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추억소설

8.비련의 행진

시인김남식 2013. 12. 13. 14:38

8. 비련의 행진

 

겨울이 지날 무렵 충주에서 서울로 학교를 옮기게 되자 충식씨의 거처도 함께
옮겨야 했다. 충주에 생활하는 동안 나의 씀씀이가 헤프다며 어머니께서는
퇴직금과 월급을 따로 예금해 주어야겠다고 가져가자 그동안 생활비에 급급하여
미리 저축을 해 두지 못했던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구나
충식씨는 절대로 서울에 가지 않겠다며 날더러 혼자 가라는 것이었다.
  개학이 되기 전에 충식씨가 기거할 곳을 마련해야 했지만 막막했다. 우선은
충식씨를 설득키로 했다.
  결국 충식씨는 나의 뜻에 따라 주었고, 학교의 동료 여교사들이 선물을
대신해서 모아준 송별금으로 평소 그가 가끔씩 다니던 병원의 앰블런스를 빌려
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처였다. 어느 곳에 마련을 해야 할지,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해야 할지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종환씨는 나의 이런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지만 충식씨와 나의 반응이 염려가 되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종환씨로서는 충식씨와 가까이 있게 된 것이 반갑고 잘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종환씨는 나에게 삼양동쯤에 거처를 마련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로서는 고맙고 불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충식씨는 서울시 안으로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하던 끝에 충주와 서울을 오가며 보아왔던 경기도 신장이라는
곳으로 정하고는 월셋방을 얻게 되었다. 비용은 종환씨의 도움과 아버지께서
주신 푸짐한 용돈으로 해결이 되었다.
  약수동에서 충주로, 그리고 우리의 세 번째 생활지인 신장의 방은 작은
창문이 달린 전형적인 농가의 방이었다. 창 밖으로는 논둑길과 삐죽한 미루나무
몇 그루가 보였다.
  사고 이후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는 충식씨를 될 수 있으면 한적한 곳으로
떨어진 방을 원했었다.
  봄이 되기 이전에 충주에서 올라온 우리는 학기가 시작되자 퇴근 후 뒤늦게야
만날 수 있었고 또 이내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새로 근무하게 된 학교는 서울 세검정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충식씨에게로, 다시 집으로 돌기에는 무척이나 먼 거리였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은 매일매일 그에게로 가기 위해 애를 썼다.
  어머니는 충주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의 낭비가 많았다고 생각되었는지 월급을
꼭꼭 챙기셨다. 태어나서 그렇게 돈 때문에 고생을 해보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끼니 걱정을 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싸주신 점심 도시락을 먹지 않고
신장으로 가져와서는 계란 하나를 풀어 별로 양념도 넣지 않은 장국을 끓여서
그의 앞에 놓을 때면 나도 몰래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충식씨 앞에서
절대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충식씨, 미안해요. 엄마가 싸주신 거니까 이 국물해서 맛있게 드셔야 돼요.
사실 우리는 그동안 가난을 모르고 자라온 셈이잖아요 신이 계셔서 가난을 한
번 겪어보라고 주신 거라고 생각하고 잘 견디어 봐요."    그의 밝은 표정은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임마 얼마나 좋으니? 마포 어머니가 하신 밥을 먹으니... 내 걱정은
하지마. 난 괜찮아. 그리고 사실 식사를 많이 안하는 게 더 좋다구. 움직이질
않으니 먹은 게 소화가 되야지--."
  너무 미안해서 부끄럽고, 그의 넓은 마음이 참으로 고맙고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학교는 이내 적응이 되었다.
  다행히도 무용과 입시생을 대상으로 실기시험 작품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던 관계로 피곤한 것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 결과 생활을 꾸려 나갈 수가 있었다.
  학생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부수입이 차츰 늘어갔지만 충주에서와 같이 다
쓰질 않고 아주 기본적인 것만 해결하고는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모아서 오랫동안 살 수 있는 곳을 택해서 혼자 있는 시간에도
지루하지 않도록 갖추어야 될게 너무 많았다.
  학생들의 과외 교습비 외에도 아버지께서 가끔씩 주시는 용돈 등을 한푼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충식씨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곤 하였다.
  어느날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종환씨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라
하고 여자를 시켜서 걸었는지 어머니는 전화에 신경을 안 썼다. 웬일이냐구
묻는 내게 정기가 오후에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전해준 후 신장으로 일찍
오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때의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충식씨가 기뻐할 생각을 하니
수업시간의 너무나도 지루했다. 수업계 담당교사에게 오전으로 수업을 앞당겨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네 시간 연속으로 수업을 들어간 후 일찍 조퇴를 하였다.
  천호동 시장에서 과일과 몇 가지의 먹을 것을 오랜만에 푸짐하게 사들고
신장으로 가는 나의 발길은 가볍다 못해 붕붕 떠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방을 깨끗이 청소를 하면서 또 충식씨를 계속 눈시울을 붉힌 채
시계만을 바라보면서, 문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기쁘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종환씨와 함께 들어오는 정미는 어려운 일을 겪은 모습이 별로 없었다.
