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잃어버린 너 솔새김남식
1. 꽃피는 계절
대학 입시를 눈앞에 둔 나는 다른 입시생들과 마찬가지로 바쁘고 긴장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더구나 무용학과를 지망한 나는 실기시험 준비로 인해 무거운 책가방에다 타이즈와 발레 슈즈까지 넣고 추위도 못 느낀 채 학교와 무용 연구소를 정신없이 오고갔다. 그때 우리 집은 서울 마포에 있었는데 할아버지와 부모님, 그리고 동생 넷, 이렇게 여덟 식구가 살고 있었으며 생활은 그 당시로는 꽤 넉넉한 편이었다. 어머니는 호로 계신 시아버님을 모시는 효부로 주위에 소문이 나 있었고, 기계공장을 경영하시던 아버지 역시 대단한 효자였다. 집안은 늘 화목한 편이었으나 무척 엄격하신 할아버지 때문에 가끔씩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을 때도 있었다. 처음에 할아버지께서는 무용과 지망을 무척 반대했다. 그러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려서 취미로 하는 건 몰라도 다른 좋은 공부 놔두고 대학에 가서까지 무용을 할 건 없다. 무용과를 갈려면 대학 진학을 포기하도록 해라." 할아버지의 이 한 마디에 부모님께서는 감히 설득조차 하려들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꿈꾸어 왔던 발레리나에 대한 동경을 아무리 무섭고 엄하시다 해도 하루아침에 포기할 수가 없어서 집에만 오면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며 자꾸만 졸라댔다. 큰손녀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시던 할아버지는 결국 허락을 하기에 이르렀고, 나는 마치 입학 시험에 합격이라도 한 듯 발레리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바람은 점점 차가워지고 가끔씩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할 무렵 서울 퇴계로에 있던 무용 연구소에 작품을 받으러 더욱 열성적으로 다니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 당시에 두세 분 정도 있는 남자 무용수 중의 한 사람으로서 국내의 무용발전과 외국 무용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었다. 작품은 계획대로 잘 진행이 되어갔고 개인적인 노력만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때 연구소에는 남자 대학생이 한 사람 있었다. 무용을 하는 우리에게도 그 남학생의 연습광경은 생소하게 보였고, 더구나 연구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때라서 기초 동작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고 어색했던지 친구들끼리 서로 눈짓을 하며 깔깔거리듯 웃곤 했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연습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연습을 하고 있는 남학생을 보고 있더니 갑자기 큰 소리를 내어 쿡쿡 웃고 있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남학생이 땀을 닦으며 문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야! 이게 누구야? 벌써 소문이 난 게로구나" "자아식, 엉뚱한 데가 있다 했지만 무용은 정말 뜻밖이다. 하여튼 대단한 용기구나." "어때? 연습하는 거 보니까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애?" "임마, 가능성이고 뭐고 빨리 옷이나 갈아 입고 와. 내가 다 민망해서 볼 수가 없어. 헛수고 하는 것 같고..." 그 남자는 자기 친구의 타이즈 입은 모습이 우스웠던지 옷 갈아 입기를 재촉하면서 사회적인 인식과 더불어 남성론에다 여성론까지를 묶어 쉴새없이 핀잔을 누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우리의 연습을 멈추게 하였고 이내 연습실 안은 웃음으로 가득찼다. 그날 연습을 끝내고 연구소 밖을 때는 땅거미가 내려앉을 시간이므로 날씨는 더욱 차가워져서 교복 오버깃을 단단히 여미게 하였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친구와 대한극장 맞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남자 무용수와 그를 찾아왔던 친구를 만났다. 얼굴 생김보다는 당당해 보이는 체격이 퍽 인상적이었다. 힐끔힐끔 쳐다보며 깔깔거리는 우리에게 그 친구는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고, 그의 자신있는 말투는 마치 우리가 그의 동생이라도 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저녁식사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라는 차이에서인지, 나이 차이에서인지 그에게 아저씨라는 호칭이 서슴없이 나왔고, 나무라는 듯이 호칭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그의 모습에서 풍겨나오는 무엇이 내 자신에게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를 남겨 놓았다. 이것이 그와의 처음 만남이었다. 시험을 앞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느끼는 것이겠지만 하루라는 것이 정말 불규칙하게 가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빨리, 어느 날은 지루하게 그리고 어떤 주일은 월요일에서 그대로 일요일로 건너뛰는 듯했다. 그리하여 대학입시를 치루게 되었고 명문대학으로 불리우는 이화여대의 뱃지를 달 수 있었다. 지난 학창시절을 돌이킨다면 입시 때가 가장 많은 추억을 가질 것 같았지만 사실 반복되는 생활에 자기 절제의 시간이고 보니 별다른 추억거리를 만들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목표했던 바의 진학이 학창시절의 마무리로 남는 것이었다. 합격이란 것이 주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대학 생활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티킷이라는 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겨울의 날씨로 굳어버린 듯한 가로수, 畿?무겁게 내려앉아 금세 눈이라도 내릴 듯한 하늘, 감당하기에도 생각하기에도 나에게 벅찬 꿈들을 살아있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친구들과 약속을 하였고, 바닷속에서 소금을 만들어 내는 맷돌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때 깔깔거리며 웃어대던 나의 친구들과 나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듯하다.
