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배암골에 보낸 후 하루도 잊지 않았다. 내가 왜 배암골을 찾아서 그의 시신을 안장시켰는지 내 자신도 모른다. 그저 어렴풋이 추측이 되는 것은, 그와 내가 둥지를 틀었던 성남시에서 그래도 가까운 곳이 그곳이어서 그랬는가 싶은 생각이다. 나는 그때 봉분이 만들어지는 옆에서 그에게 약속하였다. "충식씨, 저는 당신이 제 곁을 떠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항상 이런 식으로 당신이 누워 있을 장소를 택했으니까요. 전 이제 이곳으로 당신을 찾아올 거예요. 내일부터 말예요. 당신이 이곳에서 떠나는 그날까지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싶어요. 당신은 저의 말을 믿을 수 있죠? 왜 대답이 없어요. 당신이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전 올 거예요. 꼭 올 거예요." 지난 길지 않는 세월 동안 그 약속은 철저하게 이행되었다. 나는 눈을 뜨기가 바쁘게 배암골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가 육신의 형체를 하고 나를 기다리던 과거의 그 어떤 날보다도 절실한 마음으로 또한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나는 마치 신들린 여자라도
된 것처럼 배암골로 향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며칠간의 그는 영혼의 대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옛날 사고를 당하여 약수동 꼭대기의 슬레이트집에 누워 있을 때처럼 내가 가까이 오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하였다. 가엾게도 그는 내 인생을 염려하였으리라. 반신불수에게, 혹은 혼령으로 떠도는 귀신에게 정을 붙여서 어쩌겠다는 속셈이냐고
강하게 거부하였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 마음조차도 사랑하는데 어쩌겠다는 건가. 그는 약수동에서 스물네 살의 여자인 나에게 미쳤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내가 왜 미쳤단 말인가. 일평생을 함께 하자고 약속한 남자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반신불수가 되면 마치 헌신짝을 버리듯 버려야만 온전하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지 않고 그래도 당신은 나의 반려자야만 온전하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지 않고 그래도 당신은 나의 반려자이니 당신을 섬기겠노라고 말하면
그게 미친 행동일 수밖에 없는가.
나는 이런 것이 우습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 사회의 눈이 무섭다. 그리고 싫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지극히 정당한 것인 양 그렇게 행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언 쪽이 진실인가? 어느 쪽이 선인가? 어느 쪽이 아름다움인가? 어느 쪽이 자비이며, 어느 쪽이 사랑인가 말이다. 나는 충식씨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그의 의식을 흐르는 그 한가닥 통념을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 부질없고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나는 그를 온전한 인격체로 대했지 그를 연민의 정으로 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린 부부였고 이 지상에서 그 어떤 사람보다도 행복하고 운명을 함께 해야 될 한 남자와 한 여자였다. 결국 그와 나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시공을 초월하는 영혼의 대화가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그의 육신이 생명을 잃었다고 하여 그의 영혼조차도 소멸되어 떠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영구차는 고속도로로 진입하자 더욱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얼마 있지 않아 서울 시내로 들어섰다. 충식씨가 주민등록두기를 거부한 도시이다. 사연 많고 한 많은 도시, 탄생과 중음이 엇갈리는 도시, 금시에 터질듯 하면서도 온갖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도시이다. 영구차는 서대문을 거쳐 불광동, 구파발을 경유 경기도 고양군 대자리를 향하여 열심히 내달렸다. 대자리에 가까워질수록 하얀 빛깔의 영구차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마침내 영구차는 "서울 시립장묘 사업소"라고 간판이 달린 속칭 "벽제 화장터"로 들어갔다. 원형의 단층건물 위로 우뚝 솟은 크고 검은 굴뚝 한 개가 금방 눈에 띄었다. 굴뚝에서는 짙은 회색을 띤 희끄므레한 연기가 쉴새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연기를 보는 순간 미묘한 전율을 느꼈다. 그 전율은 수년 전 충식씨 아버지를 화장할 때엔 미처 느껴 보지 못한 전율이었다. "인간=연기=재"라는 미묘한 등식이 내 의식으로 침투한 것이다. 영구차가 관을 넣은 입구에 멈추자 인부들이 달려 들었다. 그들은 능숙한 솜씨로 관을 들어 하얀 글씨가 씌어진 빨간 천 위에 관을 놓았다. 그의 관은 다시 도르래가 달린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그 앞에서 늙수그레한 얼굴의 스님이 염불을 하고 있었다. 스님 앞에는 지폐 몇 장이 놓여져 있었다. 나도 천 원권 몇 장을 그 위에 놓았다. 바로 그 옆에서는 목사와 유족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를 분주하게 오고 갔다.
