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애환의 염천교

시인김남식 2012. 11. 18. 20:39

서울역 애환의 염천교 솔새김남식

 

염천교부근은 6.25전쟁 직후에는 염천교 다리 양 옆에는 떡장사들과 소금 장사들이 즐비했고

서소문·아현동까지 채소시장으로 사람들이 늘 붐볐다고 한다 .

 

궁핍한 사람들이 이곳을 터전으로 먹고 살던 노점상들은 물론이고

말못할 애환을 가슴에 담은 채  숱한 사람들이 염천교를 왕래 했으며 특히 집없는 아이들이 염천교 다리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양아치 생활을 주로 했었다고 한다.

 

거지와 깡패들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TV드라마에 나왔던 우리가 아는 유명인들로 이곳서 거지생활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옛날 어머니들은 우는 아이를 겁주기 위해서

 “너, 염천교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하며 염천교를 들먹이곤 했던 서글픈 사연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전축의 메카로 떠오르는 모전자회사 사장님은 아침 조회시간이 되면 자기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였다.
그분은 이북 출신으로 전쟁 피난 길에 고아가 되어 밤에는 염천교 다리밑에서 자고 비오는 날은

목욕탕을 청소해 주고 잠을 자며 돈을 벌어서 자수성가를 했다고 늘 자랑 하였다.

 

 

염천교 주위에는 운송회사들과 물류회사들이 밀집해 있었고 고무신과 고무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군들의 중고 전투화 가죽으로 만든 수제화가 크게 유행하면서

명동의 유명 브랜드를 앞세운 대형 제화업체들과 쌍벽을 이루는 가게들이 이곳에 즐비하였다 

 

 

2000년에 들어서자 값싼 중국산 구두가 밀려 오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수제화 구두거리가 줄 곧 내리막 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 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염천교 일대에서 수제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특수한 신발을 만들고 있는데 

구두가게가 서울역 근처에 있기에 명절 때는 성시를 이뤘다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 건물 그자리에서 아직도 염천교 수제화 거리로 지금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옛날 그 당시 오랫만에 고향가는 길에 바빠서 미처 사 신지 못한 구두를 이곳에서 많이들 사 신었다

 

                                                                              해방직후 서울역전에서 바라 본 남대문

 

울며헤진 염천교 

반야월작사 박시춘작곡 노래 이미자 1966년 발매 

 

1절

부모도 잃은남매 정든고향 하직하고  낯설은 서울역에 손가락에 맹서걸고
이년후 추석날밤 염천교에 달이뜨면  돈벌어 만나자고 울며헤진 멍든가슴
아아아 이무슨 슬픈운명 하늘아래 두남매

2절

광화문 네거리에 신문파는 내동생아  서울의 처마밑엔 비바람만 야속쿠나
낮에는 여공살이 밤이면은 미용학원  이험한 세파에도 희망안고 살았건만
아아아 그희망 잃은순정 갈곳없는 두남매

 

 

영화줄거리

부모를 여의고 서울로 올라온 남매는 서로의 성공을 다짐하면서 매년 한번씩 만날 것을

다짐하고 염춘교에서 헤어진다. 한편 성공의 길은 멀고도 험난해 누나는 불량배들에 의해 순결을 짓밟힌다.

이를 비관한 남매는 함께 죽기로 결심하고 극약을 마신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살아나고

또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그들은 한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밝은 앞 날을 약속받게 된다.

아역으로 저하늘에도 슬픔이에 출연했던 김천만이 김지미와 함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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