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산문꽁트

석별

시인김남식 2013. 12. 13. 18:59

석별 (惜別)                                                                 솔새김남식



최석훈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태산공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군 제대 후 처음에는 이것저것 막일을 몇 개월 시작 하다가 지금 다니고 있는 천일전자주식회사에 입사를 하였다우리나라 전축의 선구자라고 자부하는 천일사는 외제 진공관식 중고 라디오를 해체시켜서 청계천 주변에서 초기 사업을 시작했다. 그후 끈임없는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에 기여한 결과로 매출이 신장되고   

당시는 너도나도 소규모로 전축을 조립해서 전자산업에 한 몫을 하였다.

그러다가 우리기술, 우리상표, 우리 힘으로 수출하는 별표전축이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천일사가 중곡동에 공장을 세웠다

입사한지 일 년이 지나자 회사에서 다행히 근무성적에 좋은 평가를 받아 반장이라는 직책을 부여 받았다. 반장은 작업라인을 관리하는 직무이다. 생산 제품은 국내 시판도 하지만 외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아직 미혼인 그는 무엇보다도 같이 일하는 아가씨들이 있어서 재미있고 즐거웠다. 회사 내에는 수백 명의 여자들이 가득해서 그냥 잘 보이려고 신경을 썼다.


이곳에서 반려자를 찾지 못한다면 내 눈이 높은 것이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라 생각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싱긋이 웃어 주는 한 여자를 관심 있게 처다 보는 관계가 되었다. 퇴근 무렵에 그녀가 쓰레기를 버리고 사무실로 들어오다 우연히 마주 쳤다.

그녀가 먼저 인사를 하기에 자신도 모르게 아는 척을 했다. 사실은 재작년 일 년 넘게 어떤 여자와 사귀다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겨서 헤어졌다. 그래서 그 상처가 아직은 남아 있어서 누굴 만난다는 게 사실은 두려웠다. 그냥 몇 번 만나고 헤어질 여자라면 문제없는데 연애가 아닌 반려자를 찾는다는 것은 좀 신중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가부터 자꾸만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눈길이 따라 가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나도 내가 모르게 마음이 가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남녀관계란 헤어지고 또 만나고 그러는 사이 연애경험도 생기고 또 여자의 마음도 읽는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일하면서 그녀와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를 받고 빙그레 웃어 주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게 관심 있는 여자들이 여기저기 많이 생긴 것 같았다. 아마 처녀 총각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혹시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며 주위를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회사에서 집이 가까워서 거의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 했지만 여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위해서 가끔은 양복을 입고 출근도 하였다. 그럴 때면 아가씨들이 애인 생겼냐고 놀릴 때도 있었다. 여자들 때문에 외모에 관심을 갖고 내 자신이 조금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 스무 살이 훨씬 넘었으니 애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똑 같을 것 같다. 애인이 없으면 모든 일에 소극적이고 휴일이면 심심 할 때가 있긴 있다. 쉬는 날이면 친구들하고 돌아다닐 때도 있지만 때론 여자가 필요 할 때도 있다. 어느덧 그 나이를 지나면 당연히 여자 친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나를 처다 봐 주길 원했고 우연히 어디에 선가 마주치기를 바랐다. 요즈음 수출 목표 때문에 무척 바쁘다. 밤새 일을 해도 모자라 하룻밤을 꼬박 세웠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녀에 대한 생각이 더 해지는 것 같았다. 사랑은 아주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우연히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관심을 갖고 그리고 다듬고 가꾸어야 한다. 오늘도 일하고 있는 석훈에게 그녀가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40여명의 여직원을 관리하는 반장으로 콤비아벨트라인 양쪽으로 사람들이 앉아서 작업 하는 생산 공정이었다. 라인 조립에서 완성된 스테레오 앰프를 검사하려면 음량을 최대로 하여 소리가 찌그러지지 않게 전축에서 소리가 잘 나와야 합격이었다. 그러니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눈 여겨 봤던 소녀가 팝송을 좋아하고 있다.

