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초漢詩와歌曲 그리고 映畵이야기 솔새김남식 同心草 漢詩에 얽힌 그시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아는 대로 정리해 보고 그 옛날 35원을 주고 삼류극장에서 감동있게 보았던 映畵 동심초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그리고 歌曲 이야기를 정리해서 잠시 추억의 열차에 탑승해 봅니다 가곡 동심초는 저편 한켠에서 불쑥 반가운 이가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아름다운 明曲이었다. 내 자신을 돌아 보았을 때 1. 동심초(漢詩) 이 노래의 가사는 7세기 중국 당나라 시인 설도(薛濤)의 작품을 1945년에 김안서가 번역한 싯글을 김성태(金聖泰) 작곡으로 1955년 한국 가곡집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하지만 검색에서 아무리 찾아도 동심초라는 식물 자체에 대한 설명은 없다 간혹 유사한 낯선 식물에다 이름을 붙이지만 동심초가 존재한다고 생각 하기엔 상당히 어려웠다. 그럼 무엇일까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자 아무튼 애착이 가는 이유는 漢詩 동심초의 애절한 내용 때문에 마음이 가는 글시(文詩) 이다.
꽃이 바람에 시들가는 세월이 가도 그대와 만날 날은 아득하다고 했다 동심초 가사에서 '가기(佳期)'는 사랑을 처음 알게되는 시절 만남을 이루는 시절을 말하며 2. 동심초 설도(薛濤)의 사랑이야기 동심초의 원작자 설도(薛濤)는 당대(唐代)의 기녀(妓女)로 태어난 해와 죽은 해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개 770년과 832년 쯤이라고 한다. 16세에 악적(樂籍)의 고급 기생이 되는데 설도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 났다. 아주 총명하고 말 재주도 좋았기에 그 지방의 군사 장관이었던 웨이가오라는 사람의 총애를 받았다. 그녀는 나머지 생애 동안 독립적으로 살수 있었다고 하며 악적(樂籍)에서 나온 후로 끝내 시집을 가지 않았다. 그녀의 재능을 흠모한 당시의 일류 문인들과의 교류가 많았는데, '동심초' 시는 설도가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쓴 것은 확실하다. 웨이가오가 죽고 나서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연모하게 된 원진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중앙에서 밀려나 동천(東川))에 좌천 되었는데, 이것이 대략 809년의 일이다. 809년 3월 설도와 원진이 처음 만나게 된다.
그때 둥근 벼루를 반으로 나누어서 하나씩 간직하며 다시 만나 그것을 둥그렇게 만들 날을 기약했다. 원진은 옛날 은사였던 위하경(韋夏卿)을 만났는데 그는 원진이 기생을 좋아하고 있다고 책망 하면서 자기 질녀(姪女)가 그의 처가 되기를 바랬다. 후에 원진과 설도는 성도에서 만났게 되는데 위(韋)씨녀가 원진을 사랑하여 그 벼루를 잡고 가는 것을 막았고, 급기야 벼루를 시냇물에 빠뜨려 버리고 말았다. 결국 설도는 자신의 한계를 느꼈고 원씨 문중과 부딪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원진과 위씨는 결혼을 했고, 설도는 홀로 남아 외로운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녀에게 오로지 정을 바칠 수 없는 원진은 흘러가는 바람이었으며 사랑할 사람을 찾았으나 영원히 마음을 엮을 수 있는 동심인(同心人)이 되지는 못한 것이다. 그녀는 道敎에 들어가 歸依 하여 시냇가에 집을 짓고 홀로 일생을 마첬다고 한다. solsae kns 3. 映畵 同心草 영화 동심초는 드라마에서 힛트를 하자 1959년 그리고 1967년 두번이나 영화로 제작 되었다. 내가 본 영화는 방송드라마 작가 조남사原作으로 1967년 개봉한 영화를 보았다 학생 신분의 사춘기 시절이지만 아주 감명깊게 보았던 追憶의 名畵이다 당시 여성영화의 금자탑이라고 광고하며 청계천 동아극장에서 개봉했으며 출연 배우는 김지미 신성일 남정임 이순재가 열연했다. 동심초의 애절한 싯말처럼 이 영화에서 누군가를 애절하고 애잔하게 사모하는 마음이 아마도 최고의 사랑이라고 명시해 준 영화였다 아직 사랑을 배우는 풋내기 그시절 그때는 그대만을 위해서 이 생명 다하도록 언제까지나 사랑하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영화 즐거리
전쟁 미망인으로 과부가 된 사대부집 정경부인이 외도의 사랑을 하지만 윤리 도덕으로 내보이지 못한채 사모하는 마음을 애타게 독수 공방으로 홀로 지내고 있는 모습을 美的으로 그려진 영화였다. 동심초에서도 딸 경희가 감초처럼 어머니 마음을 읽어주며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교감하는 과부의 심경을 연기력으로 섬세하고 절제있게 묘사 했으며 당시 신분계급 사회에서 과부의 위치와 그로 인한 내면적으로 보이지 않게 사랑을 갈구한 좀 안스러운 줄거리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탑깝게 만든 영화이다 특히 배경 음악으로 동심초를 사용했기 때문에 더 내용이 안스럽게 그려젔다
영화 포스터에서 백만여성의 심금을 울린 영화라고 선전했던 이 영화는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4. 동심초(歌曲)
김성태가 동심초 노래의 작곡한 시기는 1945년경 이라고 합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간결하면서도 의미 깊은 시 한수 동심초 한시를 재삼 읊어 보고는 오선지에 가락을 옮겨 놓았다.
무리없이 이어지게 만들어 놓았다 무쇠같은 사람에게도 심오한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 노래는 여러 성악가들이 많이 불렀으며 그중에서 1959년과 1967년에 만든 영화 동심초에서 가수 권혜경(1931~ 2008년)이 부른 것이 대중들에게 제일 사랑 받았다 가사의 클래식한 분위기와 성악가적인 목소리가 많은 사람들 머리속에서 기억하고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옛 감성에 젖어 추억이 회자되어 떠 오르기도 한다. 이 노래를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은 고운 마음이다. 2005.10.25 솔새김남식 1.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6. 가수 권혜경 (1931 ~ 2008년) 강원도 삼척 출생인 권혜경은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 전속 가수 3기로 발탁되어서 1957년 음반 데뷔곡인 '산장의 여인'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59년 개봉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동심초' 주제가를 취입하였다. 인기 가수 대열에 들어섰지만 불행히도 1959년 심장판막증 판정을 받았고 이어 후두암 선고까지 받으며 병마에 시달렸다. 투병 중 박춘석 씨와 손잡고 발표한 '물새우는 해변'도 대표곡이다 충북 청주시 청원군 남이면에서 산장에 집을 짓고 수도승처럼 쓸쓸히 살았다고 한다 가수 활동보다 투병 생활에 더 많이 매달리면서도 전국 교도소를 돌며 재소자를 격려하는 봉사 활동을 해오다가 향년 77세로 별세 하였으며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슬하에 자녀는 없다. kns 7. 1959년 作品 映畵 동심초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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