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신수근(愼守勤)묘

시인김남식 2012. 10. 14. 16:27

좌의정 신수근(愼守勤)묘와 신도비 솔새김남식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거창신씨 장성공파 종친의 성금으로 준공한 사우 경모사가 있고

신수군 신도비를 비롯한 가족들 墓가 있다.


의정부에서 고양으로 가는 39번 도로  장흥에서 약1.5키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거창신씨경모사' 이정표가 있다



이곳 경모사는 조상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 그리고 긍지를 갖고 종친들이 스스로가 관리하고 홍보하고 있는 곳이다  

.

경모사는 사당, 내삼문, 재실, 어서각, 외대문 및 관리사, 정려문이 있다


특히 영조의 어찰이 내린 신수근의 행적으로 보아 도기념물이나 또는 향도유적으로 지정될 법 하지만
종친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들 스스로가 충신을 둔 종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관리 보존하고 있다


이곳은 역사에 관심있는 내방객들이 매일 찾아오는 곳이다



특히 경모사를 방문하면 안내하는 사람이 있으며 커피 대접 까지도 받을 수 있다

 

선대의 위패가 모셔진 곳



<경모사(景慕祠) 안내문>

이 경모사는 이곳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거창신씨 장성공파 종친의 성금으로 2002년 5월에 준공한 사우입니다.

이 경모사는 세종대왕의 손녀사위로서 세조조에 장원급제하여 4대왕을 모시어 대강(大綱)과 대원(大源)의 정신으로 영의정에 이른

장성공 휘 승선(承善) 거창부원군과 정대한 도리를 따라 대의를 지켜 죽음으로 주군을 섬긴 연산조 때의 충신 좌의정 신도공 휘 수근(守勤)

익창부원군 그리고 형인 신도공을 따라 죽음을 택한 충신 유수공 휘 수겸(守謙)과 판서공 휘 수영(守英)을 모신 사우입니다.

영조대왕께서는 그 삼형제를 이름하여 삼충신이라고 칭하셨으며 신도공에게는 특별히 고금동충(古今同忠 : ‘옛날 고려에

정몽주 충신이 있고 오늘 조선에 신수근 충신이 있다.’라는 뜻)이라는 어서를 내리어 어서각을 짓게 하였으며 충신 정려문을 내리셨습니다.

대의를 위하여 목숨과 모든 영화를 버린 충신의 표본이 바로 신도공이시다.

그래서 신도공은 영조대왕의 찬사대로 조선왕조 최고의 충신이시며 시대를 초월한 우리 모두의 사표이시다. 

이 경모사에는 사당·내삼문·재실·어서각·외대문 및 관리사 그리고 정려문을 건립하였습니다.

정원에는 장성공 거창부원군과 신도공 익창부원군의 신도비를 근수하였으며 뒷산 중턱에는 신도공 묘역이 있어

그곳에 오르는 돌계단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거창신씨는 고려에서 조선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충효와 인의를 존중하며

동래천년이 되는 해동의 명문임을 부언합니다.                        거창신씨 장성공 17대손 신용한(愼鏞翰) 근서

.


신수군 신도비


신수근은 중종반정에 항거하다가 박원종 일당에게 참수를 당한 올 곧한 충신으로 굽히지 않은 곧은 마음을 

대의를 위하여 목숨과 모든 영화를 버린 충신의 표본이라고 1739년 영조가 어찰과 정려문을 내렸다.


영조가 내린 어찰 고금동충(古今同忠) 비문각


영조가  ‘고금동충(古今同忠) ’이라는 4자를 써서 내려 주고 이르기를 .....


 "신수근(愼守勤) 은 포은(圃隱)과 함께 충의(忠義)가 같다." 하고

호조에 명하여 사우(祠宇)를 만들어 주고 그곁에 각(閣)을 세워서 이것을 새기어 걸게 하라 하였다.


입구에 신수근의 삼충신(신수근과 아우 판서수영(守英)· 유수수겸(守謙))을 말하듯 문인석 3기가 도열해 있다



신수근[愼守勤 1450 ~1506년]

자는 근중(勤仲)·경지(敬之), 호는 소한당(所閑堂), 시호는 신도(信度), 본관은 거창.

거창신씨 가문에서 이씨 왕조에 정비 1 후궁 2  폐비 1 를 배출 하였고 그외 인척관계가 있다    

아버지는 영의정 거창부원군 승선(承善) 어머니는 임영대군(세종의 4남)의 딸이다.  

