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추억소설

7.서글픈 연가

시인김남식 2013. 11. 30. 14:34
7.서글픈 연가 


 

아침을 먹고 나서 낮에 친구들을 만나고는 바로 충주에 가겠다고 거짓말을 한

집을 나섰다. 거짓말은  할수록 는다더니 정말 그러했다.
약수동에 도착해 보니 두 사람은 다투기나 한 듯 화가 난 표정들이었다. 혹시
서울을 떠나는 것이 서운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종환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종환씨의 심하게 화난 말투는 처음이었다.
  "윤희씨, 우리 이 녀석 말에요. 차라리 모른척 합시다. 혼자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자구요. 사람을 점점 갈수록 실망시키면서 자꾸만 힘이 쭉쭉 빠지게
만드니까 이젠 저 혼자 다 하라고 그래요."
  조금도 나쁜 뜻이 아닌 줄 알면서도 종환씨의 심한 말에는 나는 섭섭함을
느꼈다.
  "종환씨 말씀이 너무 지나쳐요. 저 분이 우릴 나쁘게 하자고 그러시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보기엔 충식씨는 너무 훌륭하게 잘 견디고 있는 거예요.
종환씨 답지 않게 돼 그러세요? 무엇 때문인데요?"
  종환씨가 대답을 하려 하자 그가 말을 막았다.
  "윤희야, 나 어두워지면 니네들의 말에 따를게. 그땐 이 방에서 나갈래. 차가
여기까지 오는 것도 아니고, 종환이가 날 업고간다고 하지만 골목에 사람들이
있을 거 아냐. 너 이해 못 하겠어? 윤희야, 임마. 오늘만 내 부탁을 들어줘.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다음부터는 안 그런다는 그의 말이 심한 아픔이 되어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늘어진 그의 왼쪽팔과 일그러진 얼굴에 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고는 살짜기 웃어 보였다.
  "충식씨, 미안해요. 전 아직도 충식씨 고통이 무언지 잘 모르나봐요. 날 보고
바보라고 놀리던 일 생각나요? 정말 난 바보에요. 우리 날이 어두워지면 그때
나가기로 해요."
  그러자 종환씨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윤희씨, 그건 충식일 위하는 게 아니에요. 저 녁석이 자꾸 사람을
피하는대로 우리가 덩달아서 숨겨주면 나중에는 서로 엉망이 된다구요. 무엇
때문에 피해요. 얼굴 때문에요? 난 더 흉한 얼굴들을 여러 번 본 기억이 나요.
그것도 환한 대낮에 길거리에서 말에요. 충식인 저러다가 죽을 때까지 우리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해요. 그게 어디 사는 거예요? 말로는 미안하다
고맙다하면서 우리 생각도 좀 해 줘야죠. 답답하고 참 못난 자식..."
  충식씨가 어떻게 그 말을 다 참아가며 듣고 있는지... 난 차라리 그가 벌컥
화라고 내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기가 죽은 얼굴을 하고 종환씨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충식씨의 그런 모습을 본다는 건 나에게 너무도 큰 고통이었다.
  "종환씨는 지금 두 발로 서 있죠? 충식씨는 혼자 일어나 앉지도 못해요.
종환씨는 얼굴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일은 없겠지만 이 분은요,
자신도 보기가 싫어 거울조차 안 보는 사람이에요. 우리 어떻게 충식씨더러
잘한다 잘못한다 라고 핀잔을 줄 수가 있어요. 우린 이 사람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해요. 또 해서는 안되구요."
  나는 말을 끝내고 밖으로 뛰쳐 나왔다. 마당 한 구석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그에 대한 사랑, 한없이 뜨거운 연민은 자꾸만 오열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아서 얼른 눈물을 닦았다. 종환씨였다.
  "미안해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우뚝 서 있는 종환씨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그
사람의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아녜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종환씨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면서도 말이
그렇게 나왔어요."
  종환씨는 차 시간을 변경하고 오겠다고 집을 나갔다. 삼양동에 있는 병원의
엠불런스를 이용하기로 종환씨가 준비를 해 두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충식씨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놀라는 표정으로 얼른 비벼
껐다. 그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충식씨, 담배를 피우다 말고 왜 그렇게 놀라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어 보았다.
  난 그때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놀라움을 떨치지 못했다. 사랑하는 그에게
나쁜 표현을 해도 될지는 모르지만... 충식씨에게는 너무도 죄스러운 말이나
비굴하다고밖에 달리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나 말야, 윤희야. 담배 조금씩만 피울게. 너 고생하는데 담배까지 피워서
미안하다. 차츰 줄이다 보면 끊게 되겠지."
  난 그이 앞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시작도 하지 전에 절망이었다. 분명 그
사람은 마음까지도 옛날의 충식씨가 아니었다. 몸은 완전히 불구였고 이젠 담배
한 대에도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앉아서
나 스스로의 무기력함에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좀더 구체적이어야 했다.
  "충식씨는 날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아요. 내가 아무렴 충식씨 담배 끊게
하겠어요? 담배가 몸에 해롭기 때문에 조금 피우시는 건 몰라도 그런 게 아니면
마음놓고 피우세요. 알았죠?"
  "응 알았어."
  금방 어린아이 같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엠블런스가 왔다고 종환씨가 알려 주었다.
운저기사가 짐을 나르고 충식씨는 두터운 가운을 두른 채 종환씨의 등에 업혔다.
그동안 정이 들었다며 서운해 하는 아주머니와 가족들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약수동 좁은 언덕길을 내려 왔다. 차 안에 있는 환자용 들것에 충식씨는
눕혀지고 떠날 준비는 다 끝난 것 같은데 종환씨가 내릴 생각을 않고 있었다.
  "종환씨, 안 내리세요?"
  종환씨가 나와 누워있는 친구를 보며 빙긋 웃었다.
  "나도 수안보에 가려구요. 촌놈 온천물에 목욕 좀 하게 데려가 주세요.
충식아, 내일 나하고 온천수에 목욕이나 하자."
  "회사에는 안 나가세요?"
  친구 때문에 결근을 많이 종환씨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다 말해 놨어요. 미리 허락받은 결근은 괜찮아요."
  "너 그러다 회사에서 쫓겨나겠다, 임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충식씨는 친구가 따라가는 게 반가운지 갑자기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종환씨와 농담을 하며, 기분 좋은 여행을 하는 사람 같았다.

  수안보에는 밤 늦게야 도착을 했다. 노인 내외분은 온다는 시간에 도착을
안한 우리를 걱정했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방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방바닥도 따뜻했다.
  그를 한쪽으로 눕히고 대강 급한 짐만을 풀어 놓은 후 세 사람은 곧바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역시 종환씨의 생각이었고 준비도 그가 했다. 차에서
마지막으로 꺼낸 낯선 가방에는 담배와 일주일 동안 충식씨의 간식이라며
맛있는 것들이 자꾸만 쏟아져 나왔다. 우리 세 사람은 수안보에서의 첫날밤을
유쾌히 보내고 10시가 넘어서야 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밤새 술을
마실 테니 여자는 빠지라면서 날 보내주었다.

