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서/한줄낙서

상념의가을

시인김남식 2008. 11. 3. 20:38

 

상념의가을   솔새김남식

겨울이 일찍 오려는지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수에서 은행잎이
힘없이 우수수 그냥 떨어진다
자동차가 지나칠 때는
차밑으로 빨려 들어가 꼴깍한다
예전에는 은행잎을 보면
책갈피에 넣었다
아니 얼마전 까지만해도
은행잎을 보면
주어서 책갈피에 넣었다

 

 

그리고 잊은 듯한
그 어느 추운 겨울날
문득 책을 펴보면
은행잎이 아주 예쁘게 누워있었다 
노란 은행잎에
붉은 단풍잎을 부쳐서
X-mas 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쫄래쫄래
따라 다니던 녀석한테
카드를 보냈던
빗바랜 추억들이

스처가듯

이 가을에 문득 떠 오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은행잎을 밟고 지나가도
아무 느낌이 없다
얼굴에 잔주름 생겨도
마음은 항상 젊은 줄 알았는데
세월은 마음 마저도
아프게 한다
가끔 새벽길에서
은행을 줍는 사람을 보면
혼자 중얼 거린다
나와 상관 없는데도

그것 마저도

내게는 심술로 가득하다

 

 

가을이라 마음은 온통

싱숭생숭하고
오라는 사람은 없어도
불현듯 어디라도 떠나고 싶다
목적지도 이유도 없이
무작정 떠나야하는
아니 짐을 싸야 하는 날이
갑자기 있을런지
가방에 들어 가는 거
몇가지 대충 두서없이 담고
빈자리에는

허한 마음을 가득 담는다

 

 

막상 집을 나서면 
흔궤히 어디 갈 때도 없으면서

마음은 안달한다
친구에게 간들
다들 알콩한 살림에
깨가 쏟아 지는데
내가 방해 할 수는 없다
미숙이는 늦은 결혼 준비에 바쁠테고
바부탱이는 즈그 마눌한테
잡혀사는 넘이니까
술 한잔 안 살 꺼고
다들 그렇게 재밋게
가을을 보내고 있을터인데
내는 머고
숨겨논 애인하나 없으니

 

 

라디오서 들려 오는 노래 소리가
오늘 따라 왜 이리도
가슴을 여미는지 모르겠다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루 종일 방안에서
독수공방으로 궁색 떨다가
인터넷을 뒤적이며
푸념을 해봐도
뚜렷한 목적지 하나
가야 할 곳을 선뜻 정하지 못하고
안절부정을 한다

 

 

그렇다면 애마를 끌고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 볼까
휘발유가 떨어지는
아무 곳에서 짐을 풀고
부탄까스에 라면을 끓이며
하룻밤 신세를 진다
가을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계절
이럴 때
누가 하나

놀러 오라는 친구 없으니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련가
그래서 가을은

참 고약한 계절이다

 

 

solsae.k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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