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추억소설

6.숙명의 재회

시인김남식 2013. 10. 31. 14:29
6. 숙명의 재회


 

내가 정신을 차리고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은 이듬해 4학년
2학기부터였다. 오랜만에 발을 디딘 학교는 모든 것이 낯설게만 보였고,
처음에는 친구들 대하기가 서먹서먹하였으나 은영이가 늘 곁에 있어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개강 후 첫 실기시간, 현대 무용 시간이었다.
수업준비를 위해 탈의실에서 타이즈를 갈아입은 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박수를 쳐주며 나의 완쾌를 축하해 주었다.
  그 아이들은 내가 병이 나서 학교에 못 나온 줄 알고 가끔씩 집에 안부
전화를 하기도 하고 또 몇 명은 병 문안을 오기도 했다.
개강을 하자마자 졸업 발표회 준비로 우리 학년은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작품 연습을 하고 의상을 준비하는 등 밤늦게야 학교에서 나와서 은영이와
군것질을 하면서 농담을 하며 웃기도 하였고, 은영이는 나를 집 앞까지 꼭
바래다 주었다.
그때 은영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해 있는 사람과 열애 중이었다.
은영이는 내게 그 남자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는 듯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늘 하던 습관대로 '충식씨 잘 잤어요?'라고 조그만
소리로 그에게 인사를 하고는 "페르귄트 조곡"을 들으며 등교 준비를 하였다.


  어머니께서 내가 없는 사이에 다 태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전같이 지내고 있었지만 그 사람의 부재는 늘 내 가슴 깊은
곳에 아프게 자릴 잡고 있었다. 어른들 말씀대로 산 사람은 살아가게
마련이었다. 졸업 발표회, 졸업논문 등을 마치고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루었다. 꼭 거쳐야 되는 일이면서도 이런 절차들이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들이었다.

겨울 방학이긴 해도 졸업식만이 남았을 뿐 대학생활은 끝이 난 셈이었다.
지난해 못지 않게 추운 겨울 날씨는 나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어 다시
찾아 건강까지 나빠져서 집안에만 막혀 있게 되었다. 가끔씩 걸려오는 친구들의
전화는 취직 걱정과 결혼문제 등 모두들 장래를 설계하고 있는데 나의 시간은
완전히 정지상태였다. 그동안 서너 번 만난 종환씨와 누구보다도 명륜동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만난들 오히려
그분들에게 지난 날의 기억들만 떠올리게 할 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곧 마음을 고쳐 먹곤 하였다. 나의 글재주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음이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요, 그저 지난 날의 회상에 가슴속이 꽉 막힌 것만 같아
그 슬픔과 비통한 날들에 대한 얘기를 생략할 수밖에 없다.

연말 연시 등으로 집안은 한참이나 부산했었다. 할아버지가 계셨고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집에는 늘 손님이 끊이질 않았으며, 부엌에서 일손이
모자랄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 작은 일조차도 어머니를 도와드리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며 방안에 깊숙히 파묻혀 있었다.
신정 연휴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종환씨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의 외출이었고 특히 종환씨를 만나서 한껏 성장을 하고 싶었다.
신촌의 "복지"는 방학인데다가 연초가 되어서인지 한산하기만 하였다.
전에도 종환씨가 늦게 오는 법은 거의 없었다. 이젠 완연히 사회인의 티가 박힌
그는 내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내게로 걸어와서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하는 순간에 충식씨와의 지난 날들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목이 메이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자리에 앉았다.
  "또 아파요? 얼굴이 좋지가 않아요. 이번에 졸업은 되나요?"


  사실 나는 지난해 그의 죽음을 겪으면서 기말고사를 거의 망친데다가 4학년
1학기에는 출석미달인 과목이 많았기 때문에 9월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교내의
무용활동, 몇 차례의 수석 및 과대표 등의 공헌을 참작해 준 학교측의 배려로
졸업장만 9월에 받기로 하고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졸업식을 하게 되어
있었다.
  "졸업식은 해요. 졸업장은 9월에 받기로 하고요. 그게 그거죠 뭐. 명륜동엔
다들 편안하시죠?"
  종환씨가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역시 그의 대답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렇게 말이 없을 사람이 아니었다. 한참 뒤에야 종환씨는
입을 열었다.
  "윤희씨, 충식이 생각나요?"
  내가 눈을 크게 떴다.
  "생각이라뇨? 늘 함께인데요. 종환씨가 살아있는 것 같이 생각하라고
그랬잖아요."
  그는 눈을 감고 무엇을 곰곰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담배를 꺼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윤희씨, 나는 비겁자예요. 정말 난 비겁자죠."
  난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종환씨가 비겁하다뇨? 왜 그런 소릴 하세요. 그 말을 제가 믿을 거
같아요?"
  종환씨가 굳은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을 짓고 다시 입을 였었다.
  "윤희씨! 나 오늘 중요한 말이 있어요. 이 말을 한 다음에 윤희씨한테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려고 해요."
  '중요한 말? 혹시 정미씨 하고--. 아냐, 그 일이면 나한테 사과할 게 뭐
있어?'
  "윤희씨, 내가 시키는대로 해야 돼요. 우선 두 주먹을 힘있게 쥐어요."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저절로 주먹을 쥐게 되었다.
  "그리고 가슴을 쭈욱 펴고 어깨에 힘을 주세요."
  내가 웃으며 가슴을 펴는 흉내를 내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면서 재미있기도
했는데 종환씨는 너무도 진지했다.
  "됐어요. 이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숨을 한 번 크게 쉬세요."
  결국은 내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종환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저한테 최면술 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윤희씨, 웃지 말아요. 마음 단단히 먹고 내 얘길 잘 들어야 된단 말입니다.
윤희씨, 명륜동 소식 통 못 들으셨어요?"