  "야아. 정미야."
  하며 오른 팔을 허우적거리는 충식씨와 초라한 방 안을 정미는 거의 동시에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경멸하는 눈빛을 나와 종환씨에게 보내왔다.
혈맹의 관계인 우리 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었다.
  잠시 방 안에 침묵이 흐르고 충식씨가 다시 여전히 예쁘고 고급스러운 치장을
하고 있는 정미를 불렀다.
  "정미야, 이리 와. 여기 앉아. 어떠니? 대만 생활은 재미있어? 이 녀석
여전히 이쁘구나."
  "오빠, 이렇게 고생하는 줄 몰랐어. 정말 몰랐어요. 어떻게 이런 데에서 살
수가 있어?"
  그녀의 울음섞인 목소리는 방 안을 흔들었고 우리 세 사람은 죄인같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얼마나 부끄럽고 또한 정미의 태도가 서운했던지 난 하마터면 방을 뛰쳐나올
뻔하였다. 두 남자의 변명 같은 이야기를 듣고 정미의 표정은 가라앉았지만 나의
수치감은 가슴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이틀 후 다시 슬픈 표정을 짓고 대만으로 돌아간 정미는 비참한 오빠의
현실이 너무 가슴아파 아예 잊으려했는지 소식이 없었다.

  정미가 다녀간 뒤 얼마 동안 나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었다. 충식씨의 만남을
숨기려고 온통 거짓말을 할 때라서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만 가면 어머니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동생들하고 장난을 치는 등 명랑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데도
웬일인지 말도 하기 싫고 신장을 가도 그이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자연히 그 사람은 나의 눈치를 보았고 나 또한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바꾸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충식씨와 함께 있다가 집엘 가면 넓은
정원과 구석구석 잘 꾸며진 집안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으며, 학교 퇴근 후 신장으로 갈 때 천호동을 지나면서부터는 완전히
시골티가 나는 버스 길에 자꾸만 짜증이 났다. 또한 허름한 집에 그것도 남의
집에 들어가서 그의 방문을 여는 순간 날 반기는 충식씨가 왜 그리 초라해
보이는지 아예 난 입을 다물고 버리기도 했다. 나는 기가 죽을 대로
죽어 있었다.
  나의 마음은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계속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던 어느 날
충식씨가 나의 손을 잡으며 말을 했다.
  "윤희야 너무 힘들지? 앞으로는 자주 오지 말고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
오도록 해."
  "충식씨 식사는 어떡할려구요?"
  식사문제만 해결된다면 안 오겠다는 투의 말로 내뱉았다.
  "먹는 게 뭐 그리 중하겠니? 난 원래 빵을 좋아하니까 며칠 먹을 거 사주면
내가 배고플 때 알아서 찾아 먹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해. 윤희야,
너 그러다가 병이라도 나면 어떡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닌데 니가 너무 힘들 거야."
  난 그이가 말을 시작할 때부터 울고 있었다. 참회의 눈물이었다. 나는 눈물의
의미를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목을 끌어 안고는 흉터
투성이인 그의 왼쪽 얼굴에 나의 볼을 비볐다. 충주에서의 그런대로 안일하고
행복했던 날들이 너무도 그리웠으며, 차라리 그곳에 그냥 있을 걸 괜히 서울로
왔다는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생활이 힘들다고 해서 그이를 부담스러워 하였던
그때의 마음은 그 후에도 가끔씩 나를 괴롭히고 가슴아픈 추억이 되었다. 꽤나
오래 끌었던 우울증은 그이 앞에서 흘린 참회의 눈물로 인해 말끔히
씻기어지고는 나는 다시 기운을 차려야만 했다.

아침 저녁의 차가운  바람은 벌써 겨울을 실어다 주고 있었다.

 


11월 4일 
수업이 없는 시간이라 휴게실에서 동료 여교사들과 어울리고 있는데 종환씨가
전화를 걸어 왔다. 퇴근시간에 맞추어 학교 앞에 차를 가지고 기다릴 테니 될 수
있는대로 빨리 나오라고 말을 황급히 하고는 전화를 끊는 것이었다. 가끔 그런
일이 있기는 하였지만 수화기 속의 종환씨 목소리는 유난히 가라앉아 있어서
오후 내내 신경을 쓰면서 퇴근시간 만을 기다렸다.
  직원 종례가 끝나는 대로 교무실을 뛰쳐 나왔다. 미리 차를 가져와서
기다리고 있던 종환씨는 내가 다가가자 시동을 걸더니 들어가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전화할 때의 가라앉은 목소리 못지 않게 얼굴
표정 또한 굳어 있었다. 급한 일이 그것도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종환씨 무슨..."
