돌아서 주기를 바랬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삼복더위가 가시도록 갑자기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를 만나서 조용히 애기를 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조금도 변하지 않고 토라진 혜진의 마음은 돌 같이 더 딱딱해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상한 듯이 처다 보면 지나가고 있었고 아무런 결말도 없는 언쟁은 계속 되었다.
이제 오랜 이야기가 진행되어 이미 현우는 정신을 잃어버릴 만큼 흥분해 있었다. 정신이 혼미상태에서 오랜 시간 실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두 사람의 말은 큰소리로 거칠어 가고 있었다. 현우는 혜진을 달래기도 했지만 밤은 깊어가고 달래는 것도 이제 현우는 지쳐 있었다. 어쩌면 혜진이 마음도 같았다. 끝도 없는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풀리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는 꼭꼭 잠겨 있었고 누구하나 양보하지 않았다. 현우의 체면은 이미 어디론지 사라졌다. 찌는 듯한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 여름밤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있을 터인데 서로가 신경전으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계속 되었다. .
“싫은 것도 이유가 있나요 ”
“그래도 무 자르듯이 그렇게 냉정하게 하는 것이 아냐?“
“미안해요 아무것도 몰라서”
“너를 안게 후회스럽다”
혜진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막말을 하며 빈정대는 혜진의 말에 현우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럴 수 있어! 혜진이 니가 ?”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그런 말에 한편 으로는 현우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우리 이렇게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애기하자 응?”
“할 얘기 없어요.”
두 사람 모두가 얼굴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현우는 화가 나자 혜진의 손목을 잡아끌며 그럴 수가 있냐고 혜진의 흥분을 막으려고 했다.
“혜진아 우리 이런 것은 아니잖니? ”
현우는 혜진의 손목을 잡자 이상하게 생각한 혜진은 위기를 벗어나려고 힘을 다해 손목을 뿌리쳤다.
“놔요!”
짜증스런 목소리가 밤하늘을 퍼저 나갔고 현우는 혜진이의 손목을 더욱 꽉 쥐었다. 그리고 다툼의 목소리도 더 커지고 사람들도 구경난 것처럼 바라보고 있다. 원수처럼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싸움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아니었는데 하며 생각한 현우는 손목을 놓아 주었다. 그러자 마침 있는 힘을 다해 현우 손에서 벗어나려던 힘에 풀려서 손목시계가 아스팔트 위에 동강이 났다. 이어서 핸드백은 길가 저 멀리 내 던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불과 이삼초 사이였다. 조그만 것을 이해 못하는 사소한 시비가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꼭 이래야 돼요”
하며 혜진은 큰소리로 울면서 다른길로 가고 있었다. 허탈해진 현우는 붙잡을 생각도 못했다.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혜진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온 몸으로 땀이 비 오듯 내리고 옷이 흠뻑 젖었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은 이미 허공 속으로 내 던지고 있었다. 현우는 아스팔트위에 떨어진 시계를 줍고 핸드백을 챙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사랑에 굶주린 쓸쓸한 가난뱅이 같았다. 어느새 얼굴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혜진아, 어쩌면 좋니 응!“
담배를 피우며 자신의 흥분을 가라 앉혔지만 도저히 흥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큰 길로 나가서 혜진네 집으로 가는 택시를 무조건 탔다.
시내 중심가에서 30여분 차를 타고 한적한 마을로 들어섰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망설임 없이 그녀의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시간은 밤 10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집이 큰길 옆이라 쉽게 식구들 동정을 살필 수 있었다. 하늘을 처다 보니 여름밤의 별들이 유성을 까맣게 수를 놓고 있었다.
“왜 그래 어떻게 된 거야?”
“,,,,,,,,,,,,,”
“무슨 일 있었구나. 또 그 사람 만났지?”
“아니야 ”
“그런데 왜 이 꼴야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 응?”
화난 표정으로 들어온 그녀를 언니가 묻고 있는 것 같았다. 핸드백을 내 던지고 빈손으로 들어와서 언니에게 택시비를 얻어 지불 한 것 같다. 그녀가 언니와 이야기 하는 것을 창문 밖에서 듣고 있던 현우는 집에 들어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냥 모른 채 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들어가서 어떤 변명이라도 해 주어야 하는지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화난 김에 이곳까지 왔지만 들어갔다가 창피 당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망설였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떻게 달려 왔는지 아직도 등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너 어쩌자고 그래, 그렇게 이야기해도 몰라 이 숭맥아?”
그의 언니 목소리만 들릴 뿐 비교적 조용했다. 계속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보세요! 실례합니다.”
“누구세요”
길가 쪽으로 나 있는 좁은 방문이 열리면서 그의 언니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혜진씨 좀 만나고 싶어서.,,,,”
“무슨 일이예요”
“실은 핸드백을 놓고 그냥 돌아갔기 때문에 이걸 같고 왔어요. 좀 만날 수 있는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밤이 늦었는데, 내일 애기 하도록 하세요.”
“만나고 싶지 않아요.”
언니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에 누워있던 목소리가 반쯤 열린 방안에서 들려왔다.
“미안해요 서로 오해가 있었는지 모르니 잠깐 애기 좀 했으면 해요 ”
“하고 싶은 애기 없어요.”
혜진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현우의 입장은 자꾸 난처해지기만 했다.