  더 이상 나쁜 일이 뭐가 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종환씨의 입에서는 놀라운
말이 튀어 나왔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아버님은 지금 자유의 몸이 아니구요."

  내가 얼른 그의 말을 막았다.
  "종환씨... 잠깐만요... 잠깐만..."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허리를 굽혔다. 갑자기 숨이 멎는
것 같고 가슴이 점점 조여들고 있었다.
  종환씨가 당황하여 내 옆자리로 와서는 나의 어깨를 잡아 주었다. 따뜻한
물을 마시며 겨우 진정을 시켰으나 머릿속에서 뜨거운 물이 목과 등을 타고
흘러 내렸다.

 


  "언제 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아버님이 자유의 몸이 아니시라뇨.
왜요?"
  "어머님은 돌아가신지 여러 달 되었어요.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떠나셨어요. 아버님은... 아버님은요, 사업관계로 문제가 생겨서 교도소에
수감 중이세요. 명륜동 집은 남의 손에 넘어가고, 너무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서
겨우 갈아 입을 옷만 몇 가지 챙기셨드랬죠. 어머님은 아버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는 동안 무척 고생을 하셨어요. 큰 집에서 사시던 분이 작은 셋방에 기거
하면서 그래도 잘 견디셨는데--. 윤희씨 제가 하려는 말은 지금부터인데
괜찮겠어요?"
  그는 조심스럽게 날 살폈다.
  "인제부터라뇨? 또 있나요? 말씀하세요. 괜찮아요."
  "네, 지금부터예요. 이미 말을 시작했으니 빨리 다 말할께요. 충식이 너무
보고 싶죠?"
  "네에? 충식씨를요? 제가 돌아가신 그분을 보고 싶다면 볼 수가 있나요?"
  "보고 싶다면 볼 수가 있어요."
  전혀 실감나지 않는 그의 말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분을 볼 수 있다뇨?"
  "네, 있어요. 사실은 그 녀석 서울에 있어요."
  "네에? 서울에..."
  나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털썩 고꾸라지고 말았다. 어렴풋이
종환씨가 나를 부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한참 후 나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종환씨, 그럼 그분은 돌아가신 게 아닌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왜 나한테 모두들 거짓말을 했죠? 빨리 말을 해보세요. 그 사람 죽었다는
소식 듣고 내가 어떨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한 사람이 없었나요? 왜 날
속였어요?"
  "처음 충식이 사고 소식을 듣고 아버님께서 미국으로 가셨었죠? 병원에서
충식일 보니까 엉망이어서 그 녀석 같지도 안고... 응급처치가 끝난 상태이지만
몸은 성한 테가 없고, 특히 얼굴이 사람의 형태가 아니었대요. 매일 계속되는
수술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회복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하니, 어쩌다
가끔 의식이 돌아올 뿐 계속 혼수상태인 아들 옆에서 아버님의 심정은
어떠하셨겠어요. 모든 기능은 오른손 하나만 남기고 마비가 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윤희씨 얼굴이 떠오르드래요. 이미 각오는 하고 있으라고 말해
놓고 서울을 떠났으니 윤희씨가 아예 충식일 단념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셨죠. 처음엔 어머님께서 반대를 하셨지만 아버님 말씀을 거역하실
분은 아니잖아요."
  여기까지 말을 한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어디 계세요?"
  그러나 종환씨는 머뭇거렸다. 내가 다그쳐 묻자 가까스로 대답했다.
  "약수동이에요, 아주 높은 산동에에요."


  "빨리 나가요. 얘기는 가면서 하구요."
  종환씨는 주저하는 태도였다.
  "빨리 가요, 빨리! 가면서 말하자구요. 날 안 데려 갈 생각은 아니죠?"
  "복지"를 나와서 택시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종환씨가 살며시 나의 손을
잡았다. 그에게 손이 잡히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차가 시청 앞에 가서야 종한씨의 말이 시작되었다.
  "약수동에 있는 충식이는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산동네 허름한
집에 방 하나를 얻어서 살고 있죠. 그 녀석은 윤희씨 얘기를 무척 자주 해요.
언제인가 윤희씨가 많이 수척하더라는 말을 했더니 어린애 같이 엉엉 소리내어
울더군요. 지금 가기는 하지만 그 녀석 윤희씨 온줄 알면 기겁을 하고 돌아설
걸요. 그 녀석 살고 있는 방이며 얼굴이며 각오를 하고 돌아설 걸요. 어머니만
돌아가시지 않았어도 윤희씨한테 알려주지 않았을 거예요. 난 아주 비겁한
놈이라구요. 처음에 귀뜀이라도 해주었으면 윤희씨가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을 텐데... 날 용서해줘요. 그리고 윤희씨에게 무거운
짐을 떠맡기는 것도 용서해 주구요. 충식이 얘기를 하는 건 내가 잘못하는
겁니다. 이건 정말 내 잘못이죠."
  차는 장충동 고개를 넘더니 약수동 로터리에서 우회전을 하고 잠시 달리다가
멈추었다. 길 건너 산도 아니고 언덕도 아닌 높은 동네가 보였다.

