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단편소설

3. 봄이오는 길목

시인김남식 2012. 10. 10. 10:54

3. 봄이 오는 길목

솔새김남식

겨울 햇살이 사무실 유리창을 타고 넘어와 현우의 가슴속까지 따듯하게 해 주고 있었다. 어느덧 겨울의 2월은 이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봄은 사람들 가슴속으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언제나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있었으니 봄이 시작 된지 오래 되었건만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도 펑펑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퇴근길 눈을 맞으며 오랫만에 본전통 길로 나왔다 올해는 유난히도 겨울이 추웠고 3월로 접어들면서 주말이면 계속 눈이 내리고 있다. 현우는 JES(제이스)라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 물론 혜진이도 같은 회사에 근무한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현우는 10층 해외 무역부에 근무하고 혜진은 9층에 있는 업무부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 마주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간혹 점심시간 지하 아케이트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 때문에 모른 채 하고 지내며 철저히 숨바꼭질을 하며 만남을 하고 했기에 회사 내에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비밀을 지키며 2년간 만남을 하고 있다.

현우는 혜진이의 만남을 운명처럼 만난 사람이라고 혼자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어쩜 그들은 오랜 만남을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은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는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가끔은 뒤돌아보며 두려워했지만 다음에 생각해야 할 일이였다. 그녀와 사전에 만나기로 약속이 있었다. 강변길을 따라서 돌아가면 골목 끝 지점에 예나 찻집이 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그리 크지는 않지만 분위기는 그만이다. 그곳이 그들만 알고 있는 아지트이다. 지금 현우는 그곳에 가는 길이다. 찻집에 들어서니 혜진이가 먼저 와 있었다. 누구던지 먼저 온 사람은 나머지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서로 약속이 있었다. 실내는 담배연기가 불빛에 반사 되여 눈이 부셨고 사람들은 가득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위치를 알려온다

"여기예요"

"오래 기다렸지"

"아니요"

"눈 지금도 와요?"

"쪼끔..."

"올엔 눈이 너무 많이 와요. 그쵸?"

"그려"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여기~~"

"치이!"

"우리 저녁 먹고 영화구경 갈까?"

"그래요"

"그런데 뭘 볼까?"

"그냥 가서 좋은걸로 아무거나."

"아무거나"

그들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고 밖으로 나올 때 까지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계절을 잃어버린 듯 주말이면 언제나 눈이 내렸다. 그래도 날씨가 포근해서 길은 미끄럽지 않았다.

얼마를 더 지나야 완연한 봄이 되려는지 세월을 잊은 채 꽃샘추위가 며칠 채 계속되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밤거리를 누가 보거나 말거나 개선장군처럼 팔짱을 끼고 활보하고 있었다.

음악다방에 들려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제과점에 들려 빵을 먹으며 오랜 시간을 같이하였다. 그녀는 빵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제과점 빵도 좋아 하지만 슈퍼마켓에서 파는 단파 빵이나 크림빵을 더 좋아했다. 현우는 그래서 그녀를 빵순이라 놀리곤 했지만 그녀가 빵을 먹는 것을 보면 참 우습기도 하였다. 빵을 먹을 때는 빵을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빵을 먹을 만큼 떼어서 손으로 입에 가져간다. 어린아이 같은 그런 모습에 현우는 씽끗 웃으며 그녀는 빵의 맛을 음미하면 먹는 거라고 했다. 아무튼 현우가 빵을 두개를 먹을 때 그녀는 한 개를 먹는다. 그래서 현우는 그녀가 빵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그날은 두 사람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으로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봄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진달래가 만발하는 계절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뜻밖에 그녀가 만나자는 문자가 들어왔다. 주말도 아닌데 무슨 좋은 일이 잊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현우는 예나 찻집에 들어섰다. 찻집에 들어서서 혜진이 얼굴은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녀가 화난 얼굴을 하면 언제나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곤 했다. 그녀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이제 만나는 게 조옴 그래요"

"왜 무슨 일 있었?"

",,,,,,,,"

"뭔데! 알아야 대책을 세우지"

",,,,,,,"

"왜 그래 갑자기?"

"우리 만나고 다니는 거"

"?"

"큰 언니가 알고 있어요."