“그럼 이곳까지 오셨으니 방에 들어 와서 이야기해요 ”
언니는 밖으로 혜진을 내 보낼 수는 없다며 방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창피나 당하지 않을까 생각 하며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말에
현우는 못 이기는 척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뜻밖의 불청객 손님이었다. 현우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서자 같이 있던 동생들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랫목에 누워 있던 그녀가 울었던 얼굴 모습으로 부시시 일어나 있다. 한 쪽엔 피아노와 책상이 놓여져 있고 조그마한 책장과 장농이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동생들이 안방으로 몰려가자 어른들이 누가 왔냐고 묻는 듯한 소리가 현우의 귀까지 들렸다. 그러자 얼른 알아 채린 언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답을 한다.
“혜진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있었나요”
“아닙니다. 좀 야단을 했더니 화가 났는지 핸드백을 놓고.... ”
“미안합니다. 네가 뭘 잘못 했구나 ”
“그런 뜻은 아닙니다. 예기치 않은 일이 가끔 생기곤 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것은 현우의 변명이다. 그녀 언니는 이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채 하고 있었다. 현우도 덩달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일을 그녀 언니에게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현우와 혜진과 두 사람이 해결해야 될 일이다. 언니가 먼저 두사람 더 이상 만나지 말라 했다면 대화 분위기는 이상하게 되었다.
‘당신은 유부남인데 어쩌려고 그래요. 교제를 끊어 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대화가 시작이 되었다면 더욱 어렵게 풀렸을 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에 현우 입장은 난처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흥분한 현우는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을 것 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순리대로 풀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언니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처럼 하고 있었다. 현우도 상당히 조심스레 언니와 애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마무리 될 무렵에 그의 언니가 잠시 밖으로 나갔다.
“혜진아, 무조건 미안해”
“어쩌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혜진은 현우에게 미움이 가득 찬 목소리로 구박을 한다. 미워만 할 수 없는 두 사람이기에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이해한다면 모든 것이 잘 풀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현우 머리를 스쳤다. 지나친 자기 욕심에 이해를 못하고 저지른 과욕이라고 생각했다.
“잘 잘못을 따지기 전에 미안해”
“빨리 가세요. 어른들 알면 큰일이 나요.”
화가 풀어 질줄 모르고 있기에 현우는 그녀에게 심통 있는 말을 건 냈다
“배고프다. 먹을 것 좀 없을까?”
“참 넉살도 좋으셔.
화난 그녀를 달래 보려고 엉뚱한 말을 꺼낸 것이 현우를 비웃기나 하듯 빈정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가지 왔는지 모르겠어. 아마 내 정신이 아닌 것 같아”
“늦기 전에 어서 가세요. 11시 막차가 있어요.”
“아직도 화 풀어지지 않았어. 화 좀 풀었으면 해”
그녀는 대답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빈방에 혼자 앉아 있는 현우 가슴엔 땀이 흠뻑 젖고 있었다.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낙인 되지 않고 어떻게 잘 되었으면 했다. 이윽고 혜진은 과일과 음료를 들고 언니와 함께 들어왔다. 늦은 밤이지만 불청객이 되지 않기를 현우는 간절히 바랬다.
“좀 드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찾아온 것이 실례가 되진 않았는지요?”
처음 보다는 언니와의 대화가 잘 되는 것 같았다. 조금전 보다는 분위기가 좋은 느낌 이었다.
“혜진씨 에겐 아무 잘못이 없어요, 잘 좀 부탁해요.”
그의 언니는 말씨도 깨끗하고 공손했다. 언니는 아직 미혼으로 혜진이 보다 다섯 살 위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오늘 정말 실례 많았어요. 제가 돌아간 후에 혜진씨에게 아무런 일 없었던 것처럼 해 주세요. 늦어서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불청객 현우는 그녀의 집을 나섰다. 어쩌면 모든 것을 거짓으로 이야기로 위기를 모면했다. 어떻게 이곳까지 왔으며 그녀의 언니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의 모든 일들은 순간처럼 지나갔다. 마치 현우는 미궁 속으로 빠진 것 같았다. 멀리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차가 갔는지도 모르니까 지나가는 택시 잡아타고 가세요.”
멀리서 혜진이 목소리가 유성처럼 들려왔다. 긴장했던 시간이 지나서 인지 온몸이 후덥지근한 했다. 오늘 일로 해서 그녀와의 관계는 이렇게 끝나야 되는지 현우의 머리는 갑자기 복잡해지기 시작 하였다. 얼마를 걸었는지 저 멀리 시내 불빛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여름 밤 하늘의 별들은 오늘 따라 유난히도 빤짝이고 있었다. 현우의 무거운 발길은 기분이 찹찹했다. 돌아오지 못 한 강을 건너간 것 같았다. 캄캄한 시골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현우의 등에 선 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시내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 시간은 걸어야 했다. 여름 말복이 지났지만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초대 받지 않았는데 찾아 간 게 과연 옳은 행동인지 생각을 했다. 시골 마을의 불빛이 멀어지면 시내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그네는 뚜벅뚜벅 발길을 옮기고 있다. 몇 시간 을 걸어서 집에 돌아 왔는지 현우의 옷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먼 길을 걸어오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사랑은 참으로 어려운 고뇌이다. 그녀를 만난 후 지금까지 처음으로 자신의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무엇을 얻으려고 자존심을 버려가며 쫒아 다니고 있는지 초라하게 느껴졌다.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번민 속에서 잠을 이루고 있었다.
7. 미 련
다음날 현우는 서울 출장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바쁘게 움직였다. 터미널로 가는 길에 만날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서점에 들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현우가 들렀을 때는 손님이 없었다. 뜻밖에 현우가 방문하자 책을 정리하던 해숙은 의야스런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두사람 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을 이해하는 편으로 항상 두 사람의 대변자가 되어 주곤 하였다.