이름은 김 귀분 이었다. 몸집이 작은 아가씨로 까무잡하게 생긴 동그란 얼굴에 나이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었다. 그녀는 무엇이든 내게 친절하게 했으며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이 생기면 꼭 갖다 주었다. 그리고 나를 인식해서 인지 다른 사람들보다 모범이 되어서 열심히 잘 하고 있었다. 빈틈없이 내게 잘 보이려고 무척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내가 가끔 처다 보면 어느 때는 시골에 사는 아주 말 잘 듣는 순수하고 착한 여동생 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시간 농땡이를 하면 일 하자고 서둘며 사람들을 독려하니 내가 사람들 관리하기에 좀 편했다. 그래서 솔선수범을 하는 그녀에게 조장을 시켰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이상한 일이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청소를 하는 도중 현관에 있는 대형 출입문 유리를 실수로 그만 내가 깨트리고 말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본 사람은 몇 안 되었지만 잠시 당황을 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 귀분 양이 그것을 보고는 얼른 빗자루를 가지고 달려 와서 청소를 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서 어디 다친 곳이 없냐고 물어왔다. 잠시 후 공장장이 오더니 누가 유리를 깨트렸느냐고 사람들에게 다그치자 그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공장장 앞에 나서서

제가 깼어요.’ 하는 것이었다.

내가 깨트렸다고 말 할 여유도 없이 그녀가 나서는 바람에 난 그만 바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애써 변명하지 않고 뒤에서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윗사람에게 혼나는 것을 보기 싫었던 것 같았다. 참으로 착한 마음의 그녀에 모습에서 난 그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심하게 야단 칠 줄 알았는데 공장장은 다친 곳이 없냐고 물어 보고는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내게 총무과에 유리가 깨졌다고 보고하라고 이른다.

미안해 유리창은 내가 깬 것인데 왜 그랬어.”

상대방을 좋아하는 어떤 마음이 아니고서는 그러지를 못 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더욱

미안했다. 정말 이제는 지금보다 더 잘 해 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창피해서 나 때문에 미안하다. 고맙다. 그런 말을 그녀에게 해주지 못 했다. 유리창 사건이 있은 후 그녀의 마음을 좀 더 많이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더 친해지게 되었고 그래서 현장에서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관심을 주었다. 사실은 그녀에게 이전까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 이유는 상대를 알지 못하고는 어떤 여자라도 정 주지 않으려 했었다. 그것은 지난번에 어떤 여자와 안 좋은 일로 헤어지고 나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먼저 마음 주지 않으려했다.


다시 며칠 후 빵을 사 달라 하는 그녀의 첫 데이트를 받아 주었다. 회사 앞 빵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둘이서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 보니 정말 맛이 있었다. 그 당시는 제과점 빵은 거의 없었고 찐빵이 주로 먹거리였다. 빵집이 남녀에 만남의 장소였다. 빵집을 나와서 화양리로 가는 방향으로 무작정 발길을 돌렸다. 그 당시 중곡동에서 화양동까지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가로등도 없는 비포장 도로였다. 겨울바람이 차지만 그녀는 종종 걸음으로 잘 따라 왔다. 어떤 친구가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데 여자에 진실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사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덕수궁 서울역에서 남산 장춘단 으로 돌아다니면서 오로지 껌만 씹고 다녔다고 했다. 투덜거리지 않고 잘 따라 오는 여자가 착해보여서 사귀기로 했다고 내게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도 다방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어두운 밤길을 걷기만 하였다.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이야기와 즐겨 듣는 팝송등 주로 음악과 문학 이야기를 하였다. 시와 문학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생각과 취미가 모두 같아서 대화가 잘 통했다. 항상 어두운 그림자를 하고 있는 뒷 애기를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다. 집은 중화동이라고 하는데 가정적으로 아마 좀 힘든 것 같이 느꼈지만 내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참으로 똑똑하고 당찬 여자라고 생각 들었다. 언제 시간이 나면 청량리에 있는 음악다방에 같이 가자고 약속도 하였다. 어두운 밤길을 화양동 까지 갔다가 다시 중곡동까지 돌아 왔다. 두 시간도 더 걸었으니 다리가 아프지만 그녀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아직은 너무 순진하고 착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발랄하고 말괄량이 같은 천진스러운 여자를 좋아하는 편이다. 아직은 그런 것을 너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장영기 친구와 둘이 청량리에 있는 음악다방에 가려고 통근버스를 막 타려 하는데 그녀가 같이 따라 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셋이서 청량리로터리에 있는 동산다방에 들어갔다. 어떤 노래를 좋아 하는지 음악 신청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 잘 모른다고 하며 대신 노래를 하나 신청해주면 자신이 잘 듣겠다고 해서 언체인 멜로디를 신청해 주었다. 친구와 나는 떠들었고 인생과 청춘이 어떻고 하며 담배를 피워가며 떠들었고 그녀는 그냥 듣기 만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친구는 누구냐고 자꾸 물어본다. 그냥 동생처럼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청량리를 다녀와서 그녀가 내게 더욱 내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개는 아직 사랑 할 수 있는 여자가 없기에 그녀를 예뻐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얼굴에는 무언가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마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후 우리는 여러 번 만났다. 그녀가 가끔 편지를 써서 내게 주기도 했고 또 답장은 해 주었다. 편지 내용은 오빠라 부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만나면 수다스럽게는 말은 하지 않았고 주로 내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오빠라고 부르라 했지만 쑥스러워서 그런지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냥 편지에서 만 오빠라고 했다. 그녀가 나를 좀 어려워하는 것 같다. 나는 말괄량이 같은 여자가 참 재밌고 좋은데 그녀는 좀 내성적이었다. 마음씨 하나만은 정말 귀천이었다.