  올라가는 길은 좁고 꾸불꾸불했으며 집들은 초라할 정도를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얼마를 올라갔는지 종환씨를 따라가는 나의 다리가 휘청거렸고 너무
숨이 차서 목이 따가울 정도였다.
  갑자기 그가 우뚝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가리키는 집은 좁은 마당에
그래도 그 동네에서는 꽤 반듯한 집이었다.
  "저기 방문이 보이죠. 바로 대문 옆에..."
  '저 안에 충식씨가 있단 말인가! 그 넓은 명륜동 집을 버리고 저곳에 그가
누워 있다니... 신의 질투인가? 신의 형벌인가? 그러나 그는 살아 있지
않은가!'
  "충식아, 나다."
  나는 하마터면 '악'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들어와, 임마."
  힘은 없어도 분명 그의 말투, 그의 목소리였다.
  "충식아, 놀라지 마라. 윤희씨 왔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질 않았다. 종환씨가 날보고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방은 그리 작지는 않았다.
  엄충식--일년 만에 다시 만나는 나의 약혼자인 그는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
쓰고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가만히 이불 옆에 앉았다.
  "충식씨! 충식씨이"

  어금니를 깨물고 또 깨물어도 울음을 삼킬 수는 없었다.
  "충식씨! 괜찮아요. 다 알아요. 괜찮으니 나 좀 보세요. 나 안보고 싶어요?"
  이불 속에서 긴 한숨소리가 들렸다.
  "윤희야. 너 나가! 나가라구! 나는 그때 죽은 걸로 해. 이미 난 죽은 거야.
이제 날 봐서 뭘 하겠다는 거야. 나가! 너 안 나가면 죽어 버린다."
  그도 울고 있었다.
  "안 돼요. 못 나가요. 내가 언제 충식씨 건강할 때만 사랑할 거라고
그랬어요? 돌아가신 줄 알고, 그래요 세상을 떠나간 줄 알고도 난 지금도
사랑한다구요."
  종환씨가 들어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의 이불을 젖혀 버렸다. 그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겨 버렸다. 도저히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의 일그러진 얼굴을, 마치 천벌을 받은 듯한 얼굴을 오래 본다는 것은
그에 대한 모욕이었고 나의 죄악이었다. 두 남자의 말다툼 속에서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흑흑 흐느끼며 내 남자의 목소리만 골라서 듣고 있었다.
  그가 살아 있다니, 그가 살아서 친구와 내 앞에서 말다툼을 하고 있다니 분명
신의 은총이었다.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던 내게 어떤 모르는 신이
내려오시어 너무나도 큰 은총을 주신 것이었다.
  "윤희야!"
  그의 목소리였다.
  조금 전의 화나고 힘없던 목소리가 아니라 지난 날 다정하게 날 불러주던 그
목소리였다.
  "네, 충식씨."
  그의 왼쪽 얼굴은 심한 화상을 입은 것 같이 얼굴색은 벌겋고 시퍼렇게 흉이
져 있었으며 귀는 아예 나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아도 되었다.
  이젠 난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아도 되었다.
  이젠 난 그의 얼굴을 오래 보는 건 모욕이 아니고 그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리 와, 그래... 그래 앉아. 윤희구나, 이리 와."
  무릎을 끌며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오른손이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기찻길에서, 그의 방 창가에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의 손이었다.

  "미안해요. 충식씨! 부모님께서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믿지 말았어야
했어요. 잘못했어요. 정말 몰랐어요."
  "울지마. 아!... 널 보게 되다니. 다시 윤희를 보다니. 어디 보자. 많이
여위었구나. 바보같이 아직도 날 못 잊고 있었니?"
  갑자기 그의 표정이 굳어지며 화난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됐어, 윤희야 영영 못 만날 사람들인데 이렇게라도 한 번 봤으니 이젠 됐어.
앞으로 다시 올 생각은 하지마. 여길 와도 너와 내게 도움이 될 건 하나도
없어. 오히려 내 마음만 더 불편할 뿐이야. 다시 오지 말라고. 만약에 다시
온다면 그땐 가만 안 있어. 혀라도 깨물고 죽어버릴 거야. 그리고 너 집에 가서
나 만난 얘기 절대로 하지마. 알았니? 대답해, 알았지?"
  '알았어? 알았지?-- 얼마나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말인가!
  나는 그가 화를 내도 좋으니 더 길게 많은 얘기를 했으면 했다. 난 이제
약혼자를 죽게 한 재수없는 여자가 아니고 사랑하는 약혼자가 있는 아주 행복한
여자였다. 그를 그리워하며 아픈 몸을 이끌고 힘들게 다닌 대학 졸업의 최대의
선물이었다.
  그는 계속 오면 안 된다고 화를 냈지만 나는 건성으로 '알았어요'
'알았다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종환씨의 말을 듣고 놀라서 뛰던 가슴은 진정이
되고 그 사람의 오지 말라는 소리는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나는 울다가 금방
웃고 철없이 변덕스러운 어린애가 되어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그때서야 방을 둘러보았다.
윗목에 트렁크 세 개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 몇 권의 책이, 그리고 그 옆에,
아!... 그 옆에 놓인 물건은 일년 만에 찾은 나의 웃음을 빼앗아 가고 말았다.
환자용 변기였다.
  그렇게도 당당하던 그 사람인데 이제는 대소변조차도 가리질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다니... 그러나 이렇게나마라도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오면 안된다고 계속해서 말을 하는 그 사람과 못 들은 척 앉아 있는 나
사이에 오랜만에 종환씨의 중개역할이 시작되었다.
  "임마, 이제 그만 해둬. 사람이 좀 솔직할 수 없니? 우길 걸 우겨야지.
윤희씨 데려온 거는 내가 사과를 하마. 저 여잔 지금 널 만난 게 얼마나
기쁘겠니? 그 마음은 너도 모르는 일이야. 약혼자가 교통사고로 죽은 줄 알고
근 1년을 어떻게 보낸 여자니! 남자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무척
행복할 거야. 근데 오지 말라고? 다시 죽어? 그래, 너 같이 속좁은 인간은
죽는 게 나아."
  종환씨의 말에 지난 1년 동안의 고통이 너무도 가슴 아프고 서럽게 복받쳐
올라 다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한쪽은 완전히 일그러져 귀까지 없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누워있는 그 사람이 너무 가엾어서 난 그의 가슴에 엎드려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친구의 말에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오라고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밤은 깊어지고 시간이 너무 늦어 집으로 가야 했다. 그를 두고 나오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할아버지께 혼나겠다고 하면 빨리 가기를 재촉하면서
친구에게 바래다 줄 것을 부탁했다. 이튿날 저녁에 재회의 파티를 하자고
종환씨와 약속을 하고는 헤어졌다.

