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후기 솔새김남식 기간 : 2018. 9. 15(토) ~ 9. 23(일) 여행지 :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1일차 (9월15일 토요일) - 북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최고의 지상 낙원이라고 하는 북유럽 여행을 떠나는 며칠 전 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 세계테마기행에서 익히 노르웨이의 피요르드와 빙하를 보았기에 더 늦기 전 마음에 힐링을 하고저 계획 했지만 장기여행은 좀 무리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남아와 달리 인솔자가 함께 따라가니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북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핀에어 슬로건답게 북유럽의 관문 헬싱키에 도착할 수 있었고 거기서 바로 코펜하겐까지 가도록 되어 있다. 헬싱키 반타공항은 한국여권 소지자들은 창구에서 심사관의 입국심사 없이 곧바로 자동출입국 심사대에 전자여권을 대고 통과할 수 있게 되어있다. 오전 10시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9시간 30분 비행하여 현지시각 오후 2시 핀란드에 도착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후 5시50분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0분 비행 후 현지시각 6시30분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핀란드 반타공항 착륙 후 입국하여 다음 비행까지 공항 여백이 좀 있었다. 얼마전 까지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던 노키아와 자일리톨 껌으로 핀란드를 기억하고 있다. 덴마크 가는 항공편을 갈아타는 시간까지는 지루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었지만 사실은 좀 지루했다. 아무튼 핀란드에서 출발하여 드디어 코펜하겐 도착하니 막 저녁 해가 저물고 있었다. 코펜하겐 공항 3터미널 청사에 내린 우리는 별도의 입국 심사 없이 짐을 찾아 Scania 버스에 올라서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석양 빛 노을이었다. 코펜하겐에서 첫날을 보내려니 어느덧 기분이 마구 들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중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첫날은 아무래도 모든 게 낯설어서 양치만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2일차 (9월16일 일요일) - 동화같이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덴마크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기차역이 보였다. 바로 코펜하겐의 중앙역 이었다. 우선 호텔 주변을 산책 하였다. 이곳도 한국에서 흔히 보이는 들풀 꽃이 화단에 피어 있었다.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북유럽 여행의 첫 일정이 시작되었다. 가이드가 차안에서 덴마크에 대하여 설명 해준다. 이곳은 내외국인의 모든 의료비가 무료이고, 1인당 농지면적이 300헥타르에 이를 만큼 낙농업 선진국이며 이들은 후손들에게 기름진 땅과 맑은 공기를 물려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에 전 세계에서 에너지 재활용과 이산화탄소 감축 노력이 가장 앞서간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에서 수입되는 자동차 관세가 제일 비싸고 1시간 주차료가 13000원에 이르는 탓에 이곳 국회의원조차 자전거로 출퇴근 할 만큼 자전거가 매우 보편화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은 모계 위주로 구성되는 가정사회이고 1인당 2.7명의 높은 출산율과 첨단의학의 본산지 히틀러가 인정한 똑똑한 민족이라는 것과 세계적 수준의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인 만큼 세금이 무려 38%에서 60%까지 이르는 높은 세율이라고 한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표방하는 국가라고 설명을 듣는 사이 차는 어느새 첫 방문지는 프레드릭스보그(Frederiksborg)성이 있는 정원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1640년 여름궁전으로 지어졌고 19세기에 화재가 발생되었으나 칼스버그 맥주의 후원으로 재건되어 현재는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르네상스 양식의 성 인근 곳곳에는 18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집들이 즐비하였으며 성 안의 정원은 바로크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성과 다양한 조형물로 구성된 분수대에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뉘하운 운하를 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 하였다. 그런데 마침 일요일이어서 도시전체가 마라톤 행사를 하느라 차량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곳은 자선 마라톤을 자주 한다고 한다. 뉘하운(Nyhavn)은 새로운 항구라는 뜻으로 1670년부터 1673년까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5세 국왕이 계획을 수립하여 당시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생포된 전쟁포로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뉘하운 주변에는 덴마크의 주요공공기관이 들어섰고 특히 바다와 어우러진 형형색색의 건축물들이 즐비하여 이색적인 풍경을 보여주었다. 수로에는 수많은 요트와 관광선이 오가며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다음은 덴마크 왕실의 주거지인 아말리엔보르 궁전으로 향했다. 