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요칼럼

무궁화 심수봉

시인김남식 2011. 7. 12. 19:13

무궁화 심수봉 작사작곡 노래


1.

이 몸이 죽어 한 줌의 흙이 되어도 하늘이여 보살펴 주소서 내 아이를 지켜 주소서
세월은 흐르고 아이가 자라서 조국을 물어오거든 강인한 꽃 밝고 맑은 무궁화를 보여주렴
무궁화 꽃이 피는 건 이 말을 전하려 핀단다 참으면 이긴다 목숨을 버리면 얻는다

내일은 등불이 된다 무궁화가 핀단다


2.

날지도 못하는 새야 무엇을 보았니 인간의 영화가 덧없다 머물지 말고 날아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하늘에 산화한 저 넋이여 몸은 비록 묻혔으나 나랄 위해 눈을 못감고
무궁화 꽃으로 피었네 이 말을 전하려 피었네 포기하면 안된다 눈물없인 피지 않는다
의지다 하면 된다 나의 뒤를 부탁한다



심수봉이 부른 무궁화 노래는 1985년 발표 했지만 당시 신군부가 선동적이란 이유로 금지 되었던 곡이다  

    

1979년 박정희대통령 시해 현장에 있었던 가수 심수봉이 박정희대통령으로 부터 당시 어떤 메시지를 전해 듣고 

노래를 만들어야 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심수봉은 박정희 대통령의 영(靈)이 감응되어 만들어진 노래라고 TV에서 자신이 밝혔다


내용은 아버지 박정희대통령이 자녀 박근혜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가사로

특히 박정희 대통령은 오늘에 현실을 그 당시에 어찌 미리 아셨을까라는 섬짓한 추리를 하게 해준다 

또한 그것을 인지한 영적 감정이 풍부한 심수봉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심수봉이 밝힌 육영수여사 꿈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1979년 박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 심수봉은 육여사 꿈을 여러번 꾸었는데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애타는 마음으로 무슨 말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심수봉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꿈에 육여사가 나타날 때, 횟수를 거듭할 수록 육여사의 모습은 걱정에 지친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런 꿈을 여러번 꾼 후 노래를 부르러 청와대에 갔고 그 자리에서 박대통령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무궁화 가사는 누군가가 뜻 풀이를 해서 오래전 부터 떠돌고 있다

가사 해설을 잘 읽어 보면 절묘하고 사실처럼 前後가 딱 맞는 것 같아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민중가요가 아닐까 생각해 보며 참고로 박근혜 대통령의 한자 근자는 무궁화 근(槿)자 이다

누군가 가사를 아래와 같이 해설하였다

1절

이 몸이 죽어 한줌의 흙이 되어도
->돌아가신 박대통령의 독백
하늘이여 보살펴 주소서 내 아이를 지켜 주소서
->(아이들을 보살펴 달라는) 돌아가신 박대통령의 기원
세월은 흐르고 아이가 자라서 조국을 물어오거든
->내 아이가 커서 정치를 하게 될 때에는.
강인한 꽃 밝고 맑은 무궁화를 보여주렴
->무궁화꽃의 밝음과 끈질긴 생명력을 교훈으로 삼으라 아이에게 전해 주시오. 


무궁화 꽃이 피는 건 이 말을 전하려 핀단다.
->무궁화꽃이 피면 내가 당부하는 말을 아이에게 전해 주시오.
참으면 이긴다 목숨을 버리면 얻는다.
->참고 인내하면 승리한다.
   사심을 버리고 오직 조국과 국민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정치하면 영예를 얻는다.
내일은 등불이 된다 무궁화가 핀단다
->앞으로 근혜는 조국의 등불이 되고 목표를 이룬다.


2절
날지도 못하는 새야 무엇을 보았니
-> 인간의 한계가 있으니 우선 이를 알아라. 
인간의 영화가 덧없다 머물지 말고 날아라 
-> 영화를 탐내지 말고 높이 멀리서 세상을 보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하늘에 산화한 저 넋이여
->오직 조국을 위해 살다가 돌아가신 박대통령의 넋 
몸은 비록 묻혔으나 나랄위해 눈을 못감고
-> 돌아가신 박대통령의 조국에 대한 걱정 

 

무궁화 꽃으로 피었네 이 말을 전하려 피었네
-> 저 세상에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박대통령의 마음 
 포기하면 안된다 눈물없이 피지 않는다.
->경선에 지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고진감래를 아느냐. 
의지다 하면된다 나의 뒤를 부탁한다
->의지를 갖고 하면 된다. 내 뒤를 이어 조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 다오. 