“웬일이세요? 이렇게 일찍, 오늘 회사 출근 않 하셨어요?”
“출장길에 커피 한잔하고 싶어 잠깐 들렸어요.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현우의 말에 두 사람은 서점 앞에 있는 찻집에 마주 앉았다. 혜진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에게 전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무슨 일이 있었겠구나, 미리 짐작이나 한 것 처럼 커피도 주문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자마자 현우를 다그친다.
“무슨 일 있으세요?”
현우는 한참을 망설였다.
“혜진이가 오늘 출근하지 안했어요. 집으로 전화 좀 해 줄래요”
“전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잘 좀 하시지 그랬어요?”
해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갔다. 현우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걱정스런 한숨과 담배연기를 길게 내 품었다. 이윽고 전화를 걸고 돌아왔다.
“집에 있는데 전화 받지 않겠대요.”
“누가 받아요 ”
“동생이 받았어요. 그런데 머리가 아파서 누워 있대요. 어떻게 된 거예요?”
“아무 일도 아네요.“
“그런 것 같지 않은대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요”
“그래요. 왜 그러세요. 좀 이해를 하시지,,,”
“저도 모르겠어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담배를 다시 피워 물었다. 그리고 현우는 엊그제의 일을 그에게 털어 놓고 말았다. 그녀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은 실레라고 생각했다. 또 한번 자신을 바보처럼 비참하게 하고 있었다. 현우는 그래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출장을 떠나야 속이 시원 할 것 같았다. 해숙은 두사림의 관계를 이해 이해하려는 친구였다. 그에게는 좀 미안했다.
“고집이 좀 세고 성질이 좀 나빠서 그러지 좋은 애요”
“저도 그걸 압니다.”
“지금 출장 가신다며 늦지 않아요.”
“서울 가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제의 일을 잘 마무리 짖고 오해를 푸는 것이 더 중요해요.”
“시간이 지나면 오해가 풀리겠죠.”
“제가 나쁜 놈이죠?”
“왜 그렇게만 생각하세요. 우리 친구들 모이면 늘 좋으신 분이라고 애기해요”
“처음에는 제 자신이 순수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상한 것을 느꼈어요.”
“좋은 방향으로 풀어 가도록 노력해요. 혜진이가 많이 생각하고 있는 거 알고 있으세요?”
“친구들 보기에 미안해요”
“마음을 편히 하세요.”
출장 다녀와서 저녁에 혜진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청했다. 현우를 이해하는지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우연을 가장하여 용서를 빌고 화해를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이해를 해 주었다.
“8시까지 예나로 오세요. 연락해서 혜진이 만날 수 있게 해 드리겠어요.”
“미안해요. 늘 고맙고요.”
현우를 위해 조금은 귀찮치만 그렇게 해 주겠다는 그가 더 없이 고마웠다. 다방을 나와서 현우는 터미널로 향했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버스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마침 고속버스의 라디오에서 늘 듣던 ‘유니드미’란 노래가 들려 왔다. 눈을 감고 그는 생각한다. 모든 것은 혼자 힘으로 되지를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운명의 손에 의해 서로의 갈 길이 이미 정 해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녁 8시에 도착하여 약속 장소인 예나로 향했다. 그러나 예나에 들렸을 때는 혜진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친구들이 현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좀 늦었어요.”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요. 혜진이가 머리 아파서 못 나온대요.”
“직접 전화 통화 했어요.”
“네 오늘은 만나고 싶지 않은가 봐요. 몸이 좀 괴로운 것 같아서”
해숙이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모른 척 하고 출근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
“그냥 내 버려두세요. 그럼, 아마 제풀에 꺾일 거예요.”
“미스 강! 미안하고 정말 고마워요.”
현우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별 것도 아닌데 괜히 혼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본다. 입 맞이 씁쓸해진 느낌이었다. 이럴 때는 그 친구들과 같이 있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장소를 옮겨서 뭐라도 마셨으면 하는데, 어떠세요?”
“아니, 우린 됐어요. 일찍 들어가세요”
“여러 가지로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힘 내세요.”
혜진이 없는 그들과의 만남은 어색했고 같이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들과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할 수가 없어서 예나를 나왔다. 맥주라도 한잔하고 나면, 마음이 좀 후련 해 질 것 같았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아직 더위는 여전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한잔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혼자 술집으로 들어섰다.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훌훌 터러 버리면 그만인데 하면서도 현우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서 괜한 걱정 괜한 마음으로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것이 아니기에 현우의 마음은 안절 부절을 속을 태우고 있었다. 혜진을 사랑 한다는 그것보다도 이렇게 끝나는 것은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는 것이 아쉬웠다. 며칠 동안 혼자 속을 태우며 현우는 지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 마음을 다스려야 하겠기에 바람이나 쏘이려고 밖으로 나가려던 차에 마침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요새, 통 연락이 없다.”
“응, 좀 바빴어. 미안해”
현우는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도 사실 혜진이를 더 자주 만났었다.
“야! - 우리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자”
두 사람은 길목주점에 마주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이런 애기 저런 애기 하다가 혜진이 이야기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혜진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는 쉽게 이어졌다. 엊그제 있었던 다툼을 친구에게 털어 놓았다.
“임마, 다 부질없어. 깨끗이 잊어버려”
“누가 그걸 모르니? 다 알고 있으니, 괴롭지”
“그럼 너 어떻게 할겨, 막 말로 데리고 살겨? 집에 있는 제수씨는 어쩌려고?”
“내가 그 애한테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
“그럼 뭐야? 야! 지저분하구나.”
