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산문꽁트

연정(戀精)

시인김남식 2015. 10. 12. 14:52

연 정 (戀情)               솔새김남식

 

큰 사거리 건물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서 PC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한 형광등 불빛 아래 종업원인 듯한 여자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침침한 내 눈 때문에 쉽게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카운터에 있는 여자를 힐끗 한번 처다 보고 나서 더듬더듬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잡아 말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나를 뒤 따라서 여자가 내게로 왔다. 여자는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면서 카드를 주고 가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 준다.

집에서처럼 컴퓨터를 그냥 키는 줄 알았는데 카드가 있어야 컴퓨터를 켤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녀가 가르쳐 준대로 카드에 있는 비밀 번호를 치고 컴퓨터를 열었다. 그리고 전화로 연락받은 메일을 검색하기 시작 했다. 잠시 후 여자가 차를 가지고 내게로 왔다.

"커피 드세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차를 갖고 왔다. 종이컵에서 커피향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어머 꽃이 예쁘네요."

여자가 내 어깨 너머로 이메일 사진을 보면서 말한다. 그러게 헌데 이게 무슨 꽃인지 알아야지 혼잣말처럼 나는 중얼거렸다.

"겹 살구꽃 같은데요."

여자가 말했다.

"뭐? 그런 꽃도 있나?"

"네 있어요."

"틀림없이 겹 살구꽃 이예요"

뒤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혼자서 또 중얼 거렸다. 나는 틈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자연을 벗 삼아 들꽃을 찍으러 다니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좋은 사진을 찍었다고 지인으로 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어딜 가던 길을 급히 멈추고 궁금하여 PC방에 들어와 지금 보내 온 사진을 검색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 시골서 보아서 잘 알아요."

여자는 계속 내 뒤에 서서 꽃구경을 하며 말을 하고 있다. 꽃에 대해서 잘 아는 게 그리 많지 않기에 여자의 꽃 설명을 나는 재미있게 들어야 했다. 여자는 꽃에 대해서 제법 아는 게 많은 모양이었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고향이 아마 시골인 것 같았다.

잠시 후 컴퓨터로 볼 일을 다 마치고 PC방을 나올 때 카운터에 앉아 있던 그 여자는 그 꽃들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나를 보고 웃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얀 이가 참 예쁘게 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자는 잇몸 보다는 하얀 이가 많이 보여야 더 예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하얀 이를 들어 내며 정말 내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카운터에서 내가 주는 돈을 받으며 그 여자는 또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또 오세요."

하며 미소를 내게 건 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묘한 감정이 내 머리 속을 스쳐 갔다. 웬 늙은이가 젊은이가 들어오는 PC방에 와서 떠듬떠듬 타자하는 모습이 참 우습 게 보였겠지 하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그녀가 웃는 거라고 지하 계단을 오르며 혼자서 중얼 거렸다. 아무튼 첫 인상이 참 곱다고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커피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져다주는 것을 보면 마음도 착할 것이라고 그리고 요즈음 보기 드믄 참 예쁜 여자라고 칭찬을 하며 후한 점수까지 내 주었다. 아니 주책없이 내가 쓸데없는 헛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팔팔하고 생기 있는 젊은이를 보면 부럽고 자신도 모르게 젊은 날이 그리워지고 아련해지는 것은 누구나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젊음은 일순간에 지나고 세월은 바람처럼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은 세상이치와 같은 것이라 생각 하였다. 거리로 나서자 어느덧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고 혼자서 라도 마음을 달래이며 한잔 술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그 여자에 모습이 아른 거렸다.

그리고 며칠 후 사무실에서 다시 메일을 열었을 때 또 꽃 사진이 나왔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꽃들이지만 그래도 형님이 성의 것 보내 준 사진 자료이니 습관적으로 열어 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그 꽃들이 무슨 꽃인지 또 궁금해졌다. 나는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사무실을 나와 그 여자가 있는 PC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마도 그 여자가 보고 싶어서 겸사겸사 찾아가는 것인지 어쩌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발 길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여자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얼른 일어나 반갑게 맞이해 준다. 여자가 또 웃었다. 오늘 보니 눈이 참 큰 여자였다. 내 얼굴이 잠시 불그레 진다. 내 맘이 그녀에게 끌리는 게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게 하였다. 그 여자의 얼굴이 곱상인 게 너무 흠이었다.

