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고달사지 솔새김남식
위치; 경기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20-3
교통; 양평에서 여주로 나가는 37번 국도에서 이포대교를 지나 보통교차로 대신,용문으로 죄회전 15키로 전방
대신면을 지나 용문으로 나가는 88번도로 길목에 블루헤런이란 CC가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길
고달사는 764년 신라 경덕왕 23에 창건 되었던 사찰로 고려시대에 광종(光宗) 이후 역대왕들의 비호를 받던
사찰이었으나 조선 초기에는 번창했으나 中期를 지나오면서 언제 폐사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길
지금은 폐사된 고달사지는 사적 제382호로 지정 되었으며 지정면적이 5만 8,995㎡ 로 제법큰 면적이다
국보와 보물들이 존재하여 그 흔적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주 고달사지 승탑 -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 보물 제6호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 보물 제7호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 - 보물 제8호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 보물 제282호
여주 고달사지 석조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고달사지터와 그리고 이곳에 있는 찬란한 불교 문화재 국보와 보물들의 관리 상태는 그리 좋은편은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시간을 두고 복원중이라 하는데 창건 당시의 사찰은 광대하여 이 일대 지금의 한개 면소재지 전부가
사역寺域으로 추정이 된다
고달사 석조물은 모두 고달이란 석공이 조성했다는데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쳤고
그리고 불사를 끝내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훗날 큰 스님이 되어서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고달사지터의 크기는 방대하여 천천히 산책을 하며 꼼꼼히 살펴 보는데 두시간이 걸렸는데 특히 이곳은 우두산아래
인적이 뜸하고 조용해서 머리를 식히는데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고달사지가 산중턱에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산아래 원만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이곳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익산 미륵사지터를 문득 생각해 보았다
마루시설이 남아있는 석조로 물을 담아두고 곡물을 씻을때나 또는 승려들이 몸을 씻거나 할때 사용했다고 한다
이곳에 오면 반기는 사람은 없지만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간간히 끊임없이 다녀 가는 것 같다
여주 고달사지석조대좌 보물 제8호인 석불대좌는 불상 없이 대좌만 있는데 대좌의 규모로 보아
불상의 크기도 대단했을것 같다
고달사지 석조대좌(石造臺座)는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8호로 지정됐으며 고려시대 화강석으로 만든 불좌이다
총 높이는 1.48m로 불상(佛像)은 없어진 채 덩그렇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고
조각솜씨가 명쾌한 4각대좌(四角臺座)의 뛰어난 작품이다
하대(下臺)는 상대와 같은 수법의 연꽃을 복련(復蓮 : 연꽃을 겹쳐놓음)으로 새기고
그 아래로 안상(眼象)을 조각했다.
연꽃과 안상무늬의 교체를 명쾌하고 산뜻한 조각솜씨로 조화시킨 고려(高麗) 초기(初期) 역작(力作)이다
보물 제6호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1915년 봄에 뒤로 넘어가 여덟 조각으로 깨져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가
고달사지 현장에는 귀부 위에 이수가 얹혀진 형태로 있었다
여주시는 2010년부터 원종대사탑비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2014년 8월 비신 복제 및 탑비 복원공사를 완료했다
보물 제6호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의 비신(碑身)이 100년만에 복원되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복원 흔적은 그리 깔끔하지는 않지만 보물 제6호로 그 위용을 높여야겠다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
고달사지 승탑(僧塔) 또는 부도(浮屠)는 국보 제4호로서 고려초기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부도(浮屠) 가운데
손꼽히는 거작으로 상륜부(相輪部)만 완전하지 않을 뿐 각부(各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기단중대(基壇中臺)의 거북을 중심으로 네 마리의 용(龍)과 구름모양을 조각한 솜씨가 힘차고 능숙하며 대담하여
용이 날아갈듯이 기상을 꿈꾸고 있다
보물 제7호 원종대사탑
원래 이름은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 7호로 지정됐다.
안내판 글자가 빛에 바랬는지 우찌된일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원종대사 입적 19년 만(경종2년 977년)에 화강석으로 조성된 부도로서 나말여초 유행했던 팔각원당형 기본형식에 섬세하고 우아하면서 4매석이 맞물려 짜인 넓은 장방형의 지대석 위에 놓여있는 하대구조가 특이하다.
고달사지터 뒷쪽에는 작은 암자 고달사가 자리하고 있다
저곳에 호텔을 짓고 위락시설을 만든다면 단숨에 다 채워지겠지.....
천년이 주는 고독한 절터 돌아봐도 또 돌아봐도 저 넓은 땅이 언제 다 채워지려나 그냥 걱정이 된다
천년의 화려한 꿈 다시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언제쯤 그 빛을 몰수 있을까
고달사입구에 있는 수령 400년된 고목이 마치 고달사를 지키는듯 건재하여 나그네 발길에
단풍잎으로 비단을 깔고 있다
산 아래있는 작은 암자 고달사에서 불경 읽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올뿐 이곳은 속세를 떠나온듯
사방이 너무 조용하여 발걸음을 옮길때 마다 마음에 힐링이 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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