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8월27일 일요일
휴일 이였지만 날씨는 찌프렸다. 아침에 이발을 하고 집을 나와 아침11시30분! 대한극장 육교부근에서 데이트 비용 600원을 얻어서 영등포로 향했다. 급하게 왔는지 너무 일찍 도착했다. 역전 대합실에 앉아 있다가 역마차 다방으로 들어갔다. 미국의 애그뉴 부통령이 박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한국에 온다는 2시, 그 시각에 만나기로 했다. 다방 아가씨가 차를 권한다. 만날 사람이 있다고 하며 밖을 내다 보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은 2시가 월씬 넘었는데도 그가 보이지를 않았다. 마음이 불안해서 일어서서 창밖을 내다 보니 반가운 사람이 역전광장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양산하나를 셋이서 쓰고 걸었다. 영등포 시장앞을 돌아서 빗속으로 얼마를 걸었더니 배가 고팠다.
“아가씨에게 점심 좀 얻어 먹어야지요”
중곡동에서 일찍 서둘고 나오느라 아침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나섰다.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일반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온통 그것 밖에 없었다. 짜장면을 한그릇 다 비웠다. 중국집을 나와 두사람은 그냥 무작정 걸었다. 비가 내리니 그리 덥지는 않았다. 세사람이 어색하게 걸었다. 데이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철없는 사람처럼 각자 혼자서 걸었다. 얼마 후에 보니 뒤를 돌아 보지 않고 혼자서 문레동까지 걸어 왔다. 만난지가 얼마 되지 않으니 서로 서먹해서 그런지 아니면 아직 가까워지지 않아서 인지 거리가 있었다. 문래동 로터리 다방 앞에서 멍허니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후에 그녀가 다가 왔다.
“오다가 고향 친구를 만났어요. 애기 좀 하느라 늦었어유”
느린 예산 사투리 였다. 그녀는 예산이 고향이였다.
“언니는 어디 갔어요?”
“같이 왔는데유!”
두사람의 데이트에 방해가 될 것 같으니아마 눈치를 채고 혼자 집에 돌아 간 것 같았다. 그냥 모른 척하고 그녀와 같이 주위를 찾아 다녔다. 문레동에서 얼마를 기다렸지만 그가 있을리 없다. 이제 내가 리드 할 차례였다.
“어제는 조금 서먹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치도 않치요?”
“,,,,,,,,,,,,,,,,”
그녀는 대답이 없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우리 시내로 들어가요. 언니는 집에 갔을거예요”
“,,,,,,,,,,,,,,,,,”
수줍은 그녀는 아직도 아무 말이 없었다.
“시내로 가지 않겠다면 아가씨 집으로 돌아가요. 난 이대로 집에 갈테니까”
“언니가 욕하지 않겠어유”
“걱정마요. 일부러 피한 것이니, 그 보다도 라디오 가저가면 어쩌지?”
혼자 중얼거렸다. 라디오는 누나집에 하나 밖에 없는 작은 휴대용 트란지스터 라디오였다. 뻐스가 오자 무조건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녀도 따라 탔다. 뻐스에는 창문이 열렸는지 의자가 비에 젖어 있었다. 그냥 모르고 앉으려는 것을 손수건을 꺼내서 닦아 주니 미안해 한다. 차는 대방동을 지나서 한강 다리를 건느고 있었다. 한강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미국의 애그뉴 부통령방한 애기등 차안 에서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애기를 하였다.
“일부러 언니한테 집에 가라고 했지”
하고는 그녀는 반사적으로 내 무릅을 꼬집는다. 처음으로 애교있는 말에 당황했다.
“아냐 자기가 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 일부러 집에 보내고 뭘 언니를 찾고 있어요”
내 그말에 그녀는 다시 꼬집을 태세였다. 반사적으로 막으며
“꼬집지 말고 때려 줘?”
무의식적으로 반말이 나왔다. 그녀를 처더보니 픽 웃고 있었다.
