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재회 솔새 김남식
1. 한해를 보내는 12월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았는지 거리는 한껏 분위기가 젖어 있었다. 간간히 내리는 하얀 눈발이 거리로 흩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었지만 추운 영하의 날씨에도 삶을 지탱하는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바쁘게 삶을 위해 몸을 움직이고 있다. 청량리 역 전 앞 버스정류장 방금 버스에서 내린 한 젊은이가 발길을 총총히 역전으로 옮겨 가고 있다. 검은색 배낭을 멘 그는 역전 대기실로 들어 와 매표구로 가는 길에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영동지방에는 대설 주의보가 내렸다고 저녁 9시 뉴스가 전하고 있다. 주말을 맞이해서 대합실은 추위도 잊은 듯 시장터처럼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잠시 후 개표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를 출구로 몰려 나 간다. 이어서 철길 홈에 대기해 있던 열차에는 하나 둘씩 사람들로 좌석을 메워 가고 있다. 조금 전 버스에서 내린 그 젊은이도 좌석을 찾아 창가 쪽으로 자리에 앉는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잠시 피곤한 얼굴로 조용히 그가 눈을 감는다. 12시가 다 되어서 자정쯤에 출발하는 영동선 주말 열차는 동해의 해돋이 구경을 가는 사람들로 주말은 언제나 만석이었다. 얼마 후 열차가 출발하려고 할 무렵에 한 여자가 급히 차에 뛰어 오른다. 차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숨이 약간 찬 듯 이마에 땀을 씻으며 두리번거리며 열차의 좌석을 찾은 듯 하더니 이내 아까 그 젊은이의 옆 자석에 앉는다. 아마 좌석 번호를 찾아서 앉은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여행은 추억이라는 희망이 담겨있는 모습으로 승객들의 모습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특히 야간열차 여행은 더욱 그렇다. 이 젊은이는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한국대학을 다니면서 집에 내려 갈 때 처음 몇 달은 대합실에서 다른 승객들과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열차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의 병환이 계속 악화 되면서 그의 얼굴엔 무표정한 그늘로 가려져 있다. 위암으로 투병하는 아버지의 병원비도 문제지만 학업을 계속해야하는 그로서는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래서 이번 학기만 끝나면 군대 가려고 지원서도 이미 냈다. 잠시 후 열차가 만석을 알리자 서울을 출발하는 기적 소리가 어둠을 뚫고 귓전을 요란하게 들려준다, 지금부터 열차는 차가운 겨울 눈바람을 맞으며 강릉까지 어둠 속을 달려가야 한다. 열차는 이 젊은이처럼 철길위로 혼자만의 고독한 주행이 시작되었다 열차는 어느덧 청량리 역을 벗어나 안전한 중앙 선로에 진입 하자 젊은이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젊은이 이름을 부르기 쉽게 그냥 'K' 라고 하자.)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와 있는지 K는 전혀 관심 없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 횔 끔 처다 보고는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그가 집으로 가는 주말 영동선은 언제나 만원 이다. 해돋이 관광이 시작되는 겨울에는 더욱 그랬다. 열차 승객들은 연인사이 가족사이 그리고 남녀노소로 다양했다. 출발 할 때부터 내리던 눈은 더 많이 더 굵게 함박눈으로 변하여 달리는 열차의 차창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야간열차에서 내리는 눈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함성의 목소리가 열차 안을 잠시 시장터 같이 만들어 놓았다. 달리는 열차 밖 까만 밤하늘 위 어딘가에 떨어질지 모르는 하얀 눈발은 바라보면 낭만적이라 가히 할 수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여행에 대한 그것도 눈이 내리는 야간열차를 타고 해맞이 여행길이라 그런지 모두들 설렘이 뽀글뽀글 퐁퐁 처 럼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질흙 같이 어두운 까만 밤하늘 위로 하얀 솜털이 내려오듯 흰 눈이 날리는 모습은 젊은이가 보기에도 가슴이 싸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아니 우리는 그를 K라 부르기로 했지. K는 별로 흥미 없는 일이라 귀찮은 듯 눈을 감고 못 다한 잠을 자고 있 다. 열차는 원주 제천을 지나 어느덧 영주 봉화를 지나고 있었다. 열차 안은 출발 전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자 모두들 곤한 잠에 있었다. 그런데 청량리를 떠 난지 3시간이 좀 지났을 무렵 뜻밖의 사고가 발생 하였다. 열차가 태백 준령을 넘지 못하고 철길위에 갑자 기 멎는 참으로 예기지 못했던 싱거운 열차 사고가 발생 한 것이다. 기차는 어떻게 하든 달려가려 힘을 쓰며 목 놓아 기적을 울려 보지만 코끼리 같은 큰 등치는 전혀 꼼짝을 하지를 않았다. 밖을 내다보니 첩첩산중의 철길 양쪽으로 정말 산더미 같은 눈이 철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바람은 세차게 불고 어둠 속에서 모두들 어리둥절하 며 야단이다. 이윽고 차내에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갑자기 발생한 눈사태로 더 이상 열차가 갈 수 없으니 승객들은 양해를 바란다며 철도청에 긴급 구조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하의 날씨로 추우니까 가급적 열차 안에서 조용히 기다려 달라고 전한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불만과 불평 그리고 체념의 목소리는 여기저기에서 들려 왔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불평하는 사람들 때문에 K도 잠에서 깨어났다. 어찌 할 수 없이 난감한 듯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일은 처음 이라는 듯 그도 내심 걱정을 하고 있다가 옆 좌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웬 여자가 눈을 감고 의자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출발 할 때부터 옆에 누가 있었는지도 모른 체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어딜 혼자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행 가는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에 관심 없었기에 옆자리에 누가 있었는지를 잠시 잊은 것 같다. 잠바를 벗어서 그에게 덮어 준다. 잠시 전 그녀는 책을 보다가 눈을 감은 듯 무릎위에는 시집이 한 권 놓여 있었다. 그녀가 잠결에서 일어나 몸에 걸쳐 있는 낯선 잠바를 발견하고는 “고마워요” 가볍게 K에게 목례를 하고 돌려주려 하니 K는 괜찮다며 추운데 감기들 것 같아서 했다고 한다. 그녀는 배낭에서 먹을 것을 꺼내어 주며 고맙다는 답례를 대신 한다. "어디 가세요." 종이팩이 든 음료수를 받아 들며 K가 먼저 말을 꺼낸다. "네! 강릉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예요" "그러세요? 그런데 왜 혼자서 가세요." "강릉에서 친구 만나기로 했어요. 참 그쪽은 어디를 가세요." "아~네! 집에 가는 길이예요." "집이 강릉이세요?" "강릉가기 전 정동진이예요." "좋은 곳에 사시네요." "............" 그녀는 이름이 정윤희 라고 자신을 소개 한다. K는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가는 길이라고 했고 그들은 몇 마디의 말이 오고 가더니 어느새 친해지고 있었다. 각자 혼자서 가는 길이기에 대화 친구로서 두 사람은 부담 없이 친한 사이가 되었고 아마 같은 세대를 살고 있기에 말과 뜻이 통하는 것 같았다.