  전화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왔다고 꾸중을 하시는 할아버지께 공손히
말씀드렸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다음엔 꼭 연락을 드리도록 할께요."
  어리광이 섞인 나의 말에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시는 듯했다. 오랫동안 우울해
있던 손녀가 나갔다 들어와서는 갑자기 명랑해진 것이 너무도 반가운 듯했다.
  온 식구를 모아 놓고 그가 살아 있음을 떠들어 대고 싶었지만 차마 입은
떨어지지 않고 약수동 산동네와 그의 얼굴, 그리고 변기가 떠올랐다. 가족들은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는 안방으로 동생들 방으로 돌아다니며 웃고 떠드는 내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우던 불면이, 오늘은 그를
다시 만난 기쁨으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사람도 분명히 내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룰 거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나의 흥분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약수동의 높고 좁다란
골목길이 생각났다.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 문, 방 안에 사람은 있는데 신발이 없는 댓돌,
가구 하나 없이 옷이 담긴 트렁크, 방바닥에 초라하게 놓여있는 원서들...
그리고 스텐레스로 된 환자용 변기, 이불 속에 얼굴을 가린 채 그가 말할 때마다
두툼한 이불이 들썩거리던 모습, 천형을 받은 듯 무겁게 일그러진 흉터
투성이의 얼굴, 늘어진 팔다리 중 유달리 힘있게 허우적거리던 그의 오른팔,
처절한 그의 음성--다신 오지마. 오면 안돼, 알았어? 알았지?--저 여잔 지금 무척
행복할 거야. 너 같은 인간은 죽는 게 나아 하고 말하던 종환씨의 가슴아픈 말.
종환씨의 월급으로 이어가는 충식씨의 하숙비...
  그와의 재회는 기쁨에만 취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 엄청난 현실을
어디서부터 정리해 나가야 될지 앞일이 캄캄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는 더더욱 없었다. 아버님도 면회를 가야 하고 우선은 돈이
문제였다. 매일 약수동을 다녀와야 할텐데... 집에 변명할 구실도 찾아야
되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새로운 고민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참으로 기쁜
고민이요, 참으로 기쁜 현실이었다.
  동이 틀 무렵 잠시 눈을 붙인 나는 아침 일찍부터 약수동을 가기 위해 부산을
피우고 있었다. 저녁에 종환씨와 약속을 했지만 충식씨를 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고 그 사람 역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갑을 열어 보니 오늘 파티 준비는 충분할 것 같았다. 늘 집에만 있었기에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이 꽤 많이 모아졌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밥상머리에서 할아버지의 기분을 살폈다. 어젯밤부터 나의
변화로 인해 아침식사 분위기는 최고였다.
  "윤희야, 이거 먹어라."
  할아버지께서는 맛있는 반찬을 내 앞으로 밀어 주시며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 차 있었다.
  "할아버지! 저 오늘부터 조금 바빠요."
  "그래? 우리 공주님이 무슨 일로 바쁘실까?"
  할아버지가 최고의 기분일 때는 꼭 공주님이라고 하셨다.
  "후배들하고 무용 작품을 만들려구요. 두 팀인데 한 팀은 오전에, 한 팀은
오후에 하기로 했어요. 저녁에는 영어학원에 등록을 해야겠어요. 집에 우두커니
있자니까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몸이 더 아픈 것 같아요. 하루 종일 바쁘게
다니면 피곤해서 잠도 잘 올 거구요."
  아버지는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참 좋은 생각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저 바빠야지 머릿속에 잡념이
없어진다."
  "대신 아빠, 나 용돈 많이 주셔야 돼요? 등록도 해야죠, 막상 나갈려고
하니까 그동안 옷을 너무 안해 입었어요. 코트 좀 맞춰주세요. 네? 아빠."
  어른들은 뭐든지 오케이였다.