입학을 위해 이것저것을 사들고 들어서던 골목길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자식이면서도 때로는 부러운 듯한 시선을 보내주기도 하셨다. 그때의 내 모습은 그저 평범한, 그러면서도 조금은 맑은 눈동자를 지닌 여고 졸업생이었다. 몇 달 사이에 그 여고시절에서 벗어나질 것 같지 않았다. 새로운 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자신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할 수 있다면 완벽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화하고 싶었고 성숙하고 싶었다. 그것이 대학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보다 더 깊이를 더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지금까지 몸 담아 왔던 세계에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지닌 채 졸업을 하여, 나는 드디어 대학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입학시, 오리엔테이션, 수강 신청의 절차를 끝내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찬 바람과 간간이 진눈깨비가 내리게 하는 추위로 3월의 날씨는 갈피를 못 잡고 있었으나, 6년간 입었던 교복을 벗은 지 얼마 안되는 탓인지 약간은 어색하면서도 저마다 신경을 꽤 쓴 듯한 화사한 색깔의 옷차림들이며, 한낮에는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내 마음은 이미 봄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때 같은 학과인 박은영이라는 친구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은영이는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마포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언지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아주 예쁜 얼굴에 키도 크고 타이즈를 입은 몸매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친구였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서 늘 같이 다니며 고등학교 시절과 집안 이야기, 학교 생활과 장래에 대한 꿈 등, 수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대학에 입학하면 꼭 가고 싶었던 곳인 종로에 많이 몰려있던 음악 감상실 "셋시봉", "드쉐네", "뉴월드" 등에 들러서 엘비스 프레슬리나 크리프 리차드의 노래도 들어보고 "르네상스"라는 고전 음악실에 가서는 베토벤, 모차르트 등과도 만났다. 4월로 접어들면서 교정은 점점 활기를 띠고 선배들과도 알게 될 즈음, 여기저기서 친구들의 미팅 소식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무렵 수업이 일찍 끝난 어느 화창한 날, 은영이와 나는 봄 햇살을 받으며 신촌 쪽으로 걸어가다가 주로 대학생들이 모인다고 소문이 난 "복지다방"에 들어갔다 다방 안에는 젊은이들로 꽉 차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그 당시 한창 인기가 있던 영국가수 크리프 리차드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어색해 하며 차를 마시고 있는데 누가 갑자기 내 어깨를 툭 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든 내 앞에는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남자가 싱글거리며 서 있었다. "야--. 너 드디어 대학생이 됐구나." 너무 그 사람의 목소리가 커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그 남자는 다시 나의 등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니? 나 기억 안나? 엄충식, 나 엄충식이라구. 너는 김윤희고... 모르겠어?" "네, 알아요. 안녕하세요." "여기 웬일이야? 대학생 됐다고 다방부터 드나들고 이거 안되겠는데..." "아녜요. 신촌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친구랑 얘기 좀 할려구 왔어요." "그래? 나도 친구 만나러 왔는데 금방 끝날테니까 같이 나갈래? 내가 저녁 사줄게." "저녁은 집에 가서 먹을래요. 친구도 있고..." "친구 있으면 뭐 어때? 좀 있다 같이 나가자구. 나 금방 나갔다 올게."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아니면 도중에 포기를 했을지도 모를 남자 무용수 지망생인 친구를 찾아왔던 그는, 열심히 해서 꼭 합격하라고 격려해 주면서 자기 이름을 기억하라며 큰 소리로 '내 이름은 엄충식'하던 그 사람이었다.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은영이에게 대강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그 사람이 들어와서 우리 셋을 다시 신촌 근처에 있는 경양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자와 함께, 더구나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처음인데다 충식씨가 왜 그리 어려운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나는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을 했을 정도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호칭은 '아저씨'로 나오고 그 사람은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며 이제는 똑같은 대학생이니 제발 아저씨라고만은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안 부르면 어때. 그냥 말하면 나한테 하는 줄 알텐데." 은영이가 먼저 버스를 타고 떠난 후 그 사람은 싫다는데도 밤길이 위험하니 집에까지 바래다 주겠다며 따라왔다. 그 당시에는 신촌이 개발되기 전이라서 서강 대학교 부근이 밤이면 가로등이 없어서 혼자 걷기가 무섭기는 하였다. 한동안 같이 걸으면서 그는 나에 대한 것을 몇 가지 물어본 후에, 식구는 부모님과 여동생하고 네 식구이며, 집은 명륜동이고 지금은 3년이지만 군복무를 마쳤기 때문에 나이는 많다는 것 등 자기 소개를 상세히 해 주었다. 집 근처까지 오자 나는 할아버지가 마중을 나와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쏟는 정성은 부모님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는 겨울에 찬 도시락을 먹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에까지 더운 밥을 가져다 주고, 비가 올 때면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시곤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신데 아무리 대학생이라 하지만 날이 어둡도록 집에 연락도 없는 나를 아무런 걱정도 없이 집에 앉아 계실 리가 없었다. 찻길 건너 집으로 가는 골목이 보이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제 집에 다 왔어요. 저기 보이는 골목으로 가면 되니깐 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세요." "아녜요. 할아버지가 나와 계실 거예요. 나 혼나요." "나더러 아저씨라며... 밤길이라서 아저씨가 데려다 준 것이 뭐 어때. 할아버지가 그렇게 무서우니?" "네, 얼마나 무섭다구요. 우리 엄마, 아버지도 할아버지한테는 꼼짝 못해요." "그래? 그럼 그만 가지 뭐, 잘 가." 내가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가 '윤희야'하고 불렀다. 그 사람은 내 이마에다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면서 동생을 타이르듯이 아주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윤희야. 대학생이 되었다고 멋이나 내고 놀러만 다니면 아 된다. 특히 너는 무용과이기 때문에 멋을 부리면, 여자가 너무 화려해 보인다 말야. 그건 좋게 못 돼. 교양 과목뿐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해. 모든 공부는 기초가 중요한 거야. 무용도 열심히 연습하고, 가끔 심심할 때는 내가 데리구 다니면서 구경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할게. 너희 집 전화번호 가르쳐 줄래?" "안돼요. 집에 전화하면..." 집에 전화를 하겠다는 그 사람의 말에 나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임마, 내가 직접 거니? 여학생 시켜서 걸면 되잖아! 그래도 안돼?" 