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 전적지 솔새김남식
위치 ;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교통편 ; 지하철 동두천에서 백마고지역 가는 경의선을 타고 종점에서 내려서 역에서 도보 약 20여분 소요 된다.
북쪽을 바라보며 평화 누리길 20여분 걷는 것도 또한 안보 관광이다.
자가용 네비에서 백마고지전적지를 검색하면 된다. 서울에서 약 100km, 2시간소요
백마고지역 안에는 여러가지안보 시설물과 식당등이 있다
원래는 고대산 등샌객들이 많이 내리는 신탄리역 종점이었는데
백마고지역까지 최근에 철길을 연장했으며 DMZ 열차라는 아명을 달고 갖가지 모형을 하고 있다.
북에 보내는 편지통 우치함이 철길 옆에 있다
이곳을 다녀간 여러사람들이 통일을 기원하는 문구들이 역안에 즐비하게 붙혀 있었다.
대마리 검문소 옆에 있는 이정표
지금은 남방한계선 철책안에 있는 해발 395m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국군과 중공군이 6.25때 치열한 전투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백마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이라서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충혼탑이 있는 곳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에 아직은 다 자라지 않은 자작나무 숲이 퍽 인상적이었다
나라를 지키다 헌화한 그들에게 잠시 고개를 숙이고 감사 표시를 해 본다
혈전으로 죽음을 다 한 그때의 용사들의 이름들이 너무 많아서 다 셀 수가 없었다.
기념관에는 전투상황 언론보도, 육탄 3용사의 활약상, 전쟁 유물 등 백마고지 전투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김종오 사단장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다.
김종오 장군은 1921년 충청북도 청주 부강 출신으로
1952년 휴전회담에서 군사분계선 확정문제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때 전방 제9사단장으로 임명된다
중공군 정예 사단들과 백마고지를 두고 10일 동안 24번이나 계속된 뺏고 빼앗기는 혈전에서
그는 중공군을 완패 시킴으로써 휴전 회담에 큰 정치적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6월에는 제15대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하고 1962년에 육군 대장이 되었다. .
1963년 6월 임기 만료로 육군참모총장직을 사임하고, 겸임하고 있던 합동참모회의 의장으로 있다가
1965년 지병으로 예비역에 편입되어 1966년에 사망,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철원의 옥토가 비록 남방 철책안에 있지만 백마고지 전투가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모내기철이라 모판을 싣은 차들이 검문소 앞에서 일하러 들어 가려고 줄을 서고 있었다
전방이 까까운 곳에선 흔히 볼 수있는 풍경 아니, 서울에서 불과 몇십키로만 올라가면 즐비하다
육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인데
반세기가 흘러었도 변화가 없는 우리네 현실이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6월이 되면 생각이 나는 그때의 동족의 혈투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며
국가 생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고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빠른 시일내 통일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