앞에 앉아 있는 연인 듯한 30대의 남녀가 서로 꼭 끌어 앉고 자고 있다. 그들 모습은 K가 보기에도 좀 민망할 정도였다. 아직도 밖에는 함박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그동안 불평하던 사람들도 이제 피곤한지 하나 둘 모두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이 가까워 오니 그렇게 내리던 눈이 좀 멎은 듯 하다. 밖에서는 웅성웅성 떠드는 목소리로 시끄럽고 차 안은 그런대로 조용했다. K는 어디에서 얻어 왔는지 따끈한 커피를 불쑥 내민다. "어디서 가져오는 거예요" "네! 식당 칸에서 사 왔어요. 거긴 춥지 않더라고요." "우리 같이 들어요." 커피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고 동쪽 하늘 위로 붉은 태양빛 노을이 산마루턱에서 보이고 있다. "이제 속이 따뜻해지네요." 그는 K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씩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내리던 눈은 이제 멎었다.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려서 서성거리며 철길 위를 걷는 사람도 있다. 라디오에서 열차 조난사고 방송하고 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추위가 더 한 것 같았다. 추위를 잊으려고 두 사람은 열차 밖으로 나왔다. 산등성이 위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 때마다 큰 뭉치의 눈을 산 아래로 쓸어내리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보여서 눈바람은 장관의 풍경 이였다. 어느덧 그들은 많이 친해 졌는지 서로가 상대편에게 눈을 뭉쳐 던져 보기도 하며 장난을 한다. "있잖아요. 추울 땐 막 떠들면 덜 춥다고 해요. 우리 큰 소리로 이야기해요" "누가 그래요" "작년 겨울 시골에 있는 큰댁을 가는 길에 아빠가 그랬어요." "그래도 추운 건 추워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우리 그러지 말고 노래해요" "좋아요. 그럼 내가 먼저 부를게 따라 해요.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꽃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그들에 노래 소리가 새벽 공기를 타고 산으로 멀리 멀리 흩어지고 있었다. 날이 밝자 철도청에서 군 장병들과 함께 제설 작업이 시작 되었다. 방송국 헬기가 뜨고 취재기자가 찾아오고 열차 주위는 갑자기 시장터처럼 적막이 깃든 조용한 산속에는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적십자에서 아침 식사로 따끈한 호빵과 우유가 급식으로 도착했다. 5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생방송으로 뉴스로 전하고 있다. 작업은 속전속결로 한 시간의 작업으로 길이 열리고 제설 작업이 완료 되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산중에 갇혀있던 기차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힘겹게 태백 준령 빠져 나와 어느덧 동해안 해변을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겨울 바다의 풍경만 바라만 보아도 감동 그 자체로 낭만의 여행길이기에 잠시 전에 있었던 열차사고는 모두 잊은 채 피곤함도 없이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고 있다. 드디어 정동진역에 도착한 시각은 정시 도착 시각 보다 4시간을 연착하여 오전 9시30분에 도착을 했다. 잠시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던 그들도 이제 작별을 해야 했다. 목적지가 다른 두 사람 잠시 머뭇하는 듯 아쉬움에 손을 놓지 않는다.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요." K는 열차선반위에 있는 짐을 챙기며 못내 아쉬운 얼굴로 그에게 인사를 청 한다. "정말 즐거웠어요. 언제 서울로 올라가세요." "내일 아니면 오늘 저녁 밤차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집에 가봐야 정확히 알아요." "네!" "참 강릉에서 친구 만나기로 했죠? 재미있게 잘 놀다가 올라가세요." "정말 즐거웠어요. 안녕히 가세요." K는 열차에서 내려 출찰구 쪽으로 걸어가고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때 그녀는 갑자기 K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참 이름을 알려 줘야지요? 이름이 뭐예요 저는 윤희 예요." "네에~" "정 윤희 예요. 정 윤희" K가 못들은 것 같았는지 아쉬운 듯 여러 번 큰소리로 자신을 알리고 있다. "고마워요 저는 그냥 K라고 하세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혹여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알려 드릴게요." 열차는 이제 빠르게 승강장 홈을 지나서 강릉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잘 가요." 윤희는 머리를 차창 밖으로 내 놓은 채 K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K는 어떤 여자이든 아직은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뚜렷한 계획과 목적이 있었기에 성공 할 때 까지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겠다고 자신의 마음을 굳게 닫았다. 아버지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지금 집으로 가는 길이라 그는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K의 집은 정동진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조금 들어가는 심곡이라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밭 농사일과 곁들여서 바다 일을 하는 전형적 어촌 마을에 사는 가난한 살림이지만 자식의 성공을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K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주말이면 틈나는 대로 고향집에 내려와 아버지와 같이 배를 타고 고기잡이 하고 또는 어머니를 따라 간간히 가사 일을 돕는 모범 청년으로 마을에서 효자로 알려져 있다. 