"어케"

"우리를 벌서 여러 번 보았대요."

혜진이가 어떤 아저씨하고 같이 다니는 것을 언니 친구가 터미널에서 봤다며 그것을 언니에게 전해 줬다고 한다. 그동안 혜진이의 행동을 여러 번 의심 했기에 언니는 그것을 모두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고 전혀 그런 일 없다며 언니와 심하게 싸웠다고 했다. 회사직원과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나서 인사한 것뿐이라고 변명 했지만 언니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더 이상 걱정 말고 언니나 빨리 시집가라며 도리어 잔소리를 퍼부었다고 한다. 그녀 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미혼이었다. 이야기 내낸 혜진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만나는 거, 우리 조심하자"

"언니가 내 말을 믿지 않아요."

"이 넓은 서울에서 아는 사람 만나기가 참으로 힘든데"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 엄마에게 말해 버린다고 해요"

"혜진아. 미안해"

"언니 땜에 신경 쓰여요"

"그러긴 그런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예요."

현우는 더 이상 어떤 말을 그녀에게 해줄 수가 없었다. 부질없는 욕심으로 어떠한 부담도 그녀에게 주워선 안 된다고 했지만 모든 게 그에게 달려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 괜한 욕심 이 화를 불러 낼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내심 혜진이가 어떻게 잘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을 그녀에게 요구 할 수는 없었다. 찻집을 나와 저녁을 먹고 나올 때까지 혜진은 사뭇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 조심하자. 회사 직원들까지도 이상하게 바라보니 다 조심하자 응?"

"그래도"

"언니가 직접 본 것은 아니잖아?"

"알았어요."

그녀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리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마 언니가 더욱 의심 할 것 이라고 덧 붙였다. 그래서 며칠 동안 혜진을 만날 수 없었다. 아니 만나려 해도 응해주지 않기 때문에 만나기가 어려웠다. 어떤 목적이 없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망서렸고 현우는 그것을 혼자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의 일념으로 그에게 끈질기게 연락은 계속 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집에서 몹씨 시달림을 받고 있는 거 같았다. 어쩌다 통화를 하게 되면 그녀는 만날 일이 없다고 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며칠 후 그와 오랫만에 통화를 하였다. 겨우 설득하여 만나 주겠다는 약속을 겨우 받아 냈다. 그를 이해시키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예나에서 혜진과 만났다.

  


언니가 그를 감시하고 있다고 혜진은 씩씩 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일찍 귀가를 했고 일요일에도 집에 있었다고 한다. 현우는 그녀의 말을 거의 들어주며 설득하고 있었다. 언니의 감시도 잠깐뿐이니 시간이 지나면 문제없을 거라고 했지만 혜진이 생각은 변함없었다. 처음에는 아주 조용한 대화를 시작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의 톤이 높아지고 격렬했다. 한사람은 괜찮다고 하고 다른 한사람은 그것이 아니라는 얘기로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누가 보면 마치 다툼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혜진아. 우리 천천히 한번 생각 해 보자"

"됐어요. 제 마음은 변함없어요"

"언니 때문에 우리가 이리 해야 되니?"

"언니 때문도 아니예요."

"그럼 뭐야"

"오래 전 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나지 않기로"

"내가 이러자고 한 것은 아닌데"

"제가 아닌 딴 여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원하는 여자를 찾아보세요."

"임마! 우리 정말 이래야 하니?“

"그럼 어째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차갑고 냉정했다.

"넌 아직 몰라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

"미안해요"

"그동안 어려움 많이 참고 지내 왔잖아. 그리고 난 네게 많은 걸 원하지 않아."

"착각하지 마세요. 전 아직도 누굴 좋아 해본 적이 없어요."

현우를 똑바로 처다 보며 톡 쏘아 붙이는 혜진이 말에 현우는 할 말을 잠시 잃어 버렸다. 그리고 순간 맥이 탁 풀렸다. 더 이상 그를 붙잡고 이야기 할 힘이 없어 졌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끄나풀이 끊어지면 현우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질 것 같았다. 큰소리로 대화하는 두 사람을 사람들이 처다 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예나에 있을 수가 없었기에 찻집을 나왔다. 어둠이 깔린 거리에는 마침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여전했고 밖을 나와서도 대화는 계속 되었다.