로코코양식으로 지어진 4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궁전은 1794년 왕실의 주거지로 현재 마르그레테 2세 여왕과 그 가족이 살고 있으며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여왕이 근무하고 있는 건물에는 덴마크의 깃발을 꽂아 놓아 외부에 표시를 한다고 하는데 왕궁을 지키는 근위병의 검은 털모자가 퍽 인상적이다. 중심부 광장에는 아말리엔보르크 왕가의 선왕인 프레드릭 5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뒤쪽으로 1894년 완공된 푸른 돔지붕에 바로크풍 프레데릭스 교회가 보였다. 이 교회를 짓는데 100년이 걸렸다고 하며 교회를 짓던 덴마크 제일 갑부가 최후에는 거지가 되었다고 하는데 좀 우습기도 했지만 그 마음은 대단했다. 교회 옆에는 분수의 물들이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는 조형물은 바로 게피온 분수대이다. 게피온 분수는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 황소 4마리를 몰고 가는 모습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덴마크의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칼스버그 맥주가 만들어서 기증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안델센 동화 인어공주에서 동기를 얻었다는 인어공주상이다. 잔잔한 물결의 바위에 앉아있는 인어공주는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운 듯 수줍게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계자인 에릭센이 자신의 발레리나 여자 친구와 부인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게 피로한 듯 꼬리지느러미는 바위에 붙이고 길게 내린 머리채 물기가 아직도 그대로였다. 몇 컷의 기념사진을 찍고 점심식사를 위해 코펜하겐 대학 인근 식당을 찾았는데 여기서 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물리학의 거장 닐스 보어 동상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코펜하겐의 마지막 장소는 각종 축제가 펼쳐지는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 들렸다. 세계 최초의 테마파크인 티볼리 공원의 맞은편에 위치한 이곳에는 항상 어린이를 생각하는 듯 앉아있는 안데르센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시청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거리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코펜하겐을 뒤로 한 채 비행기와 똑같이 입출국 수속을 마치고 오슬로 가는 DFDS Seaways 크루즈를 타게 되었다. 배는 11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배정된 5층 객실에서 짐을 풀었다. 실내는 레스토랑과 바, 그리고 다양한 오락 시설과 면세점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상에 올라가 북해의 푸른바다를 구경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렸다. 고기부터 생선, 야채, 디저트까지 마치 음식향연을 펼쳐놓은 듯 종류만큼이나 맛도 괜찮아 낮에 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맛있게 먹었다. 침실은 생각보다 안락하고 깨끗했다. 다만 잠자리에서 배가 약간 흔들림이 있었으나 느낌은 아주 미세하였다.
3일차 (9월17일 월요일) - 배 안에서 하룻밤 사이 도착한 노르웨이
하룻밤을 자고 난 배 밖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바다에서 떠오르는 선상의 아침 해를 보기위해 나갔지만 붉은 수평선 끝머리에는 구름이 가득 채우고 있어서 아름다운 일출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선상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배에서 내려 출국장 밖으로 빠져 나오니 좀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노르웨이는 공기는 아주 맑았다. 오슬로는 서울 면적의 3분의 2쯤에 인구는 70만이 사는 여유로운 도시라고 한다.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오슬로 시청사를 가면서 단순하고 모던한 멋의 건물을 차창 밖으로 보면서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을 가진 노르웨이의 중심부에 와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옹기종기 모인 붉은 색깔의 지붕이 이채로웠고 정겨운 풍경에 하룻밤을 묵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결국 사람은 현실을 떠나서 또 다른 세계를 그리워하는 존재인 것 같다. 동네에는 가정전문의가 있으며 반드시 이들의 추천이 있어야 병원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는 국토의 대부분이 경작할 수 없는 산악 국가이다. 하지만 피오르드를 비롯한 빼어난 자연의 아름다움과 산유국 그리고 넓은 수역에 매장되어 있는 해양자원등 천혜의 여러 여건 때문에 복지가 잘 되어있다고 한다. 우선 오슬로 시청사를 중심으로 칼 요한슨 거리를 둘러보았다. 요한슨 거리는 시내 중심부를 동서로 약 1.3㎞에 이르는 거리로 최대의 번화가이며 대학가와 박물관 그리고 가로수 길 주변은 카페거리가 있다. 서쪽으로는 왕궁이 있고 해안가에는 노벨평화쎈터가 있다. 시청사 부근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1994년 제17회 동계올림픽의 개최지 릴레함메르 이다. 그날의 함성을 추억하며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려는 순간 버스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담당가시가 세 시간을 애썼지만 결국 버스는 고치지 못하고 대체 버스를 타고 호텔이 있는 오따(otta)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 .
