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서/야담설화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시인김남식 2017. 1. 3. 10:14

박계형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글솔새김남식

  

                     

1960년대 10대의 사춘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박계형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1964년 고려대 영문과 재학시절 동양방송 개국기념 현상 문예 장편소설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이 당선되면서

그 당시 독서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70년대 후반까지 60여편의 장편 소설과 드라마 대본을

써 냈고 부와 명예를 한 순간에 거머쥔 당대 대 스타였다.
책에 대한 계약금으로 기와집 한 채 값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성공한 작가이다.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이 책은 소녀적 취향의 서정적인 대중 소설로

40만부 판매를 기록하였으며 1966년 신아 출판사에서 초판 발행후
다른 출판사를 거치면서 80년대 후반까지 여러번

재판을 거듭하여 아직도 대단한 인기 반열에 올라있다 

 

특히 여고,·여대생 사이에서 대단한 큰 인기를 누렸으며 수업시간에 책상 밑에 숨겨가며 읽었던 책으로 이 책을 안 본 여학생도 있었을까할 정도였다

그는 여러권의 장편 소설을 썼으며

특히 "그해가을" 이라는 소설도 참 재밋게 읽었던 기억에서 떠 오른다

 

시골에는 4H크럽이라는 청년들에 새마을 운동이 있었다.
형편이 낳은 누군가 책을 사 오거나 또는 건너 마을에서 책을 빌려 올 때면
서로 돌려 가며 호롱불 밑에서 읽었던 그 당시의 순수했던 마음은
그 시절을 살아 온 사람 말고는 돌아 갈수 없는 아련한 추억들이다
특히 겨울방학이면 어떤 책이든 마을에 들어 오면 먼저 서로 읽으려고 읽는 사람에게 재촉을 하거나 또는 다툼까지 하는 일도 있었다 .
그 만큼 책을 살 형편이 안 되기에 책이 몹씨 귀했다.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이 책은 꿈 많던 청소년들에게 대단한 인기였다

 


박계형(1942년 ~ )
훌륭한 신랑을 만나 결혼을 했고 1960대 값비싼 자가용을 몰고 다녔으며

살림하는 사람을 셋이나 둘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할 것 하나 없는 그야말로  화려한 시절이지만

정작 마음 한 쪽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가지면 가질수록 커지기만 하는 공허감. 소설에 대한 회의도 찾아 왔다고 한다.

가정 주부로 돌아간 작가는 1993년 사고로 장남을 잃는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어느 날 집으로 찾아 온 걸인을 보고

‘아들 대신 불우한 이들을 받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여러모로 변했다고 한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서서 외지고 어두운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지금은 상도동에서 선교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머물고 싶었던 순간들] 책 줄거리는 이렇다

 

윤희는 시골에서 자라 서울에 있는 우신 국민학교로 전학을 온다.

우신 국민학교는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초등학교이다.

동네에 제법 큰 기와집에 놀러 가서 성호라는 아이와 친해진다.

오빠라고 부르며 사춘기를 보낼 무렵 6.25 전쟁이 일어 난다.

법대생이였던 성호와 윤희는 전쟁속에서도 사랑은 이여지고 그래서

결혼해서 부산 해운대로 신혼 여행을 떠난다.
아들 딸을 남매를 키우며 행복이 무르익을 무렵쯤

윤희가 자궁암에 결려 시한부의 삶을 살아 가게 된다.

 
소설의 전개는 죽음을 두달 앞두고 바다가 보이는 별장에서

남편의 사랑을 받아 가며 32살의 여인 윤희는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며 

'삶의 벼랑에 서서' 라는 첫 번째 글 주제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나온 삶을 자서전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나 죽으면 여자에게 장가 갈꺼지"
윤희는 자기 죽음에 대하여 시샘하고 남편은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  소설은 영화와 드라마로 여러번 제작되어 방송 되기도 했다.  

    

 

에필로고   솔새김남식

한창 호기심 강한 사춘기 공부하던 책을 모두 덮어놓고 숨죽여 읽었던 박계형소설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과 '그해 가을' 이 책을 생각하면

파릇파릇 했던 학창시절의 그때 그 시절 문득 떠 오르기도 한다
당시 우리가 읽을 만한 책들이 그리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면 소위 문학소설이라는 것은 좀 읽기에 딱딱한 책들이다
섹스피어나 톨스토이등을 읽어 보면 스트래스만 받을 뿐 만 아니라

잘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많지만 이런 책들은 하룻 밤 독파가 가능하다
어떤이는 부모님에게 들킬까봐 숨어서 몰래 읽었던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불륜이거나 다소 황당한 설정의 추리 탐정소설이다
또한 이루어질 수 없는 풋풋한 사랑이야기들이 사춘기에게는 딱 좋았다  
지금 가슴 한 켠에는 그때 그날의 그 시간과 함께 추억하고 있다


며칠전 낡은 서재에서 이 소설을 꺼내 다시 읽어 보니 참으로 싱거웠다.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와의 순수한 감정은 예전 같지를 못했고

암튼 나는 40년을 뒤 돌아간 느낌으로 이 책을 한 시간내 다시 읽었다.  
돌아 보면 아쉬움의 지난 세월 이지만 지금와서 보면 정말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이 왜 이리도 많았는지 후회가 되는 일이 너무 많다.

한번 지나고 난 시간은 돌이킬 수도 없고 되돌려 지지도 않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삶에 발버둥하는지도 모른다.

