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 : 시조시인. 호는 정운(丁芸). 1945년 [죽순]동인으로 활동하며 등단함.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가는 고유의 가락을 시조에서 찾고자 노력하였으며 간결한 표현으로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줌. 시집으로는 《청저집》(1954),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1968) 등 정운(이영도)는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출가하여 딸 하나를 낳고 홀로 되어 해방되던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 교사로 부임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의 첫눈에 정운은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스물아홉의 청상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통영 앞 바다에서 바위를 때리고 있는 청마의 시 '그리움'은 뭍같이 까딱 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다.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녹기 시작했으니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끝이 보이지 않던 유치환의 사랑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난다. 바로 1967년 2월 13일 저녁,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붓을 영영 놓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통영 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영도 그녀는 일찍이 결혼하여 21살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당시 딸 하나를 기르고 있었다 청마는 1947년 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보냈다. 청마가 사망했을 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 이었다. 당시 <주간한국>이 이들의 '아프고도 애틋한 관계'를
. 탑(塔)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시인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의 20여년에 걸친 플라토닉사랑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전설과 같을 것이다.
이영도가 1976년 예순의 나이로 타계한 뒤 무남독녀 박진아씨가 유품을 정리하니 미리 써둔 유서가 나왔고 유서에는 딸에게 사위에게 외손에게 부탁하는 말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죽음을 알릴 사람의 이름과 화장해 달라는 말, 그리고 장례비에 써 달라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남에게 신세지기를 꺼리고 신세를 지면 갚으려고 하는 분이었기에 당신의 죽음 역시 비록 딸이지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였던 모양이었다. 근검절약으로 일생을 부지런히 살았던 그녀는 택시를 타는 일이 거의 없었고 값비싼 음식을 사먹는 일이 없고 물건을 쌌던 포장 노끈까지도 잘 간수했다가 재활용하고 원고지 뒷면의 활용은 물론 편지를 쓰다가도 틀린 곳은 다시 종이를 덧붙여 썼다고 한다. 철 지난 달력의 아름다운 그림들은 잘 손질하여 화장실 부엌 같은 곳에 진열하기도 했고 자신의 삶을 이렇게 근검 절약하면서도 남을 위한 배려는 돈독했다. 후배 문인의 딱한 사정을 접하면 언제나 먼저 도우고저 했다. 냉기 속에서 청춘의 타오르는 불꽃을 오로지 시조로써 달래야 했던 정운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이것은 첫 시조집 '청저집(靑苧集)'(54년)에 실렸던 작품('무제') 으로 경남 통영시에서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정운이 청마 유치환과의 연정을 한창 싹틔우고 있을 무렵에 심경을 토로한 작품이다. 정운은 1940년 대말~50년 대말 통영에서 10여 년간 머물렀고 50년대 말에 부산으로 옮겨와서 1967년 초까지 부산에서 생활했다. 일찍이 혼자가 되어 오직 시를 쓰는 일과 딸 하나를 키우는 일에 전념하면서 어느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이영도는 그 당시의 많은 남성 文友들로 부터 선망을 받고 있었다. 이영도가 혼자의 몸으로, 그렇게 꿋꿋하게 그의 시와 딸을 지키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청마 유치환과의 애정에 크게 힘 입었던 것으로 표현된다. 받쳐 주는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며 청마를 향한 그리움은 그의 詩를 시들지 않게 해준 충분한 자양이 되었다.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정향! -유치환으로 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여기 지고지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정운 이영도의 시조를 적어 본다.
바다를 굽어보는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너는 가고 그 달래입 같은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눈이 부시네 저기 그 날 스러져 간
맺혔던 한(恨)이 터지듯 그렇듯 너희는 지고
지친 가슴 위엔 연연(戀戀)히 꿈도 설워라,
이 시조는, 산에 난만히 피어 있는 진달래로 부터 4·19 혁명 때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넋을 떠올리며 그들에 대한 추모와 자기 회한의 정을 읊은 작품이다. 선생의 무덤은 경북 청도군 내호마을 선영 아래 오빠인 이호우 선생 곁에 있다. 정운 선생이 배출한 제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다들 괄목할만한 시인으로 성장하였다. 에필로그 ; 유치환과 이영도의 사랑을 떠올리며 - solsae.kns 진정한 사랑과 고통이 있었기 때문으로 흔히 나의 이야기는 '로맨스'고, 남의 이야기는 '불륜'이라지만, 이 두분의 사랑은 불륜이라 이름하기엔 너무 아름답다. 청마가 유부남이고 자신은 딸을 둔 미망인이라는 이유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지만
혼자서라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 주는 청마가 곁에 있는 이영도 시인이 부러웠다. 더 울었을 이영도 사랑 한다고 할 만큼 아팠을 이영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픔이 얼마나 크게 아팠을까요. 이영도가 있었기에 바위처럼 꿋꿋하기만 했던 청마도 애련의 글을 쓸 수가 있었다.
유치환에게 받은 편지를 한 통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둔 이영도의 마음이 너무 예쁘다 훗날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모으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연서를 보낼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세간에서 불륜이라기 보다는 참 아름다운 숭고한 사랑이라고 이름해 주는 그런 사랑을 나의 태도에 상관없이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에 있는 오누이 공원시비 관련자료 링크=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3Ou5&articleno=16055715 2009.11.22 정리 김남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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