  가슴이 두근거려서 다음 말을 잊지 못하고는 종환씨에게 고개를 돌렸다.
  "윤희씨, 오늘 아침에 ..."
  그 역시 말을 하다 말고 깊은 한숨을 몰아 쉬었다.
  차는 세검정 고개를 숨가쁘게 오르고 있었으며 나 또한 가슴이 막히는 듯하여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되묻기도 겁이 나서
숨만 죽이고 있는데 종환씨가 나의 손을 끌어다 기어 위에 올려 놓더니 그 위에
자기의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힘주어 나의 손을 잡으며 아버님의 죽음을 알려
주었다.
  나는 의외로 크게 놀라지도 않았거니와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물어 보았으나 종환씨는 예전에 존경했던 아버님
그대로 기억하는 것만이 그 어른의 죽음을 욕되게 않게 해드리는 거라면서
자세한 대답을 회피하려 했다.
  이제 아버님을 다시 뵐 수 없다는 비통한 외에는 무엇 때문에 그런 곳에서
고생을 하셔야만 했는지, 어떻게 해서 돌아가시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것은 나
자신도 두려운 일이기는 했다. 자주 하던 생각이지만 내게는 학식이 풍부하고,
자상하시며 멋있는 아버님으로만 기억하고 싶었기에 더 이사 묻지 않기로
하였다. 나는 차창 밖만 내다보고 가면서 눈을 자꾸만 크게 뜨려고 애를 썼다.
  눈을 감으며...
  아-- 눈을 감기만 하면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 다시는 그분을 뵙지 못하다는
슬픔에 나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종환씨."
  "..."
  종환씨는 울고 있었다. 손으로 눈물을 닦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네 주었다.
  "종환씨. 다음에 또 무슨 나쁜일이 있을까요?"
  "누구나 다 나쁜 일을 겪으면서 살고들 있어요."
  "누구나 다?"
  "그래요, 누구나..."
  "다른 사람들도 죽을 때는 아버님처럼 혼자인가요? 다들 충식씨 같이
혼자에요? 우리 충식씨 이젠 정말 혼자 됐어요."
  "윤희씨하고 둘이죠."
  "아녜요. 난 그이에게 아무런 존재도 안 돼요. 그이 가슴은 너무 비어
있어서 나 혼자로는 메워지질 않죠. 충식씨를 어떻게 하죠?"
  종환씨가 다시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충식이가 윤희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집안이 그렇게 된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미도 멀리 가서 살고, 아버님마저 그 고생을 하시는데도
나와 함께 있을 때는 거의 윤희씨 걱정뿐에요. 몸을 못 쓰게 됐기 때문에,
보살피고 있는 윤희씨를 미안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녀석은 정말로
윤희씨를 사랑해요. 윤희씨 조금만 더 나이 먹으면 그때 다 말해 줄께요."
  "지금 어디 가는 거에요?"
  "방향 보면 모르겠어요? 충식이한테 가는 거에요."
  나는 그이에게 차라리 아버님의 죽음을 알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계실 때에도 만나지 못했던 분인데 구태여 돌아가신 것을 알려서 충식씨를
다시 한 번 절망과 비탄에 빠지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종환씨, 그이에게 알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종환씨는 한 마디로 거절이었다.
  "충식씨 알면 그이는 죽어요."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죽을 녀석이면 벌써 죽었어요."
  "그래도 안 돼요. 우리 알리지 말아요. 그렇게 해요, 종환씨. 네?"
  "내가 말할께요."
  "말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 뒤에가 중요해요. 충식씨 절망하는 모습 난
못 봐요."
  "그런 윤희씨를 위해서 충식이는 잘 참을 거에요. 걱정 마세요."
  "도대체 왜 그래요? 안 된다구 하잖아요."
  하마터면 나는 핸들을 돌리고 있는 종환씨의 손을 잡을 뻔했다.
  돌아가신 분께서 자식의 도리가 아닌 줄 알지만 나는 충식씨에게 다시 한
번의 절망을 겪게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이에게 아버님의 죽음을
알릴 수 없다는 생각은 점점 굳어만지고 있었다.
  "종환씨 차 돌려요."
  "알아야 됩니다."
  "나 혼자 충식씨한테 가겠어요. 돌아가세요."
  "충식인 아들이에요. 그리고 충식이밖에 없잖아요."
  "제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거에요? 지금 내가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내가 고집을 부리자 그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충식씨에게 알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부탁에서, 애원으로 그리고 나는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사람이 왜 그렇게 잔인해요? 종환씨 참 이상하군요. 충식씨 괴로워하는 거
재미있나 보죠? 아버님 살아 계실 때도 두 분은 만나지 못했었잖아요. 비록
형무소에서나마 살아 계시다는 걸 그이가 얼마나 든든하게 생각했는데. 그냥
거기 계시는 걸로 하면 안 되나요? 꼭 말을 해야 돼요? 종환씨 도대체 왜
그래요. 아무도 내 허락 없이는 그이한테 마음대로 못해요. 만약에 알려주면
종환씨하고는 끝이에요. 종환씨를 나쁜 사람으로 볼 거라구요."