친구들 사이에 깍쟁이라고 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꽤나 사람 사귀는데 까다롭던 내가 어떻게 전화번호를 쉽게 가르쳐 줄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실기시간 전이나 후에 탈의실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차츰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들끼리 미팅 소식이나 고등학교 때 가져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면서 장난을 치며 깔깔거리고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타이즈를 갈아 입고 머리빗질을 하고 있는 내게 은영이가 다가왔다. "윤희야, 어제 그 사람말야. 니가 설명한대로니?" "왜? 내 말을 못 믿겠어? 시험 준비할 때에 무용소에서 만났다니까! 어제 우연히 만난 거구. 보구두 모르겠어?" "아냐. 괜히 해본 말이야. 근데 그 사람 참 근사하더라. 너 또 약속했니?" "응, 집으로 전화하겠데." 나의 말에 은영이는 의외라는 듯이 다소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니, 그럼 너희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단 말야? 얘좀 봐! 할아버지가 굉장히 무섭다며 넌 겁도 안나니?" "가르쳐 주면 어때. 남자 친구도 아닌데..." 은영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는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너 놀랬다. 요게 이제 봤더니 보통이 아냐. 어쨌든 대학생이 되자마자 집에 전화해 주는 사람도 생기도 넌 좋겠구나. 아유... 약올라. 할아버지한테 들켜서 혼이나 나라." "너, 정말 자꾸 그러기야?" 은영이는 내가 당황해 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 큰 소리로 깔깔 웃었다. 사실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것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었다. 내가 너무 경솔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와 만약에 집안 어른들이 남자한테서 전화가 왔다는 것만으로 오해를 하시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전화 벨소리만 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곤 하였다.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난 지 2주일 후였다. 일요일이라 집에서 밀린 공부도 하고 음악도 들어가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며칠 동안 전화에 신경을 쓰고 있던 터라 거실로 뛰어 나갔다. "여보세요? 거기 윤희네 집이죠?"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인데 친구같이 나를 찾는 전화였다. "네 전데요." "아 그러세요? 잠깐 기다리세요. 전화 바꿔 드릴께요." 걱정은 되면서도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전화였다. "여보세요? 윤희니?" "네. 안녕하셨어요?" "그래. 너도 잘 지냈니? 지금 옆에 할아버지 계셔?" 마침 어른들은 외출 중이시고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 계세요." "그래? 마침 잘 되었구나. 오늘 일요일인데 뭐하고 있니? 특별한 일 없으면 '복지'로 나올래? 두 시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내가 2주일 동안 걱정하고 가슴 두근거렸던 것은 할아버지나 부모님들에 대한 것보다는 그 사람의 전화를 기다렸던 마음에서였으니 말이다. 일요일인데도 "복지다방"은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그는 친구인 듯한 사람과 함께였다. 체격은 그 사람보다 조금 작았지만 인상에서 풍기는 느낌은 두 사람이 비슷한 것 같았다. 그와 같은 연대정외과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이종환'이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종환아, 내가 말했었지? 이제 대학에 갓 들어온 햇병아리인데 대학생활을 잘 못할 것 같아서 내가 좀 데리구 다니면서 인생 공부를 가르쳐 줄려구... 우리 정미보다도 두 살이나 아래이니 아주 어린애지 뭐." 정미라는 이름은 그 사람의 여동생인 듯했다. "윤희씨라고 했죠? 이 친구 믿으면 큰일 납니다. 이 녀석 건달예요. 차라리 제가 앞으로 윤희씨를 잘 모시고 다닐께요." 친구가 내 이름에 '씨'자를 붙여서 불러주니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라고 그럴 수도 없고... 친구와 계속 농담을 주고 받는 그 사람은 먼저 보았던 때와는 달리 소년같이 밝고 재미있어 보였다. "복지"로 나오자 두 사람은 앞장서서 신촌 시장쪽으로 걷고 있었다. 앞서서 걷고 있던 그가 뒤를 쳐다보고는 웃으며 나를 불렀다. "너 뒤에서 오고 그래? 이리와 내 옆에 바짝 서서 걸으라구. 그래야지 누가 네게 딴 맘 먹고 따라오지 못하지." "임마, 너 신촌에서 여학생과 걷는 거 참 오랜만에 본다. 옛날 생각나는데?" "너 지나간 얘기 어린애 앞에서 함부로 할 거야? 너는 좀 악취미가 있다구. 남의 아픈 데를 건드리는..." 두 사람은 길에서도 그냥 걷지를 않았다. 계속 장난을 치며 농담들을 주고 받았지만 농담 속에는 의미있는 말 같기도 했으나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얘기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막 교복을 벗은 내가 군 복무까지 마친 사람들의 농담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리라. 그날 충식씨는 자기 집 근처에 아담한 레스토랑이 있는데 그곳으로 나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명륜동에 있는 "카사노바"라는 곳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실내가, 꽤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곳이었다. "어때 윤희야. 이 집 맘에 들어?" "네, 참 좋은데요." "앞으로 내가 명륜동으로 나오라고 그러면 이 집으로 나오는 거야. 알았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오빠는 나를 또 부를 생각이구나 했다. 두 사람은 맥주를 나는 주스를 시켰다. 맥주병을 들고 잠시 망설이던 종환씨가 나와 그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윤희씨도 한 잔 하실래요?" 내가 '못해요'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충식씨가 종환씨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자아식이, 저 애가 맥주를 마실 것 같니? 너 앞으로도 윤희한테 술 권하면 안돼 임마." "아쭈, 이 녀석이 나 혼자라구 막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봐. 치사해서 나 혼자 못 않아 있겠네." 맥주를 주고 받으면서 한참을 우스운 소리들만 하다가 두 사람은 졸업 후의 계획들과 집안 얘기, 학교 친구들 얘기 등을 아주 진지하게 나누고들 있었다.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충식씨아버지는 정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사업인가를 크게 하신 것 같았다. 대학원을 본교에 진학하려고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바로 유학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걸로 봐서 충식씨는 졸업 후에 공부를 더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리고 친구인 종환씨는 사촌형이 하는 무역회사에서 우선 일을 배운 후 무역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날도 그 사람은 나를 집 근처까지 바래다 주었다. "너, 내가 집으로 전화해서 놀랬지?" "네." "나도 전화할려니까 조금은 그렇더라. 대학 들어온 지 얼마 안되었는데 남자한테서 전화가 오는 줄 아시면 얼마나 걱정이 되겠니. 이렇게 나이 먹고 든든한 보호자인 줄은 모르시고 말야." 집 근처에 다다르자 충식씨는 나를 보고는 전번처럼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튀기면서 싱긋 웃었다. "일 주일 동안 공부 열심히 하고 일요일날 11시에 "카사노바"로 와 . 아냐, 내가 10시쯤 신촌으로 데리러 올게. 그날은 단화나 운동화를 신고 나와. 야외로 바람 쐬러 가자. 종환이도 같이 나올 거야. 알았어?" 말끝이 '알았어?' '알았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습관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어려 보여서 그냥 확인하려고 하는 말인지 늘 말끝이 그랬다. 일 주일 뒤에 그를 또 만난다는 것이 매우 기쁜 일이었으나 나는 별 이유도 없이 거절을 해 버리고 말았다. "다음 일요일은 저 못나가요." "왜?" 거절한 것은 후회했지만 괜히 그러고 싶었다. "집에 있어야 될 일이 있어요." "그럼 토요일 오후에 나올래?" "토요일 오후에는 무용 연습이 있어요. 저녁 늦게 끝나는데요." 이 대답은 사실이었다.