“어려운 일로 방황하고 있을 때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용기를 내게 주었어. 그리고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도 그는 항상 내 편에서 있어줬어”
“웃기지마. 뭐! 시를 읊고 있냐?”
“넌 몰라. 무식한 니가 뭘 아냐? 술이나 마셔라”
“그래 좋다. 그럼, 지금은 뭐야, 게 때문에 네가 방황하고 있잖아”
“경석아. 그냥 아무렇게나 편하게 생각할까?”
“모든 것은 다 위선야. 알았냐? 니가 뭐가 부족해서 여자를 구걸해? 임마!. 한때 추억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려. 그래 술이나 하자”
“겐 내개 잃어버린 웃음을 갖다 준 애야 ”
“야 ! ,시끄럽다. 어째 넌 그러냐? 바보처럼”
“미안하다 경석아 우리 술 한 병 더 할까?”
“좋다 그래. 참 한심한 니를 보니 술 맛 난다”
“인생은 십일홍이라 했잖니 한번 왔다가 덧없이 가는 것이 인생이려니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런거 아니다. 니도 한번 해봐라. 맘이 싹 달라진다.”
“개소리 하고 있구나. 난 널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뭐가?”
“니가 지금 여자타령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경석아 모르겠다. 하였튼 좀 이해 해다오”
“알았어. 임마! 우리 술 한 잔 더 하자”
술이 술을 먹고 마시며 두 사람은 잔뜩 취해 있었다. 대낮부터 먹기 시작한 술은 저녁 늦게 끝이 났다. 술을 마시면 모든 잠념이 없었질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못했다. 현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혼자 속상해 하고 있는 바보 같았다.
8. 강 건너 등불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이 혼자의 힘으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쉽게 사랑하는 것도 바보가 하는짓 이라 생각했다. 사랑이란 어떤 순리든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 진리를 깨닫게 되는 날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랑이란 애가 탐으로서 성숙하고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녀가 먼저 약속을 해 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몇 주일이 지나도록 그를 만나지 못 했다. 얼마 동안은 냉전이 필요 하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만남의 약속을 기다리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는 것 같았다. 얼었던 강물이 봄바람에 녹듯이 그냥 제풀에 지졌으면 했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를 않았다.
어느 덧 가을이 시작되는 9월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혜진이 성북동 친구 집에서 모임 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 냉전이 계속 될수록 마치 남들이 비웃는 것 같았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아무 일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들과 만나는 날을 디데이로 하고 그와 부딪히기로 했다. 그날따라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저녁 날씨는 조금 쌀쌀했다. 골목 어귀에서 처량하게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자존심은 이미 달아나 버렸다. 얼마를 기다렸는지 모임을 끝내고 친구들과 아무 것도 모르고 재미있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현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만나자, 촌스런 싸움은 지난 번 처럼 계속되었다.
“혜진아! 우리 예전처럼은 될 수는 없어도, 그렇게 야속하게는 하지 않기야?”
“집에 갈래요. 늦었어요”
그는 한마디로 귀찮다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아무 애기도 하기 싫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겠다는 혜진이 생각 이었다. 현우는 길목에서 그를 가로 막았다.
“이유가 뭐야. 혜진이가 이러는 행동은 나빠 ”
“제가 뭘 어쨌는데요.”
“아무리 그렇다고 무시하는 것은 잘못야 ”
“전 이러는 것이 싫단 말예요 ”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퍼젔다. 밤은 깊어가고 빗줄기는 굵어지고 있었다. 그가 간다고 길을 나서면 다시 심술쟁이처럼 가로 막고 설득을 하고 다시 지친 듯이 있다가 또 그가 간다고 하면 다시 길을 막고 무조건 그를 귀찮게 했다. 이렇게 하는 행동이 나쁜 것 이라는 것도 모르는 현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그와 점점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자꾸만 일이 난처하게 꼬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밤이 늦도록 혜진을 괴롭혔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때로는 포기도 해야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래야 내 자신이 더욱 초라해지지,’
하며 자신을 돌아보지만 현우의 마음은 꼭 무엇에 쫓기듯이 조급해 있었다. 미련이 모든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가고 두사람의 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우산도 쓰지 않고 남에 집 담벼락에 기대여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얻기 위해 비를 맞고 끝도 없는 다툼을 하고 있는지 그것은 마치 미로의 사랑싸움 같았다. 시간은 흐르고 서로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의 미움만 더해 갔다. 이제 오랜 시간이 되었고 서로가 지쳤는지 누가 먼저 애기 했는지 승패도 없이 그냥 휴전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현우는 택시를 타고 그를 데려다 주어야 했다. 만나면 화를 내지 않고 천천히 설득해야 된다고 생각 하면서도 그를 만나면 대화의 흐름은 막히고 이상한 분위기로 변해가며 종말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제 또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얽혔던 쇠사슬의 힘은 점점 멀어지는 것을 현우는 느끼고 있었다. 현실에 착실하게 지내는 것이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현우도 그리고 혜진이도 당분간 연락이 없었다. 서로가 제 풀에 꺾었으면 하였다. 그가 정말 미워지게 되면 자신에 모습은 어떻게 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떠날 때를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처럼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현우는 이유 없이 아무에게나 요즈음은 짜증을 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항상 늘 그랬듯이 조급한 것은 언제나 현우였다. 한달이 지나도록 소식을 끊을 수는 없었다. 다시 그를 만나야 무슨 일이 풀릴 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가 떠난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면 그 사람을 잊는다고 했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 하는지 현우는 아직은 모를 것 같았다. 그가 만나기 싫어하면 끈질기게 전화 했다.