 


 

집에서 나오자 마자 뛰어온 데다가 마음이 급해서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남대문 시장으로 갔다. 커피잔 두 개를 사려다 말고 나는 피식 웃었다.
혈맹의 관계라고 하던 종환씨를 빼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잔 세 개,
티스푼 세 개, 커피 포트, 쟁반 물 주전자, 커피, 프림, 설탕 등을 구입하고 다시
도깨비 시장으로 내려가 치즈와 초콜릿을 샀다. 그는 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초콜릿을 좋아했다. 사고 싶은 물건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우선은 그를 빨리
보고 싶었다.
큰 가방을 메고 시장을 본 짐꾸러미를 들고 언덕길을 오르는데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동이 틀 무렵 잠시 눈을 붙인 나는 아침 일찍부터 약수동을 가기 위해 부산을
피우고 있었다. 저녁에 종환씨와 약속을 했지만 충식씨를 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고 그 사람 역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갑을 열어 보니 오늘 파티 준비는 충분할 것 같았다. 늘 집에만 있었기에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이 꽤 많이 모아졌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밥상머리에서 할아버지의 기분을 살폈다. 어젯밤부터 나의
변화로 인해 아침식사 분위기는 최고였다.
  "윤희야, 이거 먹어라."
  할아버지께서는 맛있는 반찬을 내 앞으로 밀어 주시며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 차 있었다.
  "할아버지! 저 오늘부터 조금 바빠요."
  "그래? 우리 공주님이 무슨 일로 바쁘실까?"
  할아버지가 최고의 기분일 때는 꼭 공주님이라고 하셨다.
  "후배들하고 무용 작품을 만들려구요. 두 팀인데 한 팀은 오전에, 한 팀은
오후에 하기로 했어요. 저녁에는 영어학원에 등록을 해야겠어요. 집에 우두커니
있자니까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몸이 더 아픈 것 같아요. 하루 종일 바쁘게
다니면 피곤해서 잠도 잘 올 거구요."
  아버지는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참 좋은 생각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저 바빠야지 머릿속에 잡념이
없어진다."
  "대신 아빠, 나 용돈 많이 주셔야 돼요? 등록도 해야죠, 막상 나갈려고
하니까 그동안 옷을 너무 안해 입었어요. 코트 좀 맞춰주세요. 네? 아빠."
  어른들은 뭐든지 오케이였다.
  집에서 나오자 마자 뛰어온 데다가 마음이 급해서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남대문 시장으로 갔다. 커피잔 두 개를 사려다 말고 나는 피식 웃었다.
혈맹의 관계라고 하던 종환씨를 빼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잔 세 개,
티스푼 세 개, 커피 포트, 쟁반 물 주전자, 커피, 프림, 설탕 등을 구입하고 다시
도깨비 시장으로 내려가 치즈와 초콜릿을 샀다. 그는 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초콜릿을 좋아했다. 사고 싶은 물건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우선은 그를 빨리
보고 싶었다.
  큰 가방을 메고 시장을 본 짐꾸러미를 들고 언덕길을 오르는데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차가운 바람은 상쾌하게 느껴졌다.
  대문을 들어서는데 그의 방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면서 반겼다.
  "아이구, 아가씨 오시네. 엄선생님, 어제 그 아가씨가 왔어요."
  아주머니가 그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붙여주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방 앞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충식씨, 저 왔어요. 저 못 들어가게 하면 안 돼요!"
  그리고는 다시,
  "못 들어가게 하면 나 죽어버릴 거야."
  하며 어제 그 사람의 목소리까지 흉내를 내며 말했다.
  "까불지 마!"
  안에서 그의 말이 들리자 마자 나는 문을 열어 젖히고 돌격대 같이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너, 왜 말 안 듣니?"
  "난 그전의 윤희가 아녜요. 그땐 오빠 오빠하며 말 잘듣는 여학생이었지만
이젠 달라요. 지금은 충식씨가 부당한 걸 요구하면 말을 안 들을 수도
있다구요."


  "임마, 넌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야. 곧 후회하게 될 거야."
  나는 그의 앞으로 가깝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
  "충식씨, 내가 지금 얼마나 좋은지 알기나 알아요? 이렇게 서울에 있는데 난
죽은 줄 알고, 매일 울고 잠 못자고 그래서 병나고 그러면서도 난 매일 수없이
'충식씨'라고 입속으로 불렀다구요. 1년 동안 "카사노바"로 화계사로 헤맨
것만도 얼만데요. 어머님이랑 아버님 말씀을 듣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난
이제부터 충식씨의 말을 안 들을 거예요. 알았어요? 알았죠?"
  나의 이런 말에 그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잠깐만요, 우리 커피 마셔요. 나 그동안 커피 혼자 마시니까 너무 맛
없드라. 충식씨도 그랬죠?"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커피를 끓이면서도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그는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어이가 없는지 날 바라보면서 웃기도
하고 슬픈 표정을 짓기도 했다.
  "충식씨, 나 안 보고 싶었어요?"
  "왜, 안 보고 싶어."
  "얼마 만큼이었는데요?"
  그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내가 '잠깐요'하고 막았다.
  "내가 맞출께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하고 대답하려고 그랬죠?"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물 끓는다, 커피나 빨리 타."
  얼마만에 단 둘이 마셔보는 커피인지. 내가 지금까지 마시던 커피 중에
그날의 커피맛이 제일 근사했다.
  차를 마시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나를 불렀다.
  "윤희야 참 고맙고 미안하다. 그래, 가끔씩 내게 다녀가도록해. 대신에
조건이 있다."
  "조건? 뭔데요?"
  라고 내가 묻자 슬픈 얼굴을 하고 말을 시작했다.