어려서부터 발레만을 했던 나는 대학에 들어간 후 한국무용 시간에는 동작 하나하나가 많이 서툰 것을 느꼈기 때문에 한국무용을 잘하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춤 사위를 익히고 있을 때였다. "심심할 때 전화해. 학교 후배라고 그러고 충식이 선배님 바꿔 달라고 해. 알았지?" 그 사람은 약간 계면쩍은 표정을 짓더니 자기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후 버스에 올랐다. 5월의 교정은 아름다웠다. 나무들은 이제 완연히 푸른 빛으로 변했고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갓 피어나기 시작한 꽃잎들은 너무나 화사하고 예뻤다. 교정을 오가는 학생들은 갖가지 화려한 색깔의 가벼운 옷차림들을 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축제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생들과, 축제에 대한 기대로 프로그램을 붙여 놓은 게시판을 기웃거리는 학생들로 학교 안은 약간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들뜬 분위기에 끼어들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집에서도 말을 잘 하지 않은 채 방에만 박혀 있었다. 은영이는 이런 나에게 농담을 하는 등 무척 신경을 써 주었다. 은영이는 자꾸 이유를 물어 봤지만 나 자신도 뚜렷이 무엇 때문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윤희야, 너 정말 이유도 없이 그러는 거야?" "응. 난 이제 사춘기가 왔나봐." "내가 맞춰 볼까? 너 엄충식 그 사람 때문에 그런 거야. 한참 못 보니까 보고 싶지?" "아냐." "아니긴, 내 말이 맞을 걸." 은영이의 추측이 맞는 것이었다. 어쩌다 어머니를 따라서 신촌시장을 갈 때나, 친구들과 신촌에서 만났다가 헤어져 서강대학 앞을 지나올 때는 나는 꼭 그 사람 생각이 났었다. 오랫동안 알아왔던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나는 이제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오빠 같다고 해도 남자에게 신경을 쓴다는 것은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약속을 안하기 잘했어. 그래도 일 주일에 한 번 오빠를 만나는 게 잘못하는 일은 아니잖아.' 나 자신에 대한 의문과 반문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어느 때는 '안 돼!'에서 어느 때는 '괜찮아!'로...
그날 집에는 마침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외출하시고 동생들하고만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 사람이 집에 있을 것만 같았다.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데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손까지 떨리고 있었다. 저쪽의 벨이 울리고 나이가 들어보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무 가슴이 뛰어 차라리 아무 말도 안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려고까지 했다. "저... 거기 명륜동이죠? 죄송합니다만 저는 학교 후배인데요, 엄충식 선배님 계세요?" "김윤희라고 해요." "김윤희? 잠깐 기다려 봐요."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였다. 잠시 후 그 사람이 나왔다. "여보세요. 윤희니? 오랜만이구나. 학교 잘 나갔어?" "네, 안녕하셨어요?" "근데 웬일이야?" 웬일이냐는 그의 물음에 난 할 말을 잊어버렸다. 웬일이냐고? 뭐라고 말할까? 어떡하지...하고는 망설였다. "그냥요." 그래 그냥이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지? 내일 12시에 "카사노바"에서 종환이와 약속이 있는데 거기로 나와." "네. 그럴께요, 오빠." "오빠? 그동안 내가 젊어졌네? 아저씨가 아니니 말야." 이튿날 나는 다시 그 사람을 만나게 되자 내 우울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사라졌다.