 


  이튿날 여섯 시에 하숙집을 나와 수안보에 가보니 충식씨는 술에 취해 잠들어
있고 종환씨가 밤새 마신 술 탓인지 꺼칠한 모습으로 짐을 풀어놓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종환씨, 눈 좀 붙이세요. 피곤해 보여요."
  이렇게 말한 나는 종환씨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얼른 빼앗았다.
  "이리 줘요, 윤희씨. 방 정리는 내가 해 줄께요."
  아직도 술 기운이 남아 있는지 약간은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윤희씨, 내 친구 잘 부탁해요. 토요일 저녁마다 꼭 올께요. 미안해요."
  "오히려 제가 미안해요. 우리를 이렇게까지 걱정해 주시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잘될 거에요. 뭐가 잘되는
건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더 이상 나쁜 일은 없겠죠. 굳이 토요일에 꼭
오실려고 하지 말고 한가할 때 놀러 오세요."
  남자들 관계를 얘기할 때 우정이라거나 의리라는 말로 표현을 하는데 종환씨
같이 의리 있는 우정을 가진 사람도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하숙방은 은영이가, 충식씨의 방은 종환씨가 깨끗이 정돈을 해준
상태에서 우리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첫 수업이 시작되는 날.
  새벽에 수안보에 다녀와서 출근 준비를 하는 나의 가슴은 설레이면서도
새로운 생활의 시작에 대해 매우 긴장을 하고 있었다. 달라진 환경과 낯선
사람들로 인해 어색해 하고 쓸쓸해 할 충식씨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루종일
누워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불편할 때는 주인 아저씨를 찾아서 부탁을 하라고
했지만 얼굴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고 있는 충식씨가 그렇게 할 지도
의문이었다.
  하숙집과 학교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서인지 집을 나와 골목을 벗어나니
많은 학생들이 등교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신입생만 빼고는 조회시간에
소개되었기 때문에 나를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이 꽤 여럿 있었다. 부끄러운 듯
고개만 숙이고 지나가는 학생도 있었고 인사를 받는 나 역시 몹시 쑥스러웠다.
뒤에서 오고 있는 몇 명의 학생들이 소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저 선생님 이번에 새로 오신 무용선샌님이잖아. 우리 동네에 사시나
봐."
  "깍쟁이 같지? 무용시간에 꼼짝 못하겠다, 얘."
  "너 서울 깍쟁이란 말 못 들어 봤어?"
  약간은 느린 듯한 말과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날 뒤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 지나간 고교시절이 생각나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이 한 분 새로 들어오시면 첫 인상에 대해 저마다 평들이 달랐고 첫
시간에는 그 선생님에 대해 모든 것이 알고 싶어서 질문을 하다 못해 나중에는
'선생님 키는 얼마에요?' '몸무게는요?' 하면서 어이없는 질문까지 하던 일이
생각났다. 뒤돌아 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그
아이들에게 대답을 해 주었다.
  '얘들아, 난 깍쟁이가 아냐. 단 너희들이 말을 잘 들을 때만이야. 말을 안
들으면 그때는 깍쟁이가 될 수밖에 없지? 나는 충주가 처음이고 교사생활도
처음이니 너희들이 날 도와 주어야지 안 그래?'
  교무실을 들어서면서 '안녕하세요'하며 일찍 출근해 있는 교사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체육선생님이면서도 생활 지도부 주임인 박선생이 말을 하자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농담을 하였다.
  "물어보면 다 대답해 주죠."
  웃으면서 대답을 하고는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교무부, 연구부, 생활지도부 등 여러 부서 중에 나는 생활지도부에 있게 되었고
내 책상은 물론 맨 끝에 말단자리였다. 조금 후 직원 조회가 시작되었다. 한
학기 수업계획안, 일주일 지도안, 그리고 수업일지 등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의
문서 제출과 교회 생활지도 철저 등 모두가 내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지시사항들이었다. 첫 수업은 2교시에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차라리
중학생들이면 조금은 마음이 편했을 텐데, 고등학교 2학년으로 다 큰
학생들이라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둘째 시간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둘째 시간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출석부를 가지러 가는데 다른 교사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나에게 주는 격려의 박수였다.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교실문을 막 열고 들어서는데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들이 교단으로 걸어가는
나를 따라오면서 학생들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그리고 교실에서
그날은 박수세례였다.
  "날 환영해 주는 거에요?"
  내가 얼굴이 달아오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네에."
  학생들의 대답소리가 교실을 울렸고 이내 반장의 '차렷, 경례'에 따라
학생들과 나는 인사를 나누었다.
  바로 수업 계획을 말하려고 했는데 아이들은 첫 시간이고 선생님도 새로
오셨으니까 궁금한 게 많다며 예상대로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 대학 졸업하셨어요?"
  "금년에요."
  ''얘... 햇병아리인가 봐'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선생님 댁은 서울이세요?"
  "네, 그래요."
  "충주에서는 어느 동네에 사세요?"
  "교현동에 살게 되었어요."
  '어머 우리 동네야'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오더니 예쁘장하면서도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한 학생이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결혼은 안하실 건가요?"
  그 학생의 질문이 끝나자 여학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결혼요? 왜 안해요? 할 거에요."
  "선생님, 애인 있으세요?"
  "네,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어머 좋겠다' '어머 멋있다'하면서 학생들의
호기심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어떤 분이세요? 선생님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얘기 좀 해주세요."
  충식씨가 떠올랐다.
  "그분은 어떤가 하면요, 미남이고 마음도 넓고, 어떻게 말을 할까..., 한
마디로 말을 해서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 몰라요. 그런데 이 말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느껴진다는 뜻이에요."
  의외로 말 뜻을 이해하겠다는 듯이 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해 보였다.
  아침에 나를 놀려주던 박선생의 말이 맞았다. 학생들의 궁금함은 끝이 없었고,
나는 대답을 하느라고 쩔쩔매는 동안 수업시간이 거의 반이나 지나갔다. 한
학기 동안의 무용수업 계획을 알려 주고는 첫 수업을 끝내고 나왔다.
  아무튼 이 날은 나를 무척이나 긴장시켰지만 순박하고 아름다운 소녀들과의
무용 수업은 희열마저 느끼게 하였다. 교사분들도 처음 사회 생활을 하는
나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고, 특히 나이가 든 분들은 교무실의 막내라고
학생같이 귀여워해 주시는 분도 있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주인 아주머니께 적당히 둘러대고는 곧바로 수안보로
향했다. 문을 여니 뜻밖에도 충식씨는 휠체어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어머, 충식씨."
  "왜? 내가 누워 있을 줄 알았지? 아저씨한테 앉혀달라고 부탁을 드렸어."
  얼마만에 보는 그의 다정한 미소인지... 둘이서만 보내는 첫날인데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았다.
  "잘 하셨어요.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아주머니나 아저씨 부탁을 하세요.
그리고요 낮에 심심하면 뒷문을 열고 바람도 쐬고요. 방문을 열어도 돼요.
아무도 없으니까."
  나는 휠체어 앞에 앉아서 그의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그를 올려다 보면서
웃어보이자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윤희야, 그렇게 좋으니? 피곤하지 않아?"
  그는 나의 긴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나를 내려다 보았다. 그의 손이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나의 가슴은 파르르 떨렸다. 오랫동안 갈망해
