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망소식
지친 몸을 끌고 겨우 집에 도착했다. 바로 아래 동생이 문을 열어 주는데 울고 난 뒤의 얼굴이었다. 난 왜 그러냐고 물어 볼 기력도 없고 해서 못 본척 해버렸다. 별채에는 할아버지 신발이 안 보여서 지나쳐 버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거실에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가뜩이나 침울해 있던 집안인데 유난히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러나 더 이상의 불길함은 생각지도 않은 터고 너무나도 피곤해 곧 쓰러질 것만 같아 겨우 인사만 하고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으니 그와의 즐거웠던 지난 날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졸업하면 내 색시 될래? ... 그의 술취한 음성이 들렸다. ... 널 안아 보고 싶어 ... 기찻길에서의 첫 번째 포옹... 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야...그의 창가에서 두 번째 포옹, 그의 넓고 따뜻한 가슴이 그리웠다. "윤희야." 어머니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디 아프니?" "좀 피곤해서요." "일어날 수 있겠니?" 그대로 누워 있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으시더니 말했다. "방금 명륜동 아버님이 전화를 하셨다." 갑자기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충식씨는 어떻대요?"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안으시더니 흑흑 흐느껴 울었다. 차라리 오열이었다. 아닐 거라고 애를 써도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의 죽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엄마, 말해요. 말해 봐 엄마. 엄마, 울지 말고 빨리 말을 해요." 있는 힘을 다해서 엄마를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들어오시고 두 남자분의 눈물을 보며 난 그의 죽음을 또 한 번 느꼈다. "아빠, 충식씨가 어떻게... 가슴이 답답해요. 죽을 것 같아요. 빨리 말해 줘요, 아빠." 어머닌지 아버지인지 누군가가 '죽었단다!'라고 말하는 소릴 듣고 밖으로 뛰쳐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어머니와 한참이나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은 전화를 걸게 해주었다. 정미가 받았다. "저예요." "왜요?" '왜라니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정미씨, 왜라뇨? 저 인제 소식 들었어요. 오빠 소식 사실인가요?" "그래요." 난 정미가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정미씨, 어머님 좀 바꿔 주세요." "지금 안 돼요." "그런 제가 그리루 갈께요." "윤희씨, 우리 집에 오면 지금 이 상태가 바뀌나요? 우리 생각을 한다면 오지 말아야 해요. 알았어요? 끊어요." 수화기 놓는 소리가 내 귀를 찌르는 듯했다. 이해하기 힘들었고, 이해하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님은 아들을 잃고, 정미는 오빠를 잃고, 나는 사랑하는 약혼자를 읽었다. 누구는 더 슬프고, 누구는 덜 슬퍼야 된단 말인가? 나의 슬픔의 정도가 그들의 슬픔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잠시였다. 산 사람들의 문제는 풀어갈 시간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다. 가슴속에는 그에게 받은 사랑이 뜨겁게 끓고 있었다. 그를 향한 그리움은 더욱더 뜨겁게 끓었다. 그를 잃었다는 슬픔에 가슴이 활활 타고 있었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틈도 내 가슴엔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 사람의 부재. 그것은 나의 탓 나의 탓인가? 그렇다. 그 사람은 절대로 일찍 끝을 낼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재수없는 여자라서 그는 죽었다. 전화 벨 소리가 아득히 먼 데서 들리는 듯했다. 어머니가 몇 말씀을 하시는 것 같더니 내 손을 잡았다. "윤희야, 명륜동 어머니시다. 전화 받을 수 있겠니?"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네, 어머님!" 이젠 눈물을 흘릴 기력조차 없었다. "너 괜찮니?" "어머니, 사실인가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당연히 그렇겠지. 지금 전화 오래할 힘이 없구나. 네가 전화했었다고 해서 걱정이 되어 전화 걸은 거다. 어떡해서든지 정신차리도록 해야지--. 산 사람은 결국 살게 마련이다." 전화가 끊어진 후 난 정신을 잃은 건지, 아니면 잠이 든 건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하여튼 깨어보니 침대 위였고 침대 옆에선 어머니가 졸고 계셨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760B536535CFD700F)