이리하여 대학에 입학하자 마자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 그와는 일 주일에 한두 번 정도로 자주 만났다. 어느 때는 자상한 아저씨 같기도 하고 때로는 짓궂은 오빠 같기도 한 그를 만나는 것은 내겐 무척 중요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대개 종환씨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늘 동생에게 해 주듯이 따뜻하게 나를 대했고, 나 역시 그들을 만나면 학교 일이나 친구문제 등을 의논하기도 하는 등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다. 특히 주말이면 세 사람은 야외에 나가서 맑은 공기도 쏘이고 집에 오는 길에 두 사람이 한 잔씩 하는 자리에서 나는 안주만 축내는 얌체가 되기도 했다. 농담을 잘하고 또 즐겨하는 종환씨는 우리 세 사람의 관계를 혈맹의 관계라고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불그스레한 얼굴로 입버릇처럼 말을 하였다. 혈맹의 관계. 우스우면서도 그 말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는 종환씨의 말을 듣고 대꾸했다. "임마, 셋이라니! 네가 빠지든지 한 사람을 더 끼어서 넷을 만들든지 해!" 헤어질 때면 의례 그는 '일 주일 동안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알았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2학년 한 해는 학교생활도 익숙해지면서 반면에 공부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강의가 끝난 후에도 무용실에 남아서 늦게까지 연습을 하는 등 정말 그가 시키는대로 공부 열심히 하는 여대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해 겨울이었다. 12월이 시작되자 시내 중심가에는 자선남비의 종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당장 급한 볼 일이라도 있는 듯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연히 내 마음도 설레이기 시작했지만, 마침 기말고사 기간이라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어갈 정신적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보니 무용의 종류는 왜 그리 많은지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교육무용, 민속무용, 거기에다 체조까지 잠자는 시간 외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3일이나 먼저 시험이 끝나고 내가 마지막 시험이 있는 날 우리는 약속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시험은 '현대무용'이었다. "G선상의 아리아"라는 곡을 가지고 각자 작품을 만들어 발표를 해야 되는 것이다. 긴장된 시험이 끝나고 타이즈를 갈아 입고 있는 탈의실은 무척 소란했다. 삼십여 명의 여자가 일제히 떠든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시끄럽겠는가. 이를테면 수십 개의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라고 할까?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갈 기쁨에 서로 언제 떠날 것인가를 물어 보고, 특별히 가깝게 지내고 있는 몇몇 친구들은 집으로 초대를 하기도 하며, 서로들간에 편지나 전화 부탁 등 모두들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은영이는 연말에나 대전에 내려갈 예정이었다. 나는 약속 때문에 급해 죽겠는데 은영이는 마냥 꾸물대고 있었다 "얘, 너 왜 그렇게 느려. 빨리 해." "얘좀 봐! 서두르는 거 보니 너 약속 있지?" "그래. 나 늦어." "알았다. 요 깍쟁아. 나는 그래도 오늘은 니랑 나랑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은영이는 몹시 서운해 하였다. "미안해, 은영아. 약속을 한 걸 어떡해. 대전에 바로 갈 거 아니잖니. 내일 만나자, 우리. 내가 차 살게." "싫다 얘, 내년 3월 개강하면 그때나 학교에서 만나." "어머 왜? 그러면 안돼!" "안 되긴 뭐가 안돼. 아유 약올라. 너랑 친구 안했으면 좋겠어." 그러나 나는 은영이가 진심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뿐이지 그 아이가 화난 것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2년 동안 늘 같이 다니던 친구인데 시험도 끝나고, 더구나 방학이 시작되는 날인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은영이는 계속 약올라 했다. "넌 도대체 엄충식, 그 사람 뭐가 좋으니? 난 괜히 그 사람 무섭드라. 무섭다고 생각하다 보면 조금 치사하기도 하고 말야. 자기가 나이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훈계나 하고, 따지고 보면 같은 대학생인데... 안 그래? 그리구 너 오빠 오빠 하면서 사실은 그 사람 좋아하지?" "뭐라구? 기각 막혀, 그런 게 아냐." "어머. 너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졌니? 너 정말 수상하구나." 은영이의 투정은 끝이 없었다. 나는 급해 죽겠는데... 은영이와 헤어져 신촌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충식씨를 오빠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걸까?'하고 생각을 해 보았지만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마음이었다. 다방 안은 방학이 시작되어서인지 한산했다. 종환씨도 함께였다. 늘 그랬지만... 두 사람은 무슨 얘기인지를 심각하게 나누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응 왔구나. 시험 잘 봤어?" 그의 얼굴이 조금은 꺼칠어진 것 같았다. 종환씨가 피우던 담배를 끄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예요. 시험 공부 열심히 했나 보죠? 얼굴이 핼쓱해졌어요." "평소 실력대로 봤다 이거죠. 윤희씨 학점 잘 나와야 될텐데. 나중에 성적표 나오면 충식이 이 녀석이 검사할 거예요." 내가 충식씨를 보며 '정말 그럴 거예요?'하고 물었다. "응, 그럴 거야. 나한테 성적표 보여야 돼. 알았어? 알았지?" "피이, 내가 안 보여 주면 되죠, 뭐. 남의 성적표를 봐서 뭐 할려구요." "나는 공부는 안하고 멋이나 내고 놀기만 좋아하는 여대생은 질색이야. 너도 그런 애인지 아닌지 알아 볼려고 그래." "내가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어떡할 건데요?" 내 물음에 그는 자주 하는 버릇대로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어떡하긴...매 맞지. 매 맞아도 안 들으면 그땐 한강에 갖다 버릴 거야." "아유, 꼭 무서운 아저씨 같애." "뭐야, 또 아저씨야?" "네. 아저씨." 내가 웃으며 아저씨 아저씨하자 그는 종환씨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야, 종환아. 윤희 하는 말 좀 봐라. 어려도 한참 어리다니까! 나도 얘 때문에 고생께나 해야 될 거야. 얘 언제 크냐? 안 원 기다리기 지루해서..." "나 때문에 왜 고생을 해요?" 나의 이 말에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큰 소리로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다. 종환씨가 먼저 가고 우리는 명륜동으로 갔다. "카사노바"에는 크리스마스 추리가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고 빨간 촛불이 아름답게 타고 있었다. 원형의 작은 무대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키가 큰 편이고 약간 마른 듯한 체격에다 수수하게 생긴 그 학생은 명륜동에 있는 S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며 평범하면서도 매력있는 목소리로 당시에 유행하던 팝송을 멋있게 불러 주었다. (그때 그 학생이 지금은 유명해진 서유석씨였다.)
