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生活수필

초평저수지 소두머니

시인김남식 2008. 9. 17. 13:16
소두머니의 달밤  솔새김남식

 

어느 해인가 여름 방학 때 진천군 초평면에 있는 미호천 상류 소두머니로 친구들과 캠프를 갔었다.

이곳은 깍아지른 벼랑길 아래로 시퍼런 미호천 강물이 용수를 틀며 흐르고 있었고
그 아래로 넓은 모래사장은 여름 한 철 놀기에는 아주 좋았다

지금처럼 차가 있던 시절도 아니라 여름이 되면 주변 마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더위를 피하러 냇가로 나왔다.

그물로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해먹는 사람들도 있고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기도했다

우리도 사람들과 어울려 옷이 다 젖도록 물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한 녀석이 물에 빠저 허우적 허우적 허프 허프 물을 먹으며 겁에 질려 있었다.


물이 좀 깊은 곳으로 들어 갔던 것 같았다
다행히 수영 잘 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아이는 무사히 구했지만 하마트면 익사 사고 낼 뻔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일 없듯이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밥과 반찬을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물에서 놀다가 저녁 무렵에 다들 집으로 돌아 갔지만
우리는 하루 밤을 보내기로 하고 주위에서 땔깜을 주워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밤이 이슥해지자 얼마나 무섭을 타는지 우리는 서로 시험 하기로 하였다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하기로 했다.

 


우선 피를 흘리며 피아노를 치는 여자 이야기를 하는 철수가 먼저 이야기 하였고
그리고 학찬이는 잿더미에 속에서 푸드덕하며 굴러 나오는 달걀 귀신 이야기를 했다.
아내와 어머니가 물에 빠젔으나 어머니를 먼저 건진 물귀신 이야기는 종달이가 할 때 쯤은

어느새 밤이 벌써 이슥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수박을 짤라 먹으며 명호는 장가 못 간 건너 마을 노총각이 상사병에 죽은

몽달귀신 이야기를 하는등 온갖 무서운 이야기는 다 하며 웃고 떠들며 재밋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서 마을 공동묘지에 있는 행여터에 있는 무서운 괴전설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갑자기 어디선가 끼이약~!!!!!!!!! 하는 귀 찢어지는

여자의 비병 소리가 갑자기 들려 왔다.

머리가 쭈삣하고 섬뜻한 느낌이 들어서 우린 숨을 죽이고 조용히 했다.

이 밤에 또 어떤 미친년이 미역감는 줄 알고 속으로 욕을 내 질렀다

.

그런데 다시 또 으흐흐~!!!!! 하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간헐적으로 여러번 들려 왔다.

우리는 동시에 으아악!!하고 무서워서 몸을 서로 붙잡고 팔로 둥그렇게 만들어

죽기 살기로 얼겹결에 서로 얼싸앉아 버렸다

집에 갈 수도 없고 무조건 작은 텐트속에 다섯명이 들어가 눈을 감고 잠을 자는데 식을 땀이 흐르고
머리가 쭈빗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는데 온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정말 귀신에게 홀려서 엄마도 못 보고 죽는게 아닐까하고 눈물도 나고 무서워서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밖의 동정을 샆피는등 밤새도록 혼이 났다.

여자에 비명소리는 한참 동안 여러번 들리다가 지금은 벌래 울움소리만 들려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떻게 밤을 지냈는지 알수가 없도록옷이 모두 젖었고

얼굴을 서로 바라 보며 다들 다행히 무사했던게 꿈만 같았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부지런히 짐을 챙겨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오면서

어젯 밤 이야기를 우리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데

마침 읍내 장에 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야! 그기서 재작년 인가?  여름에 저 아랫 고막꼴 사는 고등학생 여자 애가

여름 방학때 서울서 놀러 온 대학생하고 눈이 마젔때....."
"..............네?"
갑자기 우리들 귀가 쫑끗 해졌다.


"순진한 시골 처녀를 겁탈하고 마음까지 뺏앗아 서울로 갔는데

그 처자의 배는 불러 오고 한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마침내 목숨을 버렸지라 써그럴 넘들 때문에........" 
서울서 놀러 왔던 그 대학생들을 아주머니가 막 욕을 하였다.
"밤에 냇가에 햇불 놓고 빙빙 돌면서 냇가에서 놀다가 그 여자를 겁탈 했뿌렷나바"
"...........네"
서울 대학생들이 시골로 농촌봉사를 와서 마을 4H 청년들과 밤새도록 이곳에서 놀았다고 한다.
그런데 눈이 맞은 남녀가 놀던 자리를 이탈하여 남자 녀석이

여학생을 백사장에 눞히고 어두운 곳에서 글쎄!! 그 짓을 했다고 한다.

 


순진한 시골처자가 서울 대학생의 달콤한 사탕 발림에 그만 속아 넘어 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서울 대학생이라면 여자들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면 혼날 것이 두려웠던 그 여자는

벼랑길에서 강물로 무거운 몸을 던저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시체는 마침 장마철이라 며칠 후에 건젔으나 고기들이 글쎄 그 여자 시체를 망가뜨렸다나...쯔즈...
장례를 치루고 부모님들이 비로(飛瀘)모퉁이에서 원한 굿을 했지라"
이야기는 들을수록 재밋었고 버스 탄 사람들도 하나 같이 흥미롭고 듣고 있었다


"여름에 밤 만되면 찢어지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일주일 후엔
죽는다는 소문이 얼마전 부터 퍼저 가지고 사람들이 냇가에 얼씬도 안해여" 
"그런디 얼마전에 그런 사고가 또 있었잖아...!!"
"대학생들이 캠핑 왔다가 한 사람이 물에 빠저 죽었는데 전날 밤에

그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능가 봐 글쎄....내 참..."
우린 그 이야기 듣고 바로 잠을 청한 게 잘했구나 생각을 하였다. 

