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바위역 독박골
솔새김남식
은평구 6호선 불광동 독바위 역 주위를 독박골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1623년 인조반정 당시 큰 공을 세운 원두표 장군과 관련된 옛 이야기가 전해온다.
인조반정 직전 이 바위굴 근처에서 낯선 젊은이가 자주 배회를 하였다.
나무하러 간 동네 사람들이 이 모습을 “당신은 무엇 하러 온 사람이오?” 하고 묻자,
그 젊은이는 “염병이 걸려 공기좋고, 물 좋은 곳으로 병 고치러 왔소” 하는 것 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염병이 옮을까 염려하여 이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젊은이가 바로 원두표 장군이었으며, 반정을 모의하였던 사람들이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염병이 걸렸다고 둘러댄 것이었다.
이에 당시 인조반정 모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이제 병 고치러 가세.”라는 말로 거사의 암호를 대신하였다고 전한다.
반정이 성공한 뒤에는 인조가 원두표의 공을 치하하면 “내가 그대의 덕을 입었다.”고 하였으므로
그가 은거했던 바위골을 '덕이 있는 바위골' 이라는 뜻에서 덕바위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지금 독바위골 또는 독박골로 변했다는 것이다.
원두표(元斗杓, 1593~1664) 장군은
창의문을 도끼로 깬 뒤 앞장서서 도성 안으로 진입한 공신으로 인종 반정에 가담한 공로로
정승이 되고 나중에 좌의정 까지 올랐기 때문에 '도끼정승'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당시 힘이 장사인 깡패나 다름 없었던 그는 반정에 뜻이 있어서 여주로 귀양 온 오리대감 이원익에 만나서
진의를 알고는 서울로 올라와서 반정세력이 불안하여 주저 할 때 앞장서서 반정에 성공한 후
오리대감이 귀양에서 돌아 오는데 힘을 썼다고 하며 원두표는 원주원씨로 여주군 북내면에 묘와 고택이 있다.
은평구 불광동 사거리를 중심으로 부산 동래와 평안도 의주까지
양천리(兩千里)라는 비석이 옛 국립보건원 정문 의주로 길가에 서 있으며 양천리를 상호로 이용하는 곳이 많다.
녹번동의 옛 지명인 양천리가 북으로는 의주, 남으로는 부산까지의 거리가 1,000리로
우리 국토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유래가 있어서 이를 고증을 통해 확인하고 그 위치에 유래비를
2005년에 설치하고 녹번동에서 지역문화제로 숙성시키고 있다
옛부터 우리나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애칭을 갖고 각종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데 그 삼천리는 부산과 의주
그리고 목포를 가르켜서 세곳의 삼천리를 말하는 것이다
불광동 사거리는 주말엔 북한산에 오르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