아침상을 차려내준 어머니는 열차사고 뉴스를 보았는지 걱정을 한다. "오지 말라고 했는데 차비 없애가며 뭐 하러 와." 어머니는 그에게 언제나 반가운 말 보다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한다. 집에 도착하자 K는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며 어머니 일을 돕고 있었다. "그래도 제가 왔다가야 마음도 편해요." 2. 그 여자 참! 윤희라고 했지. 정 윤희 나이는 26살 무남독녀로 세일여대 졸업반이다. 그녀는 종착역 강릉에서 내렸다. 강릉에는 생각보다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다. 역전을 빠져 나온 승객들이 어딘가 모두 목적지로 떠나버린 대합실에서 잠시 머뭇하더니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 그녀가 올라탔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여기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네요." 택시 문을 닫으면서 윤희가 먼저 가볍게 인사를 하자 어제 밤에 있었던 열차사고 이야기를 하며 큰 사고가 없었던 게 다행이라고 운전기사는 걱정을 해준다. "여기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네요." "네, 여긴 태백산맥 때문에 날씨 변화가 참 많습니다. 어느 해는 눈이 하나도 오지 않을 때도 있고 또 많이 올 때는 엄청 내려요." "네!" "올 여름엔 웬 비가 그렇게 많이 내리는지 처음 봤습니다." "장마로 수해 입은 거 텔레비전 뉴스에서 저도 보았어요." "산사태도 나고 양양 속초까지 물난리에 엄청난 재해였지요." 차가 신호대기에 잠시 정차를 하자 "어디로 갈까요?" 운전기사는 백미러로 윤희 얼굴을 보면서 묻는다. "동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아니, 기사님 그냥 아무 곳으로 가 주세요." "그럼 경포대로 갈까요," 윤희는 정신을 잠시 잃은 듯 대답하지 않는다. 조금 전 기차역에서 헤어진 K라는 사람을 잠시 생각한 것 같다. 운전기사는 다시 물어 본다.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는 운전사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어젯밤 사고로 귀찮고 몸이 피곤해 있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고 얼마 후 오죽헌을 지나 경포호수로 들어서고 있자 기사는 다 왔다고 말을 한다. "저어 ~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가주세요" "위쪽으로 올라갈까요? 속초 주문진 쪽으로.." "아녜요. 정동진 쪽으로 가세요." "참! 요새 젊은이들 서울에서 겨울바다 보려고 정동진에 많이들 와요" ",,,,............." "근데 혼자오신 겁니까?" 대답이 없어서 백미러로 뒤로 보니 여자가 눈을 감고 있었다. 택시는 어느새 해변을 달리고 있었고 눈부신 햇살이 바다위에 진주를 뿌려 놓은 듯 겨울 찬 공기에 부서지는 동해의 푸른 바다는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윤희가 눈을 떴다. "피곤하죠?" 택시 기사는 멋쩍게 윤희 에게 다시 말을 시킨다. "네~" "어젠 뜻하지 않는 열차사고로 고생이 많았죠?" "추워서 정말 혼났어요." "그래도 더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게 퍽 다행입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ㅎㅎ " "아가씨 어딜 가는지 모르지만 얼굴이 많이 수척해요. 피곤한가 봐요" "어제 잠도 못 잤고 그리고 세수를 안 해서 그렇게 보일 거예요." "무슨 걱정이라도" "..........." "왜 혼자 가는지 물어 봐도 될까요?"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이예요" "친구가 정동진에 살아요?" "아니 예요." "그럼요" "그냥 가는 거예요.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서." 윤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며 눈을 감는다. 눈가에는 갑자기 눈물이 돌고 있었다. "아가씨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혼자서 가는 거 보면." "......." 운전기사는 뭘 아는지 싱겁게 자꾸 캐묻고 있다. 그러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해변을 바라보더니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길이예요" 라고 윤희가 대답을 하더니 울컥 흐르는 슬픔에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 내린다. "여기서 운전하면 이런저런 못 볼 거 많이도 구경하지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 있는 정동진역 주변이 아베크 해변공원으로 만들어진 후로 조용하던 동네가 도시화 바람이 갑자기 불어서 마치 서울을 옮겨 놓은 듯한 장소라고 택시기사는 설명을 한다. 변심한 애인에게 화풀이 굿하러 오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싱거운 이야기까지 해준다. "여기서 친구 만나기로 했어요." "아가씨 서울서 온 거 아녜요?" 택시기사는 이런저런 말로 그녀를 안심을 시키자 마지못해 윤희는 자신에 말을 이어간다. "얼마 전에 여기로 놀러 왔는데 남자 친구가 교통사고로...." "아이쿠! 그런 일 있는 줄도 모르고 내가 싱겁게 자꾸 말을 걸었네요." ".........."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 아가씨!"