  "내 꼴이 이렇게 됐으니 난 너에게 아무런 사람도 아냐. 나와 약혼한 사실은
없었던 거야. 그래 할아버지 말씀을 들었어야 되는 건데. 그리고 앞으로는
날보고 '오빠'라고 불러. 오빠로 인해 좋은 신랑감 놓치는 일은 없도록 해야 돼.
너도 이제 졸업인데 결혼해야지. 나한테 오는 것도 좋은 사람 만나기 전까지야.
비굴한 부탁이지만 너희 집에는 말씀드리지 말고. 알았지?"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약혼식을 했는데 안한 걸로 하라니요.
그리고 오빠라고 부르라고요? 옛날에는 내가 오빠라고 하니까 그러지 말라고
그래놓고 지금은 오빠에요? 또 내가 결혼을 해요? 날더러 두 남자하고 살란
말예요? 내가 들은 말은 우리 식구들한테 알리지 말라는 거 그말뿐이에요."
  "너 그러다 후회한다."
  "후회해도 내가 해요."
  "너 언제부터 그렇게 말이 늘었니?"
  "오늘부터요."
그는 포기한 듯 했다. 저녁에 종환씨와 함께 혈맹의 관계가 다시 만난 것은
축하하는 파티를 갖기로 했다는 얘기를 하고 준비 때문에 시장엘 다녀오겠다고
일어섰다. 막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데 그가 '윤희야, 빨리 와야 돼'라고
말했다. 내가 뒤를 돌아보고는 입을 삐죽해 보이며,
  "날더러 오지 말래면요?"
라고 말을 한 후 방을 나왔다. 동네에서 한참을 내려와도 마음에 드는 시장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신당동 중앙시장까지 갔다. 술은 소주로 할 테니 찌개만
준비하면 된다는 종환씨의 말이 생각나 두 사람이 다 좋아하는 생선찌갯거리를
샀다. 시장을 보는 동안 나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에 도취되어
추운지도 모르고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전날 마치 생각지 못했던
주인댁에 인사로 할 고기 좀 산 후 오후 늦게야 그에게로 갔다.

 

  
그 사람의 잠들어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그러진 왼쪽 얼굴을 보면서
연민을 느꼈고, 다치지 않은 오른쪽 얼굴을 보면서는 지난날을 회상하였다.
가만히 엎드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얼마나 그리던 그의 가슴인가!
그의 숨소리를 따라 나도 숨을 쉬었다. 그때 그의 손이 나의 목을 끌어 안아
주었고, 나를 껴안고 있던 팔에 힘을 풀더니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는데 그가 살아서 나를 안아주고 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가난을 겪어야 될 일이 하나도 두렵지가 않았다.
  "윤희야!"
  그는 나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고 한숨을 토해냈다.
  "네, 충식씨."
  "아니다. 그냥, 그냥 불러본 거야."
  "충식씨, 괜찮아요? 지금 당장 불편하더라도 우리 조금만 참아요. 이젠 다른
일 생각하지 말고 건강만 생각하시라구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혼자 고립된 듯했는데 이젠 그와 나 두 사람이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래도 혼자인 것보다는 얼마나 좋은가!
  그날 저녁 종환씨는 일찍 퇴근을 했다.
  "술을 제가 살께요. 소주에요."
  그리고 그는 커다란 케익상자와 술이 담긴 봉투를 안고 들어왔다. 미리
준비를 해 두었던 상이 들어가자 종환씨는 일어나 받으면서,
  "야아--, 이거 진수성찬인데...? 충식아 임마, 이것 봐라. 윤희씨가 오니까
벌써 다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잖니?"
  라고 하면서 포장을 풀어 케익을 상 한가운데 놓고 초에다 불을 붙였다.
  그날 저녁은 세 사람이 너무 즐거웠다. 혈맹의 관계가 다시 만났다고 떠들며
우스운 소리를 하는 종환씨는 그날 주인공이었고 우리는 들러리였다. 그늘은
집으로 오는 발길이 전날보다 훨씬 가벼웠다. 그가 친구와 함께 자기
때문에...

 

  그 이튿날, 내가 없는 사이에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아침
일찍 학교로 나갔다. 충주에 있는 고등학교 무용교사로 가라는 반 명령이었다.
다음날 결정을 지어야 되니 부모님과 의논을 해보라고 그랬다. 나는 처음엔
충주라는 말에 실망을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이건 너무도
좋은 기회가 아닌가. 충식씨가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내가 매일 집에다 거짓말을 하고 다니면서 불안한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집에서 허락을 하실 리가 없는 게 걱정이었다. 집에 오는대로
할아버지 방에 들러 말씀을 드렸더니 허락을 안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화까지
내시었다. '다 큰 여자가 객지 생활을 하겠다는 거냐'하시며 다시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하셨다.
  할아버지 방을 나오는데 밖에서 다 듣고 계신 듯한 어머니는 내게 눈을
흘기시며,