이여서 내 얼굴에 그녀의 손이 다가와 막으며 처다 보지 못 하도록 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처움으로 손을 잡은 것이였다. 하긴 만난지는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이 귀염고 순진해 보였다. 뻐스는 용산을 지나고 있었다.
“어때! 내가 아직도 어려워요?”
“언니가 얼마나 욕하겠어요”
그녀는 딴청을 한다. 이제 조금 친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이 사람을 친한다는 것은 참으로 오랜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것이 삶이 아니련가. 정류장에서 껌팔이 여학생에 올라와서 우리 앞에 서서 껌을 사라고 하며 자리를 옮기지 않자 그녀는 30원을 주고 껌을 한통 사야했다. 그녀가 껌을 까서 내 입에 넣어 주니 뒷 좌석에 앉아있던 병사가 우리에게 ‘재미 좋습니다’한다. 차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 병사에게 껌을 하나 주며 ‘우리 아가씨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했더니 그는 고맙다고 한다. 우리는 시청앞에 내렸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덕수궁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그리 많치 않았다. 두사람이 빨간 양산을 쓰고 들어서니 파란 나뭇잎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녀는 아직도 나를 무척 어려워 하고 있었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탓인지 아니면 남자와의 만남이 처음이라 그런지 서먹했다.
“아직도 내가 어려워요”
그의 가족 애기며 우리집안 애기등 기본적인 애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김해김씨라고 한다. 우리 어머님도 김해김씨라고 하니 그녀는 놀란다.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덕수궁내를 돌아 다녔다. 동물원앞에 왔을 때는 그녀가 장난하는 것이 천진난만하고 귀여워 보였다. 추석에 고향 간다는 애기등 시골 이야기를 주로 했다. 고향에는 사과, 배 과수원 농사를 하다고 한다. 긴 머리가 자꾸내려 오는 것이 귀찮은지 손이 자꾸 머리 위로 올라 가고 있었다.
“내가 손금을 봐 줄까?”
머리위로 가는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손을 빼려 했지만 내손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품에 않았다. 따스한 그의 체온이 내 가슴으로 안겨 왔다. 짜릿한 기분이였다.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그럴 수는 없었기 때문 이였다. 한참을 장난하니 이제야 그녀의 마음이 편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7시 쯤에 덕수궁을 나왔다. 비가 이제 제법 내리고 있었다. 양산속에 팔짱을 끼고 서소문을 지나 아현동까지 걸었다. 따스한 체온이 도 다시 내게 다가 왔다.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여자의 다스한 체온을 맛 보는 것 같았다.
그도 싫지 않은 듯 하였다. 모든 남녀의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 인가 새삼스럽게 느껴본다.
“어디 가는거예요”
“구로동 - 구로동까지 걸어요 이대로”
“,,,,,,,,,,,,,,,,,,,,,,,,,,,,,,,,”
그녀는 아무 말이 없다.
“우리 저녁 먹어야지!”
아현동을 돌아서 만리동 고갯길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섰다. 니여카에 있는 포도가 먹음직 스러웠다. 서슴치 않고 두근을 사서 그녀에게 건낸다. 서소문으로 걸어서 다시 나왔다. 그리고 대한일보사 앞에 있는 어느 중국집으로 우리는 들어가 볶음밥 두개를 시켰다.
“점심도 먹지 않은 나를 그냥 보내면 되겠소?”
하니 그녀를 처더보니 그녀는 윙크를 하면서 꼬집는다. 그녀는 한수저 들더니 먹지 못 하겠다고 하며 수저를 놓는다. 한그릇 다 비워 갈 무렵에야 그녀에게 식사를 권했다.
“도저히 못 먹겠어요”
강제적으로 수저를 그녀에게 들려줬다.
“미원을 많이 넣어서 니끼해요”
“그럼 나혼자 무슨 재미로 먹겠어 나도 안먹을래”
우리의 행동을 식당 종업원들이 처다 보고 웃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수저를 들며 먹으라고 권한다. 같이 먹자고 했더니 걱정말고 혼자 먹으라고 한다.