나는 신촌에서 두 사람이 무슨 일로 그렇게 심각한 말들을 주고 받았는지 궁금하였으나 감히 물어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물어볼까? 아냐, 나에게 말 못할 일이면 어떡해.' 나의 답답한 이런 성격은 첫째 나 자신이 피곤했다. 한참을 말없이 무명가수의 노래만 듣고 있던 그가 날 불렀다. "윤희는 내가 오랫동안 먼 곳에 가 있으면 편지 자주 해줄래?" "먼 곳에요? 어디 가시는데요?" "이제 졸업이잖아. 그동안 많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공부를 더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여기서 해도 되지만 마침 내가 가고 싶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어. 종환이와 너를 오랫동안 못 보게 되는 것은 섭섭하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내일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닌데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 것만 같고, 그 사람을 쳐다보기만 해도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왕 결정을 했으니 내일부터라도 준비를 해야지. 전공도 원서로 몇 권 더 봐야 할 테고 영어 회화도 해야 돼... 수속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빼앗길 테고, 그렇지만 아무리 바빠도 종환이 녀석 말대로 우리는 혈맹의 관계니 자주 만나야지. 마침 방학도 시작되었으니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도 열심히 만나고 그래야 돼. 그리고 무용은 음악을 많이 듣고 또 이해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 팝송이나 듣지 말고 고전음악을 많이 듣도록 해. 알았어? 알았지?" 남은 당분간이라도 헤어지는 게 섭섭하고 슬픈데 그는 계속 공부, 공부였다. 그러니 내가 자꾸 아저씨 같다고 할 수밖에... "네. 알았어요. 근데 언제 가세요?" "수속은 6개월이면 끝나겠지만 떠나는 것 서두르지 않으려고 그래. 그곳에 가서 쩔쩔 매느니 조금 늦게 떠나더라도 준비를 철저히 해 갈 거야. 왜 빨리 떠나 버렸으면 좋겠어?" 빨리 가면 좋겠냐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한 잠도 이루지 못했다. 오빠가 가면 어떡하지. '오빠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충식씨가 가면 어떡하지. '충식씨? 모르겠어. 하여튼 참 좋아해.' ...밤. 잠 못이루는 밤...음악...커피. 밤새우며 그를 생각하고...나는 어느 틈엔가 사랑하는 마음이 모질게 싹트는 여자로 변하고 있었다.
그 해 겨울방학은 오직 그 사람을 만나는 일 만이 전부였다. * 효창 운동장의 스케이팅. * 우리 집 근처 눈 쌓인 기찻길. * "카사노바"의 키가 크고 싱겁게 생긴 학생가수의 매력있는 노래와 커피. * 눈 덮인 화계사 숲 길. 공부 열심히 하고, 열심히 만나자는 약속 중에 '공부 열심히'는 지키질 못했다. 매일이다시피 우리는 만났지만 그 사람이 가자는대로 가고 '예' '아니오' '알았어요' '그럴께요' 외에는 별로 말도 하질 못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마치 죄가 되는 것 같기도 하며 '내가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는 나를 동생 외에는 달리 생각을 안하는 것 같아. 미국에서 돌아올 때는 아무래도 부인과 함께일지도 몰라'하는 생각에 쓸쓸한 마음을 갖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눈치가 없었는지 나 자신도 한심한 노릇이었다.) 신청 연휴가 지난 1월 6일경이었다. 새해 첫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이가 성탄절 선물로 사준 털 스카프를 하고 "카사노바"로 갔다. 12월 30일 종환씨와 함께 신촌에서 명동까지 걸으며 눈길에서 장난을 치다가 두 사람이 넘어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도 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낸 후, 꼭 일주일 만의 약속이었다. 거의 매일 만나고 있던 때라 무척 오랜만인 것 같았다. 골덴 바지에 등산용인 듯한 카파를 걸치고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그가 나타났다. "일찍 나왔구나. 새해 복 많이 받아."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난 벌써 많이 받았어. 복 받은 거 달아나지 않게 일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야지. 윤희 너도 그래야 돼. 알았어?" 워낙 말 주변이 없는 데다가 그 사람이 말을 다 해놓은 뒤 '알았어?'하니 난 그저 '알았어요'면 됐다. 다른 때와는 달리 그는 서둘러 커피를 마셨다. 담배를 피우면서 유심히 나를 쳐다보더니 놀라운 말을 꺼냈다. "윤희야, 너 오늘 마침 예쁘게 하고 나왔구나. 조금 있다가 종환이가 올 거야. 그러면 우리 집에 같아 가자." "저두요?...싫어요." "왜 싫어. 넌 내가 어떤 집에서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니? 우리 부모님도 뵙고 싶지 않고? 겁낼 거 없어. 종환이도 함께 가니까."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는 어떤 집에서 사는지, 그의 방은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그의 부모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놀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그 사람은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저런 바보. 눈 커지는 것 좀 봐. 사실은 오늘 윤희 너를 우리 부모님께 인사시킬려고 그래. 내 동생도 널 보고 싶어 해."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용기가 나질 않았다. "싫어요. 난 안 갈래요." "싫어? 