그녀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택시 기사에게 들려준다. 3년 전 겨울 방학 때 휴가 나온 남자 친구와 같이 이곳에 놀러 왔다고 한다. 경포대에서 아침 해맞이를 하고 정동진으로 내려오는 길에 마주 오는 트럭과 뜻하지 않은 추돌사고로 남자친구가 사망 했다고 한다. "여기 고속도로는 노폭이 좁고 굴곡이 많아서 사고가 자주 납니다." 방심과 피로가 겹친 탓에 사고를 낸 것 같다고 하며 눈물이 가득 돌고 있다. 사고 발생장소를 찾아서 그 사람에 흔적을 찾아 추억을 기억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그 사람에 영혼을 달래 주려고 가는 길이라고 한다. "미안해요 아가씨 내가 착각 했네요" "........." "변심한 애인 때문에 화풀이 온 걸로 제가 의심을 했네요." 택시는 잠시 후 정동진으로 가는 길목 어느 낯선 거리에 윤희를 내려놓았다. "날씨가 추우니까 오래있지 말고 해가 짧으니 일찍 서울로 올라가세요." "아저씨 고마워요. 조심해서 안전 운전 하세요." 택시가 떠나자 천천히 걷던 윤희는 교통사고 자리인 듯한 곳에서 한참을 서성거린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애절한 긴 한숨을 쓸어내리며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슬픈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실어증을 걸린 사람처럼 무언가 혼자 중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내가 정말 바보였어요." "저 같은 고집쟁이 떼쟁이 만나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자동차들이 그녀 옆을 지나가며 그녀를 비웃는 듯이 경적을 울리고 있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이곳에 왔어야 했는데 승용차를 갖고 온 것이 잘못이었고 놀러 오지를 않았어야 한다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내가 정말 바보였어요. 누가 이렇게 될 줄을 알았나요." 추위도 잊은 채 그녀는 자기 탓이라고 믿으며 자책하고 있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자서 마구 중얼거린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녀는 정동진 바닷가로 발길을 옮겼다. 모래섬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섰다. 오후 햇볕은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겨울 바닷바람은 매섭게 불어온다. 겨울바다 구경하러 내려온 남녀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많이 띄었다. 그 사람을 잃어버린 자신이 그들에게 어쩐지 부끄러워 살며시 눈을 감고 윤희는 그 사람에 얼굴을 떠올려 본다. "나 같은 욕심쟁이는 만나지 말도록 하세요. 정말 미안해요 흑흑흑" 윤희의 얼굴은 이미 눈물이 한 움큼 흘러 내려서 추위에 얼어붙었다.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안개꽃 다발이 그녀의 손에 있었다. 그녀가 꽃잎을 하나둘 따서 바다에 던지며 어느덧 사랑하는 그 사람 곁으로 가고 있었다. 가끔 눈물을 훔치고 그리고 다시 꽃잎을 따서 바다에 던지고 오랜 시간을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하루해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어디에선가 애절한 사랑의 노래가 바닷바람에 안겨 들려오고 있다.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영영 너를 못 잊어 어떡하면 잊을까~." 마침 지나가는 어떤 사람이 갖고 있던 라디오에서 흘려 나오는 노래였다. 겨울 해는 짧았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가고 사랑을 묻어놓기 전에는 여기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주고 간 사랑을 여기에 모두 떼어 놓고 가야한다.
3. 한편 아침에 정동진역에서 헤어진 그 젊은이 K가 윤희를 발견한 것은 저녁 17시 25분에 출발하는 서울 행 열차를 타려고 승강장에 서 있을 때였다. 해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보고 우연히 그녀를 발견하고 서울 가던 길을 포기하고 모래밭에 앉아 있는 그녀 곁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그녀는 K를 보자마자 죽었던 남자 친구가 사람이 살아 온 것을 착각한 채 그를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자신에게 가슴을 묻고 있는 그녀를 보니 알듯 모를 듯 얼굴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린 K는 등을 두드리며 위를 해준다. "그래요 사랑이 슬플 때는 실 컨 울어야 해요" 사랑과 추억을 이곳에 묻어 놓기 전에는 돌아 갈 수가 없기에 그녀의 슬픔은 계속되고 있다. 어디선가 슬픈 사랑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 파도소리는 요란하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먼 바다를 향해 그리운 얼굴을 수평선 위로 그려보며 돌아오지 못 할 그 사람을 목 메여 불러보면 파도 많이 밀려 왔다 밀려가는 쓸쓸한 해 저녁 바닷가였다. 해 저녁 바닷바람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바람개비처럼 휘 날리고 있었다. 그 여자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한 남자가 있었단다. 두 사람은 너무 너무 사랑했고 주위 친구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사랑했단다. 그러던 작년 겨울이었다. 말년 휴가를 나온 남자 친구에게 겨울 바다에 가자고 그녀가 졸랐고, 그래서 그 남자 친구랑 둘이서 자동차를 타고 이 곳으로 놀러 왔다고 한다. 서울서 오후 늦게 출발했고 차가 밀려서 새벽에 이 곳에 도착을 했다. 젊음 기분에 신나게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몇 시간을 놀았고 그리고 다음날 저녁 서울로 급히 돌아가는 길 정동진을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남자 친구가 피곤하여 잠시 졸음운전을 했다. 차가 중앙선을 넘자 마주오던 트럭과 추돌사고로 남자는 죽고 여자는 다리골절 부상으로 6개월 입원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다리는 지금도 부자연스럽다고 하며 자기 고집 때문에 남자를 먼저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번이나 자살 결심 했지만 실패를 하고 부모님 설득으로 지금은 마음을 잡아가고 있다고 K에게 전한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밤바다는 어두워지고 마치 그녀의 애인이 바다 속 어디선가 자신에 손을 잡는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은 그리 좋지를 않았다. 역전에 있는 포장마차 작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윤희의 어께에는 어김없이 K의 따스한 두터운 잠바가 걸쳐 있었고 그녀를 위해서 추위도 이길 겸해서 조촐한 저녁 식사를 마련해 주었다. 따스한 어묵 국물을 입에 넣자. 윤희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그 사람은 언제나 제게 따스한 사랑을 약속 했어요" 두 사람은 어느새 소주 한잔씩을 나누기 시작했고 윤희의 자기만의 이기적이고 천연스런 사랑이야기에 듣기가 조금은 겸연쩍고 짜증나게 들려왔기에 그냥 모른 체 혼자 서울에 올라 갈 걸을 하고 후회를 해본다. K의 어깨위로 살며시 얹혀있는 그녀의 체온이 싫지는 않았지만 마치 누군가에게 딸려가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뜻하지 않게 애절한 그녀의 사랑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저녁 식사도 함께 해주었다. 