그는 전화를 받으면 끊고 그러면 현우는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예나에서 그를 만나고 싶다고 일방적인 전화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예나에 들렸을 때는 그녀는 없었다. 오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설마하고 기다렸던 것이 또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정말 초라하고 측은해 보였지만 예나를 당당히 나섰다. 화가 난 현우는 피아노 학원에 가면 그가 있을 것 같았기에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학원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차에 그와 마주쳤다. 집에 가려고 학원을 막 나섰던 것 같았다.
“혜진아! 약속 왜 안 지켰어! 응?”
현우는 무조건 큰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찾아 와요 ”
“왜 오면 안돼! 그럼 약속을 지켜야 할께 아냐.”
화난 현우의 큰 소리에 놀란 원생들과 선생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피한 걸 눈치 챈 혜진은 현우를 붙잡고 학원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내가 화를 낸다고, 거기서 똑 같이 화를 내면 어떡해요.”
“그것은 정말 미안해. 그렇지만 기다려줘야 하잖아?”
“지금 막 갈려던 길이예요. ”
그 말은 그녀의 변명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예나에 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좋아! 그럼 예나에 가자고”
“싫어요. 지금 그 곳에 갈 기분이 아네요.”
두 사람은 또 체면도 없이 시내 중앙로에서 다툼을 또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휠끔 처다 보고 있었다. 지난번 하지 않으려고 현우는 흥분을 삭이고 있었다. 중앙로를 벗어 날 때까지 어떤 애기든 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기대 할 수 없었다. 현우는 다시 또 바보가 되고 말았다. 그날은 낯선 사람들이 헤어지듯이 아주 멋쩍게 그와 헤어졌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주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구석진 곳으로 혼자 자리를 잡았다.
‘바보! 뭐 잘났다고 튕기고 있어. 나쁜 기집애. 지가 뭔데‘
얼마나 술을 먹었던지 현우의 혼잣말에 이제 술잔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이 혼자의 힘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쉽게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이였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바보라고 생각하였다.
시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이미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혜진은 헤어짐을 하기 위해 벌써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마음에 동요도 움직임 없이 깨끗하게 그가 연출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혜진이 마음이 곧 바로 달려 올 것 같은 생각은 떠나지를 않았다. 미련은 언제나 구름처럼 그에게 밀려오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만나기는 더욱 어려웠고 어쩌다 우연히 스치면 그때마다 혜진의 마음은 더 차가운 얼음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그 가을의 한 달은 혜진의 뒤를 따라 다니면 귀찮게 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어떤 때는 혜진에 마음을 알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달려드는 그것들은 현우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갖은 수모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을 꾹 참아야 했다. 한편으로 그를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그것은 그의 진실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서로를 위해 그의 각본에 의해 연출도 하고 주연도 하는 것 이라 믿었다. 그해 가을 현우는 가장 슬프고 힘겨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어쩌다 약속해서 만나게 되면 똑같은 소리를 혜진에게 반복적으로 들었다.
그럴 때마다 만나지 않아야 하지하면서도 정신을 가다듬지만 먼 발치에서 그가 따라 오라 손짓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어 미련을 버리지 못 하였다. 현우는 차츰 모든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할 일없이 거리를 방황하고 또는 다방으로, 다방에서 주점으로 어딜 가나 그에 그림자가 늘 따라 다녔다. 한잔의 술잔을 비우고 나면 다시 술잔 속에 비추는 영상은 현우를 괴롭히고 있었다. 돌아 갈 사람 이라면 어떤 아픔이 오더라도 보내야 한다. 이렇게 초라한 것은 지푸라기라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해 가을은 이별의 서곡이 시작 되였다. 토요일 오후에는 혜진을 만나기 위해 예전에는 시간을 항상 비워 두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싫다고 하는 그녀를 따라 다니며 귀찮게 하기도 이제는 싫증이 나 있었다. 돌아 올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못해 그를 설득 시키려 했던 것도 어쩜 바보스런 일인지도 모르는 것 이였다. 어쩌다 만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처럼 그녀는 ‘또 시작이네’ ‘왜 신경 쓰세요’ 하며 핀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다림을 주지 않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린다고 돌아오지는 않는다. 자신을 멀리하는 그를 미워하면서도, 또 한편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한 것 인지도 모른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만남의 인연이 있었다면 그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우는 그 조그마한 연민의 정을 떨처 버릴 수가 없었다. 그에게 갖은 수모를 받아 가면서도 그를 이해하려 했다. 한 가닥 인연의 끈을 단단하게 매 놓지도 못한 채 차즘 잊혀 가는 게 아쉬웠다. 만남이 없어지면서 그리움이나 아쉬운 생각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아무 미련도 없이 가을은 그들을 외면한 채 깊어갔다. 이제 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정말 어쩌다 만나는 일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두 사람은 서로가 그냥 스쳐갔다. 미움으로 변해있는 것과 그를 멀리 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자꾸만 생각이 멀어 진다는 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참담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 세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선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와 빛나는 새해 아침도 쓸슬히 맞이해야 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으며 눈도 무척 내렸다. 세월의 시간은 벌써 12월이 되었지만 현우에겐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와의 만남의 끈은 쓸어가는 삼팔선 같았다.