온 나의 사람과 함께 있다는 행복감에 나의 가슴은 자꾸만 떨리고 있었다.
  "충식씨는 안 좋아요? 별로 기쁘지 않은 사람같이 몇 번이나 물어보세요?
이젠 그런 말에 대답도 안할 거고 화를 낼 거에요."
  충식씨는 나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이렇게 된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윤희가 하도
신기해서..."
  라고 말하며 피식 웃었다.
  저녁상이 들어왔다. 무우국에 나물, 김, 계란 후라이가 반찬으로 나왔다.
상을 들고 와서 아주머니가 말했다.
  "반찬이 입에 맞을는지 모르겠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얘기를 해요."
  아주머니가 나가고 수저를 그에게 쥐어 주었지만 도무지 식사를 할 생각을
않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충식씨. 식사를 하셔야죠."
  걱정스런 말투로 내가 묻자 그는 겨우 힘들게 식사를 하였다. 밥을 많이 남긴
것이 미안한지 겸연쩍게 웃으며 다음부터는 많이 먹겠다고 했다.
  상을 물리고 나서 커피를 타고 있는데 충식씨가 나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옛날같이 힘있게 '윤희야, 임마'라고 부를 때는 몰라도 작은 목소리로 '저어,
윤희야'하면 무슨 일일까 하고 가슴이 뛰곤 하였다. 내가 긴장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나 말야. 미안한 부탁이 있는데 말해도 돼?"
  "미안하면 하지 말고 미안하지 않으면 부탁하세요."
  충식씨는 내가 뾰로통해 하자,
  "알았어. 알았다구, 임마."
  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나 아침은 빵으로 했으면 좋겠어. 빵만 사다 주면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을게. 미안해. 아--아냐 미안하지 않아."
  나는 그에 대해 알아둬야 할 게 너무도 많은데 세세한 것에는 신경을 안 썼던
것이 부끄러웠다. 사실 식사 문제가 큰 것이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매 끼니마다 밥을 먹게 했으니 소화가 될 리가 있겠는가? 그가 말을
하기 전에 알아서 하지 못한 내가 오히려 미안스러웠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내가 사 가지고 온 석간신문을 보고, 난 학교에 제출할
지도안을 짜는 등 한적한 곳에서 그와 갖는 흡족한 시간이었다. 밤이 늦었는데
그는 잠이 오지 않는지 누울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밤에는 춥다고 주인
아주머니가 장작을 잔뜩 아궁이에 피운 때문인지 방이 덥고 건조해서 뒷문을
조금 열었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던 그 사람은 혼잣말로 '바람이나
쏘였으면...'하고 중얼거렸다.
  "충식씨, 밖에 나갈까요?"
  "어떻게 나가?"
  내가 휠체어를 가리켰다.
  "임마, 네가 날 일으켜서 의자에 앉힐 수 있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이 앞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내가 얼마나 기운이 센데요. 만약에 힘들면 아저씨 부르죠 뭐."
  그의 옆으로 가서 어깨 아래로 나의 팔을 넣고는 그를 들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게 잡고 있고 난 있는 힘을 다해 그를 의자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성공이었다. 의자에 앉은 그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웃음을 지은 채 날 바라보았다.
  "어때요? 놀랬죠? 내가 이 정도라고요."
  이렇게 말하며 나는 의자 뒤로 갔다. 막상 나가려고 보니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갈 게 걱정이었다. 마당 끝에 있는 헛간 같은 허름한 창고가 생각이 나서
그곳으로 가보았다. 오래된 것 같기는 해도 꽤 단단해 보이는 나무토막들이
한쪽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그 중에서 긴 것을 몇 개 골라 마루 끝에
비스듬히 세워 보았다. 바닥에서 받치는 것이 없어 조금만 건드려도 옆으로
쓰러졌다. 나무 소리를 들은 아저씨가 밖으로 나와서는 우릴 보더니 곧 눈치를
챈 듯 다정히 웃으며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휠체어의 방향을 바꾸고는 의자
뒷부분에 다리를 바짝 붙이더니 '여보게 힘주지 말게'하시면 의자를 뒤로 잡아
당기셨다. 아저씨의 다리에 얹혀진 의자는 쉽게 마당에 내려졌다.
  "추운데 어딜 가려구?"
  "답답해서 바람이나 쐬려구요."
  "의자에는 아가씨가 앉혔수?"
  "네 아저씨."
  "그러게 다 살게 마련이유, 닥치면 다 한다니까. 저 큰 사람을 들어
올리다니..."
  멀리 가지는 말라고 하시고는 아저씨가 들어간 뒤 우리는 집을 나섰다. 너무
밤이 깊어 뒷산으로는 못 가고 큰 길 쪽으로 나오다 보니 곧 문경으로 가는
아스팔트 길이 나왔다.
  "춥지 않으세요? 그만 돌아갈까요?"
  그가 오른손을 어깨 위로 더듬거리며 나의 손을 찾았다. 내 손을 잡고는
얼굴에 갖다 대었다.
  "윤희야, 이젠 미안하다는 말 안할게. 과거는 다 잊어버릴 거야. 앞으로는
너만 생각해야지.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널 도와주는 건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어. 이곳에 오니까 약수동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많이 안정되는 거 같고 책도 읽혀질 것 같으니 낮에 시간을 내가 잘 알아서
보내도록 할게. 학교에서는 내 걱정하지 말고 학생들 열심히 가르치도록 해,
알았지?"
  나는 그의 말이 너무도 기쁘고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그의 목을 꼭 끌어 안은
채 그의 얼굴에 볼을 비볐다.
  모든 일은 잘 되어갔다. 제일 걱정했던 그의 마음이 안정이 되어가는 것 같아
다른 일은 걱정될 게 하나도 없었다. 산책에서 돌아온 그는 오늘은 잠을 좀 잘
것 같다며 눈을 감았다.
  아침 출근 준비를 대강 해놓고 잘려고 보니 옷을 갈아 입기가 난감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그는 눈을 감은 채 말을 걸어왔다.
  "너 왜 그러구 서 있어? 빨리 자야지, 아침 일찍 나갈 거 아냐."
  "충식씨 불 끌께요."
  밤새도록 불을 켜야만 된다는 약수동에서 들은 기억이 났다.
  "나 불 끄면 잠 달아나."
  "그럼 난 어떡해요? 이 옷 입고 자라구요?"
  "바보같이... 내가 눈을 감고 있을 게 갈아 입어."
  "안 돼요. 눈 감고도 나 서있는 거 금방 알아 맞히고는..."
  "이번엔 꼭 감을게, 자 꼭 감았어. 눈 안 뜰게 걱정 말고 갈아입어."
  나는 그의 눈을 감시하면서 재빨리 옷을 갈아 입었다. 그러나 막상 누울려고
하니 내 이부자리가 없었다. 어색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이불을 반쯤 젖히더니
요를 가리키며 누우라는 손짓을 했다.
  "나 있잖아요. 그냥 바닥에서 잘래요. 방도 따뜻한데 뭐."
  "바닥에서 어떻게 잔다고 그래. 이리 와, 같이 자자."
  "싫어요. 어떻게 같이 자요."
  그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왜, 내가 이래서?"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아뇨'하면서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팔을 나의 머리 밑으로 뻗더니 내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처음으로 그의
옆에 누운 나는 잠이 쉽게 오질 않았고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윤희, 자니?"
  "아뇨."
  그는 팔에 힘을 주더니 나를 끌어 당겼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의 가슴에 난
얼굴을 묻을 수가 있었다.
  "윤희야, 미안하다."
  그의 깊은 한숨이 내 머리에 닿았다.
  "또 미안해요? 이번엔 뭐가요?"
  "오늘이 윤희하고 처음으로 같이 자는 날인데 이렇게 안아주기 밖에
못하니--. 그것도 한 팔로 말야."
  스물네 살의 여자는 그 말뜻을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할 뿐이지.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눕히고 고작 팔베개나 해주어야 하는 남자의 깊은 한숨의
의미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몰라야 했다. 절대로 그를 엿보아도
탐내어도 안 되는 것이다. 척추에다 요추까지 마비가 된, 그것도 하늘같이
사랑하는 남자 옆에서 내가 제일 먼저 스스로 다짐한 것은 바로 이 문제를
초월하는 일이었다. 쉬운 일이었고 또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하여튼 나는 팔베개를 하고 그의 목을 끌어 안은 채 아주 깊은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나는 첫날밤을 지낸 신부같이 수줍은 마음이 들어서 얼른
일어나지 못하고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잘 잤니? 윤희야."
  그이도 깨어 있었나 보다.
  "네, 잘 잤어요. 충식씨도 잘 잤어요?"
  잠시 나를 힘껏 끌어 안아 주고는 팔에 힘을 풀었다.
  "빨리 가야지. 저녁에 일찍 올려고 애쓰지마. 학교 일 다 끝나면
퇴근하라구."
  그날 아침 나를 더울 기쁘게 해주었던 것은 내가 나오는데 충식씨가 방문을
열고 찻길 까지 이르도록 계속 밖을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아침이었다. 아침 "페르귄트 조곡"이 있었으면 더 없이 좋았을
텐데...