4일차 (9월18일 화요일) - 북유럽 여행의 진수이자 최고 피요르드 어제 도착한 오따(otta)의 숙소는 예쁜 시골 산장을 닮아서 어디선가 산타가 찾아올 것 같이 아름답게 꾸며진 도시였다. 아침식사를 하고 버스에 오르자 차가 지나는 길목마다 도로 양편으로는 산꼭대기에 있는 빙하 수백미터 정상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수없이 나타났다.진기한 것을 처음 보는 일행들이 함성과 함께 휴대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는 지금은 요정의 길로 불리는 게이랑에르-트롤스티겐 (Geiranger-Trollstigen) 로드를 거쳐 노르웨이의 걸작 피요르드를 가고 있는 것이다. 버스는 어느덧 고지대로 올라와 에스자형 급경사 오르막길이라서 대형버스가 곡예운전을 하듯 힘들게 오른다. 이 길은 오랜 난공사 끝에 1936년 완공 되었다고 하는데 눈비가 올 때는 통행이 불가한 도로라고 한다. 드디어 수백미터의 산 중턱 휴게소 전망대에 도착을 하자 진눈개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빙하를 산위에서 보고 있노라니 까마득한 절벽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사방이 눈덮힌 암봉들로 둘러싸인 분지에는 겨우내 쌓였던 눈 녹은 물이 모여서 호수를 만들었고 그 물이 넘치면 산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되는 것 이었다. 산중턱에 작은 통나무집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산행하는 사람들 간이 쉼터라고 하는데 하절기에만 산행이 허용된다고 한다. 차가운 바람 때문에 좀 추웠지만 그래도 이곳저곳 뛰어 다니며 처음 보는 풍경에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겨울에는 눈이 15m까지 쌓인다고 하니 여름에 녹아내리는 빙의 물쌀이 가히 짐작이 간다. 버스는 잠시 쉬었다가 곧 출발하였다. 내려가는 도로 옆에는 눈 녹은 물들이 모여 제법 큰 계곡을 이루며 무서운 기세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험준한 산속에까지 예외 없이 별장들이 모여져 있다. 이 나라는 산이나 강, 장소를 안 가리고 어느 곳이나 이렇게 별장들이 있다고 하는데 여유로운 삶이 부러울 뿐이다. 산악지형과 넓은 호수가 많은 노르웨이는 길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호수를 만나면 커다란 배가 버스를 싣고 반대쪽으로 싣어다가 길을 이여 준다고 한다. 호수도 많지만 바다와 이어지는 피요로드가 너무 커서 다리를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분지의 끝에 이르자 갑자기 앞이 트이고 저 아래 계곡 깊숙한 곳에 맑은 호수와 아름다운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노르웨이 여행의 목적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게이랑에르 피요로드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전망대에서 사진 몇 컷을 찍고 내려가는 길 역시 급경사로 굽은 길이다. 피요르드가 시작되는 해안에 있는 게이랑에르 작은 마을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이었다. 빙하의 이동에 의해 육지가 침식되고 그 결과 복잡한 해안선과 빙하의 크기에 따라 만들어진 좁고 깊은 해안만을 만들었다. 피오르드는 노르웨이 말로 내륙으로 깊이 들어간 만 협곡이라는 뜻이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는 1500미터 높이의 무수한 산들이 형성된 16km 길이의 V자형 계곡으로 바다에 연결 되어있다. 빙하의 압력 때문에 수십 만년 동안 깎여서 만들어진 계곡에 바닷물이 유입되어 형성된 하구로 가로너비에 비해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다. 해안선을 굽이굽이 돌아 펼쳐지는 요정의 길은 곳곳마다 수많은 폭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빙하의 눈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물은 절벽을 거쳐 폭포로 떨어지는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곳은 다양한 협곡의 지형이 아름다워 노르웨이에서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게이랑에르 (Geiranger)에서 헬레쉴트(Hellesylt) 까지 유람선 페리호를 타고 한 시간을 이동하며 가공되지 않은 자연을 바라보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환성을 자아낸다. 점심식사는 호르닌달 (Hornindal)에 있는 퍼스트호텔 (First Hotel Raftevold)에서 하였다. 호텔 뒤쪽에는 거울같이 맑게 비치는 유럽에서 가장 깊다는 호르닌달스바트네 (Hornindalsvatnet) 호수의 풍경에 잠시 푹 빠졌다. 온화한 마을 풍경도 멋있었고 특히 호수에 비치는 주위 풍경에 피곤함이 모두 사라졌다.