혹시 그에게 잘 해 주면 서울에서 만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했지만 자기 환경에 여자란 아직은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소주 한 병이 비워가자 K도 약간의 취기가 돌고 있었다. "윤희씨! 이제 힘을 내요. 그 사람도 윤희씨를 많이 이해 할 거예요." "제가 나빴어요. 그렇게 정동진에 가자고 조르진 않았어도" "그 사람은 아마 좋은 곳에 잘 있을 겁니다." "그럴까요?" "아주 많이 사랑했나 봐요" "네! 그 사람은 언제나 제 곁에서 흑흑흑" "알았어요. 이제 그만해요. 자꾸 그러니까 제 마음이 슬프네요." "미안해요. 이런 모습을 보여 줘서" K는 자꾸만 여자에게 뭔가 자신이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가식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고 여시가 아닌 가 또는 사기꾼이 아닌 가 의심을 해본다. "떠난 사람은 잊고 새 출발을 하세요." "그 사람을 잊지는 못할 것 같아요. 아마 오랜 세월이 지나도" "윤희씬 맘이 착한 것 같네요" "아니 예요. 아주 못 됐어요. 욕심쟁이고 또 전 저 밖에 몰라요"
K는 정말 술 취한 그녀를 데리고 어떻게 하고 싶은 엉뚱한 생각도 했다. 남자면 누구나 좋은 기회라 생각 했지만 경솔한 행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긴 머리에 얼굴도 곱상하고 눈과 코가 오뚝하여 미스 코리아 같은 외모에 남자라면 누구나 탐내는 예쁜 여자였다. 어제 서울에서 내려 올 때는 느끼지 못한 이상한 감정이 생겨났지만 그에겐 그런 용기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있는 여자를 욕심내고 싶지는 않았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착해 보였지만 무엇보다도 뚜렷한 자신의 목표가 달성되기 전엔 여자를 멀리 한다는 신념이 언제나 머릿속에 K는 가득했다. 그녀는 우리나라 섬유업계의 선두인 대진무역의 무남독녀라는 것을 그녀 입에서 언뜻 들었지만 관심이 없었다. "윤희씨! 오늘 서울에 올라가지 않을 거예요?" "가야지요. 제가 여기 있는 다고 그 사람이 살아 돌아오겠어요." "그래요 죽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윤희씨는 용기를 내야지요." "그래야 할 것 같은데 힘이 드네요." "팝송 중에는 이런 노래가사 있지요. 당신이 나에게 굿바이 라고 하면 세상이 모두 끝나버린 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가 뜨고 새들도 지저귀는데 그래서 나 혼자만 슬퍼하고 혼자만 인생을 망치려한다는 노래가 있어요. " "아~ the end of the world " "잘 알고 있네요." "미안해요. 여러 가지 많은 도움 주신 거 고맙고 그래요." "이제는 새로운 삶에 적응을 잘 해야죠." "네~. 참 집에 잘 다녀 왔어요?" "네" "아버지께 선 어떠세요?" "많이 좋아 지졌어요." "다행이네요. 참 이름이 뭐예요" "이름은 그냥 편하게 K라고 해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아요." "그래도 너무 해요. 제게 이름을 알려 줄 수없는 다른 이유가 있나요?" "그런 거는 아니고요. 우리에 만남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러지요." "전 이름을 알려 주었는데" "미안해요. 나중에 서울서 만나 친하게 된다면 그땐 꼭 이름 알려 줄게요." "그래도 이건 여자에 대한 실례가 아닌가요. 호호호." "K라고 부르기 어색하면 이렇게 불러 봐요" "어떡해요." "저어 ~ 있잖아요. 라고 그렇게 부르세요." "저어 있잖아요! .....우습네요." "그 말이 더욱 정이가고 애교 있는 호칭 방법 이예요. 사랑이 가득한 연인들이 부르는 것으로 이름보다 더 사랑받는 호칭법이죠" "듣고 보니 조 옴 그런 거 같네요." "그렇죠? 이제 기분은 좀 어때요" "아까 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저도요" "이상하죠? 이렇게 만나는 인연도 있고" "혹시 애인 있으세요?"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네"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K 그에게는 더없는 행운이었다.
4. "이제 속이 좀 따뜻해지네요." "소주 한찬 더 하세요?" "조금만 먹을게요." 윤희에게 한잔을 더 따르며 K가 말을 또 시작한다. "피할 수 없는 교통사고로 그 사람은 윤희씨를 먼저 떠난 거예요?" "그래요 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그 사람은 불행을 당 했어요" "이제 그만 생각해요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겠어요? 기운 차리고 열심히 사는 것도 그 사람을 위하는 길이예요" "그럴까요?" "네에" "그래도 못 잊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을" "아참! 서울 올라 갈 막차 시간이 다 된 거 같아요." "그래요 그럼 일어나죠?" 몇 잔을 먹었는지 확실히 모르겠으나 취기가 돌았다. "출발시간이 몇 시예요?" "서울에서 출발하는 시간과 같이 자정 시각에 출발해요." "그래요" 서울 가는 막차를 타기 위해 사람들도 하나 둘 포장마차 일어나 역전으로 가고 있다. 포장마차 아저씨도 늦었다고 하며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고 이곳 정동진역은 서울 행 막차가 출발하면 주말을 빼고는 무척 쓸쓸한 간이역으로 주말 장사하는 이곳 사람들은 때론 취객들에게 바가지요금 받기도 한다. K는 가게에 들어오기 전 미리 아저씨에게 부탁한 청량 기차표 2매를 받아 들었다. 포장마차를 나오니 바람이 차게 얼굴을 때리고 밤바다의 파도 소리가 외롭게 들려온다. 그들은 역 대합실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저기요" "말해요" "사랑은 위선 같아요." "뭐가요?" "사랑한다는 말이 모두 위선 같아요." "그럴까요?"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난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금방 갈수 없으니 말예요" "자꾸 그런 생각 하지 말아요." "지금에 사랑은 빈껍데기만 남아서 돌아다니고 있는 거 같아요." "아니 예요. 사랑은 사랑할 때가 더 아름답고 진실한 거예요" "사랑은 하지 않는 게 편한 거 같아요. 너무 힘들어요." "윤희씬 참 좋은 여자 같아요." "제가요?" "네에" "그 사람을 못 잊어 하는 걸 보면 정말 마음씨가 몹시 착하고 또“ "또 뭐예요" "참 좋은 사람이라 예뻐 해주고." "고마워요 그렇게 칭찬을 해주니까,,,,,,,,,,, " "아마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있을 거예요." "저 땜에 서울 가는 거 늦은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전 상관없어요. 늘 이렇게 다녔기 때문에 문제없지만 윤희씨가 많이 피곤할 것 같네요." "저도 괜찮아요. 무엇보다도 거길 만나서 내 기분이 좀 편해진 거 같아요." "맨 날 혼자 고향을 다녀가는데 윤희씨를 만나서 심심하진 않았어요." "차 암 우습죠?" "뭐가요" "어제 열차사고로 만났다가 오늘 저녁때 다시 만난걸 보면 인연이 있으려고 그러는 거 아닐까요?" "인연이 아니라 뜻밖의 우연이겠죠." "저어~ 있잖아요. 거길 만난 게 참 좋은 행운이 올 것 같아요." "........." 윤희 얼굴을 묘한 감정으로 K가 바라보고 있었다. "말벗도 됐고 내슬픈 사랑도 위로 해 주었고 정말 고마워요." "애인을 못 잊어서 만나러 온 사람을 만난 게 좀 질투하고 서운했지만 즐거웠어요." "미안해요. 죄송하고" "아니 예요. 그냥 해본 소리예요" "서울 가서 우리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기회 있으면 아니 인연이 되면 만날 수 있겠죠" "오늘 여러 가지로 정말 고마웠어요."