  긴장되고 어색했던 학교 생활도 차츰 익숙해지고, 충식씨도 오른팔 하나로
무엇인가를 혼자 힘으로 해 보려고 노력을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이가
휠체어에 앉아 책을 볼 때 옆에서 커피를 끓이는 일은 내가 하는 일 중에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

 


  오른팔에 의지해서 스스로 앉을 수 있도록 자꾸 연습을 하면서 커피도 혼자
끓이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라도 더 늘리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풀리자 방문을 자주 열기도 하며 가금씩은 아저씨하고 얘기도
하는 등 까다로운 성격도 조금씩 수월해지는 것 같았다.
  주말이면 종환씨는 어김없이 내려왔지만 내가 서울로 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만나기가 어려웠고 일요일에 내가 당직일 때에는 혈맹의 관계인 세
사람은 즐거운 주말을 즐길 수가 있었다. 나는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충주와 수안보를 신이 나서 왔다갔다 했다.
  특히 우리를 똑같이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그이의 대소변과 목욕 문제를 마치
오래 살아온 부부같이 두 사람은 능청스럽게 잘해 나가고 있었으며, 하나 더
장만한 이부자리는 주말이면 내려오는 종환씨의 침구로 해버리고 나는
망설임없이 그이 옆으로 고양이 같이 파고들곤 하였다. 그리고 그의
팔베개만으로도 편안히 잠을 자는 등 우리의 일은 모두 잘 되어가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나의 하숙집 아주머니께 수안보에 가기 위해 더 이상 거짓말을
하기가 어려웠고, 교사로서 거짓말을 한다는 게 양심의 가책도 되어 늘 마음이
불안했다.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가는 좁은 지역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지도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학부형이기도 한 아주머니는 청주에서 교육을 받은 분으로서 꽤 이해심이
있고 말씀이 별로 없는 조용한 분이었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안방을
노크했다. 아주머니는 신문을 들여다 보다 말고 나에게 편히 앉으라고 말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어 될지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드디어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아주머니, 저 긴히 의논드릴 일이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저한테 의논할 일이 다 있으세요?"
  아주머니는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딸이 다니는 학교의 교사라는 걸
의식했는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주머니께 그동안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왔어요. 수안보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어요."
  "아유, 선생님도 별말씀을 다 하시네. 거짓말이라뇨.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으셨겠지."
  아주머니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해를 하려는 듯 말을 받았다. 나는
충식씨와의 관계가 그이가 지금 수안보에 있다는 것까지 대강 말하고는, 아직
집안에서 모르고 있으니 아주머니께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참 이상하다 했죠. 혼자서 얼마나 힘이
드세요? 세상에 그 양반은 복도 많으시지. 요즘 세상에 선생님같은 분도 흔치
않아요."
  아주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 옴을 느꼈다.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닌데... 나는 세상에 드문 착한 여자가 되고 불구인 그 사람은 복이
많다니... 그렇게 인사를 받는 것이 가슴 아팠다. 우리는 진실로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기 때문에 가슴아픈 연민을 느끼며 절망에서 함께 일어나고
슬픔 속에서 함께 기쁨을 찾고 있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건강하고 젊은 여자와
불구인 남자와의 관계 외에는 아무런 의미를 붙여 주질 않았다. 우리는 가족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나타나지 않고 철저하게 숨고 또 숨으며 살아야 했다.