  차가 갑자기 '삐--익'하는 소리를 내며 심하게 흔들리더니 급정차를 하였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결국은 흐느끼고 말았다.
  나는 아버님을 부르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아프게 끓어오르는 오열을 참지
못했다.
  다시 차는 움직이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종환씨는 화가 났는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날씨가 차가운데 그이는 창문을 열고 휠체어에 앉아 있다가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걸 보고는 놀라면서도 무척 반가워하였다.
  "와아. 둘이 같이 오다니. 오늘 기분 좋은데? 너 윤희 학교에 갔었구나."
  빙긋이 웃고는 휠체어 뒤로 가서 그의 어깨를 잡고 있는 종환씨에게 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세검정에서 여기까지 드라이브 실컷 했어요. 종환씨 운전실력 보통이
아니던데요. 이젠 마음놓고 타도 되겠어요. 충식씨 커피 끓일까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 놓았다.
  "그래? 그럼 허락할게, 이 녀석 차 마음놓고 타라구."
  그리고는 종환씨를 쳐다보았다.
  "야, 너 윤희한테 운전실력 칭찬 받아서 좋겠다. 안 그래? 나 인제 의자에게
내려 줘. 그렇지 않아도 아저씨를 부를까 하던 참인데 마침 잘 왔다."
  묻는 말에 겨우 대답만 하고 있던 종환씨는 커피 잔을 치우며 그이를 불렀다.
  "충식아, 우리 술 마실까?"
  "술? 너 집에 가야 되잖아. 오늘 밤에 음주운전 연습할려구?"
  "자아식, 음주운전? 한두 잔 정도만 하고 천천히 가지."
  평소 같으면 두 사람의 술 안주 때문에 식품가게에 달려갔을 텐데 그날은
종환씨의 입을 감시(?)하느라 방안에 있던 그이의 군것질거리를 내 놓았다.
  종환씨는 다른 날과는 달리 그의 옆에 가까이 앉아서 손을 잡아 보기도 하고
등을 쓰다듬기도 하였다. '설마 종환씨가 내 부탁을 안 들어 줄 리는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버님께 대한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가슴이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그럴수록 나는 충식씨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도
없이 늘어놓았고 얼마 후 종환씨가 나의 말을 막고 나섰다.
   "충식아, 넌 참 행복한 녀석이야."
   "내가? 그래 좋아. 니가 그렇다면 행복한 거겠지?"
   "정말이야, 괜히 하는 소리가 아냐. 윤희씨가 널 사랑하는 걸 생각하면
너만큼 여자에게 사랑받는 남자도 아마 없을 꺼야. 난 보통 부러운 게 아니라구.
질투도 나고..."
  "이 녀석이 갑자기 웬 사랑타령이야. 너 집에서 싸웠니?"
  종환씨의 의미있는 말을 그는 농담으로 받아주고 있었다.
  "싸우긴? 두 사람이 질투가 나서 오늘은 내가 훼방 좀 부려야겠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고 종환씨의 말은 계속 되었다.
  "윤희씨는 너에게 알리지 말라고..."
  "종환씨. 안 돼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종환씨를 큰 소리로 불렀다.
  "알려야 돼요."
  "안 돼요. 안 된다니까 왜 그래요?"
  그이가 쟁반을 옆으로 밀고는 불안하고 궁금한 표정으로 종환씨와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윤희씨."
  이번에는 종환씨가 날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충식인 알아야 돼요."
  "종환씨 미쳤어요?"
  "윤희씨야말로 잘못하는 거에요."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방문을 세차게 열어 젖혔다.
  "종환씨 나가요. 빨리 나가라구요. 그리고 다신 여지 오지 마세요. 종환씨
이제 보니까 아주 나쁜 사람이군요. 지독히 나빠요.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이럴 수가 있어요? 여기 오면서 내가 한 말 아직두 이해 못하겠어요? 못해도
좋으니까 여기서 나가요. 빨리요."
  "그래요. 난 바쁩니다. 다 좋아요. 그래도 이번 일은 알려야 돼요."
  "그만들 해."
  갑자기 충식씨가 큰 소리를 질렀다.
  "종환씨 어서 일어나요. 추워요. 문 닫아야죠."
  충식씨의 소리에도 깜짝 안하고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나는 떨고 있었다. 종환씨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윤희야."
  그이가 내 이름을 아주 부드럽게 불러 주었다.
  "이리 와. 이리 와서 내 앞에 앉아 ."
  난 잔뜩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그이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는 어금니에 힘을
주고, 또 힘을 주면서 입을 꼭 다물었다.
  "윤희야."
  "네."
  그이가 내 손을 잡았다.
  "윤희야."
  "네. 충식씨."
  계속 나의 이름만을 부르면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윤희야."
