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파주삼릉

시인김남식 2016. 4. 17. 20:20

파주삼릉 솔새김남식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 산15 
 

서울에서 파주로 가는 길 초입에서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파주삼릉이다.
조선 제8대 임금 예종의 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인 공릉과 제9대 임금 성종의 비 공혜왕후 한씨의 능인 순릉,


그리고 21대 영조의 맏아들인 추존왕 진종(바로 사도세자의 배다른 형이 된다)과

그의 비 효순왕후 조씨의 능인 영릉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장순왕후(공릉)와 공혜왕후(순릉)
아버지 한명회의 야심에 의해 두 딸이 모두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됬지만
장순왕후(예종계비)와 공혜왕후 (성종의 계비) 모두 단명하는 안타까운 일생을 보냈다.



자매간이면서 시숙모(언니)와 조카며느리(동생)가 되는 기묘한 관계가 되는데 지금 이렇게

공릉,순릉으로 한 능역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공릉

제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1445~1461) 한명회의 셋째딸 한씨의 능이다


세조때 한명회는 영의정까지 오르면서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세자(덕종)가 죽고 세조의 둘째 아들(예종)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한명회는 15살인 그의 딸을 세자빈 자리에 앉혔다. 이때 세자의 나이는 다섯살 연하로 불과 10살이었다.



그녀는 세자빈으로 책봉된지 1년 7개월 만에 원손(仁城大君)을 낳은 뒤 산후병을 앓다가 17세 어린나이에

죽었다. 더구나 어렵게 얻은 인성대군도 3세에 요절해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기록으로 보면 예종이 11살 세자빈은 16살에 아길 낳았다는 얘기로 좀 우습기도 하다.  ㅋㅋㅋ

그래서인지 예종도 짧은 재위 기간을 마감하고 20살에 요절하게 된다?



처음에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 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난간은 없으며, 봉분 앞에 혼유석(魂遊石)과

장명등(長明燈)이 놓이고, 능 앞 양쪽에 문석(文石)과 석마(石馬)를 세우고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두마리가 능을 호위하게 하였을 뿐이다.


예종이 죽위하여 황후로 추존했다

 




왕릉주위가 山이라 그런지 계곡에는 제범 많은물이 흐르고 있었고 주위 환경이 아주 좋았다



때가 마침 봄이라그런지 산벚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었고 마른나뭇가지에서 새싹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은 날씨가 추어서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없고 간혹 가족 단위로 몇명 정도가 스처가고 있다.


공원이 아니 릉이 한적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딱이었다.




순릉

성종의 비(妃) 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 1456-1474년) 순릉(順陵) 한명회의 네째 딸이다



12살 때[세조 13년, 1467년] 자산군(者山君)에게 출가하여 1469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지만,
5년 뒤에 슬하에 소생없이 19살에 죽었다. 

10살위인 그녀의 언니 장순왕후처럼 불행하게도 ...... 



생전에 정희왕후 윤씨{세조의 비(妃)}, 소혜왕후 한씨{추존 덕종의 비(妃)},
안순왕후 한씨{예종의 계비(繼妃)}가 모두 생존해 있어서 공혜왕후는 효성을 다했다고 한다


한명회의 두딸들이 오랫동안 권좌에 있었다면 한명회에는 어찌되었을까?


단릉(單陵)의 형식으로 순릉(順陵)이라 명명되어
당시 풍습대로 봉분의 병풍석(屛風石)은 없고 모든 부속물들은 정갈하게 갖추어져 있다




영릉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孝章世子 : 眞宗으로 추존되었음.)와

그의 비 효순왕후 조씨(孝純王后趙氏)의 능이다.


진종은 영조의 큰 아들로 1724년 경의군(敬義君)에 봉해지고 영조1년에 효장세자(孝章世子)로 책봉되었다

7살에 왕세자가 되었고  9살에 년상의 13살 효순왕후를 세자빈을 맞았지만 다음해 10살에 요절하였다.


그후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양자로 입적하여 진종으로 추존되었으며 즉 10살의 어린 나이에 죽었지만 정조 임금의 양부가 되었다. 또한 정조는 그의 親父 사도세자는 장조로 추존하였다 



왕릉과 비릉(妃陵)을 쌍릉으로 두어 각각 석상(石床)만 앞에 두고 장명등(長明燈)은 그 중간에 배치하였고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필로 능 주위를 호위하게 하였다.


영릉의 비각이 또하나 있는 것은 고종때 황제로 추존되었기 때문이다 =>위 사진참조

비각 건물이 두개가 보인다


이곳 파주 삼릉은 모두 어린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왕비와 왕세자 묘가 있는 곳으로서

권좌를 얻었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오래 살지 못한 분들이라서 좀 숙연한 곳이라고 할까?



이곳은 가을길에는 산책로가 더욱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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