왜, 말 안 듣는 것 보니까 윤희는 날 싫어하는 모양이구나." "오빠가 싫은 게 아니구요, 집에 가는 게 싫다구요."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하고 있는데 종환이가 들어왔다. 그는 앉으려다 말고 내 표정을 보더니 그 사람의 어깨를 주먹으로 확 치는 흉내를 냈다. "임마, 정초부터 윤희씨 얼굴이 이상하다. 너 때문이지?" "우리 집에 가자니까 저러잖아. 바보같이." "그랬구나! 윤희씨 같이 가요. 나도 아직 신년 인사를 못 드렸는데 오늘 마침 아버님도 계시다고 해서 세배를 갈려던 참예요. 함께 갑시다. 부모님들 아주 현대적이라서 젊은 사람들한테 하나도 불편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래두, 안 갈래요." 그때 내게 무슨 고집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 고집은 지금도 굉장하다.' 내가 계속 안 가겠다고 우기자 그 살람의 표정이 바뀌고 있었다. 조금은 무섭게, 어떻게 보면 실망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됐어. 이제 그만 고집 부려. 내가 졌다 졌어. 종환이도 부모님 뵈러 간다고 해서 같이 가자는데 왜 그렇게 펄쩍 뛰고 그래. 기분 나쁘잖아, 임마. 윤희, 너 그러는 거 내 마음대로 해석해도 돼?" 그는 굳은 표정으로 약간은 화가 난 듯이 말을 내뱉았다. 종환씨는 중간에서 곤란하다는 듯이 어색해 하고 있고, 나는 처음으로 그의 화난 듯한 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충식아, 이해를 해라. 자아식, 너답지 않게 화를 내긴 임마. 갑자기 집엘 가자니 윤희씨가 당황하지. 그것도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가자는데 어느 여자가 놀라지 않겠니? 여기 있으라구. 내가 혼자 가서 세배만 드리고 금방 올게." 종환씨가 나간 후, 그는 계속 담배만 피우고, 나는 그저 찻잔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우린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는 화가 풀리지 않는 얼굴을 한 채 큰 소리로 웨이터를 부르더니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은 무슨 술인가를 한 잔 시켜서 단숨에 들이켰다. "임마, 윤희야! 화내서 미안하다. 내가 왜 이리 속이 좁아졌지? 하지만 너한테도 조금 섭섭해. 종환이도 있는데 그렇게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리면 어떡해. 나쁜 자식." "제가 잘못했어요. 다음에 꼭 인사드릴께요." 내 말을 못들은 척 그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종환씨가 다시 오자 우리 셋은 "카사노바"를 나왔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나를 바래다 준 후 두 사람은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신촌 쪽으로 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코트만 겨우 벗어 던진 채 옷도 바꿔 입지 않고 방바닥에 엎드렸다. 기쁨과 후회의 마음이 번갈아 가며 내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고 눈물이 하염없이 자꾸만 쏟아져 내렸다. 그가 부모님께 인사를 시킬 정도로 나는 좋아하고 있다는 기쁨과, 집에 가자는 걸 뚜렷한 이유도 없이 거절을 하여(그것도 못 갈 데를 간다는 듯 펄쩍 뛰며...) 그를 화나게 한 나의 바보같은 행동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 뒤엉켜서 뜨겁게 나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 후회보다는 기쁨의 마음이 되어 더욱 가슴은 뛰고 도저히 진정하기가 힘들었다. 그날 밤 10시경,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윤희야, 네 전화다. 친구 언니라는데 뭐 물어볼 게 있단다." 어머니는 밤 늦게 친구도 아니고 언니라는 말에 전화 내용이 궁금하신지 내 옆에 앉아 계셨다. "네, 전화 바꿨는데요." "윤희씨예요? 잠깐 기다리세요." 충식씨였다. 수화기 속에서는 음악소리며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윤희니? 나다. 이 고집쟁이야." 그는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옆에 누구 계시니?" "네." 나는 자꾸 엄마를 곁눈질하며 바라보았다. "그럼, 내 말 듣고 대답만 해. 알았지?" "네, 말씀하세요." "윤희야, 임마. 너 말야. 나 좋아하지?" "네." 나로서 '네'라는 대답은 대단한 발전이고 용기였다. "좋아, 그럼 너 졸업한 후에 내 색시 될래?" 색시... 색시? 그의 색시? 아! 내가 그의 여자가 된단 말인가? 그가 나에게 나기의 색시가 되지 않겠느냐고 묻고 있었다. 한심한 내 성격은 대답을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말을 하고 있었다.(네...) 수화기 속에서 듣자니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 신촌에서 그는 술이 많이 취해 있는 듯했다. "될래? 내 색시가 될 거냐구. 넌 나를 좋아하잖아. 그러자구, 우리. 너 졸업하면 우리 결혼하자구. 싫어? 좋아? 짜아식. 말해봐. 윤희야, 임마. 그렇게 할 거야, 안할 거야." 종환씨가 수화기를 빼앗는 듯했다. "윤희씨, 전화 끊어요. 그리고 내일 '복지'로 나와요. 12시 정각에..." 내 전화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엄마 뿐이 아니었다. 옆에는 할아버지가 나와 계셨다. "너 이 밤중에 무슨 전화냐?" "네에. 제--친구 언닌데요. 뭣좀 물어볼 것이 있다구 해서요." "그 물어볼 게 뭐냐구!" "할아버지는 모르셔도 돼요. 말해도 몰라요. 학교 일이라서요." "너, 이 녀석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 "아녀요." 겨우 할아버지는 통과되었지만 엄마는 달랐다. 엄마의 유도심문에 넘어가서 그와의 만남을 다 털어버리게 되자 우리 집안은 비상에 걸리고 말았다. 그의 전화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할아버지 방으로, 안방으로 건너다니며 온 식구가 야단법석이었다.