다음 목적지는 빙하의 역사와 웅장한 자연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빙하박물관 가는 길에뵈이야 폭포에 잠시 들렸다. 겨우내 얼었던 빙하들이 이곳도 여름이 되면 거대한 폭포로 바뀌는데 지금은 폭포가 빙벽으로 남아 있었다. 요스테달브렌 국립공원에 위치한 박물관은 빙하의 생성 원리부터 활용에 이르기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빙하를 찍은 영상물과 화장실 세면대 거울에 다가가면 곰의 울음소리가 들리도록 매우 이색적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빙하의 역사와 웅장한 자연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빙하박물관 가는 길에뵈이야 폭포에 잠시 들렸다. 겨우내 얼었던 빙하들이 이곳도 여름이 되면 거대한 폭포로 바뀌는데 지금은 폭포가 빙벽으로 남아 있었다. 요스테달브렌 국립공원에 위치한 박물관은 빙하의 생성 원리부터 활용에 이르기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빙하를 찍은 영상물과 화장실 세면대 거울에 다가가면 곰의 울음소리가 들리도록 매우 이색적이었다. 한시간 가량 빙하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라르달로 가기 위해서 버스는 긴터널을 여러개 빠져 나왔다.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한시간을 돌아서 가야 했다고 한다. 터널을 빠저 나오면 송네피요르드의 자락인 만헬러 (Manheller) 에서 포드네스(Fodnes) 구간을 카페리호 유람선에 버스에 사람이 탄채 건너가는 이색적인 체험을 하였다. 이곳에 다리를 만들면 자연경관을 해치기 때문에 도로와 도로를 유람선으로 이여 주고 있다고 한다. 송내피요로드는 길이가 200km 해면 깊이가 1300m로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데 이동하는 중간에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을 차창으로 구경하였다. 특히 이곳에 다리를 만들면 주위경관을 해치기 때문에 도로와 도로를 유람선으로 이여 주고 있다고 한다. 해저녁 도착한 라르달 마을에는 9월 단풍과 함께 아담한 풍경들이 그림처럼 어울렸다. 특히 이곳은 세계 철도 중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인 플롬 산악철도가 있는데 내일 탑승하기로 되어 있다.
5일차 (9월19일 수요일) - 플롬 산악열차와 베르겐 플뢰엔산 전망대 라르달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였다. 자유여행이 아니라 시간에 간혹 쫓기듯 구경을 해야하는 단점이 바로 패키지여행 상품이다. 좀 피곤하지만 노르웨이 여행의 두 번째 하일라이트 플롬 산악열차 (Flamsbana)를 타러 가는 날이다. 플롬까지 가려면 두개의 긴 터널을 지나가는데 레르날 터널은 24.5 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 한다. 산악열차는 플롬에서 미르달까지 왕복하는 여정으로 옛날 탄광에서 물자를 싣어 날랐던 열차라고 한다.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플롬 열차 매표소 입구에는 벌서 사람들로 가득했다. 저속으로 운행하는 산악열차 이기에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는데 제격이다. 안내방송은 티브이 자막은 영어와 함께 한국어도 방송하고 있었다. 열차에는 한국 사람이 절반은 넘은 것 같다. 플롬에서 출발하여 종점인 미르달(Myrdal)까지 20km구간 왕복 2시간이 소요되는데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수없이 다양한 빙하 폭포와 시원한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는 맛은 최고 일품이었다. 산악열차에서 바라보는 높은 산과 계곡에 흐르는 물 그리고 붉은색 지붕의 작은 마을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중간에 잠시 정차하여 내려다 볼 수 있는 폭포는 다시 봐도 단연 일품이었다. 바로 산악열차의 하일라이트는 중간에 장차하는 뮈르달스 폭포이다, 일년내내 물이 흐르며 4단으로 이루어진 계단형 폭포로 총 높이는 230m이며 막힘없이 낙하하는 부분이 장관이고 특히 좁은 계곡을 타고 흐르는 급강하의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물보라와 함께 요란한 폭포소리에 정신없을 때 어디에선가 붉은 요정이 나타나 음악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다음은 디즈니 만화 겨울왕국의 배경이었던 노르웨이 북부 여행지 베르겐으로 향했다. 