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수로왕비릉 솔새김남식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수로왕비릉(首露王妃陵)은 사적 제74호로 가야 시대 수로왕의 왕비무덤이다
봄비가 내리는 날 이곳을 찾았다. 비가 좀 내리지만 그래도 10여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처럼 외지에서 온 것 같다
바쁜일정이지만 수로왕릉을 참관하고 이곳으로 올라왔다
삼국유사와 가락국기에 의하면, 왕비는 성이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 아유타의 공주로 16세에 배를 타고 와서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9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 중 2명에게 왕비의 성인 허씨 성을 주어 지금도 그 후손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능의 전면에는 장대석(長大石)으로 축대를 쌓고 주위에는 얕은 돌담을 둘렀으며 능 앞에는 1647년(인조 25) 수축 때 세운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이라는 글이 2줄로 새긴 능비가 서 있다.
높이 5m 정도의 원형 봉토무덤으로서, 무덤의 밑부분에 특별한 시설은 없고 무덤 주위에는 얕은 돌담을 4각형으로 둘러
무덤을 보호하고 있으며, 앞 쪽에는 긴 돌을 사용하여 축대를 쌓았다.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 파사석탁의 석재가 남아 있다
황후는 188년에 죽으니 나이 157세였다고 하며 구지봉(龜旨峰) 동북쪽 언덕에 장사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龜山洞)의 고분이 허황후의 능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수로왕릉에 비해서는 시설이 소박한 편이다
허황후(許皇后)는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김해허씨(金海許氏)의 시조모이다.
그녀는 10명의 아들 중 2명에게 허씨 성을 쓰게 해달라고 수로왕에게 부탁했고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맏아들 거등(居登)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허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許氏)로 사성(賜姓)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歸依)하여
하동칠불(河東七佛)로 성불(成佛)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모친의 성을 따라 허씨 성을 사용하던 두 왕자로 부터 한국의 허씨 성이 유래되어 김해 허씨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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