"혜진아. 그럴 수가 있어?"

"그럼 어쩌게요"

"그리 냉정하게 쏘아 붙이면 속 시원해?"

"그래요!"

거침없이 그녀의 대답 이였다. 현우는 혜진이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제풀에 꺽 일 때가지 내 버려두면 되는 것을 오히려 화를 부른 거 같았다. 혜진에게 매달리는 비참한 신세 같아서 마음이 우울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현우도 막 지껄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발길은 큰 사거리 앞길까지 들어섰다. 두 사람의 생각과 주장은 굽히지 않고 계속 되었다. 빗소리와 자동차소리가 어울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만족하게 해주지 못해 정말 죄송해요"

"혜진아 우리 좀 진정하자"

"이제 우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이제 제가 만나지 않겠어요."

"정말 그리해야 돼?"

"오늘 사실은 그 말 하려고 나왔어요."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바랐지만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현우도 지친듯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별것 아닌 것처럼 하면 되는데 과민 반응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냥 돌아서기에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면 할수록 아픔만 더 한 것 같았고 그 미움이 깊어지기 전에 무슨 방법을 해서라도 풀어야 했다. 하지만 화를 풀고 돌아서기를 원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언니에게 꾸중을 받고 화풀이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이해 못하는 현우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 했다. 아무것도 어닌 것을 일을 아주 크게 벌린 것 같아 미안했다. 항상 자기 편에서 생각하고 또 일방적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우리 이제 만나지 말도록 하자. 그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음 정리를 하자"

"저도 모르겠어요. 내가 왜 이러는지를"

",,,,,,,,,"

"분명히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무엇에 끌리는 것 같아요"

혜진의 진솔한 애기를 듣고난 현우는 마음이 잠시 울컥했다.

"너무 걱정 마. 이제 잘 될거야."

현우는 헤진이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비를 맞으면 두 사람은 싸우며 얼마를 걸었는지 옷이 흠뻑 젖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 이제 비는 좀 멎은 것 같았다.

"다리 아프지"

"괜잖아요."

"하도 많이 싸워서 배고프지 않아?"

"미안해요 정말"

"뭐 좀 마실래?"

"아뇨."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 자기 고집을 세우며 의미 없는 말다툼으로 허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튼 미안해"

"알았어요."

"너무 늦었다. 집에 가야지?"

""

시계를 보니 10시가 다 되었다. 혜진을 먼저 보내기 위해 지하철역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길 건너에서 현우는 다른 길로 발길을 돌렸다. 그냥 집에 가기가 싫었다. 방황을 하고 싶었다. 마음은 찹찹하여서 그냥 무작정 걷고 싶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땀과 비에 젖은 몸으로 털털 거리며 봉래동 큰길가를 걷고 있었다. 지금 순간은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었다. 아직은 다가 설 수없는 그런 뭐가 도사리고 있었다. 어차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자신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우가 헤진을 만나게 된 것도 그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쩜 피 할 수 없는 만남 이라면 거역 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 시간 이상을 걸어왔다. 야윈 얼굴위로 비와 눈물이 흐르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옷은 젖어서 몰골이 아니었다. 왜 그러는지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질 못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아픔이라기보다는 스쳐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추수려 본다.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한 발자국씩 움직일 때마다 바닥으로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다가간다 하여도 이제는 도리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은 누굴 탓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 밤도 영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따스한 몸이 되었건만 늘 무엇에 좇기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사천동에서 내렸다. 그리고 오르막 골목길을 털털거리며 힘없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화사한 봄이 오는 길 위로 잔인한 계절은 현우 곁을 그렇게 쓸쓸하게 지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온갖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픔이기보다는 어떠한 기다림에, 그냥 스쳐가는 과정이라 생각해보지만 지금 이 순간은 모든 것을 그냥 잊고 싶었다. 아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갑자기 현우 곁을 떠나는 서글픈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 열심히 노트에 적고 있었다.

창밖의 가로등이 빗줄기에 실려 유난히 빗나고 있었다. 가느다란 빗소리가 쓸쓸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 해 본다. 현우가 그녀를 만난 것도 그리고 그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쩜 그의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픔이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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