박대통령의 시해현장의 증언  (심수봉 대담에서)


“빠앙∼ 갑자기 총성이 들렸지요.
총성이 들리기 전에 언성을 높여 싸웠다구요?
그런 건 다 거짓말예요.
그분 앞에서 김씨하고 차씨가 투닥거리는 그런 장면은 감히 생각치 못할 일이죠.
사전 알력은 있었겠지만, 총성은 그냥 갑자기 난 것이었어요.
차지철의 오른쪽 손목에 구멍이 뻥 뚫렸어요.
난 손목에 그렇게 구멍이 뻥 뚫린 건 처음 봤어요.
순간 차지철은 화장실로 도망 갔어요.
총이 없어서도 그러했겠지만 아마도 다음 총알이 각하에게 날아가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겠죠.
하여튼 경호를 맡은 사람의 행동은 아니었어요.
저는 그 순간 이런 장면을 각하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바로 옆을 쳐다봤지요.
각하는 총소리에도 조금의 동요도 없이 눈을 지긋이 감고 앉아 계셨어요.
이 녀석들이 또 철없이 난동을 부리는구나 하는 식의 태연한 모습이었어요.
이때 운명의 총알이 튀었지요.
오른쪽 가슴으로부터 비스듬히 복부를 관통해서 왼쪽 아래 옆구리로 피가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도 박대통령은 아무런 흐트러짐이 없는 그 자세로 그대로 위엄을 지키며 끝까지 앉아계셨습니다.”
지금 생각만 해도 어제 일처럼 몸서리쳐지고 가슴이 메어진다는 그녀는 담담하게 그때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목소리는 변함없이 옛정취를 전해 주건만 그녀의 얼굴에는 기나긴 고뇌의 연륜이 쌓여있었다.
그것은 가냘픈 한 여인의 한이라기보다는 우리 최근세사의 굴곡진 이랑들이었다.
나는 아무 이유없이 그냥 심수봉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녀의 가락의 굽이마다 이는 화사한 산들바람을, 갑사와 다이아몬드로 휘감은 페르시아공주
의 하느적거리는 율동보다 더 매혹적인 선율을 나는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14일 저녁 동대문 남녘 서울 옛 성터가 남아있는 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병풍 뒤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게 사실이오?
“그런 엉터리 얘기가 어딨어요?
아무리 권력사회라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접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아무리 얼굴이 못생겼다지만….”
그누구가 심수봉이 못생겼다 말했던가?
그녀는 아직도 젊고 신선했고 고일(高逸)한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꾸밈없이 아름다운 자태였다.
'밀실의 참극'서 榮華의 덧없음 배워"
“제가 박대통령 왼편에 기타들고 앉아있었고, 오른편엔 신재순, 코너엔 차지철이 앉아있었지요.
그 맞은편엔 김계원, 김재규가 앉아있었죠.
대통령께서 저에게  심양, 그때 그사람 한번 불러보게’하고 청했어요.
그 노래를 부르고 나니깐 다른 노래 하나 더 하라고 해서 재순이가 ‘사랑해 당신을’ 불렀어요.
그런데 걔는 음치였어요. 너무 못 부르니까 박대통령께서 재순이 노래부르는 것을 도와주시느라고 흥얼거리셨죠.
그리고 제가 기타 반주를 해드렸구요.
그때 빠앙∼ 총소리가 난 거예요.”
“그리곤 곧이어 화장실에서 나온 차지철과 김재규 사이에서 격투가 벌어졌죠.
그리곤 불이 꺼졌고 김재규가 나갔어요. 그리곤 잠시 정적의 순간이 계속되었죠.
이땐 이미 박대통령은 쓰러져 있었어요.
그때 정적 속에서 심하게 가래가 끓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본능적으로 대통령을 부축하면서 ‘괜찮으세요’하고 물었지요.
그때 ‘괜찮아’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대통령 뒷켠으로 시커먼 방석 같은 게 있었어요.
그때 그것을 짚었는데 물컹, 끔찍한 느낌이 들었어요.
피가 시커먼 묵이 되어있었던 거예요.
나는 도망치고도 싶었지만 어찌할 수 없이 대통령을 부둥켜안고 있었죠.



그때 김재규가 다시 들어와서 대통령머리에 총을 대고 확인 사살을 하는 것이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김재규를 바라봤지요.
그런데 찰칵∼ 불발이었죠.  나는 그때 이젠 살았구나 했어요.
그런데 김재규가 나가자마자 누가 총을 건네 주었어요.
김재규는 새 총을 들고 들어와 가혹하게 대통령 머리에 겨누었지요.
박대통령은 제 품에서 그렇게 마지막 숨을 거두셨지요.
그 이후로는 제 정신이 아니었고 제대로 생각이 나질 않아요.”
다시 상기할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1979년 10월 26일 밤, 그 때 그 사람!

―그대의 인생에서 10·26은 큰 사건이었죠?
“물론이지요. 제 인생의 모든 것을 뒤흔든 너무도 큰 사건이었지요.”
―그럼 그 사건으로부터 무엇을 배웠습니까?
“인생의 영화가 너무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저는 정치가 남편을 얻는것이
어려서 부터의 꿈이었어요. 그꿈이 산산조각 났고 권력이 보잘것 없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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