그 이튿날 종환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빠져 나오기란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아침에 거시로 불려나간 나는 어른들로부터 몇 가지 다짐을 받았다. * 빠른 시일내에 충식씨를 집으로 데려올 것. * 그가 집에 다녀가기 전에는 만나지 말 것--이었다. 오랫동안 신열을 앓으며 애태웠던 내 사랑에 대한 확인의 기쁨보다는 큰 잘못을 저지른 뒤 그 수습을 생각하는 경우 같이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이 쫓기는 것 같았다. 그러는 중에도 평소에 그렇게도 당당하던 그가 술의 힘을 빌어 말을 할 때까지 얼마나 답답하였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혹시 술김에 그냥 해본 소리였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나는 나대로 그가 동생 이하의 감정은 갖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쓸쓸해하고, 그는 그대로 아직 학교도 마치지 않은 나를 두고 얼마나 속을 태웠을까를 생각하면 역시 사랑은 많은 고통 뒤에나 오는 것이고, 그래서 더욱 큰 기쁨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겨우 허락을 얻어 "복지"로 나갔다. 종환씨는 먼저 와 있었다. "윤희씨, 어제 놀랐죠? 집에서는 괜찮으셨어요?" "전화 받을 때 엄마가 옆에 계셨드랬어요. 어찌나 추궁을 하시는지 다 말씀 드렸어요. 두 분은 어제 잘 가셨어요?" "그 녀석, 무슨 술을 그렇게 먹는지 하여튼 집에는 잘 갔어요. 그건 그렇고 부모님께서는 뭐라 하세요? 할아버지께서 무척 완고 하시다고 들었는데..." 종환씨는 집에서의 내 일이 염려가 되는지 계속 어젯밤 일을 걱정하고만 있었다. 내가 전화를 끊고 난 후의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어른들께서 충식씨를 한 번 만나자고 하셨다는 말을 하자 오히려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그 녀석 전화 거는 스타일로 봐서 윤희씨가 분명히 꾸중을 들으셨을 텐데...하고 무척 걱정했어요. 얘길 듣고 보니 오히려 잘 되었군요. 사실은 얼마 전부터 충식이도 부모님들 허락을 받고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했었죠. 그 녀석은 윤희씨가 아직 학생이고, 마음이 너무 어려서 감히 자기 감정의 고백을 못 하겠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난지도 꽤 오래 되었잖아요. 물론 처음에는 충식이도 윤희씨를 동생같이 귀여워만 했죠. 자꾸 만나고 하는 동안 감정이 변했나 봐요. 툭하면 날 보고 '난 윤희가 졸업을 할 때까지는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을 꺼야. 그 아일 보고 있으면 참으로 마음이 편해'라고 말을 했었어요. 그 녀석은 성격이 퍽 대범한 것 같지만 여자문제는 아주 냉정하고 완고한 편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주 멋있고 좋은 녀석이죠. 윤희씨도 충식이 좋아하죠? 그냥 좋은 게 아니고 사랑하지 않냐구요. 내 생각이 맞죠?" "네. 그래요. 맞아요." 모든 것이 완벽하고 확실해졌다. 내 기쁨까지도. "난 이미 두 사람이 결혼까지 갈 거라구 생각했었지요. 두 사람은 아주 잘 어울려요. 윤희씨 내 신경은 언제 써줄 거예요? 둘만 그러기에요?" 종환씨는 친구 일이긴 해도 자기 일같이 우리 두 사람의 결과가 그렇게도 좋은지 혼자 말을 하고 있었다. 얼마후, 그가 돌아왔다. 간밤의 과음 탓인지 약간 꺼칠한 그를 보는 순간 나는 콧등이 시큰함을 느꼈다. 어색한 듯 웃으며 내 옆에 앉는 그에게서 산뜻한 스킨냄새가 났다. "윤희야, 어제 미안하다. 집에서 혼났지?" "괜찮아요. 어제 술 많이 취했어요?" 그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취하긴 했어도 어제 전화로 말한 거는 다 기억난다구. 물론 그 말은 진실이고. 내가 싫은 거 아니면 윤희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어젠 전화 옆에 누가 계셨니?" "엄마가 계셨어요." "할아버진?" 그도 할아버지가 부모님들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듯싶었다. 나는 전날 밤에 어른들께 추궁을 당한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가 부담을 느낄까 모아 처음 불려가서 크게 꾸중을 듣던 일은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충식씨를 한 번 만나보자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자 그는 갑자기 무릎을 탁 히는 것이었다. "잘 되었군. 지금 당장 가서 뵙도록 하지 뭐. '만나자' 그러시면 된 거라구. 윤희야 우리 그렇게 하자, 임마. 나 합격할 자신있다구. 너는 내일 우리 집에 가고 말야. 알았어?" 나는 당장이라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기도 하면서 어차피 뵐 거면 하루라도 빨리 집에는 같이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모았지만, 아침까지만 해도 온 식구들의 시선을 받았는데 오늘은 역시 너무 이른 것만 같았다. "오늘은 안 돼요. 집에서 나올 때 친구 만난다고 그랬어요. 다음에 가요." "뭐라구! 또 안돼?" 그가 버럭 화를 냈다. "넌 도대체 어떻게 된 애냐. 싫은 것도 아니면서, 너 어젯밤에 분명히 '네' 라고 대답했지? 날 사랑한다면서 우리 집도 안 되고 너희 집도 안 되고, 그럼 우리 둘이 집을 나올까? 어때, 그것도 싫겠지? 그래. 안 그래?" 답답하고 한심한 건 분명 나였다. 이젠 3학년이 되니 사귀는 남자가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서로들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 남자가 좋다고 생각이 들 때 친구들은 무척 적극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오랫동안 마음 아파하며 바라보던 그 사람인데 무얼 그리 망설이는지...(이것은 나의 아주 큰 단점 중의 하나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는 담배를 피우는지 씹는지 모를 정도로 입을 힘주어 다물고 있었다. "종환아. 난 얘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너 지금 봤지? 어려서 그러는 게 아냐. 망설이고 있는 거라구." '알다가도 모르겠어?...망설이고 있다구?...그러나 난 반격조차도 못 하는 바보였다.' "충식아, 너 또 성질 부릴래? 사내자식이 왜 점점 그 모양이야. 내가 여태까지 윤희씨한테 말 못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니. 아직 학생인데다가 입학하자마자 남자라고는 그 흔한 미팅 한 번안하고 너만 만나왔는데, 오빠로만 따르는 것 같고...무엇보다도 때가 묻지 낳고 순수하다는 점 때문에, 결혼 얘길 꺼냈을 경우 엄하신 어른들 앞에서 견디어 낼까 하는 게 이유였잖아. 그걸 걱정한 녀석이 말이 나왔다고 해서 숨쉴 틈도 안 주고 다그치는 거야? 임마, 윤희씨 앞날이 걱정된다." 약간은 흥분한 말투로 핀잔을 주는 종환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 사람이 큰 소리로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내가 참을게. 이 자식은 뭐든지 내 잘못이래. 윤희 너 아주 든든하겠다. 종환이가 편들어 줘서. 오래 참던 얘기를 막상 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지는 걸 어떡해. 내가 신중하게 알아서 할게. 야아--하루 사이에 우리 윤희 많이 큰 것 같은데." 서슴지 않고 친구에게 충고를 하는 종환씨나, 노여워하지 않고 잘 받아주는 그 사람, 둘은 좋은 친구였다. 특히 종환씨는 우리 두 사람의 좋은 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 어려울 때는 꼭 있어 주면서 아주 좋은 중개자가 되어 주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고마운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