  나는 그이와 생활을 하면서 언제인가 시아버님의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침울해 하면서도 비통해 하는 모습에 다시는 내쪽에서 가족들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기로 작정해 버렸다.
  그 사람은 부모님과 경미, 그리고 명륜동 집을 생각하면 밥먹는 것조차
죄스러우며, 이 지경에서도 죽음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아버지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내가 아버님을 뵌다 해도 그분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되거니와 오히려
마음의 부담만 드리는 셈이니 알려고도 하지 말고 말을 꺼내지도 말라고 내게
힘없이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아버님을 생각하면 그분의 심정이 어떠했을 거라고 감히
추측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충식씨의 죽음이 거짓이었다는 말을 종환씨에게서 듣던 날, 그이의 소식
만큼이나 내가 놀라게 받아들였던 것은 그의 아버님에 대한 소식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시아버님은 앞서도 말했듯이 사업을 하면서 정계에도 몸을 담고
계셨고, 학식이 많은 분으로서 특히 문학이나 예술 전반에도 놓은 안목을
지니고 있어서 책과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할 때에는 열변을 토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그의 아버님을 처음 뵈었을 때 무용에 대해서 너무도 많이 알고
계셔서 내가 긴장을 했던 기억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외아들의 사고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떠나서는 참혹하리 만큼 엉망이
된 아들 앞에서, 장차 며느리가 될 젊은 여자의 앞날을 걱정하던 분이었다.
그리하여 결국은 나에게 충식씨의 죽음을 알려 주었고, 의식은 회복되었으나
심한 불구인 아들을 설득시키는데 또 그분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내게는 그렇게 자상할 수 없는 그분의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 약수동에 가는 차 속에서도 자꾸만 이유를 묻는 나에게
종환씨는 그냥 사업이 잘못되어서라는 대답만을 되풀이했고, 그날 집에 밤늦게
돌아온 나는 아버지께 사업이 잘못되어서 교도소에 가는 것은 어떤 경우가
되냐고 여쭈어 보기도 했다.
  그러자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부정수표 거래나 채권자에게 의해 입건 또는
구속이 되는 수가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충식씨를 다시 만난 기쁨속에서도 줄곧 아버님의 생각이 날 괴롭히고 있었으나
충식씨 앞에서는 차마 걱정되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다.
종환씨는 가끔씩 아버님을 뵈러 가는 듯했지만 내게는 도무지 말을 하려 들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충식씨와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면서 궁금한 마음을
억제시킬 수밖에 없었다.
  충식씨는 집안이 번창할 당시에 집안에 자주 드나들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운전기사까지도 섭섭하다며 세상 인심을 한탄하고 원망하였다.
  평소 무척이나 깔끔하시고 식성이 까다로웠던 아버님을 걱정하는 내게
종환씨는 자기가 알아서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적당한 시기를 보아서
아버님을 만나게 해 줄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해주었다.
  '아무개네 집은 하루 아침에 망했대. 숟가락 하나 건지지 못했다는데' 이러한
소문이 나돌 정도로 그이의 집안은 완전히 몰락이었다. 하루 아침이 아니고 한
순간에 몰아닥친 가정의 파산이었던 것이다. 아버님은 잠시 피신하면 될지는
모른다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거실에 앉아 계시다가 소속을 알 수 없는
어느 짚차에 실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충식씨와 함께 삼양동 종환씨
집으로 떠났고 정미는 작은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 당시의 자세한 상황은 지금까지 잘 알 수 없으나 어머니는 다시 친구분이
마련해 준 셋방으로 옮겨, 몸이 불편한 충식씨를 돌보면서 아버님의 면회를
다니는 동안 병을 얻으신 듯했고, 얼마 후 주무시다가 충식씨의 손을 잡은 채
숨을 거두시고 말았다.
  작은 집과 단 두 가족만이 월남했기에 남은 가족이라고는 작은 아버지
가족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머님의 빈소 또한 쓸쓸하기 짝이 없었으리라
짐작된다. 더구나 아버님이 교도소 생활 중이었기 때문에 평소 그분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도 찾아왔어야 사람의 도리일 텐데도 누구 하나 얼굴 내미는
사람이 없었고, 아버님 친구 몇 분과 어머님 친구분, 그리고 정미와 종환씨만이
빈소를 지켰다고 한다.
  충식씨는 처절한 오열과 절규를 토하면서도 사람들을 피하려고만 하고,
끝내는 종환씨를 붙들고서 자리를 뜨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바람에 종환씨의
어머니가 임시로 구해 주신 방이 바로 내가 찾아간 약수동 산동네의 집이었다.
  어머님을 화장하고 절에 위패를 모신 후, 약수동을 찾아간 종환씨에게 더
이상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싫고 높고 외딴 지대라서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충식씨의 말에 집주인에게 부탁을 해서 날 다시 만나던 날까지 있게
되었다고 했다.
  정미는 작은 집으로 가기 전 대만 사람과 교제 중에 있었고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결혼을 하여 대만으로 떠난 것이었다.
  어머님을 잃은 후 마음의 안정을 잡지 못하고 있던 충식씨는 정미가 대만으로
떠난 이후부터 아주 조금씩 평정을 되찾은 듯했다고 한다.
  또한 아직은 아버님의 문제가 남아 있긴 했어도 그런 상태에서 하나뿐인 누이
동생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던 것같다. 같은 서울에서 살지
못하는 것을 서운해 하면서도 차라리 정미를 위해서는 멀리 떠나 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님은 신교육을 받은데다 불심이 지극한 분이었고, 아버님은 학식이
풍부하고 자상한 그러면서도 멋있는 분이었으며 그가 살던 집은 넓은 정원에
이층의 웅장한 돌집이었다. 그곳에서 살던 네 사람의 가족은 모두들 성품이
고왔고, 서로 화목한 생활을 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충식씨의 교통사고로부터 집안의 풍파가
일어나기까지는 불과 몇 달이 안 걸렸다. 나는 그 사람이 이런 엄청난 일들을
더구나 불구의 몸으로 잘 견디어 준 것이 너무나도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수안보 구석의 초라한 집에서 나와 같이 웃고, 책도 읽고 하며 시골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그 사람은 어느 때는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웃음이
반드시 웃음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고 책을 보는 듯할 뿐이지 책장을 잘 넘기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색한 웃음과 책을 읽는 모습이 그가 내게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의
표시였다. 그리고 나는 충식씨의 그런 사랑에 나의 정성을 다해서 보답하고
싶었다.

 

 

  충주에 온 지도 벌써 한 학기가 다 지나고 여름방학을 맞게 되었으며 여름
내내 나는 서울과 수안보를 오고갔다. 고맙게도 종환씨는 휴가를 수안보로 와
주었다.
  수안보 생활에 익숙해진 충식씨는 곧잘 농담도 하는 등 그 해의 여름은
더위도 못 느낄 정도로 빨리 지나가 버렸다.
  개학과 함께 다시 바빠지기 시작한 학교 생활은 겨우 출퇴근 기에서 느껴지는
상큼한 공기들의 접촉에서 오는 계절의 변화만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추석이 가까워 오자 어디서부터인지 또 누구에게서인지 술렁임이 일고
있었다. 귀향이라고 하지만 나는 상경을 해야 하는 까닭에 왠지 그런 말에는
익숙하지가 않았으며 오히려 충식씨가 보통 때보다 더 마음이 쓰였다.
  기다림도 아닌데 추석은 꼬박꼬박 다가와서 부모님을 위해 상경을 해야 할지
충식씨를 위해 수안보에 머물러야 할지 나로 하여금 잠시 망설이게 하였으나
나의 선택은 하나였다.
  상경을 대신해서 집으로 간단히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축하인사를 하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멀리 떨어져 혼자 있는 것이 늘 안타까워서 추석에는 꼭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손녀의 '상경불가'에 몹시 서운해
하셨다. 나 역시 할아버지나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과는 달리 연휴가 아니었던 까닭에 충식씨를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이었다.
  추석날 아침, 죄송한 마음에 다시 서울에 전화를 드리고는 충식씨 어머님의
제를 올리기 위해 일찍이 "대원사"라는 절에 다녀왔다.
  추석날이라고 이것저것 조금씩 장만은 했지만 역시 충식씨와 나에겐 다른
생각들로 서로 아무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충식씨는
간혹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아버님, 어머님, 정미, 그에겐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뿔뿔히 흩어져 있어야 되다니... 시공을
초월해 버린 세월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더 소중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였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때문에 힘들어 하는 그의 모습이 나에겐 더욱 가슴 가까이에
느껴지는 것이었다.
  추석인데도 자기 때문에 집에 가지 못했다고 계속해서 미안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라도 다녀오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러는 그에게 내가 더욱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쓸쓸하게 했던 것은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
  그날 종환씨가 아버님을 면회 간다고 했을 때 나도 뵙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종환씨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내 말을 거절 해 버렸다. 아버님은
평일에도 마찬가지였으나 더구나 명절인데 어머님과 자식들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겠으며 그 중에서도 충식씨 걱정이 대단하셨을 거다.
  점심을 먹은 후에 피곤하다며 자리에 누운 충식씨는 잠을 못 이루는 듯했다.
감고 있던 눈이 깜박거리는 것을 모른 척하고 있던 나는 가늘게 새어 나오는
그의 한숨소리를 듣고서야 말을 걸었다.
  "충식씨, 잠이 안 와요?"
  "응."
  "잠 안 오면 나랑 놀아요. 난 심심해서 죽겠는데..."
  그는 눈을 뜨더니 빙긋이 웃으면서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오른팔을 옆으로
벌렸다.
  "윤희야, 너도 이리 와서 누워."
  충식씨의 팔베개는 언제나 나의 모든 시름을 앗아가 주었다. 그의 목을 끌어
안고 머리카락에 와 닿는 따뜻한 숨결을 느끼며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눈물이 그의 어깨에 흐르고 있는 것을 느끼며 깜짝 놀랐다.
  "미안하다, 윤희야."
  나는 얼른 그의 입을 막았다.
  "아녜요, 충식씨. 제가 미안해요. 그리구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나 대학에
입학하고 신촌 '복지'에서 만나던 날 집에 바래다 주면서 '임마 공부 열심히 해.
멋이나 부리지 말고...'하던 충식이 아저씨도 고맙고, 언젠가 술에 취해서
'윤희야, 너 졸업하면 내 색시, 될래?' 하던 충식이 오빠도 고마웠고, 정말
고마운 건 ... 정말이지 제일 고마웠을 땐 언젠가 하면요, 충식씨 죽은 줄
알고 헤매고 있을 때, 그때의 충식씨 마음이에요. 난 못해요. 난 감히
충식씨 보고 좋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죠. 그때의 충식씨 마음을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보답을 해도 남아 있을 빚을 진 것 같아요. 정말 다
미안하고, 또 다 고마워요. 나 열심히 갚을께요. 그러니까 충식씨도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야 돼요. 알았죠? 대답해요, 충식씨."
  그의 얼굴을 쓰다듬는데 뜨거운 눈물이 나의 손을 적시었다. 우리는 서로
끌어 안고 얼마나 울었던지...
  울고 난 뒤에 지쳐서 잠든 어린아이 같이 우린 깊은 잠에 빠졌다.

