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릉과 정순왕후(1440~1521년) 솔새김남식
사릉은 단종의비 정순왕후 릉으로 가는 길은
퇴계원에서 춘천가는 46번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가다가 사릉나들목(IC)에 이정표가 있다.
위치는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산 65-1
버스는 사능역 보다는 금곡역에서 사능가는 버스가 더 편하며 아니면 금곡역에서 15분 정도 천천히 걷는 편이 좋을듯하다
정문은 잠겨있고 동문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입장료는 받지 않으나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들어가야 한다
사릉 빈터에는 여러가지 묘목과 희귀종 나무를 사무실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정순왕후가 1521년 후사없이 승하하자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어 결국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시가(媤家)
해주정씨 선산에 모시게 돤다. 그것이 지금에 사릉이다
1698년 단종 왕위가 복위되어 왕릉을 조성하려 하자 숙종실록 1698년(숙종 24) 11월 29일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옛무덤과 육신의 사우(祠宇)를 옮기는 문제를 논의 할 때
사릉(思陵)의 능안에 정씨 집안의 여러개의 무덤이 이미 여러백년이 지난것이 있으나 옛 무덤들을 파서
옮기지 않은 예에 따라 특별히 그대로 두도록 숙종이 허락하시더라 한다' 는 기록이 있다.
숙종의 명에 의하여 현재까지 사릉에는 정미수묘등 후손들 10기의 묘가 존치되고 있는 일종에 해주정씨의 가족묘이다
릉은 비공개이고 관리가 잘 되어서있지 흠이 하나없이 아주 깨끗하다
사릉 墓옆쪽 위에는 10개의 묘가 저렇게 남아있다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 묘
정미수 1456(세조 2)~1512(중종 7) ;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기수(耆叟), 호는 우재(愚齋) 아버지는 형조참판 종(悰)이고
어머니는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敬惠公主)이다.
아버지의 유배지인 광주에서 출생하여 아버지가 사사된 후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소환되었다.
성종이 잠저(潛邸)에 있을때 시중을 들다가 1473년(성종 4) 돈녕부직장·형조정랑이 되었으며 죄인의 자식으로
관리가 되었다하여 여러차례 탄핵을 받았으나 성종의 도움으로 무사했다.
1506년(중종 1) 우찬성으로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책록되고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졌다.
해주정씨의 가족묘
사릉입구에 무수히 피여있는 붓꽃이 정순왕후의 넋을 달래고 있지나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