이제 머지않아 어느 팝송 가사처럼 ‘네가 떠나자 마자’ 지구의 종말이 다가 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금방 현우 곁에 다가 올 것 같았다. 그 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다가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고 먼저 연락하기에는 이젠 그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깐 진달래가 한창 피는 4월 중순에 정말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봄길 따라서 중앙로에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바삐 오가는 인파속에서 그녀를 발견하였다. 뒷모습만 보아도 단번에 그녀인 줄 알았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수많은 살므들 틈에서 그녀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반가움을 채 표현하기도 전에 얼굴이 붉혀지고 있었다. 인연의 끊을 확인하려는 그것을 부정하며 다툼은 다시 시작 되었다. 싫다는 사람을 붙잡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아무 결론도 없는 이야기에 두 사람은 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참으로 끈질긴 인연이었다.
“그래 잘 났어 ”
“이게 왜 이래”
“그래 잘 가”
이런 모습이 그에게 추한 꼴을 보였고 이래야 속이 시원한지 입에 담을 수 없는 다툼이 연속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 했으리 만큼 그들은 심하게 다투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별을 선언하고 말았다. 긴 여로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에 시간을 보내야 했었던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을 큰소리로 자랑하듯이 다짐을 했다.
“미안해 정말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혜진아! 이제 약속도 하지 않겠어”
“인연이 없었던 것으로, 그리고 잠깐 지나쳐 버린 것으로 잊어 버려요”
“이렇게 싸움을 하면서 헤어져야 한다는 거, 독하게 마음먹고 잊지 않을거야.”
“미안해요 저도 이런 것이 아니 였어요. 모든 게 우스운 일이 라는 것을 알았어요. 헤어지는 것은 아프겠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이예요”
“미안해. 혜진아. 이제 정말 연락하지 않을게”
“서로 아는 채 하지 않기 예요”
“이래야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습다.”
현우는 목이 메었다. 현우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울고 있었다. 이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 설 수 없는 혜진이 마음을 돌려놓기는 이미 현우의 힘이 부족 한 것 같았다. 이제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사랑이 있을 때는 모두가 아름답지만 돌아 설 때는 남만도 못한 게
사랑에 인연 이었다. 보기 싫은 사람은 떠나보내야 했다. 어떤 아쉬움 없이 혜진과의 작별 여행을 떠나야 했다. 현우는 혜진을 보내 놓고 며칠은 괴로움으로 잊으려고 술을 먹었지만 이제 모든 연출은 끝이 났다. 팝송가사 처럼 그가 굿 빠이 라고 하자 아름다운 이 세상은 이미 끝나 버렸다. 이별 연출이야 어쨌든, 한때 그를 좋아했고 그로 하여금 어떤 어려움도 걸을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지만 지금은 부족했다.
사람을 만나기보다도 헤어지기가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가슴 아픈 것은 더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쉬운 일이다. 더구나 작별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 드려질 때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 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떠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더 이상의 상처는 기억 속에 아픔만 남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가는 사람을 붙잡는 것 처럼 자신이 초라해진다는 애기를 들었던 현우는 아무 일도 없는 것 처럼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9. 작 별
현우가 혜진을 다시 만난 것은 그녀 생각을 거의 잊혀저 갈 무렵 이었다.
처음 며칠은 보고 싶어 괴로워했지만 이젠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 들렸다. 그동안 하지 못한 여러 일을 열심히 했다. 회사 생활도 많이 낳아졌고 이제 인정도 받고 자리도 잡을 수 있었다. 문득문득 미련이 따르고 했지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에게도 충실했다. 사실은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일인데도 그것들에게 미련을 버지지 못했을까 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한 때는 사랑이란 단어를 사용했던 혜진이 생각에 문득 멍하니 딴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래도 무엇 보다도 가슴 아파하는 것은 꼭 이별을 연출해야 되였다면 꼭 그렇게 다툼을 하며 헤어저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가끔 소식이 궁금하거나 보고 싶을 때는 왠지 그의 친구가 있는 문화서점에 그냥 들렸다. 그에게 가면 그녀의 근황을 웬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아쉬운 구원의 손길을 뻗는 것은 항상 언제나 현우였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봄이지나 여름이 한참이던 어느 날 이였다. 그를 만나고 싶어 현우는 그동안 몇번이나 대답도 없는 빈 전화 다이얼을 돌렸었다. 오늘도 그는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하였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두 사람은 앙금의 오해를 풀어야 했다. 사람들이 피서를 떠난 텅빈 예나에서 이별의식을 한지 꼭 3개월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와 자존심을 서로 앞 세워 가며 다투었고 그것을 이유로 헤어진 것을 어찌 서로 미워 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그것들의 잔 뿌리가 남아 있었다.
“혜진아 미안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 , , , , , , , , ,”
“내가 무조건 나빴어. 그리 하는게 아니었는데 ”
“사실 오늘 나오지 않으려 했어요. 그러나 생각해보니 저도 잘못했구”
“밉던 곱던 미운 정을 무우 짜르듯 하는 것은 나빠! 마음 상하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해!”
“요즈음 어떻게 지내세요”
“건강히 잘은 잊지만,,,,,”
“제 생각 하지 마세요. 그리고 예전처럼 모든 일에 자신을 갖구 열심히 하세요”
“,,,,,,,,,,,,,,,”
“어쩜 올 가을에 결혼 할지 몰라요”
혜진의 말에 현우는 당혹하며 전신이 짜릿 할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모두가 떠나가는 구나’ 현우는 속으로 되뇌었다. 현우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말 들을 듣기에는 조금은 짜증났다. 현우는 혜진이가 행복으로 가는 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다시 돌아 올 수는 없었다. 모두 이제 제 자리를 찾아야 했다. 이제 그를 만난 지난 몇 년은 현우에겐 좋은 추억일 뿐이었다.
