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서/낭만찻집

추억의 유년시절

시인김남식 2006. 4. 16. 18:44

추억의 유년시절

 

동무들과 학교 가는 들녁에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돌다리를 건너 집으로 오는 길에는

논뚝길 수리조합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는

송사리 떼와 새뱅이(새우)검정 고무신으로 잡으며

집에 와서 가방을 뜨랑에 내 던지고 밭에 나가 풀을 뽐아야 했다

어쩌다 학교 급식으로 우유를 타 오면

입술이 하얗게 묻도록 동생과 장난을 했었고

미국 국민이 보낸 구호품 강냉이 가루로 빵을 만들어 나누어 주면

다 먹지 않고 집에 있는 동생 것을 남겨왔던

추억의 아련한 유년시절이 있었다

 

머리에는 이가 많아서 하얀 분가루 디디티를 발라야 했고

저녁 마다 어머니가 호롱불 밑에서

이를 잡으며 들리는 소리는 따발총 같았다.

볼 일을 보고 지푸라기로 딱으면 어찌나 아팠던지

형은 호박잎을 말아서 담배를 피웠고

엄마 몰래 마늘 갖다주고서 아이스케키를 사 먹었다

마을 향우회에서 서기를 맡아 주었던 영순이와

꼴망태 메고 소꼴 베러 같이 나 갈 때는

들꽃을 따주며 장난치던 아련한 추억이 황동사진 처럼 생각이 난다.

생일때나 되어야 얻어 먹는 도시락에 계란 하나를

친구들이 달랠까봐 몰래 숨어서 먹었던 기억들

일본 식민지 시절을 아파하는 사람들과  6.25 피난길을 겪은 어른들이

너희들은 참 행복한 세대라고 저녁 밥상 머리에서

공부 열심히 하라 잔소리는 항상 빼놓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무슨 말인지 통 알지를 못 하였다.

 

저녁마다 올라온 고구마와 김치를 투정않고 먹었고

누런 공책에 몽당 연필로 글씨 쓰다가

부모님과 같이 잠이 들 때면 코 밑에는 시컨먼 끄름이 가득 했었다

높은 학년으로 오르면서 외운 5.16 혁명공약과

국민교육헌장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달 외우며

그 당시에 대통령은 당연히 박정희 혼자인 줄 알았다.

 

무슨 이유든 나라 일에 반대하는 사람은 빨갱이라고 배웠고

동양참피언이니 세계참피언이니 하는 복싱경기와

메르데카 컴과 아시안 컵 축구 경기를 라디오로 듣던 시절

한가지 방송만 틀어주는 마을 스피커보다

트란지스터 라디오를 가진 친구가 부러웠던 시절도 있었다.

어쩌다 마을에 영화나 연극이 들어 올 때면

꽁짜구경 하려고 기웃 거렸따가 기도 서는 사람한테 혼 났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선배들에게 양말을 빨아줘 가며

보따리 들고 구걸하듯이 기술을 배워야 했고

조직에 순응하지 못해 다른 회사로 갈까말까 망설였다.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 했던 컴맹의 제1세대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처와 부모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 하기도 했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는 효도받지 못 할 첫번째 세대

 

고속 성장의 막차에 올라 타고는

한참 좋아 하다가 아이엠에프가 뭔지도 모르고

명퇴를 당하여 이름 모르는 간이역에 버려진 암울한 세대이다  

우리 자신을 퇴출이라고 부르는 

진정 우리는 이렇게 운명으로 받아 들이며

돌아올 수없는 아주 먼곳으로 인생을 보내야 하는걸까

어느덧 칠순을 넘기니 인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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