  "충식씨 아무 일도 없어요. 아무 일도 아녜요."
  복받쳐 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난 벌을 받고 있는 학생처럼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윤희야, 난 어떤 큰 일이 일어나도 이젠 놀라지 않는다. 만약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 해도 윤희, 네가 있으니까 곧 좋아질 거야. 너 앞에서는 아무도 힘든
내색을 할 수가 없다. 해도 안 되고 말야. 어차피 알 거면 빨리 알고 겪는 게
더 낫지 않겠니? 그렇지? 윤희야 걱정하지 말아. 윤희가 내 손을 꼭 잡아 주면
되잖니? 내가 놀라지 않게, 자아. 내 손 잡아. 내 손을 꼭 잡아 줘."
  나는 그이의 손을 꼭 잡았고 그 사람은 종환씨를 불렀다.
  "종환아 미안하다. 윤희 대신 내가 사과하마. 얘는 내 생각을 해서 그런 거지
너한테 나쁜 맘은 없다는 거 너도 알 거다. 종환이 말대로 이 아인 정말 나를
끔찍히 사랑하는구나. 이제 말해봐. 괜찮아."
  "오히려 내가 윤희씨 보기가 부끄럽구나. 윤희씨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한테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 돌아가셨다."
  순간 '윽'하는 소리와 동시에 그이는 한 손으로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의 어깨 너머에 침통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종환씨를 나는 두 눈으로
똑바로 뜨고 노려 보았다.
  '나쁜 자식, 지독히 잔인한 자식. 이제 너하고는 끝이야.'
  나는 비록 마음속이긴 하지만 난생 처음 남자에게 욕을 하였다.
  "윤희야, 날 잡아줘."
  두 손을 충식씨 등뒤로 돌려 그의 등을 힘껏 끌어 안았다.
  "더 힘껏 잡아, 더 힘껏..."
  그의 눈물이 나의 머리를 흠뻑 적시었고 나의 목은 그의 팔에 의해 자꾸만
조여가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충식씨는 천천히 팔에 힘을 풀며 나를 놓아 주었다.
종환씨가 담배에 불을 붙여서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이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한숨과 연기를 길게 내어 뿜었다.
  "아버진 어디 계시니?"
  "수원에."
  "작은 집 생각 안 나?"
  수원얘기는 난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왜 하필이면 그곳에?"
  "우선 며칠 계시기로 하고 가셨던 거야."
  "그런데 왜 나한테는 연락을 하지 않았지?"
  "병원에 입원하신 다음에 알려주려고 했지."
  "아무 말씀 없으셨나?"
  "음, 아무말도..."
  "장례는?"
  "내일 벽제에서 화장으로..."
  "오늘 아침이었다며 내일 장례야? 2일장 있나 보군."
  충식씨는 술을 따르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윤희야. 많이 마시시 않을게. 괜찮지?"
  "충식씨, 괜찮아요?"
  "뭐가?"
  "그냥요."
  "그래 괜찮아."
  그이와 말을 하는 동안 종환씨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듯했고 시선이
마주칠 적마다 나는 재빨리 피해 버렸다.
  "윤희씨, 내가 밉죠?"
  나는 그때 정말 화가 몹시 나 있었기 때문에 종환씨의 그런 물음에 대답을
하기가 싫었다.
  "인제 나하고 말도 하기가 싫어요?"
  '남자들은 능글맞다더니 이제 알겠어.'
  "지금도 이 방에서 내가 나갔으면 좋겠어요?"
  "네, 제발요."
  넋을 잃은 사람처럼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 있던 충식씨가 힘없는 소리로
껄껄대고 나를 보며 웃었다.
  "유희야, 날 봐.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종환이 한 번만 봐 줘라. 저
녀석 불쌍하다, 야. 너는 나 때문에 종환씨는 우리 때문에 너무도 고생이 많은
것 같구나."
  "충식씨 다른 말은 뭐든지 다 들을께요."
  더 고집을 부리다가는 충식씨가 화를 낼 것 같기도 하고 저녁식사를 준비도
해야겠고 해서 얼른 일어나 방을 나와 버렸다. 저녁을 지을 엄두도 나질 않을
정도로 피로가 몰려와 그냥 마루 끝에 걸터 앉아 있었다.
  지난 날, 충식씨와 즐거웠던 시절,
  그때 명륜동의 단란했던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잘 정돈된 정원, 2층인
그의 방, 시아버님과 시어머니, 그리고 시누이, 나에게는 결혼 후 생활에 많은
꿈을 가지게 했던 집이며 가족이었다. 이제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정미는 멀리
대만에 살고 있으며 오직 충식씨만 남아 있다. 아무리 생각을 정리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 비참한 몰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꼭 잡아달라는 그의 절규보다 넋을 잃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더 나를
아프게 했다. 종환씨가 갑자기 연락을 하는 바람에 집에 전화를 하지 못한 것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비탄에 빠진 그 사람을 두고 집으로 갈 수도
없는 것 또한 날 괴롭히는 걱정 중의 하나였다.