이곳은 노르웨이의 작곡가이자 연주자로 '페르귄트 모음곡' 을 작곡한 그리그가 태어나고 묻힌 곳이다. 먼저 트랩을 타고 플뢰엔산 전망대 도착하여 시내를 관망하였다. 베르겐은 북해의 해안 도시로서 크고 작은 산들과 피오르드에 둘러싸인 다양한 색채로 물들어 있는 도시이다. 예전에 노르웨이의 수도였다고 하는데 중세의 시가지와 자연스러우면서도 모던한 젊은 시가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서는 베르겐의 대표 거리인 브뤼겐 거리와 어시장을 구경하였다. 브뤼겐 거리는 상업의 중심지로서 한자동맹 시대의 화려한 색상을 지닌 목조건물이 나란히 붙어있는 특징이 있었다. 이곳은 한자 동맹을 맺은 14세기때 게르만 상인들이 지역 상권을 독점했는데 이들 영향력은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또한 요트가 정박해있는 항구,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어시장 등을 보면서 베르겐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며 각종의 축제가 열리는 문화의 도시로써 피오르드의 절경과 함께 각광받는 도시였다. 베르겐을 마지막으로 노르웨이 북부지역 투어를 마치고 오슬로에 가는 도중 계획에 없던 하당게르비타( Hardangervidda) 국립공원에 가기로 가이드와 결정 하였다.
노르웨이 서부고원지대를 지나 하당게르비타 공원에 있는 보링스노센(Voringsfossen)폭포 구경 이었다. 베르겐에서 3시간 거리이다. 노르웨이는 빙하의 나라이고 빙하에서 내리는 수량(水量)은 엄청나게 많아 쉽게 계곡을 만들고 저지대는 큰 호수를 만든다. 이 호수가 바다에 연결되면 피오르드라 부른다. 하당게르비타로 가는 도로는 빙하를 만나고 빙하를 따라 길이 이어졌으며 높은 산이 있고, 산 위에 드문드문 초지와 별장같은 집들이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보는 자연풍경은 좌우 폭이 넓고 하늘에 구름까지 큰 시야의 대형 그림과 같은 풍경을 여행하는 사람들에 보여주며 마음까지 넓게 해주었다. 버스는 베르겐에서 한번 쉼 없이 달려 큰 고원에 이르러서 포슬리호텔 앞에 버스가 주차 하였다. 여름 계절에만 문을 연다는 이 호텔은 그리그가 악상이 더 오르지 않으면 머물었던 곳이라고 한다. 호텔 안쪽에는 그리그의 유품들이 진열해 있었고 커피를 팔고 있었다. 호텔 앞에 나오니 넓은 평원이 눈앞에 펼쳐지고 먼 산 아래부터 흐르는 물줄기는 이 호텔 앞까지 흐르더니 호텔 앞에서 폭포와 계곡을 만들었다. 호텔 앞에 있는 전망대로 가니 힘차게 쏟아내는 폭포가 자신을 자랑하고 있었다. 폭포의 낙하 거리는 182m 라고 하는데 높이도 규모도 매우 크게 보였다. 물은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막힘이 없으면 그대로 흐르고 경사가 있으면 급하게 흘러 폭포를 만든다. 세상사도 평온할 때 일상의 즐거움은 느끼지 못한다. 이 폭포를 보면서 자연의 놀라움을 또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호텔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버스에 올랐을 때는 어느덧 해가 기우는 시간이었다. 고도 1000m의 툰드라지대를 지금 버스가 통과하고 있었다. 돌과 이끼 그리고 호수가 전부이다. 겨울에는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릴까 궁금하기도 했다. 도로 양쪽에는 이곳이 도로라는 것을 표기하기 위해서 도로 장대가 양쪽 길가로 길이 끝나는 곳까지 세워져 있었다. 툰드라지대는 너무 추워서 나무는 살 수 없고 풀이나 이끼류만 겨우 살 수 있는 땅이다. 땅은 겨우내 얼어붙어 있다가 여름에 녹는다. 이런 땅에 서는 사람이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주택은 연중 거주하지 않고 여름 별장으로만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노르웨이 사람들은 낭만적인 것 같았다. 한 시간 이상을 달려가는 데 차창으로 내다본 툰트라지역의 넓이는 과히 짐작이 간다. 여행이란 어떤 목적지에서 내려서 관광하는 것도 있지만 버스를 타고 오고 갈 때는 하는 관광도 여행이다. 그래서 가능한 절대 잠을 안 잔다. 이번 여행에서 툰드라지역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으나 버스 차창으로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오늘 일정에서 플롬의 산악열차 보다는 툰트라지역의 드라이브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름다운 수반의 도시 예일로에 도착한 것은 늦은 밤 이었다.