  그렇게 추석 명절을 보내고 충주에 돌아온 나는 학교 생활로 또 다시
바빠졌다. 예전과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럭저럭 일주일이 지나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출근을 했다.
  교장 선생님이 찾으신다는 말을 듣고 가보니 뜻밖의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을 이야기였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얼마 전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던 할아버지의 생생하신 목소리가 여전히
귓전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동료 선생님들이 성의껏 조의금을 모아
주었다. 왜 그리도 바쁜지...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떠나야 하겠지만 또
수안보에 들러서 며칠간 내가 없는 것을 알리고 미리 준비해 둘 것도 대충
챙겼다.

 




내가 없는 동안에 그래도 그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좋고 식사 문제, 대소변
문제 등 아주머니께 잘 부탁 드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멀리하여 급히
역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를 생각한다면 조금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수안보에 일을 챙기고 열차에 올라서, 할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막연히 시선 저쪽에는 나의 이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누군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별채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의 위엄스런 모습이며, 충식씨가 그분의
방에서 농성하던 일이며, 손녀딸인 나를 위해 매일매일 학교에 따뜻한 도시락을
갖다 주시던 자상한 모습들이 한데 어루러져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솟구치게
만들었다.
  얼마나 고마운 분이셨는가!
  얼마나 커다란 은신처 였는가!
  할아버지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로운
분이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골목 안을 들어서자 멀리 대문 앞에 붙여진 상가 표시가
보였다. 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다가서지 못하고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눈물을 머금은 채로...
  한참을 그러고 있는 사이 이미 도착시간이 늦은 데다가 갑작스런 한기에
가족들 생각이 났다. 가족들 중에 누군가가 이렇게 늦은 이유를 물어 온다면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하지만 할아버지를 잃은 것보다 더 큰 것은 없었다.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자
더욱 쓸쓸하였다. 별채 앞 댓돌 위에는 낯익은 구두 대신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신발들이 많았고, 안채로 들어서는 나를 맞이하는 것은 고모님의 싸늘한
목소리였다.
  "그래, 이제야 오니? 할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길렀니? 할아버지는 너 때문에
돌아가셨을지도 몰라. 추석에 집에만 왔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루
종일 네 걱정을 얼마나 하셨다구, 속없는 손녀딸이라구. 우리 윤희가 안
그럴 텐데... 전에 안 그랬는데 뭐가 그리 바쁠꼬... 하시며 한숨만 쉬셨어.
못된 것 같으니라구."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꼭 나 때문만은 아닐 텐데
정녕 나 때문으로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손녀인 나를 지극히도 사랑해
주셨다.
  언제나 마음속으로만 되풀이하는 것이지만 이제야 하나의 남김도 없이
할아버지께 얘기하고 매달려 울 수 있었다.
  계속되는 울음소리와 오가는 조객들로 이틀이 지나고 할아버지의 장례식날이
되었다. 눈물이 많은 여자로 소문이 난 나였지만 연일 그리고 과거에도 너무
많이 쏟아버려 고갈이 날 정도여서 이젠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가 없으면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그의 일이 걱정되어 학교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장지까지 따라가는 것을 그만 두고 충주로 돌아왔다. 그런 나를 보고
가족들은 이해하기보다는 '할아버지가 널 어떻게 생각했는데...'라는 표정으로
하나같이 끝까지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는 가족들이 나로서는
서운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다고 이러이러하다고
이해를 구하는 사정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가족들에게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투영되고 있었다.
무엇이 그와 나 두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의문을 가지면 가질수록 막연한
생각과 억울함 등이 온갖 나쁜 감정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눈물을 흘려 잊혀질
일도 아니었고 말을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충식씨와 나만을 생각하고 이로 인한 다른 모든 문제는 그저
덮어두고 인내하는 일뿐이었다. 의심도 하지 말고 의문도 갖지 말 것이며,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그저 내 곁에 있는 사람과 내가 함께 하는 그 시간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충주에 도착한 나는 짐만을 하숙집에 놓고는 충시씨에게로 갔다.
  방안에 들어서는 나는 맞는 그의 표정에서 그가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읽어볼
수 있었다. 옷을 갈아 입고 우선은 정리부터 좀 하자는 나의 얘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그리고는 추석에 집에
가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며 계속해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윤희야, 할아버지 참 좋은 분이었지. 추석날 얼마나 널 기다리셨겠니? 너를
시골에 그냥 혼자 있게 하실 분이 아닌데 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고... 아마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을 거야. 평소에 건강하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다니...우리가 여기에 온 것이 잘못이었나 봐. 다 나 때문이야."
  방안에 흩어진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건강하신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우린 서로가 나 때문이라는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이는 듯했다.
  "충식씨,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세요. 그분이 돌아가신 건 누구 때문도
아녜요. 더구나 충식씨 때문은 더더욱 아니에요. 그런 생각하시면 안 돼요.
우리 할아버지는 이제 잊도록 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충식씨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내가 서울로 올라간 후 그는 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했고 내가 돌아온 후에도
그는 줄곧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다름을 보였다. 그러한 충식씨의
모습에서 나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기에는 아직도 미숙했고, 감정에
대해 완전한 자제력을 갖지는 못했었다. 서로의 불편한 모습을 보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어색하면 어색한대로 우린 누구도 먼저 이런 불편을 내색하지
않고 어떠한 묵계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 아래서 여학생들의 재잘거림은 더욱 높아만 갔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학생들과 무용실에 땀을 흘려가며 수업을 하는 것은
나에겐 더 없는 보람이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고 퇴근할 때 충식씨를 위해 조그마한 물건이라도 사게
되는 날은 말 그래도 행복이었다. 작고 초라하지만 상점들의 진열대에서 한 달
생활비를 걱정해 가며 사려던 물건을 집었다가는 다시 놓고, 놓았다가는 다시
사곤 했다.
  그런 망설임은 짜증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짜릿한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충식씨는 언제나 나를 기다려 주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의 일은 가슴에 묻히었다.
  종환씨도 틈이 날 때마다 수안보에 찾아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끔씩
충식씨 사고 소식을 전해주고 집에까지 바래다 주던 종환씨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의 혈맹의 관계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라 나는 몰래 두 사람에게
웃음을 짓게 하였다. 그때마다 두 사람은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나의 대답은
'그냥요, 그냥 좋아서요'였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싱겁긴...'하면서 짧고
명쾌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하숙집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수안보를 오가는 나의 이중 생활은 학교나 집에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었다. 늦게까지 무용실에 남자서 학생들과 무용연습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개 아침이나 낮시간에 집으로 부터
전화 연락이 왔으나 별 탈 없이 잘 무마가 되고 있었다.

 

윤희는 충식시에게는 미안함을 내 보이면서 타의에 의해서 결혼을 하게됩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게되자 남편은 폭력과 이혼경험이있고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그래서 더 충식씨에게 미안해 하고 ......

