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시인백과

신석정 - 임께서 부르시면

시인김남식 2016. 5. 9. 20:54

부안석정문학관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근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白鷺)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석정문학관은 신석정시인고택은 서해안고속도로 부안나들목을 나와서 읍내로 진입하는 봉황교차로 초입에 있다



신석정(辛夕汀 1907년 ~ 1974년)   솔새김남식


전북 부안출생으로 본명은 석정(錫正), 아호는 석정(夕汀 : 釋靜·石汀), 필명은 소적(蘇笛)·서촌(曙村) 이다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한문을 공부했고.

1930년 서울로 올라와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박한영의 가르침을 받아 1년 동안 불전을 배웠다.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39년 첫 시집 〈촛불〉을 펴냈고, 1970년 마지막 시집으로 〈대바람 소리〉를 펴냈으며

박용철 · 김영랑 · 정지용 · 정인보 · 이하윤 한용운, 이광수, 김기림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성장한다.



5·16군사정변과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시를 발표해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취조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고혈압으로 쓰러진 지 7개월 만인 1974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54년 전주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전북대학교에서 시론을 가르쳤고

1961년 김제고등학교 교사, 1963년부터 정년퇴직할 때까지 전주상업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67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전라북도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1958년 전라북도문화상 1968 한국문학상 1973 한국예술문학상 1972 문화포장을 받았다. 




석정의 묘소는 문학관에서 10여분 거리인 행안면 역리 용화사 입구에 있으며 묘소로 들어가는 마을 초입 벽에

데뷔작 〈기우는 해〉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쓴 〈가슴에 지는 낙화 소리〉 시화가 있다







생전에 교루가 있었던 서정주.이병기 강은교,황금찬등 여러 문우들과 나눈 친필 편지 여러통이 잘 보관 관리하고

있어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아주 값진 자료였다. 

 




신석정시인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로 부터 기증 받은 미정리 중인 많은 자료를 특별 안내를 받아 관람하였다.



자료공간과 손길이 부족하여 걱정이라고 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의외로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



석정문학관은 석정시인 정신 계승 발전시키는 공간으로 석정문학제를 격을 높여 개최하고 석정 관련 학술모임,

석정시에 언급된 부안 일대 답사, 백일장, 시낭송회등 여러가지 저변활등을 하고 있었다 .

 

석정문학관은 1만6870㎡의 부지에 지상 2층 규모로 전시실과, 수장고, 세미나실 그리고 시비공원으로 이루어졌다.



시비공원에 있는 신석정시인의 고택은 재현해 놓은 것이다














신석정 시모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이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 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 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 오던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 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田園)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 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들길에 서서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어니……


슬픈구도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워 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오,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더뇨.


작은 짐승

 

란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란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란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란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란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다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꽃덤불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헌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영영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는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보리라.
 

빙하(氷河) 

 

동백꽃이 떨어진다
빗속에 동백꽃이 시나브로 떨어진다.

수(水) 평(平)  선(線)
너머로 꿈 많은 내 소년을 몰아가던 파도소리
파도소리 부서지는 해안에 동백꽃이 떨어진다

억만 년 지구와 주고받던 회화에도 태양은 지쳐
엷은 구름의 면사포(面紗布)를 썼는데
떠나자는 머언 뱃고동소리와 뚝뚝 지는 동백꽃에도
뜨거운 눈물지우던 나의 벅찬 청춘을
귀대어 몇 번이고 소근거려도
가고오는 빛날 역사란 모두 다 우리 상처 입은 옷자락을
갈가리 스쳐갈 바람결이여

생활이 주고 간 화상(火傷)쯤이야
아예 서럽진 않아도
치밀어오는 뜨거운 가슴도 식고
한 가닥 남은 청춘마저 떠난다면
동백꽃 지듯 소리 없이 떠난다면
차라리 심장(心臟)도 빙하(氷河) 되어
남은 피 한 천 년 녹아 철 철 철 흘리고 싶다.


대바람소리 

. 

대바람소리 들리더니
소소한 대바람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거릴지언정
―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글정리 솔새김남식



'책방 > 시인백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민부 - 기다리는 마음  (0) 2016.10.16
조병화 - 공존의 이유  (0) 2016.09.05
변영로 - 논개  (0) 2015.11.03
유치환 - 행복  (0) 2015.09.20
이은상 - 가고파  (0) 201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