여자가 카드를 갖고 와서 내 컴퓨터를 켜 주더니 내 옆자리에 그냥 앉는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이메일 꽃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여자가 앵두 같은 예쁜 입술로 종알종알 꽃 사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어머~ 이건 찔레꽃이네요"

"............."

"해가 막 떠오를 무렵 소담스럽게 예쁘게 시골집 담장으로 피어나는 꽃 이예요."

그녀가 이야기를 하고 듣기만 하는데 조그만 입으로 종알대는 모습에 어느덧 내가 취해 있었다.

"까치발을 들고 조금 이라도 더 멀리 바라보려고 기댈 담을 타고서 피는 꽃 이예요."

"..............."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 주는 꽃이래요."

앵두 같은 그녀의 목소리 외는 다른 아무것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산에 피는 꽃은 흰색이고 집에서 피는 꽃은 붉은색인데"

"..................”

의자가 기울 때마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내 귓불을 간지럽히곤 하였다. 그런데 기분이 묘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또한 그녀의 긴 머리에서 바닐라 향이 내 코를 찌르고 있었다.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여자의 팔뚝이 내 팔뚝과 가끔 겹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자의 기다란 팔뚝 살이 참 보드라웠다.

하얀 팔뚝으로 솜털이 뽀얗게 나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여자의 어깨 위에 내 왼손을 슬쩍 얹었다.

그리곤 내 오른손으로 여자의 손을 잡았다.

"손이 예쁘구먼!"

나는 다른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여자의 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 했다.

자기의 손을 내게 맡긴 채 꽃 설명을 계속 하는데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그녀가 깜박 잊은 것 같았다

"제가 어렸을 때 울 엄마가 찔레꽃 노래를 무척 잘 불렀어요."

"으응"

"고향이 어딘데?"

"네! 마산 이예요. 남쪽나라 내 고향 이렇게 하는 거요"

"그 노래는 내가 더 잘 알지"

그 여자와 내가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리는 조그맣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 주던 못 잊을 사람 아~~”

노래를 부르며 한 손은 그녀의 손을 만지면서 잠시 착각 속에 빠져 들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여자의 손은 내 아내의 손 보다 더 연하고 살결이 보드라웠다.

 

 

어느덧 여자의 따스한 체온이 내게로 전해오고 있었고 아랫몸이 묵직하게 달아 오고 있는 느낌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아직은 사랑 할 나이라고 속으로는 스스로 자신있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의 손을 정말 놓기가 싫었다. 정말 오랜 시간을 이러고 싶은 충동이 머리끝까지 올라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손님이 카운터에 나오자 그녀는 자리에서 불쑥 일어났다. 갑자기 내 손이 얼얼했다. 함께 있던 시간은 불과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갖고 놀던 장난감을 다른 아이에게 갑자기 빼앗긴 기분이다.

손님이 많아서인지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내게로 오지 않았다. 더 이상 앉아있기가 민망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려고요?"

"응"

카드와 함께 돈을 내 밀었다. 그녀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오늘은 사무적인 이야기만 하였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문까지 따라 나왔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조금은 못내 서운했고 섭섭하였다. 하지만 젊음은 참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며 내게도 저런 발랄하고 상큼한 여자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이루지 못 할 야무진 꿈이지만 지하 계단을 오르면서 혼자 중얼 거렸다. 밖으로 나오니 겨울의 끝 무렵에서 봄 햇살이 참으로 따뜻했다.

그런데 어찌나 눈이 부신지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여지없이 올 것이다. 며칠 지난 후 지인이 보낸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PC방에 들렸을 때는 그녀는 보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 일을 그만둔 것 같았다. 이름이나 진작 물어 볼 걸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잠시 머물다간 인연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도록 탐욕의 신은 여기서 멈추게 하였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 그녀를 모두 지워 버렸고 그 후 PC방은 가지 않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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