  안에서 충식씨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찾으셨어요?"
  날 올려다 보는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집에 가야지."
  "오늘은 여기 일을래요. 조금 있다가 집에 전화하면 돼요."
  종환씨가 서먹서먹한 말투로 날 보며 말했다.
  "윤희씨, 집에 가세요. 여긴 내가 있겠어요."
  종환씨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질 않고 충식씨 앞으로 가서 앉았다. 잠시 나갔다
온 사이게 술병은 쏙 비어 있었다.
  "종환아, 나 아무래도 아버지한테 가야겠어. 아버지를 봐야 해. 이대로 못
있겠다."
  "정말 가겠니?"
  "그래, 가야겠어."
  "그럼, 가지 뭐. 준비 해."
  나도 당연히 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식씨한테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넌 안돼. 중간에 내려서 집에 들어가도록 해."
  그의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님 빈소에 가는 그이의 입고 갈 옷이
문제였다. 어찌 생각하면 처음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첫 외출인데 양복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바지에 와이셔츠를 입히고 그 위에 스웨터를
걸치게 하였다. 말없이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종환씨에게 너무나도 챙피해서
괜히 나혼자 속상해하고 있었다. 옷을 입자 휠체어에 앉은 그는 머리를 빗기고
있는 나를 불렀다.
  "윤희야, 너 빽 속에 거울 있지?"
  "네."
  "나좀 줘. 오랜만에 내 얼굴 좀 봐야겠다."
  '네'하고 대답을 하는 순간 나는 없다고 할 걸 그랬다고 후회를 했다.
  사실 우리 방에는 평소에 거울이 없었다. 수안보에 있을 때 무심코 벽에 걸어
놓은 거울을 보고는 그이가 '내 방에 거울을 거는 이유가 뭐냐?'면서 화를 낸
후부터는 거울을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빽을 넣고 다니는 손거울을
찾는 것일텐데 그냥 오늘은 안 가지고 왔다면 좋았을 것을 무심코 대답을
해버렸다. 할 수 없이 거울을 꺼내 주었다. 그이와 함께 생활한 지 2년 가까이
되는 동안 거울을 꺼내주었다. 그이와 함께 생활한 지 2년 가까이 되는 동안
거울을 보는 모습이 처음이었기에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겁까지 먹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사람은 거울을 나에게 건네 주면서 종환씨를 보았다.
  "종환아 나 안 간다. 의자에서 내려 줘."
  "왜 갑자기 또 마음이 변해? 너 이렇게 된 거 작은 집에서도 알고 있잖아.
나하고 같이 가는데 어때? 그냥 가자."
  "얼굴 때문이긴 하지만 사람들 앞에 나타날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냐. 다른 곳이면 몰라도 작은 집에는 이 몸을 해가지고 난 죽어도 가지 싫어.
혼이 있다면 아버지도 2일장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실 거다. 그 집 사람들
내가 왜 안 나타나나 하고 궁금해 하면서 긴장들 좀 해야 돼. 더구나
수원이라면 작은 아버지 처가집 아냐? 그 야비한 인간들 앞에 이 모습으로
나타나면 아버지의 죽음만 더욱 처절해질 뿐이지. 날 보면  그 인간들 어떤
쾌감마저 느낄지도 몰라. 아 가겠어.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나는 슬프게만
생각하지 않아. 활동을 하시던 분도 아니고 설사 밖을 나오신다 하더라도 그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나는 지금 오히려 아버지가 부럽다, 이제 편하실
거야. 혼이 있다면 어머니도 만나실 테고..."
  나는 충식씨의 신음에 가까운 말을 들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그렇게 큰 한이 맺혀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아버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 몇 마디 물어보면 '네가 알고 있는 것 이상 다른 것은 없어.
내가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아버지 얘길 꺼내면 안돼. 이건 꼭 명심해'라며
다시는 말을 못 꺼내게 했고 종환씨 역시 대답을 회피했기 때문에 자세한
경위를 모르고 있었다.
  종환씨가 그이를 자리에 눕히고는 갈 듯이 일어섰다.
  "충식아, 그럼 내가 수원에 갔다가 내일 벽제까지 들러서 올게. 아버지
유골은 내가 가지고 온다. 내일 우리가 뿌리자. 여기서 조금만 가면 남한산성이
있으니까 우리 그곳에서 아버지를 보내드리자구. 윤희씨는 어떡할까?"
  종환씨는 그이에게 물으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이지 나 혼자 있고 싶어. 윤희야, 그렇게 해, 종환이 가는 길에
같이 가."
  나는 종환씨를 따라 나서기가 싫었지만 그이에게 나의 일까지 신경을 쓰게 할
수가 없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아침식사를 부탁한 후 그곳을 나왔다. 머리는
무엇에 얻어 맞은 듯이 쑤시고 온몸에서는 열이 나고 있었다. 두 사람 똑 같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차가 천호동을 지나서야 종환씨가 입을 열었다.