6일차 (9월20일 목요일) - 뭉크와 노벨평화상이 있는 오슬로 예일로 숙소를 거쳐 다시 오슬로에 돌아왔다. 첫 방문지는 비겔란 조각공원에 들렸다. 비겔란은 프로그네르 공원에 있는 야외 조각을 분수 광장에 조성한 조각가로 200여개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 인간의 인생을 표현한 내용들이 많고 자세히 보면 어떤 모습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해놓은 것이 특징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날씨가 좋을 때는 비겔란 조각공원 등에서 수영복 일광욕을 즐긴다고 한다. 노르웨이가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명성과는 달리 오슬로는 물가가 비싸다고 한다. 여름 평균기온이 17도 인데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33도 까지 올랐다고 하며 특히 해 뜨는 낮 시간이 적기 때문에 노르웨이 사람들은 비교적 말 수가 적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우울증 걸리고 싶으면 겨울에 북유럽 와서 살면 된다고 이곳에 사는 가이드가 설명 해준다. 다음에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오슬로 시청사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노르웨이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오슬로 시청은 창립 900년을 기념해 1931년 착공해,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50년 완공되었다. 그리고 해마다 12월 10일이면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바로 이 오슬로 시청사에서 열린다. 다른 노벨상은 스톡홀름에서 시상하는데 유독 평화상만 이 곳에서 시상하는 것은 노벨의 유언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유언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역시 스웨덴이 아닌 이곳 노르웨이 오슬로 의회가 선정한다는 것 노벨은 아마도 노르웨이 사람들과 오슬로를 평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이웃나라와 함께 생각했던 것 같다. 이어서 국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뭉크관을 중심으로 대표작인 '절규'를 비롯하여 그의 작품을 뭉크의 생애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밖에도 시청사 바로 옆에 있는 오슬로 항을 구경하고 이어서 노벨 평화쎈터에 잠시 들렸다. 익히 알고 있는 역대 수장자들이 있었서 반가웠다. 평화의 도시 오슬로에서의 여정을 육로로 이용하여 스웨덴 국경도시인 샤틀로텐부르그에 여장을 풀었다.
7일차 (9얼21일 금요일) - 바사와 볼보의 나라 스웨덴 국경 도시 샤를로텐부르그를 떠나 북유럽 중에서 가장 많은 한인이 거주한다는 스톡홀름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흐리지도 화창하지도 않는 으산한 날씨였다. 스톡홀름은 스웨덴의 수도이자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린다. 중세적 분위가 물씬 풍기는 13세기의 거리에서 부터 고층 빌딩과 고속도로 등 현대적인 면모까지 고루 갖춘 도시로써 인구 백만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의 수상 도시이다. 스톡홀름은 거대한 경제 도시답게 코펜하겐 못지않은 활기참이 느껴졌으며 친환경을 생각하는 북유럽의 여느 도시답게 곳곳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인파가 눈에 띄었다. 이곳 스칸디나비아반도의 9월 날씨는 우리나라 11월의 날씨 온도와 같다. 그런데 춥지도 않은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전거 도로가 일반화된 스톡홀름은 사람보다 자전거가 우선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16세기에 침몰한 배를 1961년부터 17년 동안 건져 올린 목재를 하나하나 이어 붙여 복원한 바사호를 전시해놓은 박물관도 인상적이었다.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 7층 높이 건물에 위치해있으며, 7층에 올라가서야 배 끝을 자세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스톡홀름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구시가지 감라스탄 지구는 중세 유럽의 골목골목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 왕궁, 광장, 성당, 노벨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왕궁경비대 교대식을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 1923년 완공된 스톡홀름 시청사는 800만개의 붉은 벽돌과 1900만개의 금도금 모자이크를 사용하여 일반적인 시청이라고 하기엔 놀라울 정도의 규모와 아름다운 장식으로 치장이 되어 있고 특히 해마다 12월이면 노벨평화상 축하 만찬회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노벨박물관은 시간상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사진만 찍었다. 고풍스러운 도시 스톡홀름을 떠나 핀란드 투르쿠 항으로 떠나기 위해 저녁에 출발하는 바이킹라인 크루즈에 탑승하였다. 바이킹라인은 음식의 향연이라고 할 만큼 덴마크에서 탑승했던 DFDS Seaways호 보다 더 맛있는 뷔페 식단이었고, 무엇보다 맥주와 와인 등 주류를 비롯한 음료수가 무한 제공이었다. 그래서 함께 여행한 사람들과 조촐하게 종강파티를 열수 있었다.