 

        x         x

 

저녁 낮이 되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 사람들의 귀가 가 시작되는
신호였다. 시아버지가 먼저였다. 강의 준비용 봉투를 안고 들어오시던 그분이 나의
인사를 받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 어디 불편하니? 안색이 좋지가 않구나."
  "네, 아버님.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급한 일이 아니면 우선 좀 쉰 다음에 얘기하자꾸나."
  안방으로 아버님이 들어가고 난 후 나는 부엌으로 갔다. 성악을 하는
분이라서 아침 저녁으로 과일 쥬스를 꼭 드시는 분이었다. 부엌에는 지연이가
조금 전에 사준 인형을 식탁 위에 올려 놓고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다. 인형은
손님이고 지연이는 주인이 되어 상을 차리고 있는 듯하였다.
  "지연아, 할아버지 오셨는데 인사해야지."
  "아줌마, 손님이 배고프대. 밥 해주고 인사할께."
  "손님이 누군데?"
  "손님? 그냥 손님..."
  무엇을 하든지 지연이는 그 아이 또래들이 갖는 '엄마, 아빠'라는 행복스러운
호칭을 쓸 줄 몰랐다. 믹서기에 사과를 잘라 넣고나서 작동을 시킨 후 지연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연아, 난 아줌마가 아냐. 너의 새엄마란다. 새엄마.'
  전혀 실감나지 않은 어색한 말이 목안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지연이는 내 눈에, 그리고 내 가슴에 천천히 들어와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웬지 그 아이에게 의미를 붙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믹서기의 작동이
멈추면서 갑작스러운 정적 속에 충식씨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언젠가 나는 저 아이의 곁을 결국 떠나게 될 거야. 정을 주지 말아야 돼."
  안방 문을 노크했다.
  "아버님, 쥬스 가져 왔어요."
  방으로 들어가서 쟁반을 놓으며 두 노인의 표정을 살피었다. 그냥 평범한
부모의 얼굴이었다.
  "앉으렴. 어디 무슨 얘긴지 들어보자. 안색이 나쁜 걸 보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구나."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몇 번의 독촉을 받은 후 겨우 입을 열었다.
  "아버님, 며칠 전부터 제게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냥 민우씨
결혼 전에 사귀던 여자의 축하 전화려니 했는데 제게 지연이를
부탁하더군요. 오늘 동회에 가서 주민등록 등본을 떼어 보고는 박혜영이라는
여자와 지연이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결혼하기 전에 진작 알려 주셨어야 되는
일이었어요. 민우씨보다 두 분께 무척 섭섭합니다."
  물론 두 노인은 무척 놀라는 기색이었다. 얼마 후에 당황하고 있던 시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아가야, 놀랐겠구나. 네 말대로 미리 알려 주었어야 했는데 우린 우리대로 이
문제 때문에 보통 괴로왔던 게 아니었다. 네가 먼저 알게 되었다니 할 말이
없구나."
  시아버지는 이마에 땀을 닦으면서 쥬스를 단숨에 들이마셨고, 손을 가늘게
떨고 있던 시어머니가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너 이 사실을 친정집에 알린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여자의 좁은 소경이라 하지만 육십을 넘게 살아온 분이, 그것도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 어떻게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지 나는 적잖이
실망하였다. 그러나 아직 알리지 않았다는 나의 대답에 안심하는 빛을 보이는
노인의 표정을 읽으며 작은 연민 마저 느꼈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또 어쩍ㄱ 수
없이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벽에 기대어 잠시 침묵을 지키던
시아버지가 듣기에도 민망하고 거창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널 처음 만나던 날부터 결혼했던 사실을 네게 알려야 된다고 민우에게 말을
했지만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자꾸 미루더구나. 할 수 없이 나중에는 우리가
나서려고 했는데 그때는 너희들이 만나는 것이 뜸한 것 같았고, 이래저래
미루다가 결혼 말이 나올 때까지 오게 되었던 거다. 우리는 다시 민우에게
솔직히 말을 하라고 야단까지 치기도 했다. 민우가 말을 못한 것은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면 네가 결혼 허락을 안할까봐서 못했던
거란다. 아가야, 우리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다. 너도 알다시피 모두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지. 우린 사랑을 제일로 하고 산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도 민우가 너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기 때문이다. 너는 민우의
사랑만을 생각하도록 해라.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거야. 나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쥬스 고맙구나."
  모든 이유를 하나하나 듣고 싶었는데도 말해 주지 않는 것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만 둘러대고 있는 시아버지의 변명은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사랑, 사랑만이 제일이라며 모든 이유를 사랑으로 덮어 씌우는 말을
들으며 문갑 위에 놓여져 있는 성경책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러한 말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이해하는 쪽으로
생각을 고치려 해도 나에게는 역겨움뿐이었다. 대답 대신 빈 쟁반을 들고 안방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뒤뜰로 나아가 텅 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성남시 쪽으로 파아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눈물이 많은 여자의 눈물은 더욱 뜨거운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눈두덩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충식씨보다 그이의 아버님 얼굴이 떠올랐다.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달려가서 처참해진 모습을 보고... 그 충격 속에서도
자식의 걱정보다 며느리가 될 젊은 여자의 앞날을 더 염려했던 분, 또한
대단해서 아들의 죽음을 조작하는데 주위에서는 누구 하나 반대함이 없이
태연히 따라 주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충식씨는 사고 직후 '윤희는 그래도
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할 것이라며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아버님께
애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님이 '윤희가 네 친동생인 정미라고 생각을
해보아라.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가당할 수가 있단 말이냐. 그 아일 진심으로
사랑하여라'고 말해 주자 충식씨의 나를 찾는 외침은 차츰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부모 마음은 다 같다고들 하는데 두 어른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개념 차이는
엄청난 것으로 내 마음에 투영되고 있었다. '그리운분, 그러나 이제 다시 뵐 수
없는 분--.'
  누가 뭐라 해도 마음속에는 오직 충식씨의 아버님인 그분만이 나의
시아버님이었다. 뒤뜰에서 얼마큼 하늘을 바라보며 물끄러미 서 있었을까. 하늘은
이미 그 흐름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시 문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이 집안에서 대문을 들어서며 유일하게
'엄마'를 부르는 사람-바로 서민우의 귀가였다. '엄마'라는 말 뒤에
'다녀왔읍니다'하면 좋겠는데 그는 언제나 현관 문을 열면서 연약하고
익살스럽게 제법 큰소리로 '엄마아-'하고 외쳐 댔다.
  바로 안방으로 불려 들어간 그는 장시간의 비밀 교육(?)을 받은 후 우리가
쓰는 방으로 돌아왔다. 굳은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 남자를 보며
'오죽하면 딸애 백일 전날 집을 나왔겠어요'하던 박혜영이라는 여자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며 나를 빤히 쳐다보던 서민우가 입을 열었다.
  "그 일을 알았으면 우리끼리 해결할 일이지 엄마, 아버지께 먼저 말을 하면
어떡해."
  나도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해결이라뇨? 해결할 길이 있기라도 한가요?"
  저녁 상을 보기 위해 방을 나가려고 하는데 그가 내 팔을 잡아
당겼다. 서민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날 노려보고 있던 그 사람은
잡고 있던 팔을 내팽개치듯이 놓아 주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보니 아주 건방진 데가 있구먼. 내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겠지? 다
좋지만 아직 너희집엔 알리지 말아."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하여야 할까? 이 사람의 지금의 행동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해답이 나오질 않았다. 태연한 척하면서
신문을 펴들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 민우가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하던 시아버지의 말이 생각이 나서 웃음을 참가가
어려웠다. 가뜩이나 나는 웃음을 잘 참지를 못하는 여자라서 소리까지 내면서
깔깔거리기 시작하였다. 서민우의 놀라는 표정과 사랑이 제일이라던 시아버지의
말이 점점 더 나를 웃게 만들었다. 나는 아예 허리를 굽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참을 정신없이 웃어 댔다.
  "미쳤어?"
  "하하하--, 그런가 봐요. 미쳤나 봐요."
  "정말 돌았군."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은 나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그 남자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는 듯하였다.
  "그치지 못해?"
  어찌나 큰 소리로 말을 하던지 나의 웃음소리는 저절로 그쳐 버렸다. 웃고
나니 조금은 시원한 것 같았다. 방을 나와 부엌으로 가려고 하는데 거실
소파에서 시어머니가 팔짱으르 끼고 나를 노려 보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된 삶들인지 대학교수인 아버지, 교회집사인 어머니,
대학교육까지 마친 아들 중 누구 하나 속이고 결혼을 했다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실에 대해, 미안하다거나 부끄럽다는 마음을 갖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었다.
  '그래. 저 남자가 말한대로 약점을 잡은 거야. 약점 때문에 나는 당당히 내
남자에게 다시 갈 수 있다구. 이젠 절대로 남의 입장 따위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오직 그에게 갈 거라는 바램만을 갖고 있어야 돼. 순간순간 슬플 때도
있을 테고 조금은 힘이 들겠지만 소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어찌 되었건 나는 하루를 이런 군상들 속에서 잡다란 상념들로 어지럽게
지내야 했다.

