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대통령 가옥 솔새김남식
최규하대통령 가옥은 6호선 망원역에서 10분거리에 있다
1972년 최규하대통령이 직접 건축한 가옥으로 지상 2층과 지하 1층으로 2008년 등록문화재 제413호로 지정 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서울 "서교동 최규하 가옥" 이다
집주위에 무궁화꽃이 있어서 나라 사랑을 알 수가 있었다
원래는 사전예약 방문으로 되어 있지만 찾는이가 그리많지 않아서인지 방문하면 관리인과 해설사가 반가히 맞이해 준다.
1980년 대통령을 사임한 후부터 2006년 서거할 때까지 줄곧 거주한 가옥으로 생전의 생활상과 유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정치가, 외교관. 1951년 외무부 통상국장이 되면서 외교관으로 1959년 외무부차관이 되었고 1967년에는 외무부장관에 발탁되었다.
1975년 국무총리에 기용되고 1979년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그해 제 10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8개월 만에 사임하였다.
최규하의 재임기간은 1979년 10월 27일(권한대행기간 포함)부터 1980년 8월 말까지로
최규하 대통령 임기는 84년까지 보장 되었지만, 스스로 유신헌법을 민주적 헌법으로 개헌 할 때까지
과도기적으로 대통령을 하기로 묵계가 되어 있었다.
당시 오일쇼크로 인한 기름문제가 국내경제를 압박하고 엄청난 타격을 입히게 되자 80년 5월 13일 이미 국내 정치사정이
한치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국내를 비우고 중동 순방길에 오르지만 결국 518 광주사건이 터질때
대통령으로서의 광주의 비극을 통치하지 못 한 난치대통령으로 기록 되었다
일반 관료로 시작해서 대통령까지 올라 갔지만 임기중에 일어난 12.12나 5.18에서 책임있는 위치에서 무방비했고
1980년 대통령직에서 하야 하는등 당시 상항에 대하여 증언 및 진술을 거부하였다
그는 사유를 밝히지 않는 것은 전직 대통령이 증언에 응하는 惡例를 남기지 않는 것이라며 거부 이유를 피력하였지만
당시 국민 여론은 그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그는 재임10개월후 대통령 권좌를 스스로 내주고 서교동 자택에서 25년간 침묵과 운둔으로 비운의 삶을 산
불행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며 원주초등학교에 최규하기념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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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모든 집이 자개장 하나쯤은 있듯이 안방에는 오래된 자개장농이 있는데 대통령가옥에서 가장 값 나가는 가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