다음날 시험이 끝나는대로 명륜동으로 갔다. 마침 정미는 집에 없었고 어머님의 친구분들이 와 있었다. 인사를 드리는데 친구분들의 시선이 날 더욱 슬프게 하였다. 가엾어 하는 표정, 역시 불길해 보인다는 표정에서 빨리 피하고만 싶었다. 어머님께서 일어서며 '윤희야, 잠깐 나가자!'라고 하셨다. 어머니와 단 둘이가 되자 나는 더 이상 참질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울지 않으려고 맹세하며 왔어요." 나는 어머님 앞으로 가서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어머니, 전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이 왜 그래야 돼죠? 인제 떠난 지 석 달밖에 안 됐어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내 손등과 머리에 어머님의 눈물이 떨어졌다. "윤희야, 그만 해라. 제 명이 그뿐인 걸 어쩌겠니. 내가 덕이 없어 그런가 보다." "아녜요. 어머니. 제 탓이에요. 저 때문인가 봐요. 제가 복이 없는 여잔가 봐요." 갑자기 어머니가 나의 몸을 밀어 내었다. "안데 손님들 나오신다. 일어나 의자에 앉아라." "아버님은 언제 오시나요? 그분의 장례는요?" 의자에 앉으며 내가 물었다. "여기서 장래를 치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아버님께서 미국에서 다 끝내고 오시기로 했다.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교통사고라서 몸이 엉망이라는구나. 수술을 세 번 받았는데 죽지 않았으면 일곱 번 정도는 더 해야 될 정도라니 굳이 이곳까지 데려올 필요가 없잖니? 그 아이의 물건도 대강 정리하고 귀국하실 모양이다. 그 아이의 장례는 미국에서 완전히 치르는 셈이지. 윤희, 너 말이다.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야 된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너와 우리는 인연이 안 닿는가 보다. 더구나 충식이가 죽은 이상 서로 왕래할 것 없다. 어른들께서는 아버님 오시는대로 인사를 드릴 터이니 우리 집에는 더 이상 오지 말도록 해라. 나도 어미가 되어 가지고 자식 손 한 번 못 잡아 보고 보내다. 산 사람끼리 서로 의지한다고들 하지만 너야 다르지. 결혼식을 안 올렸으니 내 집 식구가 아니다. 이건 아버님의 부탁이기도 하단다. 말이 난 김에 집으로 돌아가거라. 나도 친구들 있으니 들어가 봐야 되지 않겠니?" 그 사람의 죽음은 이제 확실해졌고, 나는 모든 걸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머님 뵙는 것도 마지막 인가요?" "그렇게 됐구나." 태연히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무서웠다. "가끔 아주 가끔씩이라도 뵙게 해 주세요." "나뿐이 아니고 아버님의 분부라고 말했잖니? 내 집에서 너 오는 게 싫다는데 굳이 우리 앞에 나타날 이유가 뭐 있니? 서로 인연이 안니 줄 알았으면 얼른 돌아서야지." 한 번만 더 부탁을 드리려다 말았다. 이젠 충식씨는 내 곁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도 자상하고 다정하시던 그의 부모님도 내게 인연이 아니다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을 만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가자니 너무 아득한 옛날 같고 충식씨 뿐이 아니라 나도 이 세상에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의 방에 잠시 들렀다 가겠다는 허락을 받은 후 이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출렁거렸고 나의 몸은 자꾸만 뒤로 넘어가는 것만 같았다. 방은 잘 정돈이 되어 그 사람이 잠깐 외출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날 기다리면 서 있던 창으로 오후의 따듯한 햇볕이 들어와 있었으며 한쪽 벽에 걸린 그의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 날 맞아주었다. "충식씨...!" 그의 대답이 들리는 듯했다. 누가 내 어깨를 잡았다. 흠칫 놀라서 뒤를 돌아 보니 가정부 아주머니였다. "세상에 아직 나이도 어린데 벌써 사람 앞서 보내는 일을 겪다니... 지금 정미 아가씨가 들어왔어요. 빨리 집에 가세요. 어머님 말씀은 서운해 하시지 마시구요. 다 아가씨 장래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정미 아가씨야 아직 어리니까 친구가 무심코 하는 소릴 듣고 그러는 건데 참고 있으면 아 옛말 할 때가 있죠. 그저 참을 수밖에 없어요. 자, 어서 가세요. 어서요." 이층에서 내려오니 정미는 내가 가려는 걸 확인하려는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정미씨, 무어라 할 말이 없어요. 기운 내세요. 저 갈께요." 날 올려다 보는 정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눈은 부어서 쌍꺼풀이 풀어졌고, 곱던 피부는 꺼칠해 보였으며 입술은 터져 있었다. 그녀는 내 말에 한 마디의 대답도 하지 않았다.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침을 삼킬 힘조차 없었다. 현관을 나오려 하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윤희씨, 내가 밉죠?" '아!