윤희를 가볍게 껴않은 그 에게도 약간의 취기가 돌고 있었지만 여자에 대한 이성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다만 따스한 그녀의 체온이 그에겐 그리 싫지는 않았다. 여자의 체취는 술김이라 그런지 기분은 좋았다. 겨울 밤하늘 위로 별들이 무수히 많이 떠 있었고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영롱한 별들이 크리스마스트리에 핀 전깃불처럼 꺼졌다 켜졌다 하며 부지런히 밤하늘 위를 수놓고 있었다. 가끔씩 별동별이 지나가가도 하고 오늘 그녀를 처음 만나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게 잠시 순간의 행복감을 느꼈다. "저어기 있잖아요." "애기해요 들을게요." "사랑은 사랑을 함으로써 행복하지만 사랑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도 사랑에 대한 하나의 죄악일거예요" "그렇지요." "사랑이란 참 신기하죠? 너무 가슴 아프게도 하기도 하고 다시 아득해질 만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사랑했다 헤어지는 건 너무 가슴 아프지만 그 사람을 사랑 할 수 없다는 건 또한 더 슬픈 일이잖아요." "그래서 사랑은 주어도 끝이 없다고 하지요." "그래요" "갑자기 이런 구절이 생각나네요." "어떤 글인데요?" "찌들고 메말라 푸석해진 마음을 맑은 물기로 적셔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따듯한 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래요.“ "마음에 와 닿는 글이네요" "윤희씨! 이제 그 사람을 잊고 새로운 만난 만나도록 하세요." "하지만 아직은 제 맘이 허락하지 않아요." "......." 시골집에 있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아 여자를 가까이 할 시간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 동안 정동진역에 도착을 했다. 역전 대합실로 들어서니 술에 취해서 의자에 눕는 사람도 있었고 바다 냄새가 물씬한 남녀의 체온이 엉켜서 서울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어수선한 모습으로 가득했다. 우선 열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나가니 강릉을 출발한 열차가 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약간의 취기가 돌고 있는 이들 두 남녀는 서로 부둥켜 앉고 비틀거리며 열차 안으로 들어섰다. 종착역에서 타고 온 사람들로 기차 안은 시골 장터처럼 시끄러웠다. 좌석을 찾고 보니 내려올 때 앉았던 바로 그 좌석 번호와 같았다. 그리고 앞자리는 노부부가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란히 두 사람이 자리에 앉는다. 열차 안은 시끄럽고 조금은 어수선 하였다.
5 우연한 두 사람의 만남은 마치 하루를 계약한 연인처럼 보였다. 열차는 서서히 정동진역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젊은이들 어디까지 가?" 앞자리에 있는 할머니가 윤희에게 물어 왔다. "청량리요" "잉! 우리랑 같구먼!" "할머니 왜 이렇게 늦게 올라가세요. 날씨도 추운데" "그리됐어. 서울 아들네 집에 가는 거야." "그러세요. 새벽에 도착 하니까 무척 추울 거예요." "옆에 젊은이가 애인인가?" "아네요. 할머니 오늘 여기서 만난 사람예요" 윤희도 피곤했지만 어른이 묻는 말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술 한 잔 거 같으이." "네에. 조금했어요. 죄송해요 할머니." "아냐 색시 요샌 다들 한잔씩 하는 거 같더구먼." "죄송합니다. 할머니." K가 대신 죄송하다는 말을 건넨다. 어제 내려 올 때는 사람은 낯설고 서먹했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다른 모습으로 연인이 된 것처럼 열차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서로 장난을 하기도하고 떠들며 웃기도 하고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윤희씨 재미난 이야기 해줄까?" "하세요." "있잖아요. 지하철이 없었던 70년대 버스 타고 다닐 때 이야기예요" "네" "청량리 중랑교 다니는 51번 버스 차장이 정류장에서 "청량리 중랑교 가요"라고 사람을 부르는데" "그래서요" "청량리 중랑교 가요를 빠르게 여러 번 하면 이렇게 들리는 거예요" "어떻게요?" "차라리 죽는 게 나요 라고." ",,,,,..." "한번 해봐요 그렇게 들리지요" "에이! 누가 그냥 지어낸 이야기죠?" "그때는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콩나물시루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들렸대요." "거짓말" "정말이에요. 중랑교를 건너서 상봉동 그리고 망우리 그곳엔 시립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도시개발로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요." "망우리에 공동묘지가 있었나요?" “네” 그런 소리가 재미없는지 윤희는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고 K 혼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미안했든지 이야기를 중단하고 윤희를 가볍게 껴않자 저항도 없이 그녀가 다가왔다. 약간의 취기가 돌고 있었는지 여자에 대한 감정으로 얼굴이 붉어지고 따스한 그녀의 체온은 오랜만에 여자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그녀에게 옮겨 온 여자의 체취에 입술이라도 더듬고 싶었지만 스스로 자신을 채찍하고 있었다. 열차는 어제와는 달리 아무 사고 없이 어두운 밤길을 달렸고 덜커덩거리며 서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두 사람은 정말 다정한 연인 사이였다. 열차가 출발하자 사람들이 차내를 왔다 갔다 하며 몹시 소란스러웠다. 그냥 멍하니 앞 사람만 바라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무언가를 자꾸 주면서 먹으라고 하는데 조금은 귀찮았다. "색시. 이것 두 먹어봐" 하며 삶은 고구마를 윤희에게 내민다. 