“내가 뭐 돼지인가?‘
그녀는 눈을 윙크 하면서 짖궂게 또 꼬집는다. 결국 그녀의 몫을 절반 내게 옮겨 왔고 간신히 그녀는 몇 수저를 뜨더니 먹지를 않는다. 중국집을 나오면서 기분이 좋아 흥얼거렸다.
“미안해!”
“뭐가요”
“저녘을 나혼자 먹어서”
“걱정 말아요.”
“다음엔 김밥을 싸와야 하겠어?”
비를 맞으며 밤길을 얼마나 돌아 다녔는지 서소문을 지나 남대문, 서울역까지 왔다. 이제 다리가 아팠다. 서울 역전앞에 있는 한진 고속뻐스 정류장 대합실로 들어갔다. 인천 막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보니 미니 스커트 입은 다리에 훍이 묻혀 있었고 옷도 젖어 있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냈다.
“다리에 묻은 흙을 보기가 흉하니까 이걸로 닦아요 ”
그녀는 손수건을 받지 않고 자기 것으로 닦아낸다. 우리는 대합실에서 잠시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미안해. 옷이 많이 젖었어”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오늘 숙이 때문에 난 재미 있었는데 숙인 그렇치?”
변변치 못한 데이트비용 때문에 오늘은 거리만 돌아 다녔다. 좀 미안했다.
“비 오는데 양산 이거 가져가유”
“숙인 어찌 하려고?”
“제 걱정은 말아요”
50원짜리 비닐 우산을 사면 되는데 여휴가 없었다. 양산을 아가씨에게 줘야 하는데 염치도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 뻐스를 탔다. 밤이 깊어가자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비가 저렇게 오는데 숙은 어떻게 갔는지 걱정이 된다. 그녀는 비를 흠뻑 맞으며 나를 못난이라고 하지 않을까? 집에 오니 옷은 젖어서 말이 아니였다.
9월02일 수요일
얼마전 비를 맞고 덕수궁으로 하며 데이트 돌아 다니 것이 탈이 되어 몸살이 났다. 며칠 결근을 하고 말았다. 어제도 출근 했다가 아파서 조퇴를 하고 집에 왔다. 며칠만에 처음 회사에 나왔다. 아픈 몸을 억지로 기운을 내서 근무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비실에서 숙의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가 삶에 보탬이 되었으면 했다. 파란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흰 고무신을 신은 내 초라한 모습을 그녀가 보았더라면 어찌 했을까? 생각한다. 아마 핼쓱한 내모슴에 놀랬을 것이다. 이 초라한 나를 생각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지난 토요일! 몸이 아파 며칠을 먹지 않던 내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서 구로동에 갔었다. 저녁도 조금먹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빗고 억지로 기운을 내서 갔지만 만나지를 못했다. 지금은 사랑의 열병인가. 중량천 뚝에 앉아서 그녀의 편지를 받아 보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갑자기 날시가 쌀살 해젔어요. 편지 잘 받아 보았어요. 29일 변점소앞 영미다방으로 8시까지 나오라고 했지요. 늦게 편지를 받고 나같 을 때는 9시 였어요. 그리운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나쁜 사람들이 치근대서 그냥 쓸쓸히 돌아 왔어요. 당장 이라도 뛰어 가고 싶은 싶정에 옆에 있어 더러면 꼬집어 주겠어요. 요사히 바쁘시죠? 늦도록 책 읽고 아침에 출근하기 어렵지요? 너무 피료하지 않도록 해요. 지난 데이트 때 즐거웠어요. 제 곁에 있어서 인가봐요. 요사이 자구 시골 생각이 나요. 빤작이는 별을 바라 보면 자꾸만 아롱 거리는 모습을 어찌해야 하나요. 그리고 나쁜 사람 만나서 싸우지 마세요. 8월30일 구로동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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