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 이제 그러지 말아요.' "잘 가요. 나중에 내가 전화할께요."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무척 오랜만이었다. "정미씨 고마워요. 꼭 전화하세요." 저 가엾은 분들이 빠른 날에 날 다시 불러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12월의 바람은 가뜩이나 허전한 내 가슴을 매섭게 할퀴고 있었다. 큰 길로 나오니 사람들은 저마다 밝은 표정들이었고, 크리스마스 츄리를 화려하게 장식해 놓은 상점의 쇼윈도가 나를 더욱 쓸쓸하게 해 주었다. 너무 춥고 몸을 지탱할 수가 없어 따뜻한 곳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라도 쉬고 싶었다. 겨우겨우 지친 몸으로 시험을 치르고 방학을 맞이하자 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입은 아예 다물어 버렸고 음식이 들어가는대로 토해내며, 심한 불면증에 어쩌다 잠이 들라치면 악몽에 시달리는 등 거의 실신 상태에 이르렀다. 내 방문의 자물쇠 장치는 할아버지에 의해 파괴되고 난 가족들로부터 감시(?)를 받았다. 혹시나 하고 나의 자살을 염려한 할아버지의 지시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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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가 지난 12월 30일 낮에 명륜동 아버님으로부터, 아침에 귀국했는데 저녁에 우리 집에 오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얼굴 모습이 전혀 아버님이 아니었다. 그분은 나를 보자 눈시울이 붉어지시며 한참이나 입을 열지 못했고, 나는 차마 그분을 똑바로 뵙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간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특히 윤희를 보니 더 미안하군요. 저희가 자식 덕이 없어 윤희에게 피해를 입힌 것 같아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아버님은 할아버지와 부모님께 계속 '송구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죄를 지으신 분같이 사과의 말씀을 하며 충식씨의 장례를 거기서 치르고, 짐을 챙기는 등 여러 가지 일을 보느라고 늦게 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었다. 나하고 둘이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아버님을 모시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있는 사진을 보시더니 '이제 저 사진도 치워야지'하셨다. "아버님, 여기서 위패도 안 모시나요?" "소용없는 짓은 이제 안하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윤희야, 이렇게 몸이 약해 보여서야 어디 공부나 하겠니? 충식이에 관한 건 하루라도 빨리 체념을 하고 잊도록 해라. 그리고 어머니가 명륜동 드나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알겠지?" "네, 아버님 잘 알고 있어요." "그럼 그래야지. 서운해 하지 말고, 우리를 보면 충식이 생각만 더해지니 서로 안 보고 사는 게 낫다. 산 사람들은 살아야지. 충식이는 가끔 의식이 돌아올 때면 '윤희 어떡하지'하면서 네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 아인 널 무척 사랑했더구나. 빨리 기운을 내어서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야지. 이래 가지고는 개강하면 학교도 못 가겠구나. 나중에 결혼 할 때 우리한테도 알려 주어야 한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나는 더 지치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페르귄트"를 들으며 창문을 열었다. 밤새 눈이 내려 창밖은 온통 흰빛으로 덮여 있었다. 지난해 그와 같이 걸으며 장난을 치던 화계사 숲길이 생각났다. 가족들 몰래 집을 빠져 나와서는 택시를 잡아 타고 화계사 입구에서 내렸다. 바람을 따라 나뭇가지에서 눈가루가 떨어지고 있어 숲길 걷기가 무척 힘들었지만 천천히 우리가 자주 찾던 숲을 향해서 걸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그의 발자국이 있는 것만 같아 자꾸만 발을 멈추곤 하였다. "충식씨! 아--충식씨, 우린 정말 끝난 거예요? 아니죠, 아니죠?" 이제 그도 아무 곳에도 없었다. 그의 부재는 무섭고 가슴 아픈 현실이 되어 오고, 난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그의 죽음 뒤에 난 처음으로 눈 덮인 화계사 숲길에서 엉엉 소리내어 그 사람의 이름과 오빠를 번갈아 불러가며 한참을 통곡했다. 봄이 오고 개강은 되었으나 나는 학교에 나가는 일이 매우 힘들 정도로 허약해 있었다. 은영이를 몇 번 만났을 뿐 대문 앞에도 나가지 않은 채 겨울을 꼬박 집안에서만 보냈다. 스물두 살의 나이로는 참으로 겪기 힘든 엄청난 일이었다. 집에서 어머니는 늘 내 곁을 떠나지 않으셨고 식사 준비라도 할 때는 동생들과 교대를 하였다. 학교에서는 은영이가 꼭 함께 해주었지만 학교에 하루 다녀와서는 며칠을 눕고 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학교에 결석이 늘고 있었다.