8일차 (9월22일 토요일) - 러시아를 닮은 소박한 산타도시 헬싱키 다음날은 여행 마지막이다. 바이킹라인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니 어느새 핀란드의 해안도시 투르쿠에 도착했다. 핀란드의 해안도시 투르쿠를 떠나 도착한 마지막 행선지 헬싱키는 다른 북유럽 도시들에 비해 러시아 그 중에서도 상테르부르크를 닮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 이유가 핀란드는 12세기 중반 650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은 이후에 재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과거 냉전 시대에 구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단골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는 현지 가이드 말에 고개가 끄덕였다. 핀란드의 국민성은 인내심이 많으나 소극적이고 약속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또한 유치원 시절부터 사회성과 공동체 의식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표적인 주력 산업은 임업, 제지업, 조선업, IT 첨단산업이라고 한다. 소련과의 전쟁에서 핀란드를 지켜낸 만넬하임 장군을 기리는 거리가 핀란드 시내의 중심부에 있다. 중앙역에서는 상트 페테부르크 등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고 있으며, 시베리아 노선이 장차 한반도를 관통하게 될 경우 부산까지 갈수가 있다. 만넬하임 거리를 지나 우리는 암석교회로 불리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로 이동하였다. 안을 들어서면 자연광이 비치며 바닥부터 돔까지 총 14미터의 높이로 구성되어 있다. 암석교회 인근에는 북극과 산타등을 소재로 한 아기자기한 장식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유명한 핀란드 음악가 시벨리우스를 기리는 조각공원에는 600여개의 강철 파이프로 만들어진 기념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다를 뒷 편에 두고 있는 작은 공원에는 넓은 들판에 소나무, 전나무, 자작나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멋있었다. 다음으로 이동한 우스펜스키 성당은 러시아의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동방정교회 성당인데 러시아풍 양파모양을 닮아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안 좋을 때면 양파성당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한다.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간 성당 안에는 혼배미사로 보이는 경건한 의식이 거행 중이었다. 웅장한 루터란 대성당과 원로원 광장에 도착했다.
루터파 교회의 본산지인 이 곳 내부에는 예수와 12자상, 대형오르간을 볼 수 있었다. 원로원 광장을 지나 도보로 조금 이동하여 접한 작지만 활기 가득했던 마켓 광장과 실자라인 크루즈가 정박해있던 해안가도 기억에 남는다. 오늘도 하루를 어떡해 돌아다녔는지 어느덧 여행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아쉽지만 점심식사를 마치고 버스는 헬싱키 반타 공항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지금까지 오래 거처했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여행은 늘 아쉬움을 남기는 것 같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캐리어의 짐을 정리하고 입국 때와 마찬가지로 자동출국 심사대를 이용해서 손쉽게 수속을 마쳤다. 수속 후에는 마지막으로 이용할 수 있는 면세점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가자 한국으로 이곳에 올 때는 아침 낮 비행기로 왔지만 돌아 갈 때는 밤 비행기이다. 비행기에서 잠을 설치다보니 어느새 다음날 9월23일 일요일 12시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 했다. 함께한 모두에게 감사하다. 여행이란 그 짧은 순간에도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우리와의 관계까지 배웠다. 다음은 또 어디로 떠날지 생각에 잠기며 집으로 무사히 안전하게 사고없이 돌아왔다.
|
'기행 >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천협계곡 (0) | 2018.11.05 |
---|---|
만선산 풍경구 (0) | 2018.11.02 |
노르웨이 뵈이야빙하 (0) | 2018.09.26 |
프레드릭스보그 정원(frederiksborg) (0) | 2018.09.26 |
요정의길 트롤스티겐 로드 (0) | 2018.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