그들 모두도 허망한 인생의 슬픔을 등에 지고 나처럼 이곳에 왔을 것이다. 때론 시기하고 질투하던 한 생명의 영원한 떠남이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교훈을 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생들아, 짧은 세월 동안 성내며 싸우지 마라. 너희도 머지않아 우리 길을 따르리라'는 망인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술에 취해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생의 허망함을 한 잔 낮술로 달랬으리라. 구내 식당의 스피커에서는 회심곡의 구슬픈 가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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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세상 사람 나의 노래 들어 보소. 허탄히 알지 말고 자세히 생각하소. 고왕금래 무궁하고 천지사방 광활한데 사람이라 하는 것이 우습도다, 허망하다. 더운 것은 불기운, 동하는 것 바람기운. 눈물 콧물 피와 오줌, 축축한 것은 물기운, 손톱 발톱 터럭이요, 살과 뼈와 이빨 단단한 것 흙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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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래, 맞아... 사람이라 하는 것은 우습고도 허망해.
나는 회심곡의 가락에 동화되어 망연히 서 있었다. 그때 도르래가 달린 들것에 그의 관이 실려 원형으로 된 24개의 화구 중 한 화구로 들어갔다. 마침내 그의 육탈되지 아니한 한 많은 시신도 재로 화할 것이리라. 화구 앞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쪽패가 놓여져 있었다. 쪽패에 새겨진 이름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을 발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조금 있으면 한줌의 재로 변해 버릴 한 생명을 슬프게 확인시켜 주었다. 쉬쉬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석유가 쏟아지는 소리이리라. 화구에 파란 불꽃이 일었고 그 불꽂을 점차 빨갛게 변했다. 빠알간 불꽃은 소리도 없이 활활 타올랐다. 이제 그 불꽃은 충식씨의 시신을 사르리라. 괴로웠던 한 인간의 흔적을 연소시켜 한줌의 재로 남겨 놓으리라. 나는 빨갛고 기세 등등한 불꽃을 한동안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자신의 몸에도 불꽃이 점화되고 있는 환각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흔들었다. 불꽃의 점화를 거부하는 반사적인 몸놀림이었다. 이때 등뒤에서 한 인부의 목소리가 굵직하게 들려왔다. "아주머니, 여기 그렇게 서 계시지만 마시고 구내 식당으로 들어가 앉아 계십시오. 한 시간 반이면 모든 일이 끝납니다." 허리가 꾸부정하게 보이는 키 큰 인부는 나의 창백한 얼굴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말하였다. "괜찮아요. 여기 이렇게 서서 지켜 보는 게 좋아요." 인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화장에 신물이 난 자기 입장으론 나에게 해준 한마디도 보통의 선심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결국 나는 구내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몇 걸음 걷다보니 원형으로 된 장제장 건물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이 보였다. 그리고 안내판에 적힌 글씨들도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곳에는 '이곳은 경건한 곳입니다.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개인의 경거망동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시작된 글귀로부터 망인의 가족이 부담해야 될 요금 조견표도 있었다. 가격--어른 8천 5백원, 어린이 4천 2백원, 사산아 3천원, 적출종양 2천 3백원. 또 화장 시간도 명기되어 있었다. 어른 1시간 40분, 어린이 1시간. (다만 관의 두께와 망인의 신체 크기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 나는 안내판의 글씨를 빠르게 읽으면서 비감에 젖었다. 여기서는 인간의 몸뚱이가 그렇게 귀중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마당에 널려 있는 장작이라도 태워 버리는 것처럼,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몸뚱이는 태워 버려야 될 일종의 짐이었다. 안내판의 글씨 속엔 그러한 뉘앙스가 짙게 배어 있었다.
. 나는 구내 식당에 얼마간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하여 그의 시신이 들어간 화구 앞에 섰다. 그때 도르래가 달린 화구와 수레가 인부의 손에 의해서 끌려 나왔다. 네모 반듯한 하얀 벽돌 위에 그의 유해가 한줌의 재로 변하여 얹혀 있었다. 재 옆엔 정해진 시간 애에 다 타버리지 않은 몇 조각의 뼈도 함께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이것이 지난 18년 동안 내가 사랑했고, 나의 모든 것을 바친 엄충식의 마지막 모습이란 말인가.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나의 마음은 파르르 떨리기만 했다. 한 인간이 재로 변해 버린 모습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처참하였다. "삼십 분 후에 관리 사무실로 오셔서 유해를 인수해 가십시오."