그 사람과의 지난 일들에 대한 기억은 점점 더 새로워지고 그를 그리는 그리움은 더 이상 담을 때도 없었으나 이젠 눈물조차 나오질 않았고 그저 멍하니 누워 있기만 할 뿐 나는 정신나간 벙어리가 되고 있었다. 충식씨는 가고 없어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다. 그때의 내 마음을 지금까지 기억하여 쓰기에는 무척이나 힘이 든다. 대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알게 되어 오직 그 사람만을 쫓아다니고 사랑해왔다. 나의 사랑하는 약혼자인 엄충식씨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뒤의 내가 어떻게 했으리라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나의 글재주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음이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요, 그저 지난 날의 회상에 가슴속이 꽉 막힌 것만 같아 그 슬픔과 비통한 날들에 대한 얘기를 생략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은 이듬해 4학년 2학기부터였다. 오랜만에 발을 디딘 학교는 모든 것이 낯설게만 보였고, 처음에는 친구들 대하기가 서먹서먹하였으나 은영이가 늘 곁에 있어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개강 후 첫 실기시간, 현대 무용 시간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3603D39535CFD1B30)
수업준비를 위해 탈의실에서 타이즈를 갈아입은 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박수를 쳐주며 나의 완쾌를 축하해 주었다. 그 아이들은 내가 병이 나서 학교에 못 나온 줄 알고 가끔씩 집에 안부 전화를 하기도 하고 또 몇 명은 병 문안을 오기도 했다. 개강을 하자마자 졸업 발표회 준비로 우리 학년은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작품 연습을 하고 의상을 준비하는 등 밤늦게야 학교에서 나와서 은영이와 군것질을 하면서 농담을 하며 웃기도 하였고, 은영이는 나를 집 앞까지 꼭 바래다 주었다. 그때 은영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해 있는 사람과 열애 중이었다. 은영이는 내게 그 남자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는 듯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늘 하던 습관대로 '충식씨 잘 잤어요?'라고 조그만 소리로 그에게 인사를 하고는 "페르귄트 조곡"을 들으며 등교 준비를 하였다. 어머니께서 내가 없는 사이에 다 태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전같이 지내고 있었지만 그 사람의 부재는 늘 내 가슴 깊은 곳에 아프게 자릴 잡고 있었다. 어른들 말씀대로 산 사람은 살아가게 마련이었다. 졸업 발표회, 졸업논문 등을 마치고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루었다. 꼭 거쳐야 되는 일이면서도 이런 절차들이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들이었다. 겨울 방학이긴 해도 졸업식만이 남았을 뿐 대학생활은 끝이 난 셈이었다. 지난해 못지 않게 추운 겨울 날씨는 나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어 다시 찾아 건강까지 나빠져서 집안에만 막혀 있게 되었다. 가끔씩 걸려오는 친구들의 전화는 취직 걱정과 결혼문제 등 모두들 장래를 설계하고 있는데 나의 시간은 완전히 정지상태였다. 그동안 서너 번 만난 종환씨와 누구보다도 명륜동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만난들 오히려 그분들에게 지난 날의 기억들만 떠올리게 할 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곧 마음을 고쳐 먹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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