  "윤희씨 피곤하겠어요?"
  나는 대답하기가 싫었다.
  "인제 화 풀어요."
  역시 대답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내가 미워요? 앞으로 윤희씨 말 잘 들을 테니까 우리 화해 합시다."
  "내일 벽제에 저도 가겠어요."
  다른 말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학교는?"
  "수업은 오후에 미루고 잠깐 다녀오면 돼요."
  "수원에서 일찍 출발할 테니까 그렇게 하시죠. 화장터가 수원에도 있기는
한가 본데 내가 안 된다고 우겼어요."
  언제인가 종환씨와 그이가 말하는 걸 잠시 엿듣고는 작은 집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기는 하였으나 내색을 할 수도 없고 자세하게 알고 싶었다.
  "작은 댁 얘기는 계속 몰라야 되나요?"

  "알려고 하지 마세요. 나도 충식이 앞에서 될 수 있는대로 그 말은 안
꺼내죠. 그 녀석하고 나는 친형제 이상이라는 거 윤희씨 도 인정하죠? 충식인
그러고 있지만 난 이렇게 건강해요. 아버님이 저를 얼마나 위해 주셨는데요.
그분의 한을 내가 나서서 풀어 드려야죠. 궁금하겠지만 모른 척하고 계세요.
그리고 내일 오고 싶으면 10시쯤 벽제로 와요."
  밤 늦게 수원까지 먼 길을 운전하고 가서는 다시 내일 벽제에도 가야 될텐데
집에도 못 들어가고 회사 일에도 지장이 많을 종환씨가 매우 걱정스러웠다.
  "종환씨 오늘 집에 못 들어가시겠네요?"
  "아침에 연락받고는 집에 전화해 주었어요. 내일은 충식이 하고 같이 있어
줘야 될 것 같고 모래 저녁에나 들어가면 돼요."
  "집사람이 싫어하지 않나요?"
  "결혼하기 전에 이미 약속을 했어요. 충식이와 윤희씨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이해 못하면 나하고는 누구도 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종환씨가 고마우면서도 무척이나 냉정해 보였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잖아요. 피곤해서 어떡해요. 더구나 운전하니까 더
힘들 테고 또 회사는 어떡하구요."
  종환씨가 나에게 빙그레 웃어 주었다.
  "고마워요. 윤희씨, 내 걱정 해주는 걸로 우리 화해한 거예요. 그렇죠? 난
윤희씨 화난 거 오래 안 갈 줄 알았어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종환씨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할께요."
  반쯤은 농담이 섞인 나의 말을 듣고 종환씨는 큰 소리로 웃었다.
  "노력을 한다구? 그것만도 어디에요. 사실 윤희씨 화내는 거 보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야아, 정말 무섭던데요? 여자가 무서워 보긴 오늘
처음이에요. 저렇게까지 충식일 위할 수가 있나 하고 그 녀석이 부럽더라구요.
날더러 나가라고 할 때 내가 정말 나갔으면 윤희씬 붙잡았겠죠?"
  "아아뇨."
  충식씨를 안고 있을 때 어깨 너머로 보이는 종환씨를 보고 욕을 하던 일이
생각나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났고 또 입밖으로 소리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떻게 종환씨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었는지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아까 있잖아요. 나 말에요. 종환씨한테 속으로 막 욕했드랬어요."
  "욕?"
  "네, 욕이요."
  "설마, 윤희씨가 욕을..."
  운전을 하면서 날 돌아보는 그 사람에게 정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윤희씨가 욕을 해요? 나한테? 뭐라고요? 아까 한 대로 말해봐요.
어서 그대로 다시 해 보라니까요."
  나는 웃으면서 그대로 말을 해 버렸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환씨는
껄껄대더니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아예 어느 빌딩 앞에 차를 세우고는
큰 소리를 내면서 한참을 웃고 있었다. 나는 욕을 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종환씨에게 말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데 어찌나 그가 웃고
있는지 나도 모르게 따라서 웃었다. 종환씨는 내가 그랬다는 것이 그렇게도
재미가 있는지 '나쁜 자식, 지독히 잔인한 자식, 너하고는 끝이야'라고 내 말을
흉내까지 내는 바람에 나는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그만 해요. 종환씨는 나한테 욕 먹은 게 그렇게 우스워요? 욕 먹고 웃는
사람은 종환씨뿐일 거에요."
  "네 우스워요. 기분도 좋구요. 이상해요. 윤희씨한테 욕을 먹는다는 게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기분이 좋다구요? 좋아요. 그럼 매일 욕해 줄까요?"
  서로 농담을 하면서 웃다 보니까 신장에서 쓸쓸히 혼자 있을 충식씨 생각이
났다.
  "종환씨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고통을 같이 나누기란 어려운 일인가
봐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충식씨는 지금 어떻겠어요? 그래도 우린 웃잖아요."