윤희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여 났기에 사실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아 차렸는지 K가 얼른 받아먹는다. 오늘 서울 행 야간열차에서 두 사람은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엮어야 할 순간이었다. "저어 있잖아요." "이름이 뭐예요 이제 가르쳐 주면 안돼요?" "서울 올라가서 다음에 다시 만날 때 이야기 해준다고 했잖아요?" "그랬나. 그래도 알고 싶은데ㅎㅎㅎㅎ" "그냥 K라고 해요 참 K자 들어가는 노래로 성은 김이라는 노래가 있네요. 참!" "그래요 오늘 첨 이니까 봐주는 거예요. 다음엔 꼭 알려 줘야 해요." "윤희씨" "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과 어떻게 다를 거 같아요?" "글쎄요. 아직 깊이 그런 거 생각 해 보지 않았어요." "이런 거래요. 좋아하는 마음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향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향수처럼 어지러운 거구요" "그리고요." "좋아하는 사이는 정답게 얘기하는 거고 사랑하는 사이는 말 못하고 얼굴만 빨개지는 거래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좋아하는 마음은 사탕을 주는 기쁨이고 사랑하는 마음은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기다리는 설렘이래요." "근데 그런 거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아요." "저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없지만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어요." "네에!" "좋아하는 이는 내일 주어야 할 마음에 기뻐하는 거고 사랑하는 이는 오늘 주지 못한 마음에 안타까워하는 거래요" "아이고 너무 알아도 사랑이 골치 아프겠어요" "그래도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를 열심히 사랑하고 그리고" "그리고 또 뭐예요" "좋아하는 이에게는 안녕이란 미소를 보내지만 사랑하는 이에게는 안녕 이란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는 거래요"
"저어~ 있잖아요. 너무 복잡해서 노트에 적어야 되겠어요." 윤희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서 열심히 적고 있었다. "세상엔 누군가를 위해서 대신 울어줘야 할 때도 있고 또 그 사람이 힘들어 할 때는 내가 있다는 것을 그에게 기억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럴 때는 철학 교수님 같아요. 호호호" "살아가는 삶을 터득하려면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왜요?" "모든 범죄는 인생철학에서 오는 범죄가 얼마든지 있거든요" "말하자면 어떤 거예요." "범죄는 결국 사람과 사람끼리 어울려서 발생하는 거잖아요"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해요" "윤희씨 졸리지 않아요?" "아니요" 메모를 하던 노트에 적어놓은 시를 K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어야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려하여도 받아 줄 이가 없으면 이루어 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다 사랑 할 수 없습니다. 서로를 만날 수 있는 마음의 만남에 시작이 먼저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실이 함께 하지 않으면 모두가 다 이루어질 수 없는 거짓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용해원님 시를 좋아 하나 봐요!" "ㅎㅎㅎ" "시 많이 읽고 습작도 해 보세요. 시 쓰는 사람은 감성이 풍부해서 마음도 참 곱대요“ “전 시를 쓸지는 몰라도 그냥 시 읽는 건 좋아해요. 참 거긴 시를 쓰세요?” “그냥 습작으로 몇 편정도 써 놓은 게 있지요.” “언제 만나면 꼭 보여 주세요” “네” “제 남자친구도 시를 잘 섰어요.” “아~ 그래요." “마음이 편안해 지면 그 사람을 생각하며 저도 이제 시를 써볼게요.” 서울서 정동진 까지 어제 두 사람이 내려 올 때는 서로 모르는 각자의 방향이었지만 올라가는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색인 되고 있었다. 아주 밝은 웃음이 가득히 안으로 퍼지고 있었다. 마치 인생에 선배처럼 K는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있잖아요. 정말 오늘 좋은 만남인거 같아요." "..........." "이제 잠이 막 오려고 해요" "그래요. 잠을 좀 자야겠죠?" "좀 잘래요."
K는 잠바를 벗어서 그녀에게 덮어 준다. 그리고 편히 잘 수 있도록 어깨위에 그녀의 머리를 비스듬히 대 주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K에게도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엉겁결에 그녀를 가볍게 또 앉아 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잠에 취해서인지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잠꼬대 하듯이 K에게 슬며시 안겨오고 있는데 가슴이 마구 방망이 질 하고 있었다. 그녀의 체온이 다가 올수록 야릇한 감정이 솟아오고 이러면 안 되지 하며 자신을 채찍하고 있었다. K에게는 지금 사범고시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합격하기 전까지는 여자를 멀리하기로 다짐을 했고 아직은 연로한 부모님을 더 도와야 하며 그래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앞에 앉아있던 노부부도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서로 엉켜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K도 눈이 스스로 감긴다. 월요일 아침 서울에 도착하면 그도 일하는 곳으로 직접 출근해야 한다. 이제 그도 잠이 스스로 취해오고 있다. 열차는 서울을 향하여 부지런히 어둠 속을 달리고 차안은 어디를 보아도 모두가 눈을 감고 자는 사람들이었다.
