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生活수필

고주망태

시인김남식 2021. 10. 7. 08:36

고주망태 김 남 식

술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마셔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를 고주망태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체력에 맞도록 술을 먹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도 모르게 많이 마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주 세월이 한참 지난 좀 오래전 이야기이다

당시 전원공급기(power supply)를 만드는 거래처 사장과 둘이서 신림동에서 술을 마셨다

저녁을 먹는데 시오야끼 맛깔에 입맛이 확 돋았다

그래서 소주를 한 병 두 병 먹다 보니 어느덧 서너 병을 마셨다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25도라서 소주를 마시면 마실 수록 뽕가게 되었다
기분이 좋아서 우리는 2차 맥주를 4병을 마셨다
당시는 한참 젊었을 때라서 술씸이 좀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센 녀석과 바보같이 대작을 했으니 어쩌랴
그러다 보니 9시가 되었다
나는 그놈이 사는 대방동까지 분수없이 찾아 들어갔다.
인간적으로 잘해주니까 거래처 직원 집까지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
사실은 술 때문에 어기적 찾아간 것이다
그 집에 가서 3차로 거실 진열장에 있는 시바스 두 병을 깠다
그것도 안주 없이 땅콩으로만....
겁도 없이....
시간이 지나자 좀 알딸딸해지기 시작했고 머리가 핑 돈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형? 갈 수 있어?
암! 갈 수 있다고 자네가 술 쎄면 얼마나 씨여 나도 쎄다고!
자고 가세요
예쁜 그놈에 부인이 미소를 짓는다
나는 씩씩댔다
간다고? 간다고요!
그놈은 자기 집에서 술을 맘 놓고 먹는데 난 가야 하니까 불공평 했다
어리벙벙 해진상태에서 그 친구집 대문을 나섰다
이리비틀 저리비틀 그저 가냘픈 몸매가 마구 흔들렸다.
택시 타고 가세요
그놈의 부인이 또 내게 미소 짓는다
인마, 댔어~ 지하철 타구 갈 거야
처음 보는 사모한테 이제는 반말까지 해댔다
좌우지간 비틀거리며 신대방역 지하철까지 걸어갔다.
내일 모래면 크리스마스 새해 날씨는 영하로 좀 춥지만 술 때문에 땀이 났다
새해엔 정말 존일 좀 있으라고 화이팅하며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내 집처럼 큰 소리친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리고 거기서 부터 완전히 필름이 끊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마에는 혹이 달려있고 바지가 난장판이 되었다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이불속에서 끙끙.......
눈을 떠보니 이상한 아주머니가 눈을 부라린다.
'어떻게 된 거요"
꿀물인지 단물인지 두 세 컵을 아침부터 들이켰다
아니 내가 이럴 수가 .......
그렇다.
어제 신대방역에서 부터 필름이 끊겼다 이어졌다하며 무사히 집에 왔다
삼류영화관 영화필름처럼 이어지고 끊어지고 여러 번 반복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집까지 살아서 돌아온 건 순전히 내 정신력이었다
그리고 어느 이름 모르는 아주머니에 선행 덕분이었다
이불속에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죽지않고 살아서 돌아온 건 천운이라고..
어제 2호선 교대에서 3호선 지하철 환승 방향 감각을 어떻게 알고
갈아 탓을까 정말 신기하고 이상했다.
그것은 바로 순전히 내 정신력이었다
필름이 끊기고 또 다시 이여지고 또 반복 했던 것
그많은 술을 다 지탱 할 수 있던 것은 오로지 정신력이다.
술.....지구가 흔들린다
술.....사람이 두개 세개로 보인다
술......용기가 마구 솟는다

교대에서 긴 환승통로를 잘 걸어가서(?) 3호선을 타고
정확히 약수역에 내가 내린 것이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그대로 승강장에 엎어지면서 이마가 띵오와 했다
10시까지 시바스 두병을 까고 꼭 한 시간후인 그때가 바로 11시
약수역에 도착하자마자 시바스가 내 육신을 그때부터 망가트려놓기 시작했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넘어지면서 오바이트까지하며 옷은 엉망이 되었다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사람들이 휠끈 처다보며 지나갔다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도 않고 때는 어느덧 12시가 가까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에 펑치기가 유행했다
그래도 술챈 기억속에 희미한 정신이 있었는지 지갑주머니를 꼭 쥐고 있었다
지갑속에서 조금전 거래처 그놈이 잘 봐달라고 준 50만원짜리 수표 한 장과
택시비 5만원까지 그리고 내 비상금 4만원과 카드 두장 합이 60만원이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잘못하면 큰 일이 생긴다고 생각하고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수첩 메모장에 전화번호가 기재된 것을 꺼내서 보여주며
열차에서 막 내린 사람들에게 소리첬다
"나좀 살려 주세요. 우리집에 전화 좀 해주세요"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니 그럴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저나 12시가 다 되도록 어느 놈하나 거들떠 보지 않았다
아~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말 은인을 만났다
식당일을 하고 늦게 퇴근 한 듯한 차암 마음씨 좋은 어떤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정신을 들게 하였으며
밖에 공중전화 부수까지 가서 우리 집에 SOS를 타전한 것이다
그리고 20분 후 집에서 마눌이 나와서 보니
그 아주머니는 그때까지 지하철 역사에서 나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옷도 털어 주고 피가 나는 이마도 딱아주고.
아주머니와 헤어지면서 아내는 택시를 타고 가라고 사례했으나 극구사양하며
총총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쪽 계단을 오르더라고 한다

모든이가 외면하고 바삐 퇴근하는 자정 무렵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일으켜 세운 오십대 초반의 아주머니의 착한 마음이
오래도록 내 기억속에 있었다
늦은 밤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픈 것 분명 복받을 것이라고 우리 가족은 말했다
물론 그 아주머니는 내 지갑을 하나도 건들지 않았다
당시 60만원은 한 달 월급이 될 만큼의 큰 돈이었지만 의심을 한 내가 착각이었다
약수역에서 우연히 만나기를 바랬지만 영영 만나지 못 한채 수십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사실은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한다면 모를까 난 기억하지 못한다
이후 시바스만 보면 그냥 겁이 덜컥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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