  "윤희씨같이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너무 신경을 쓰는 편에요."
  그날 종환씨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 주고 수원으로 떠났다.

  이튿날, 수업계 교사에게 부탁을 해서 수업시간을 오후로 미룬 후 나는
벽제로 떠났다.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친구 아버지 장례에 가야 된다는 거짓
이유를 대고는 아버지의 회사차를 부탁했다.
  화장터는 처음 가는 길이었다. 구파발을 지나 벽제 쪽으로 가는데 이따금씩
내가 타고 있는 차를 앞지르는 영구차들이 눈에 띄었다. 대개 차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뒷좌석에 상복을 입은 유족들이 여러 명씩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니 유족이라곤 한 명도 없이 쓸쓸하게 비어 있을 아버님의
영구차가 떠올랐고, 신장에서 아버님의 장례에도 나타나질 못하고 있는
충식씨와 초라한 방이 생각나서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어찌나 어려웠던지
회사차를 타고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10시가 조금 못되어 벽제에 도착했다. 화장터 주차장에는 언제부터
모여들었는지 영구차들이 ㅃㅃ히 서 있었다. 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앞에 보이는 건물 앞에서 종환씨가 서 있었다. 종환씨 조금 떨어진 곳에
약혼식에 나왔던 작은 아버지가 서 있었고, 명륜동 집에서 만난 적이 있는
분들이 몇 명 있었다.
  "작은 아버지께 가서 인사하고 와요."
  "아버님은요?"
  종환씨의 말에 나는 아버님부터 찾았다. 이미 아버님의 관은 화구에 들어간
뒤였다. 죽어도 용서 받지 못할 큰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았다.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훌륭하신 분이셨는데 참으로 애석합니다.'
  낯익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는 약간은 놀라는 표정으로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말이란 인간이 신에게서 받은 많은 벌 중에 가장 무서운 형벌이라더니
충식씨와 함께 그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는 동안에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형식적이나마 인사말을 제대로 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야말로 말의
남용이었고 오용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눈에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고생이 많겠구나."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6^3456,12,15^때 형제가 월남하여 오직 한 분밖에 안 계신
형님이었다. 그 형님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딱 한 번의 면회를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뒷일을 수습한다고 말했으며 수습과정에서 거둬들인 많은 돈을
이쪽에서 항의도 할 수 없도록 교묘한 방법으로 챙겨 넣었다는 것을 종환씨와
그이가 말하는 걸 얼핏 수안보에서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불구가 된
조카를 말로만 여러 번 찾았지 충식씨와 나는 한 번도 그분을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다행히 종환씨가 옆에 와 있었다. 그리고는
넌지시 작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충식이 휠체어 타고 다니기 편하게 집사서 다 뜯어 고치고 정원 꾸미고
하느라 그동안 윤희씨 무척 애썼어요. 충식이 사는 거야 이젠 걱정 없고, 일하는
사람이 둘씩이나 되니 고생이라야 윤희씨 마음의 고생뿐이죠."
  나는 얼른 종환씨의 말뜻을 알아 차렸다. 그리고 그이가 여기 안 온 것은
다행으로 여겼다. 다시 종환씨가 내게 말했다.
  "윤희씨 이제 가세요. 수업 빠지면 안 되잖아요. 끝나는 대로 아버님 유골은
제가 모시고 충식이한테 가 있을 테니까 수업 끝나면 바로 오세요. 우리 셋이
뿌려야죠."
  그의 마지막 말에는 강한 오기가 박혀 있는 듯했다.
  오후 1시까지는 학교에 도착을 해야 되기 때문에 더 머물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왔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날 기다리고 있었는지 내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종환씨가
그 사람을 업고 일어섰다. 남한산성 입구에 도착을 하니 날은 이미 어두워서
캄캄한 산 속에 바람소리와 물소리만이 들렸다. 차를 세우고는 종환씨가
내리더니 그이와 나에게 흰 장갑을 끼워 준 후 하얀 창호지 같은 종이 접은 것을
차에서 꺼냈다. 그 종이에 싼 것을 나에게 주고는 종환씨가 그이를 등에 업더니
개울가로 내려갔다. 나는 두 손으로 그것을 받쳐들고 충식씨는 친구의 등에
업혀 한 줌씩, 한 줌씩 개울에 뿌렸다. 그날 우리 세 사람은 어두운
남한산성에서 술을 마시며 한없이 울었다.

  신장에서의 생활은 두 사람에게 가끔씩 얘깃거리가 되었다. 우리의 생활중에
가장 어려운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충식씨는 얼마나 힘이 들었으랴.
  충식씨의 괴로움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해라기보다 사랑의 포용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의 고통을 다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세월이 간 지금에
와서는 더욱 더 내가 당시 그의 고통을 이해해 주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쩌면 이제야 내가 그이의 고통을 진심으로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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