왜냐면 우리가 귀신 소리를 듣었을 때는 너무 무서워서 이미  잠이 깊었었다.

아니 귀신의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후 우리는 절대로 그 곳으로 캠핑을 가지 않기로 생각 하였다. 

 


다음날 집에 와서 자꾸만 그 생각이 나서 며칠 동안은 끙끙 아파서 몸살을 하고 말았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 하는 날 작은 동네 그리고 건너마을 친구들 모두가 아무 일 없어서 퍽 다행이였다
그 일만 생각하면 그 끔찍한 여자의 비명 소리가 지금도 어디선거 들리는 것 같다.
장미철이 되면 특히 비오는 날은 더욱 심하게 들린다는 이야기가 한 동안 들려 왔다.
"나 살려줘~~~ 나 좀 살리줘~~~"
" 이 나쁜 놈 날 두고 어디갔냐~~"

 

초평저수지에서 내려 오는 미호천 상류 소두머니 백사장은 바닷가 해변 보다는 작지만

주위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경치도 좋으며 놀기에는 아주 좋다.

특히 비로(飛瀘)모퉁이는 50여 미터의 깎아지른 바위와 함께 좁은 절벽길 아래로

용수가 돌면서 흐르는 물길이 있다.

그런데 이곳은 더 무서운 물귀신 이야기가 있었으니....... 




이곳 소두머니의 윗쪽은 직선 거리로 약 7키로 상류에 초평저수지가 있다.

소두모니에서 귀신에 홀렸던 무서운 밤 그 일을 당하기 몇해전 그러니까

1963년으로 기억 되는데 그 초평 저수지에서 40여명이 익사하는 대형 참사가 있었다.

처음엔 소형 방죽으로 시작한 초평저수지는

1958년에 한미협조로 재 완공되어 미호천 상류를 가로 막은 충북에서 가장 큰 영농 저수지로써

멀리 미호평야까지 인근 곡창 지대에 물을 공급하였다

그리고 일년에 물 값으로 쌀을 몇 말식 수리조합에 물세를 냈었다. 

특별히 놀 것이 없던 시골 사람들에게 여름 한철 초형저수지에서 물놀이가 유일한 재미였다 

갑자기 관광 산업이 발전하여 바다가 없는 내륙에 호수로써의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

.

당시 칠월 백중때는 읍내는 큰 장이 서고, 씨름판도 열리고, 먹을거리와 놀이가 질펀하게 벌어져

땀 흘리며 일하던 시골 사람들에게 더없는 즐거움과 풍요로운 대목 잔치판이 벌어지곤 했었다.

특히 부잣집 머슴들도 이때가 되면 일년 새경이 아닌 특별 보너스를 주인장으로 부터 

용돈을 넉넉히 얻어 가족들에게 폼나게 돈을 썼다.

그래서 덩달아 마을 처녀들도 여가를 풍성하게 즐겼다.

초평저수지와 초정약수터는 가족들과 또는 친구나 연인들끼리 소풍을 가서 폼나게 놀던 장소였다.

진천 초평을 가나 내수 초정을 가나 거리가 똑 같이 걸어서 세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한 해는 초평저수지로 놀러가고 이듬 해는 초정약수터로 삼삼오오 짝이 되어 사람들이 놀러 다녔다.

 


바다가 없는 충북에서 유일하게 물놀이로는 초평 저수지가 한 몫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낮에는 더워서 술을 먹고 놀다가 주로 저녁에 통통배에 사람을 가득 태워서 호수를 한바퀴 도는 코스다.

그런데 정원을 무시하고 만취한 사람까지 승선시킨 뱃놀이가 어느 한순간 뒤집히고 말았다.

수영을 할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되었으며 특히 당시 구조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며칠을 두고서

물위로 떠오르는 시체와 핸드백, 고무 신짝등 소지품들이 물위에 떠 올랐다고 한다

소지품들은 저주지를 이탈해서 멀리 소두머니에서 발견이 되었다

결국 안전시설 미비와 관리 소홀로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고 말았으며

그 당시에 전국에서 아주 큰 대형사고로 기록이 되었으며 그후 물놀이를 금지 하였다.

 

그리고 죽은자의 영혼을 비는 무당들의 궂판이 매일 같이 호수에서 벌어 젔다

그때 그 사고로 인근에 있는 마을에는 거의 한 두명씩은 장례식을 했으며 

우리 동네 큰 부잣집 머슴으로 일하던 박씨 아저씨와 그리고 또 몇 사람이 죽었다

그후 물 귀신 때문에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바로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이 몇년 동안은 저수지의 물 고기를 먹지 않랐다


40여명의 사람을 익사 사고로 그렇게 잡아 먹었던 귀신이 득실 거렸던 초평 저수지는

그 이후 확장과 개 보수를 여러번 거처 지금에 이르렀고

소두머니는 중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미호천 형태를 바꾸어 놓고는 그런 일이 없는듯이

고속도로 공사가 원만하게 잘 되도록 고사를 잘 지낸 덕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뫃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잊은채 그 사건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은해에 소두머니 백사장에서 야영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할번 했던 것이다

이렇게 물귀신으로 악명 높은 초평 저수지는 10년 20년의 세월이 지나자 다시 낚시꾼들로

연일 장사진이고 주위는 온통 매운탕 집이 즐비하다.

특히 지금 소두머니에는 낚시꾼들이 멀리 서울에서 까지 붕어 낚으러 내려 오고 있다. 

그리고 소두머니의 비로모통이 무서운 바위 벼랑 길은 추억의 옛 길로 변하여

지금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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