성종 15년(1484) 음보로 장령에 기용되고 1492년 우부승지를 거쳐

호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연산군 1년(1495) 도승지가 되고 이어 이조판서·우찬성으로 승진하였다가 파직 당하였다.

1504년 돈령부첨정에 기용되고 1505년 우의정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연산군 12년(1506) 좌의정이 되었다


박원종· 성희안 · 유순정등이 연산군(신수근의 매부)을 폐하고 진성대군(晉成大君, 신수근의 사위)을 임금으로 추대할 뜻을 

그에게 전달하여  ‘누이와 딸중 누가 더 중하냐?’ 고 묻자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나면서

‘임금이 비록 포악하나 총명한 세자를 믿고 살겠다.’고 말 하였다.

이에 박원종은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고 신윤무(辛允武)·이심(李莐)등 자객 10여명을 보내

수각교(水閣橋, 남대문4가에있던 다리) 에서 그를 맨먼저 살해하고 두아우 판서 수영(守英)· 유수 수겸(守謙)도 함께 피살되었다

마치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되듯  신수근도 수각교 다리 위에서 從僕들이 온 몸으로 막았으나 그들도 함게 피살 되었다


거창부원군 신승선(父親)과 익창부원군 신수근 신도비.


반정의 기미를 그 당시 알아채고 만약 내가 신수근 이었다면 분명 죽임을 당할 줄 알면서도

연산군을 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 올랐다


신수근 묘로 오르는 계단에는 節義를 보여주는 푸른 전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묘역 상단에는 신수근 배위의 묘역으로, (좌)전비 정경부인 안동권씨 (우)계비 정경부인 청주한씨 묘이다.

 

신수근은 두명의 부인을 두었었는데 첫째 부인은 권람의 여섯째 딸 안동권씨로 자식을 낳지 못했고         

두번째 부인은 한확의 조카 한충인의 딸인 청주한씨로 4남 3녀를 낳았으며 그 중에서 둘째딸이 단경왕후(온릉) 신씨이다.

연산군의 폐비 신씨와 단경왕후 신씨는 고모와 조카 사이지만 시집에서는 동서지간이다.


신수근은 딸의 편에 섰다면 죽음은 커녕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산군을 선택한 것은 肉親의 정에 끌린 것이 아니라 君臣간의 도리를 따른 것으로써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정당을 옮겨 다니는 요즘 정치인들에게는 바로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다.


거창신씨 묘역 30여기가 도열해 있는데 후손들의 정성으로 깔끔하게 보존되고 있었다.


신수근 墓標 최근에 새로 한 것 같다  

 

당장의 이익만을 쫓지 말고 자신의 사욕을 버려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으로서 참으로 어려운 판단이다

.


그런데 경모사에서 1Km쯤 더 산쪽으로 올라가면 아이러니하게 종종반정때 가해자인 성희안 묘가 자리하고 있다.


성희안묘는 "24시한증막탕' 부근 산 속에 있으며 주위 개들이 난리법석을 해서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특히 올라 가는 길도 난이하여 초보자는 찾기 어려우며 묘 주위는 曲粧으로 둘러 샇여 있다

 

성희안(1461 ~ 1513년) 연산군을 풍자하는 시를 썼다가 관직이 강등당한후 중종 반정 일등공신으로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하였다
자신의 처신을 낯추는등 현명하게 하여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아 오랫동안 보전 할수 있었으나 52세로 장수 하지는 못 했다 


그리고 참 이상한 것은 중종반정에 가담한 또 한 사람인 박건 밀양박씨 공간(試毫)묘가 신수근 묘 가는 길 初入에 있다

 

입구를 알리는 정자각에서 200m 전방에 사당과 신도비 그리고 묘가 있다

 

박건 (朴建 1434 ∼1509년) 중종반정 3등에 책록되어 의정부 좌찬성에 밀산부원군(密山府院君)에 봉해졌다

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우찬성를 지냈다


이곳은 불과 1Km 이내에서 중종반정의 가해자 성희안, 박건과 피해자 신수근의 묘가  한 골짜기에

같이 있는데 먼저 이곳에 온 신수근은 연산군의 충신이고, 성희안 박건은 중종의 충신으로서

서로 대의명분에 따라 역사는 평가를 달리하고 있는 것.

그래서 거창신씨 장성공파 가문에서 더 자존심을 세우는 듯 하였다. 세상은 참 그러네요!!. solsae k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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