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다부동 전투

시인김남식 2016. 6. 14. 14:49

다부동 전적기념관 

 

1950년 6월25일 임진강을 일사천리로 넘어 온 북괴군은 하룻사이에 서울을 함락시키고

한달도 되지 않아서 대전을 지나서 김천 구미로 진격하고 있었다.

아직 유엔군이 미처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기에 8월 무더위 속에서 대한민국은 정말 풍전등화였다.

이곳 다부동전투에서 밀리면 대구를 지나 부산까지 며칠이내 북한은
승전보를 이어갈 태세였다.

 

당시 55일간 치열한 다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람이 바로 백선엽장군이다.

그 결과 인천상륙작전을 승리로 수행 할 수 있었고 북진을 하여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그런데 백선엽장군이 일제말 일본군에 들어가 독립군과 전투를 하였다하여 놀란이 있다.

백선엽은 최초의 4성장군이다.

역사의 호오리 속을 살다 보면 누구나 뜻하지않게 과와 공이 있을수 있다.

과보다 공이 클 때는 긍정적 측면으로 평가를 하는게 옳고 그 기록을 남기면 후대가 평가 할 것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다부리 전투 전적지 안에 건립한 다부동 전적 기념관이다.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인 다부동 전투를 기념하는 다부동전적기념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신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둘러 보았다.

 

 

 

 

 

 

 

 

 

6.25전쟁 초기인 1950년 8월초부터 9월 중순경까지 북한군이 대구 침공과 각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하여 맹공세를 가했던 현장이다.

 

 

 

 

 

 

 

 

 

 

 

 

 

 

 

 

 

 

 

 

 

 

 

 

 

 

 

 

 

 

 

 

 

 

 

 

 

 

 

 

 

6·25 전쟁 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2020년7월10일 별세했다.

백 장군은 최근 지병으로 건강이 많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장군 측 관계자는 "최근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고, 6·25 70주년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1920년생인 백 장군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다부동 전투 등에서 전공을 세우며 32살 나이에 국군 최초의 대장에 올랐고,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 받았다.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에서 그는 패퇴 직전인 아군에게 "내가 앞장설 테니,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고 말하며 인민군이 점령한 고지로 뛰어올라갔고 전세를 뒤집었다. 많은 6·25 전사가들은 "이 전투에서 패했다면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유족은 부인 노인숙씨와 아들 남혁·남흥씨, 딸 남희·남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발인 15일 오전 7시.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에서 조국을 구한 백 장군은 1920년 11월23일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지낸 뒤 평양사범학교를 나왔고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했다. 일본군 간도특설대에 배치됐던 백 장군은 해방 직후인 1945년 평양에 돌아왔고, 독립운동가이자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일하다 김일성이 권력을 잡자 그해 12월 월남했다. 월남 직후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간 백 장군은 1946년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부산 제5연대 중대장을 맡았다. 창군 원년 멤버가 된 것이다. 6·25 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대령으로 제1사단장이 되어 개성 지역을 담당했고, 전쟁 발발 당시 고급 간부 훈련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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