순간 순간들은 느끼지 못했던 시간들이 왜 이렇게 가슴 저리도록 그리울까
젊어서는 미래를 꿈꾸며 살고 나이 들어서는 추억에 산다지만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움 꿈이었다고 기억되는 순간들이 눈물나게 그립다. 

그렇다고 추억에만 메달려서는 안 되겠지만 가끔은 그런 날들이 기다려진다.

다가 오는 순간들도 언젠가는 아름다움으로 장식 될텐니까 지금도

현실에 충실히 살아가는데 몸은 세월따라 변하지만 마음은 아직도 청춘 그대로이다.

우리가 생을 마감하는 싯점에서 뒤돌아 보면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이 과연 내게는 언제였을까

그것을 떠올려 보게 될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 올릴 것이다.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짧은 행복한 순간 이었지만 아주 오래 머무르고 싶어한다.
행복뒤엔 반듯이 불행이 있고 불행 뒤에는 행복이 다가 온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행복과 불행 그리고 삶의 벼랑에 서서 처럼  삶의 중요함을 알게 해준다.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 內容中 에서

 

 

여덟 살이 되던 해 나는 읍내 국민 학교에 입학을 했다. 초가집만 20여 호가 되는 범바위골에서 그해 봄에 나까지 3명이 학교엘 갔다. 길례, 나, 연분이, 그렇게 계집애만 셋이었다. 풀섶에 이슬이 맺혀 있고 게으른 닭이 뒤늦게 목청을 뽑는 아침이면 나는 울안 뒤에 있는 냇물에 가서 세수를 했다. 부엌 문에서 내다보이는 그 냇물 저쪽 위로는 오이며 가지가 주렁주렁 달린 밭이 보였다. 엄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그 밭에서 오이나 가지를 따서 냇물에 씻어 밥 반찬을 만들곤 했다. 뒷산 바위 틈을 타고 숨어서 내려온 물은 하얗게 바닥이 들여다보이도록 맑고 찼다.

그 물에 세수를 하고 나면 아무리 졸음에 눈이 감기던 때라도 정신이 번쩍 났다. 구수한 토장찌개와 야채나물에 아침을 끝내면 우리는 허리에 책보를 매고 오솔길을 걸었다. 그런 때면 다리 밑에 엉기는 풀포기의 이슬 촉감이 차갑고 간지러웠다. 아침의 강변은 언제나 조용하고 한가로왔다. 자는 듯 잔잔한 수면엔 갓 피기 시작한 아침 햇발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린 우리 셋이 그 한적한 나루터의 유일한 아침 손님이었다. 우리들을 건너 주기 위해 웃을 때면 유난히 이마에 주름이 굵게 잡히는 늙은 사공이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강을 건너서도 5리나 걸어가야 읍내 학교가 보였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아 양쪽으로 훤하게 논이 펼쳐 있는 뚝길을 한참 가면 빨간 기와지붕을 한 학교가 있었다. 얕으막한 담 너머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게 보였다. 학교 앞마당엔 코스모스가 겹겹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앞마당뿐만 아니라 교문 밖으로도 길 좌우로 쭉 코스모스 밭이 나란했다. 가을이면 그 연한 잎새들 위로 갖가지 빛깔로 꽃이 피었다.

가을 오후의 뽀오얀 학교 마당에서 가냘프고 나른한 꽃송이들이 조용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던 모습들은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더 영원한 향수로 잊혀지지 않는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지금도 하얀 햇발을 보고 있으면 문득 그 촌 학교 앞마당에 피어있던 코스모스가 생각난다. 그건 첫사랑의 애인을 잊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어떤 여인의 미련처럼 절절하고 가슴 아픈 추억이 아니라 감미롭고 아득한 그리움이다.

학교만 갔다 오면 가방을 팽개치고 그 푸른 지붕의 큰 저택으로 달려가곤 했다. 어떤 때 성호가 아직 돌아와 있지 않으면 나는 서운한 기분으로 그의 소지품들을 하나하나 가지런하게 놓아 보기도 하고 다시 해쳐 놓기도 하면서 그를 기다렸다. 그때 성호가 좋아지던 감정이 이성으로서의 호기심이었던지 단지 길례처럼 좋았던 것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귀공자답게 흰 얼굴과 조용한 미소를 간직했던 그는 난폭한 언사나 저속한 행동을 모르는 키 큰 소년이었다.

자기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볼 때면 그는 그 큰 눈을 활짝 뜨고 화안하게 웃어 줬다. “너 와 있었구나.” 그럴 때면 야들한 양 볼엔 계집애처럼 볼우물이 졌다. 나는 다른 여자 친구들보다 그가 훨씬 더 좋았다. 그가 내 손을 잡고 있는 때면 나는 좀 달콤한 기분이 돼 버리곤 했다. 그게 벌써 사랑이었을까. 하여튼 그 당시 그를 빼놓는다면 나는 지금 생각나는 게 없다. 집 뒤엔 커다란 등나무가 있었는데, 그늘이 우리의 놀이터였다.

“윤희 예뻐지는데-” 가끔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그의 어깨를 때려버렸다. 그럼 다시는 절대 안 하겠다고 장난스런 약속을 주면서 때리는 내 주먹을 쥐고 나를 당겨 안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 가슴은 파열할 듯이 두근거리고 그의 얼굴에도 묘한 홍조가 나타나곤 했다. 부인이나 얼마 아버지는 그런 우리 둘의 감정의 교류를 전연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정한 남매처럼 흉허물 없이 지내는 우리 둘을 대견한 시선으로 만족해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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