  "너 가만히 두고 보니까 은근히 속 무척 썩히는구나."
  하시며 화를 내시었다. 얼마 동안은 나의 용돈으로 충분하지만 매일 돈을 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도 불구인 그를 산동네의 초라한 방에 눕혀 둘
수는 없었다. 오히려 시골에 내려가면 기분전환도 될 터이니 건강에도 좋을
듯싶었다. 도시 속에서 그것도 대도시 속에서 가난을 겪는다는 것은 얼마나
고독하고 비참한 노릇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시는 어머니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졸라대었다. 처음에는 안돼
안돼 하시더니, 하도 내가 떼를 쓰니까,
  "너 참 못됐구나, 그만큼 부모 애를 태웠으면 되었지. 이젠 시골로
내려가겠다니...아니 우리가 널더러 객지생활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 오라고
그랬니?"
  라며 화를 벌컥 내시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도 굽히지 않았다. 좋지 않은
일로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교편 생활을 하는 데에다 충주만 해도 아주 구석진
시골이 아니라 도시이며, 서울에 있으면 언제 또 우울증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니 조용한 곳에서 학생들과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도 안정을 찾을 것이고
오래 있지 않고 일 년만 있다가 서울로 오겠다는 말로 어머니께 애원을
하다시피 했다. 어머니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듯했다. 도저히 할아버지는
허락을 안하실 것 같으니 엄마가 도와달라는 부탁도 드리고 학원에
다녀오겠다면서 집을 나섰다. 종환씨에게 전화를 하려다 말고 이틀 전에 그를
다시 만난 기쁜 소식을 은영이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은영이니? 나 윤희야."
  나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펄쩍 뛰는 소리가 수화기 속에서 들렸다.
  "네, 윤희씨에요? 아니 누가 넌 줄 모를까봐? '나 윤희야' 그래? 너 지금
기분이 좋구나!"
  "응! 좋은 정도가 아냐. 사실은 그저께 너무 놀랍고 기쁜 일이 있었는데
너에게 연락을 못했어. 나올래?"
집이 비었으니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

현관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내가 은영이를 와락 껴안았다. 영문도 모르고
'어머, 얘 징그러워. 얘가 왜 이래'하는 은영이를 안고 있다 보니 그를 잃었다는
슬픔에 지치고 헤매일 때 내 걱정을 해주며 거의 나와 같이 침울해 하던 그
아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이 막 쏟아졌다.
  "너, 왜 그래? 답답해서 죽겠어. 좋은 일이라니, 죽은 충식씨라고 살아왔다는
말이니?"
  나는 큰소리로 깔깔거리며,
  "맞아. 충식씨가 살아 있었어. 글세 그 사람이 죽은 게 아니었다구."
  어떻게 그 말을 단번에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너 미쳤니? 농담하지 말고 어서 말해 보라니까."
  난 이틀전에 "복지"에서 종환씨를 만났을 때부터 전날밤의 일까지 단숨에
말을 해버렸다. 나의 말을 들으며 점점 더 놀라기만 하던 은영이는 '꼭 좋은
일만은 아니구나'하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사람보다는 은영이만은
기뻐하고 축하해 줄 걸로 믿었는데 놀라기만 할 뿐 기뻐해 주지 않는 친구가
야속하기만 했다.

 


  "윤희야, 내가 축하해 주기 않아서 섭섭하지? 난 너하고 생각이 달라.
도저히 사람 앞에도 나타날 수 없을 정도라서 너에게 죽음을 가장한 충식씨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해.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야. 그러나 종환씨란 사람 참
못 됐구나. 너 충식씨 죽은 거 알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니. 가슴만 아팠니? 정말
병이 났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것도 겨우 마음이 안정되어가고 있는데 불쑥
나타나서 '충식이가 살았소'하고 사실을 말하면 널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더구나
움직이지 못하는 불구인 충식씨를 말야. 너 인생을 아주 망가뜨리겠다는 거야?
윤희 너도 참 답답한 애야. 왜 집에 숨기려고해? 말을 해. 너 혼자 그 불구인
사람을 책임질 수 있어? 어른들께 말씀드려서 허락을 안하시면 그 사람 못
만나는 거야."
  은영이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난 아무 말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신을 신으며 '은영아, 잘 있어'라고 말한 후 도망치듯이 복도를
뛰어 나갔다.
  나는 가엾은 충식씨를 철저하게 숨기기로 마음 먹었다. 충주 일 때문에
종환씨와 의논을 하고 싶은데 이게 그 사람에 관한 일은 나 스스로
결정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약수동으로 향했다.

  그 사람은 그저 덤덤히 날 맞아 주었다. 저녁식사를 방금 끝냈다며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커피포트에 물을 부었다.
  "충식씨. 나 서울에 살기 싫어요."
  "나 때문이구나."
  그가 힘없이 말을 받았다.
  "네, 다른 뜻은 아니구요. 조용한 데 가서 둘이만 있고 싶어요. 마침 그럴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생겼어요. 충주하고 아세요? 몰라요?"
  두 눈을 감은 채 그는 말이 없었다.
  "거기 고등학교 자리가 비었대요. 무용을 계속 안할 바에야 교사 생활을
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잘된 일이죠. 그리고 마침 이런 때에 그것도 서울이
아니니 충식씨와 마음놓고 지내게 되어 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충식씨, 우리
같이 가요. 네?"
  그 사람은 슬픈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너 혼자 가!"
  "왜요?"
  "글세, 난 안 가."
  "충식씨."
  내가 소리를 질렀다.
  "충식씨, 여기서 혼자 누워 뭐할 거예요? 나 혼자 가라구요? 그러면
좋겠어요? 아니잖아요. 이젠 뭐든지 깊이 생각하지 말아요. 그냥 가는 거예요.
여기나 충주나 다를 게 뭐예요? 지난 날에는 충식씨가 마음대로였지만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하게 해주세요. 충식씨는 이렇게 된 것이 한없이
비참하겠지만 난 그냥 충식씨 만난 것만이 기뻐요. 우리 현실을 피하지는
말자구요. 미국에서 전화하셨을 때 제가 약속한 거 기억나세요? 충식씨가 내게
준 사랑에 두고두고 몇 배로 갚는다고 한 말요. 갚고 싶어요. 하다가 힘들면
그만 둘께요. 충주 가는 거예요? 알았죠?"
  차마 그의 슬픈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어서 커피를 타는 척하며 말을 하던
나는 그가 울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철없는 소년같이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방에서 훌쩍이는 그에게 다가서서 손을 잡았다.

