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벽계수 이종숙

시인김남식 2018. 4. 13. 21:23

벽계도정 이종숙묘 솔새김남식


내가 어릴때 동네 사랑방에 어머니 심부름을 가면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이 긴 담뱃대를 물고서

'청산리 벽계수야 ~ 하며 시조를 읊던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용도 잘 모른체 아버지에게 시조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주인공 벽계도정 이종숙의 유허지를 찾아 나섰지만 초행길은 아무래도 낯설었다 


벽계수의 묘는 문막IC 에서 여주로 가는 국도 2키로지점 알뜰주유소 왼쪽으로 빠저 나가는 이정표가 있다

그곳에서 고속도로 다리밑을 지나 山방향으로 (명봉산) 가는 2차선 포장도로 끝 지점에서   

다시 비포장길 1.3 키로 지점에서 부터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벽계도정(벽계수) 이종숙 (碧溪守, 1508년 ~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휘(諱)는 종숙(終叔), 호(號)는 현옹(玄翁). 품계는 명선대부(明善大夫) 

이종숙은 해주윤씨 윤희평의 딸과 혼인하여 3남 1녀를 두었으며 曾祖父는 세종, 祖父는 영해군, 父는 길안도정이다 

 


벽계수 이종숙은 세종의 신빈김씨 소생 영해군(세종의 17번째 아들 서9남)의 둘째 아들 길안도정(吉安都正)

이의(李義)의 5번째 아들(둘째부인 청주한씨에서 적4남)이다

그의 모친은 한명회의 庶女이다



벽계수의 생몰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는

조부 영해군 소생들이 1519년 기묘사화와 1521년 신사무옥때 3대손 까지 가문이 화를 입어 풍비박산 함으로서 

언제 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그 또한 불우하게 생을 보내다가 1545년(인종 1년)에 신원된 것으로 보인다


젊었을 때부터 풍채가 좋고 절조있는 행실(行實)로 생활해 오며 학문에 독실(篤實)하며 

혼탁한 세상에 분개하여 이를 사물에 빗대어 풍자적인 시가를 읊어 회포를 풀었다고 하며 그 당시 사람들은

벽계도정을 중국 전한시대 학자(學者)이며 충신이었던 유향(劉向)에 비유하였다.



입구에 세종대왕의 증손이라는 팻말이 무색할 정도로 묘의 크기는 일반묘와 다름이 없으며 

특히 이곳이 초장지(경기도시흥)가 아니고 이장지로써 산 사태가 여러번 있었던지 돌석으로 축대를 쌓았다



그는 12세 때 기묘사화(己卯士禍)와 14세 때 신사무옥으로 큰 화를 입었으며 1542년(중종 37) 35세 때 행직(行職)으로

황해도 관찰사(觀察使) 지방관이 되었다. 



벽계수는 거문고에 능하여 풍류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지며 황진이를 만났을때 정4품수(守)의 관직에 있을때로 추정되는데...

황진이의 재주와 미모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찬미하고 만나기를 원했지만 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고 하기에

자기는 그런 기생따위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겠다고 친구들에게 호언장담을 하게된다

그래서 황진이의 집 근처 樓(루)에 올라서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왔을 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 올 것이라 하였다.

그 반대로 황진이도 역시 벽계수의 사람됨을 시험하기 위해서 기다렸다가 시조를 읊었다고 하는데

이때 황진이의 아름다운 모습에 놀란 벽계수가 타고 가던 나귀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큰소리 친 것과는 달리 별로 대범하고 군자답지 못한 벽계수를 보고 실망한 황진이는 다시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또는 송도를 찾아 온 벽계수를 애인으로 하고 황진이가 시조로 사랑을 노래하여 벽계수를 도취시키려 했지만

벽계수 이종숙은 유학자로서의 품위와 절개를 지켰다는 설도 있다

두가지의 스토리 모두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고

하여튼 벽계수 시조는 내가 어렸을때 아버지 친구분들이 술 한잔 할 때마다 사랑방에서

"청산리~~~벽계수야~~ "하며 읊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靑山裏 碧溪水 / 푸른산속에 물빛이 맑아 푸르게 보이는 시냇물아
莫誇易移去  /  쉽게 흘러감을 자랑하지 마라.
一到滄海  / 한번 바다에 이르면
不復還  / 다시 오기 어려워라
明月滿空山  / 밝은달(明月 황진이뜻함)이 아무도 없는 빈 산위을 비추이는데 
暫休且去奈何  / 그대여 잠시 쉬어간들 어떠하리오


"주색을 좋아하지 않은 올곳은 벽계수이지만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은 인생인데 명월이가 한번 놀다 가자는데

벽계수 니가 그냥 가면 정말로 후회하겠지" 하는 황진이의 詩調이다



벽계소묘 가기전에 있는 벽계수의 後孫 선무량이원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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