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 李殷相 1903 ~ 1982
경남마산출생 , 본관은 전주(全州). 필명은 남천. 호는 노산(鷺山)
1920년대 후반에 일어난 시조 부흥운동에 참여한 뒤로 시조의 현대화에 힘썼고
〈가고파〉·〈봄처녀〉 〉·〈그집앞〉 작사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으며,
1945년에는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경찰서에 갇혀 있다가 8·15해방이 되어 풀려났다.
같은 해 호남신문사 사장을 지냈고, 1950년 이후 청구대학(지금의 영남대학교)·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9년부터 충무공 이순신장군 기념사업회장
안중근의사숭모회장 등을 맡아보았다.
1967년 시조작가협회장, 한글학회 이사를 지냈고, 1969년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1972년 숙명여자대학교 재단이사장이 되었다
제1유공자묘역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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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아버지가 세운 마산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다가 1923년 그만두었다.
창신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사학과에서 공부했다.
일본에 잠시 머물며 〈신생〉의 편집일을 도왔고,
귀국한 뒤로는 1931~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지낸 뒤 〈동아일보〉·〈조선일보〉에서 근무했다.
1969년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1972년 숙명여자대학교 재단이사장이 되었다.
1970년 경희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 1974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 성곡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 시조작가협회 종신회장,
1978년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고, 1981년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1976년부터 노산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 노산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