내일이면 충식씨를 만난다는 기대를 가지면서--.

 

 

이튿날이 되자 나는 새벽부터 가슴이 설레이었다. 
마음은 이미 성남에 도착해 있었다. 시부모에게는 학생들 과외 지도를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고 전날 허락을 받아 두었다. 결혼식을 인해 잠시 쉬었던
무용지도를 계속해 주어야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학생들과의 연습날짜는 일용일
오후로 약속을 해놓고 시댁에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라고 거짓 통보를
하였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후에는 충식씨를 만나러 성남엘 갈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거짓말을 해서 마음이 편할 리는 없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다만 충식씨가 날 어떻게 대해 줄지가 걱정될 뿐이다.
  출근 준비를 도와주고 있는데 지연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 남자는 자기
딸에게 어쩌면 그렇게도 무심할 수가 있을까? 이 집에 들어온 이후 지연이와
마주하고 있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고
지연이 또한 내 옆으로만 슬슬 다가왔다.
  "아줌마, 오늘 어디 갈 거지?"
  아침 식탁에서 외출 허락을 받을 때 나를 쳐다보면서 그 아이가 갑자기
시무룩해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응, 오늘 볼일이 있어. 지연이하고 놀아주면 좋은데 어떡하지?"
  지연이는 잡고 있던 치마자락을 자꾸 움켜쥐면서 슬그머니 내 무릎 위에
올라 앉았다. 그 아이를 살며시 껴안으며 가슴이 뭉클해 옴을 느꼈다.
  "아줌마, 나하고 놀다. 아줌마 없으면 나 심심한데...응? 그러자, 아줌마."
  서민우가 갑자기 퉁명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나가 있어."
  아이가 대번에 겁먹은 얼굴을 하고 내 무릎에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총총이 걸어서 방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저 아이를 어떡하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왜 아이한테 소리를 질러요. 지연이가 누구죠? 잘못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는 금방이라도 나를 후려칠 듯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너, 오늘 몇 시에 나갈 거야?"
  '너'라는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이전 그 버릇
고쳤겠지만--. 이라고 하던 박혜영의 말이 온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시에 나가냐구 묻잖아? 말같이 들리지 않아?"
  그 남자의 음성은 안방까지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컸다. 대답을 하지 않고
서루봉투를 집어서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자 그가 핏발이 선 눈으로 내 손에서
봉투를 빼앗아 들며 나의 멱살을 움켜 쥐었다.
  "대답해. 안해?"
  "..."
  "대답해 보란 말이야!"
  "이 손 놓기 전에는 대답 안해요."
  그의 눈빛이 점점 더 무서워지면서 쥐고 있던 멱살을 세차게 흔들어 댔다.
그러자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블라우스의 단추가 어디론가 튕겨져 나갔다.
  불과 며칠 전에 결혼한 남편 서민우, 그의 손에 몸이 흔들리면서 나는
복받쳐 오르는 슬픔에 창 밖만 내다보았다. 마당 한가운데에 충식씨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대답해 윤희야. 대답해 어서--'라고 말하며
초조한 빛을 띠고 있었다.
  "한 시에 나갈 거예요."
  서민우는 손을 놓고 침대 끝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나는 그의 손으로부터
풀려났지만 창 밖에서는 여전히 충식씨가 맴돌고 있었다.
  '참아야 돼. 참아야 된다구. 난 괜찮다--. 널 믿어. 너는 잘할 거야'라는 말과
함께 그의 모습은 너무도 뚜렷이 나의 시야를 메우고 있었다.
  "몇 시에 끝날 예정이야?"
  "오랫동안 연습을 쉬었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려요.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인데 옷갈아 입고 다음 연습 얘기하고 나면 여섯 시가 되어서야
끝나겠죠."
  "그렇다면 늦어도 일곱 시까진 집에 도착하겠구먼. 시간 지키도록 해. 시건방
떨지 말고--."
  '시건방을 떨어요?' 하고 말하려다가 그 사람의 신경을 들쑤시기 싫어서 꾹
눌러 참았다. 오늘이 충식씨를 만나는 날인데 나쁜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일하는 아이를 재촉하여 집안 일을 서둘러 마치고 아침에
샤워를 했다. 서민우와 나와의 상관없던 일들을 말끔히 씻어 버리기 위해 다른
날보다 더욱 더 정성스럽게 온몸을 문질러서 비누 거품을 내었다.
  간단히 얼굴 화장을 한 후에 언젠가 그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던 원피스를
꺼내 입고 방을 나왔다. 거실에는 시어머니와 지연이가 있었다.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는데 지연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줌마, 빨리 와야 돼."
  "지연아, 오늘은 아주 빨리는 안돼. 대신 내일은 많이 놀아줄께."
  지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현관 쪽으로 걸어 나가는 내 등 뒤에
시어머니의 말이 비수같이 아프게 꽂히었다.
  "이왕 알 것 다 알았는데 안 살 거면 몰라도 지연이가 너한테 계속해서
아줌마라고 불러도 되겠니?"
  갑자기 나의 등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쳐 나오는 것 같아 나는 잠시 몸을
휘청거렸다. 나는 왜 그리도 감정 표현이 거꾸로 나타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웃다가 갑자기 허무하여 시무룩해 하고, 전혀 웃음이 나올 일이 아닌데도
괜히 싱글거리는 등 내 자신이 생각해도 좀 엉뚱한 데가 있었다.
  그날도 역시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뒤를 돌아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시어머니에게 통사정을 하였다.
  '어머니, 미안하다는 말씀 한 마디만 해주세요. 직접 하시기 싫으면
아드님한테라도 얘기해 주세요. 그래야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여전히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어머님, 그 문제는 다녀온 뒤에 제가 알아서 하겠어요. 그럼 저
다녀오겠습니다."
  대문을 나서며 다짐했다.
  --잊어야지. 단 몇 시간만이라도 이 집 일을 잊어야 돼. 그리고 지금부터는
충식씨만을 생각하기로 하자--.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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