. 기름 불꽃에 절은 때문인지 얼굴이 거무튀튀한 화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화부가 긴 젓가락으로 뼈를 집어 쇠절구에 담아 쇠공이를 잡는 모습을 보고 그곳을 나왔다. 밖에 나오니 또 한 대의 새로운 영구차가 이제 막 들어오고 있었다.
차가 멈추자 유족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 중 소복을 한 젊은 여인이 땅에 엎어지더니만 대성통곡을 하였다. 아마 미망인인 모양이었다.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그 옆을 지나쳤다. 장제장 밖 저 멀리로 갈색의 산야가 쓸쓸히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끝이 매운 바람이 간헐적으로 뺨을 때렸다. 추위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차 소리 등이 단 일 초도 차분한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죽으면서도 곱고 편하게 가지 못하는 인간을 생각했다.
그리고 충식씨의 하얀 이마와 얼굴을 생각했다. 그 모든 잡다한 생각들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황량한 들판과 어우러져 나를 비틀거리게 했다. 삶은 이처럼 회색이 전부란 말인가? 분홍과, 노랑과 빨강, 그리고 초록과 물빛의 삶은 진정 꿈의 낙원에 불과한 것인가?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장제장의 이곳저곳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수십 분 후 관리 사무실로 갔다. 젊은 직원에게 엄충식씨 보호자라고 말하자 그는 넘버가 적힌 서랍을 열더니 노란 봉투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러면서 당부하듯 나에게 말을 건넸다. "가급적이면 멀리 거서 뿌리십시오. 안내판에서 보셨겠지만 장제장 뒤에 뿌리면 벌금을 물게 됩니다." "알았습니다." 나는 재가 담긴 봉투를 조심히 안고 관리 사무실로 나왔다. 193cm의 장대의 체구가 조그만한 봉투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허탈하게 만들었다. 나는 충식씨의 유해를 어디에다 뿌릴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처음부터 이곳 화장터에 그의 유해를 뿌리고 싶진 않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걸어 나오는데 이곳 화장터에서 일하고 있는 듯한 중년의 사내가 나를 보며 물었다. "보아 하니 아주머니께서도 유해를 뿌리실 모양이지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아주머니께서는 어느 종교를 가지고 계신가요?"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나의 이 대담에 사내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처음보다는 훨씬 더 활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시다면 이 근처의 절에 가셔서 위패를 모시지요. 이 근처엔 절이 많이 있답니다."
나는 사내의 이 말에 '그렇구나, 충식씨의 유해를 절 근처에다 뿌리자' 하고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충식씨 어머니가 잘 다니던 여주의 신륵사를 떠 올렸다. 오늘 당인에 유해를 뿌리기 위해선 안성마춤의 장소일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신륵사로 갈 준비를 하였다. 내가 유해상자를 들고 신륵사에 도착했을 때는 사방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었다. 그곳에서 절차를 밟아 위패를 모시고 절 아래의 강변으로 내려갔다. 겨울강은 혹독한 바람을 쉬임없이 일으키어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검은빛을 띤 물결 위로 바람 소리만 지나갔다. 나는 주위가 평평한 지형을 골라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유해상자에서 봉투를 꺼냈다. 마침내 그의 육신이 마쇄된 재를 나는 한웅큼 쥐었다.
보드랍고 따스한 분말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충식씨...'하고 외쳤다. 그러자 걷잡을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나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주르르주르르 쉬임없이 솟구쳐 나왔다. 나는 재를 뿌린다기보단 씨앗을 심는 농부처럼 집고 있는 재를 조심조심 놓았다. 그러자 재는 겨울 바람에 실려 더러는 강물 위에 떨어지고, 더러는 어둠이 내려오는 공중 저 멀리로 흩어지고,
또 더러는 눈물과 범범이 된 나의 얼굴에 와 닿았다. 나는 봉투 안의 재가 다 날려갈수록 엉엉 소리를 높여 울었다. 흐느끼는 통곡의 소리에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빈 봉투만 나의 손안에 남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는 차갑게 언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 이리하여 나는 그가 세상을 떠난 1884년 여름(7월)이후, 일 년 반만에 화장을 치르고 그때 '나도 따라가면 되지'하고 약속을 하던 것이 아직도 지키질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와의 생활은 이미 지난날의 회상 속에만 있지만 충식씨만은 늘 나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그래서 내가 모르는 예수같이 그분은 죽어서 부활할 것이다. 나는 그를 잃지 않았다. 다만 잃은 것은 나 자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