“미안하다. 혜진아. 그리고 축하해 정말!”
그것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이야기로 들렸는지 한참 후에 혜진에게 답변을 했다. 현우의 기분은 조금 언짢았다. 그러나 그것을 직선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잠시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그와 같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금방 느꼈다. 그리고 현우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쁘다는 핑게로 잘 가라는 말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휭하니 돌아서서 나왔다. 왜 그렇게 했는지 현우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남녀의 만남이란 다 이런 것이구나 했다. 서로 필요 없으면 남남이란 말인가. 아쉬움에 못 잊어 할 때는 언제이고 그에게 냉정하게 할 때는 언제인가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이었다. 그날 이후 혜진이 생각도 그리고 소식도 단절했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또 한 계절의 세월이 지났다. 가을이 끝나는 어느날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신나게 노래 부르고 지나고 있을 때 스치는 그를 길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어? 혜진아 보고 싶었어!”
“여긴 왠 일 이세요.”
두 사람 관계는 아직도 미련이 남았 있는지 인연의 끈은 떨어지지 않았다. 기억속에서 혜진의 영상이 사라 질만 하면 어디에 다시 나타나곤 했다. 어찌 된 일인지 결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그런 것들은 물어 볼 수가 없었다. 그럼 지난번 만날을 때의 그런 말은 거짖이란 말인가?
“지난번 예나에서 미안했어. 혜진아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친구들 일행 때문에 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이제 기억속에서 아주 떠나 버린것 같았는데 우연히 그를 만나니 새삼스레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현우야 가자! 친구들이 기다리잖아”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만나는 것은 어떤 인연의 가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친구들이 택시 안으로 현우를 잡아 당겼다. 멀어지는 그녀를 택시에서 바라보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 다. 그리고 이튿날 현우는 어제 일을 곧 잊어 버렸다. 이제 그는 자기의 위치를 찾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자기에 시간을 찾은 듯 아이들에게도 잘 해 주며 현우는 가정에 충실하였다. 방황의 끝에서 귀로에 서있었다. 무심한 세월은 어느덧 일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잊혀진 사람이 가끔은 생각났지만 세월은 그것을 돌려놓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그녀의 친구들로 부터 아직 그녀가 집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작년에 만났을 때는 곧 결혼한다고 큰소리 했었다. 그냥 몹시 궁금했다. 웬일인지 꼭 한 번은 만 나야 할 사람 이였다. 그해 겨울, 한해를 보내는 12월 마지막 일요일 혜진을 다시 만 날 수가 있었다.
“마지막 보고 싶은데 나와 주지 않을래.”
그녀와 약속을 하고 시내로 나갔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미끄러웠지만 아직은 다닐 만 했다. . 그녀와의 지난 일을 생각하며 예나에 들어서니 ‘YOU NEEDED ME'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다. 찻집에 분위기는 어수선 했지만 쉽게 찾았다.
“혜진아. 오랜만이다.”
“연락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별 일이 없으셨죠?”
“응! 그냥 보고 싶어서!”
“저 내년 봄에 진짜 결혼해요. 축하 해 줘야죠?”
“만나자 마자 그 이야기 먼저야.”
“미안해요”
현우는 심통이 있었다. 어자피 떠나야 할 사람이기에 아무런 부담을 그에게 주지 않기로 각오를 했기 때문에 지난번처럼 전율이 흐르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는 이미 그녀의 곁을 떠나 버린 것을 알았다.
“암! 축해 해 줘야지 ”
“미안해요 모처럼 만나서 이런 애기해서.”
“아냐 괜찮아 ”
다시한번 그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은 현우는 내색 을 할 수는 없었다. 무조건 그를 이해하고 좋은 일이 되도록 축복 해 줘야 했다. ‘누구와 결혼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현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다만 심통이 나는 현우의 자존심이 담배를 피워 물게 하였다. 그렇지만 그가 결혼 한다는 것은 축복이고 현우 자신에게는 어쩌면 방황의 끝이 될 것 같았다. 사람은 이미 만날 때 떠날 것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 이제 그에게는 아무런 부담이 없다. 돌아오질 않을 사람을 멍청히 기다리는 바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그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순리라면 따라 주고 가는 길을 방해 하지 않아야 한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었고 그것이 고마워 사랑으로 변했지만 이제는 정말 그를 보내야 한다. 자신이 약하게 보여서도 안 된다. 그리고 초라해지지 않으려고 목에다 힘을 주었다.
“우리 오늘 망년회인데 술 한 잔 해요”
“기분이 별로네”
현우가 말을 이었다.
“어린애 같이 그러지 마세요.”
“모르겠어. 나도 왜 그런지”
“오늘 늦게 갈게요. 집에 까지 데려다 줘요”
예나를 나와 네온 불빛이 아롱지는 중앙로 길을 걸어오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현우의 어께 위로 혜진이의 체온이 따스하게 다가서고 있었다. 현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가 있었으므로 모든 일에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는 어디 가서 그것을 찾아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이 따스한 품도 이제 다시는 느끼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걸었다. 그동안 혜진이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싫다는 사람을 현우는 괴롭히고 많이 따라 다녔다. 겨울바람이 쌩쌩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복잡한 시내 거리를 벗어나 한가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촘촘히 걸어서 두 사람은 작별을 맞이하기 위해 실크로드라는 카페에 들어섰다. 실내에는 조용한 피아노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구석진 자리에 어색하게 두 사람은 그냥 앉았다. 홀에는 손님이 몇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천정을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어색하고 쓸쓸함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오자 현우는 빈 잔에 술을 따르면 말 문을 열었다
”이렇게 내 자신이 바보인 줄 몰랐어.”