 


  "울지 마세요. 일 년 동안 많이 울었을 텐데 이제 우리 울지 말아요. 자꾸
울면 윤희는 죽어요."
  그이 오른손이 나의 목을 끌어다 그의 가슴에 갖다 대 주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감싸쥐고 흐르는 눈물을 따라 입술을 대었다. 그렇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과 축 늘어진 왼쪽 팔이 더욱 가슴 아픈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충식씨, 다 잊어 버려요. 그리고 앞으로는 나만 생각해야 돼요. 우리보다 더
어렵고 더 아프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우선 이 동네 사람들만 보아도
우린 괜찮은 편예요. 물론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는 충식씨 앞에서 사치스런
나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어디서 어떻게 산다는 건 다 어렵죠. 우리 나쁜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아요. 이렇게까지 살아서 날 보는 걸 기쁘게 생각해
줘요. 나와 같이 살게 되어서 참 기쁘다고 생각하실 수 있죠?"
  여전히 울먹이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그를 내 가슴에 꼭 껴안았다.

  뒤늦게 집에 들어가자 할아버지께서 나의 충주행을 허락하셨다는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내게 다가온 현실이 너무나도 힘들고 가슴아파
감사하다는 말씀조차도 못 드리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기쁨 이상이었고, 그 마음은 어떤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그러나 힘없이 누워있는
그 사람을 생각할 때 나의 기쁨조차도 그이 앞에서는 미안할 정도였다.
  낮에는 함께 있는 기쁨과 아픔에 들뜨고 지쳤고, 밤에는 혼자 있을 그를
생각하며 밤을 새우곤 하였다. 그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용기있는 말을 하고 난
다음 그의 태도는 많이 누그러진 듯했다. 내가 하는 말에는 어떠한 것에도 '그래
알았어'라고 대답을 할 뿐 반대라는가 화를 내는 일이 없어졌지만 오직 한 가지
서로가 힘든 것은 그 사람의 대소변 문제였다.


  나를 만나기 전에는 변기를 가까이 두고 소변을 자신이 해결을 한 후
아주머니가 뒷처리를 했었고, 또 변을 보는 것은 종환씨 앞에서만이었기 때문에
친구가 왔을 때 막상 변을 보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심한 변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다른 일은 내게 의지를 하려고 하는데 이 문제 만큼은 나로 하여금 손도 대지
못하게 하였다. 서너 번의 포옹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아무리 사랑하는 약혼자라
하더라도 남자의 그곳을 본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으나, 불구의 몸으로 그것도
단지 대소변만을 보기 위해 옷을 벗어야 하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정을
하거나 화를 내기도 하여 억지로 변을 보게 한 적도 있었지만 한 번 과정을
겪고 나면 그 사람은 몇 시간씩을 말도 하지 않고 눈만 감고 있었다.
  솔직히 말을 하면 나 자신도 변기를 비우고 닦는 일이 여간 고역스러운 게
아니었다. 특히 변기를 비우고 난 후 수세미로 깨끗이 닦아서 물기를 말끔히
없애고 할 때는 비위가 상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지난 날 충식씨가 날
얼마나 사랑해 주었나를 생각하면 거뜬히 참아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충주엘 가는 것이 그 사람과 마음 놓고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참
잘되 일이라 싶어 집에 거짓말을 꾸며댔는데 막상 할아버지의 허락을 얻고 난
후 나는 또 다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께서 나를 그냥 보낼 리가
없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반드시 서울에 올라와야 되고, 하숙집은 할아버지가 미리
구해 놓겠다는 것이었다. 주말에 집에 다녀가는 거야 괜찮지만 하숙집이
문제였다. 할아버지 성품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하실 터이니 역시
그곳에서도 같이 있기란 힘든 노릇이어서 충식씨 거처는 따로 정해야만 될 것
같았다.
  이미 결정이 난 것, 더 이상 신경을 안 쓰기로 하고 매일매일 약수동을
드나들었다.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가슴아픈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전축이라도 있다면 그 답답한 방에서 견디어
내기가 한결 수월할 것도 같았으나 책이라든가 세끼 식사도 예전에 그 사람이
좋아하고 먹던 거와는 너무도 딴판이었다.
  부모님께 타는 용돈으로 이런 것들을 채우기에는 사실상 부족한 실정이었다.
학교에 취직이 되면 매달 일정한 봉급을 받게 되어, 그때부터 조금씩 저축을
한다면 나아질 것도 같았다. 그러나 당장은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2월말
경에 있을 충주행의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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