6 여명을 가로지르며 서울로 가는 새벽열차의 승객들은 모두 지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대부분 하룻밤 당일치기로 다녀가는 여행길이라 그런지 서울 행 야간열차는 내려올 때 보 다는 다르게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승객들이 많았다. 얼마 가 지났을까 많은 시간이 흐른것 같았다. 열차방송이 차내에 들려왔다. 잠시 후 목적지 청량리에 도착을 하겠으니 손님 들은 미리 준비하라고 이른다. 시끄러운 차내 방송 소리에 윤희도 잠에서 얼른 일어 났 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긴 하품을 하며 옆자리를 보 았다. 아~~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출발 할 때부터 밤새도록 옆에서 재밌는 이야기 해주던 K라는 남자가 보이지를 않았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찾아 보아도 보이지를 않자 혹시 화장실에 간 것이 아닌가하고 기다렸다. 어느덧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열차 화장실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노크 하였다. "여보세요" 그런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에 짐을 챙기고 있었다. 윤희는 몹시 불안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얼른 자리로 돌아와서 짐을 챙기며 혼잣말을 한다. "어디로 갔을까?" 아무 인사도 없이 혼자 간 것이 생각을 해보니 혹시 강도, 날치기, 사기꾼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윤희는 정신을 차려 소지품이 분실 한 것이 없는지 확인 하려고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다행히 사라진 물건은 없었다. "할머니 제 옆에 앉아 있던 남자 친구 못 보셨어요.?" "응? 누구?" "저랑 같이 있던 남자 친구예요" "뭔 말인지 통 모르겠구먼. 색시 옆에는 어떤 아기 엄마가 앉아 있었는데 짐을 챙겨서 방금 차에서 내렸지" "네?" "색시 잠이 덜 깬 거 같은데 늦기 전에 나 가 자구. 서울에 다 왔으니까 어서." “그럼 제가 이제까지 아기 엄마와 같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 남자 K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나하나 어젯밤에 일을 더듬어 생각해도 분명히 정동진역에서 출발 할 때 같이 있었는데 혼자 투덜거렸다. 그런데 잠을 챙기는 도중 열차 바닥에 떨어진 노트 메모지 하나를 발견했다. 얼른 주워서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당신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아름다웠던 우리의 사랑 잊지 않는 모습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동안 눈물겹도록 고마웠지요. 당신을 많이 사랑하지만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너무 속상해요.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 - 아니 이럴 수가? 그럼 어찌된 일인가! 그리고 무슨 운명인가! 그럼 지금까지 그녀가 열차에서 하루 종일 만났던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윤희가 짐을 꾸려 아기 엄마를 찾으려고 출찰구로 달려 나갔다. 아기 엄마를 찾아야 누구와 같이 기차를 타고 왔는지 알 것 같았지만 그 사람은 어디로 사라 졌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K라는 남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무엇에 홀린 듯이 황급히 역전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시내 거리는 어제 내린 눈이 가득이 쌓여있었고 아침 찬 공기가 싸한 영하의 날씨이다. "그러면 어제 그 사람은 누굴까?" "누구지?" “나를 두고 떠나간 그 사람!” 그녀가 역전을 나와서 사람들 속으로 어디론가 바삐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청량리 역전은 썰물이 빠져 나 간 듯이 조용해지고 다음 열차를 타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기차 역전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일은 성탄절 크리스마스 연말로 이어지는 한해를 결산하는 바쁜 한주가 시작이 된다. 세상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를 또 시작하는 아침 텔레비전 뉴스에서 안타까운 자살 소식을 전해주었다. 바로 윤희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이다. 교통사고로 작년에 남자 친구가 먼저 죽고 고통 속에서 혼자 지내다가 그를 잊지 못하고 정 동진으로 추억 여행을 다녀와서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 조간신문도 윤희의 죽음을 사회면을 특종기사로 다루었다. 기사 제목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 천상재회” 대문짝 크기의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교통사고로 남자를 잃고 끝내 애인을 잊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의 넘나든 해후의 꿈을 꾸다가 죽음으로 사랑을 마무리하다"
기사내용. [ 한 여자가 교통사고로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버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지만 그렇게 아름답게 사랑했던 정윤희와 김승우는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선택하였다. 정윤희의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중독으로써 얼굴을 예쁘게 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로 침대에서 죽음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상태가 온전치 못하며 다리를 약간 절고 있는 정윤희는 여러 번 자살을 기도 했다가 부모님에게 꾸중 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군대 간 남자 친구의 휴가 여행으로 정동진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로 김 승우가 먼저 죽었었다. 이들은 남자가 제대를 하면 다음해 결혼을 약속한 사람들로 그들은 끝내 그렇게 죽음으로 세상과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말았다. 늘 승우를 잊지 못해서 걱정하던 그가 잠시 어디를 다녀오겠다고 하기에 외출을 보냈더니 이런 일이 발생 했다며 부모님은 큰 충격에 몸 저 누웠다고 한다.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정동진을 출발해서 청량리에 도착 할 때 까지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누군가와 울면서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 데 아마 그것은 죽은 김 승우와 천상의 대화가 아니었나 라는 추측이다. 한편 그녀가 열차 바닥에서 주웠다는 메모 쪽지는 남자친구가 교통사고로 투병 중일 때 그녀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말을 다른 사람이 대필하여 그녀의 일기장 노트에 미리 넣어 두었던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너무나 사랑한 그들이기에 이승에서 천상재화를 실현한 게 아닌가하는 정신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사랑했기에 그 사람 뒤를 따라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택한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올 겨울 추위를 훈훈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한줌의 재로 변한 정윤희는 김승우의 뒤를 따라 친구들에 의해서 정동진 바닷가에 뿌려 졌으며 남녀의 사랑을 칵테일 하듯 단순하게 생각하는 요즈음 세대들에게는 좋은 교훈을 주었으며 참으로 아름다운 사연이라고 기사는 끝을 맺었다.]
내가 세상을 떠난다하여도 자연은 그대로이고 우주는 여전히 지구를 향하여 자전하고 공전을 하며 시간과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내가 죽으면 이 세상도 똑같이 끝이 나야 하는데 이처럼 억울한 일은 없다. 어떠한 이유든 죽음이라는 것은 미화 할 수는 없지만 특히 자살이라는 것은 일순간의 고뇌와 감정을 참지 못하고 하는 모호한 짓이다. 단 한번뿐인 소중한 자기 인생을 누구보다도 스스로 아끼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 이승에서 못 다한 사랑을 저승까지 갖고 간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어디에 선가 사랑은 아름다운 거라며 죽음으로 그 사랑을 대신 했지만 운명적으로 만나서 운명적으로 다가 온 죽음의 덧을 그들은 벗어나지를 못하고 20여년 남짓 이 세상을 살다 간 정윤희와 김승우의 애련한 사랑 그 사랑을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의 힘으로 살아 온 그들은 알고 있고 그리고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들에 죽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이날 저녁은 크리스마스이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거룩한 밤이다. 성당의 종소리가 겨울 밤바람을 타고 아주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 THE END -
Je Pense A Toi (내 가슴에 그대를 담고) Richard Ab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