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반정 박원종의 묘 솔새김남식
박원종(1467~1510)은 연산군때 중종반정을 이끈 사람으로 역사는 기억을 한다
자는 백윤 시호는 무열로 본관은 순천이고 월산대군과 제안대군의 처남이자
장경왕후(중종비)의 외숙부이기도 하며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一族이기도 하다
순천박씨 가문은 조선조 초기부터 왕실과 인맥이 연결되어 있는 가문이다
박원종은 1506년 그의 나이 39살에 성희안, 유순정 등과 함께 중종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을 중종으로 옹립하는데 주동적 역할을 맡아 정국공신 1등이 되었다
그리고 먼 친척의 딸을 수양녀로 만들어서 중종의 총애를 받는 후궁 경빈박씨가 있었고
역시 후궁으로 들어간 외 조카딸 윤씨가 폐위된 단경왕후를 대신하여 중종의 두번째 계비 정경왕후가 되면서
그는 조정의 실세로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특히 박원종은 반정후 1년간은 중종을 도와 섭정으로 막강한 세를 과시하게 되자
그의 존재를 못 마땅히 여기던 조광조 일파는 그를 공격하려 했였으나 일단 시간을 두고 지켜 보기로 한다.
특히 중종은 박원종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외조카딸과 수양딸이 각각 왕비와 후궁으로
더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1509년 영의정에 오르고 평성부원군에 봉해졌으나 그 권력을 제대로 채 사용하지도 못하고
1510년에 병으로 44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의 집은 호화로워서 하루안에 그의 집을 다 돌아 볼 수 없었다하며 수많은 첩과 토지를 보유하고 호사를 누렸다
만약 그가 천수를 했다 하면 조선의 역사에서 박원종은 무엇을 그렸을까?
어찌보면 일찍 병사를 한게 조선국을 보나 박원종 그에게는 天運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恨을 품은 사람이 수없이 많았으니까 ...........
박원종은 연산군의 딸 미신공주와 신수근 집을 하사 받았고 연산군이 데리고 놀던 기녀들을 집에 두고 연일
쥐색 잡기에 세월을 보냈는데 44살의 단명에 원인도 여자로 인한 풍증의 원인이었다.
성희안은 임사홍 집을 하사받았고 유순정은 장녹수의 집을 하사 받았고 이들도 역시 쥐색잡기에
여념없다가 박웢종과 똑같이 단명하였다
유자광은 귀양가서 실명하여 죽었고 박영문과 신윤무는 누명을 쓰고 죽었다
중종반정의 일등공신 8명중 6명은 단명하였고 장정과 홍경주만 호상을 하였다
충렬 박원종묘표 비석
그의 부인의 묘는 뒷쪽으로 나열되었다
박원종의 아들 박운(庶子) 묘
박원종의 아버지 박중선의 묘 그 윗쪽으로 조부의 묘가 있다
위치는 도심역에서 약 2키로 위치에 있다
도심역1번 출구로 나오면 마을길을 따라 약 500미터 근거리에 신빈신씨(태종의후궁) 묘가 있다
그리고 이어서 10여분 위쪽으로 더 올라가면 충렬공박원종묘역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는 박원종을 비롯하여 부친(박중선) 및 아들(박운)등 순천박씨 가족묘가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무수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