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안해. 혜진아!“
“사실은 제가 그간 못되게 한 것 제 맘이 아니 예요.”
“알고 있어. 혜진아”
“그렇게 독하게 하지 않으면 헤어 질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
“처음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그래서 힘든 사랑을 한 것 같아요.”
그녀의말에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겸연쩍게 그녀에게 술 잔을 권했다. 현우와 혜진의 서글픈 마음은 똑 같았다. 어디선가 피아노 소나타 4번 ‘황제‘가 들려오고 있다. 그 음악은 그들이 즐겨 듣는 베토벤의 피아노음악 이였다.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야속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어쩌지?”
”어자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거 아닌가요.“
두 사람은 몇 잔의 술이 벌써 서로 오고 가고 있었다. 헤어짐을 모르는 그들이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더 하였다. 술이 조금씩 오르자 현우는 정신을 차츰 잃어가고 있었다.
“인마!, 넌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돼. 알았지!”
현우는 몇 번씩이나 술 챈 목소리로 횡설수설을 하고 있었다. 빨간제리, 노란제리가 진의 술잔에서 춤을 추고 있다. 현우의 술잔은 벌써 누군가에 의해 계속 비워 가고 있었다.
“즐거웠던 일 많았지, 그지? 그런데 역시 자주 만 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프다.”
“정말 오랫동안 잊혀지 않을 거예요.”
“인마! 내가 그렇게 싫어?”
“알았어요. 이제 그만 하세요”
“,,,,,,,,”
갑자기 적막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세상에서 흔히들 말하는 사랑 이라는 것 과는 비교 할 수는 없지만 순수한 마음은 그 이상 이였다.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이제 밤이 오래 되었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있었다. 카페에서 그냥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현우는 그녀의 따뜻한 부축을 받으며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섰다. 자정이 지나서인지 흥청거리던 밤거리는 조용해 젔다.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네게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야 돼”
현우에겐 온 몸으로 술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쓸쓸한 미소가 길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현우는 정신을 차리고 실수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것 같았다. 우선 그녀의 집으로 가는 택시를 같이 탔다.
“다 왔어요.”
“벌써 ?”
잠시 후 택시가 마을에 도착했다.
어떤 여유의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이별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오늘의 무대는 새벽녘 어느 골목길이다. 어떤 대사의 내용도 없이 즉흥적으로 일이 생긴 것처럼 쓸쓸하게 그들은 이별을 맞이 했다. 연출과 주연 배우는 있지만 아마 밤이 너무 늦어서인지 관객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현우는 아쉬운 듯 뒷 자석에 앉아 혜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제 이 손을 놓치면 영영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 -- 저어 내릴게요.“
그녀가 손을 놓고 문을 열고 나가 서 있었다. 이미 정해 저 있는 연출 순서에 따라 손은 힘 없이 풀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하며, 현우의 마음이 순간 동요되어 것 잡을 수 없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반쯤 열린 택시 문틈 사이에서 아쉬움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혜진아!”
기쁘게 보냬기 위하여 현우는 억매인 가슴은 다스려야 했다.
“,,,,,,,,,,,,,,,”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보내야 한다. 끝도 없는 미로의 싸움에서 언제까지 그를 현우 곁에 엇메어 놓을 수는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행가처럼 사랑이란 같이 있는 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현우는 어떤 말이라도 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이 막히여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혜진도 아쉬운 듯 마음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택시 문이 닫히자 차는 그 곳을 서서히 출발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 변명도 하지 못 한 채 이별 연출은 끝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침침한 밤길을 택시는 미련 없이 빠져 나오고 가로등 불빛 사이로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현우는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어자피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순서를 밟은지 일 년 만에 그들은 쓸쓸하게 이별을 맞이하고 있었다. 택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었다. 택시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거리에서’란 노래가 쓸쓸히 들려오고 있었다.
<거리에 짙은 어둠이 낙엽처럼 쌓이고 차가운 바람만이 나의 곁을 스치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옷깃을 세워 걸으며 웃음지려 하여도 떠나가던, 그대의 모습 보일 것 같아 다시 돌아보며 눈물 흘려요.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 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머나먼 그곳으로 떠나 버린 후 사랑의 슬픈 추억은 소리없이 흩어져 이젠 그대 모습도 함게 나눈 사랑도 더딘 시간 속에 잊혀져 가요>
차가 지나는 아스팔트길 위에는 하얀 진눈개비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시간은 자정이 지난 지 벌써 오래된 것 같았다. 시내로 들어오자 어디를 지나쳐도 거리는 고요한 적막함이 쌓여 있었다. 어디선가 멀리에서 새벽 교희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성가 목소리가 둘려왔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 주세요.”
현우는 어딘지 모르는 거리에서 그냥 내렸다. 눈이 제법 내리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차게 느껴지는 거리를 걷고 싶었다. 지금의 심정은 마치 전쟁터 에서 패잔병이 되여 쓸쓸히 돌아 오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해야 할것 같았다. 이제 며칠 있으면 연말이고 곧 새해가 다가온다. 그리고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이었다. 그렇게 겨울은 쓸쓸한 이별을 안겨 준 채 세월의 강을 지나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 그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여름 그리고 가을 또 겨울 세월은 오랜 시간을 달려왔다. 그녀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조용히 눈을 감아 본다. 그를 만난 것도 그리고 그와 헤어진 것, 모두 모두가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꿈은 잊혀져 허공 속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끝
습작소설 너무 긴글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고 늘 좋은일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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