오랜만에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신나는 크리스마스 명동에 있는 궁전다방에 그녀와 함께 가기로 하였다. 그녀가 좋아라고 손뼉을 치며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일 년에 딱 한번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크리스마스는 젊은이에게는 아주 특별한 해방 공간이었다. 음악다방 궁전에 들어서니 장발머리와 청바지를 입은 수염이 텁수룩한 사람들도 있었다. 젊음이의 멋을 모르고 있는 내가 어찌 보면 좀 촌스러웠다. 궁전은 이층으로 된 아주 대형 음악실로 일층은 중년 연인들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었고 이층은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듣는 시끄러운 팝송을 들려주었다. 담배 연기와 떠드는 소리에 한 동안 정신이 없었지만 웅장한 음악 소리가 쿵쿵거리며 들여오니 스트레스가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며 두시간 가량 있다가 밤 11시쯤 다방에서 나오니 겨울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명동성당으로 우리는 발길을 옮겼다. 이곳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성당입구에 있는 성모마리아상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함께 어울려서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중앙극장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민속주점에 들렸다. 내부 장식을 촌스런 시골 모습으로 만들어서 퍽 인상적 이었다. 작은 항아리에 담아 있는 막걸리를 종지로 떠먹는 맛도 일품이었다. 학사주점에서 술이 취한 상태로 나와 그녀의 손목을 꼭 잡고 중앙극장에서 청량리 까지 또 밤길을 한 시간을 더 걸었다. 겨울 날씨에 밤이라 좀 추웠다.


걷다가 다리 아프면 길가에 쉬고 춥다고 하면 안아 주고 서로의 따스한 체온이 가슴속까지 파고들었다. 술이 좀 취한 상태였기에 용기도 났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대담하였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오빠라 부르며좀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석훈의 주위엔 동생이 없었다. 특히 여동생이 없었기에 그녀가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 같았다. 한 시간을 걸어서 동산다방에 들어가니 새벽 2시였다. 통행금지가 없는 것은 젊은이에게 좋은 추억의 시간이었다. 아직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방에 가득하였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와서 뒷골목 시장터로 들어가서 해장으로 칼국수를 먹었다. 새벽 5시 어느덧 먼동이 트고 있었다. 석훈은 그녀를 중화동으로 가는 버스에 태워서 보내고 다시 청량리에서 중곡동 까지 중랑천 뚝 길을 한 시간을 더 걸어서 집에 왔다. 그녀와 야밤 데이트로 하룻밤을 보낸 것이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좀 그런 사이가 되고 말았다. 가끔 내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해서 조금은 부담이 갔지만 거절 할 수가 없었다. 나를 좋다고 따라와 주는 사람에게 냉정하게 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 후 그녀와는 몇 번의 데이트로 많이 친해졌다. 어느 날인가 그녀가 레코드판을 사서 석훈에게 선물해 주었다.

전축이 비싸서 일반가정에서는 거의 갖고 있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사원들에게 강매를 해서 월급대신 가져 올 수밖에 없었다. 팝송이나 가요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면 모으는 취미를 했다. 청계천 음반 상가에서 또는 신촌의 야지음악실 등에서 월급을 타면 꼭 레코드를 샀다. 팝송을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고 그리고 착한마음 모든 게 다 좋은데 키가 좀 작아서 마음에 걸렸다. 키 작은 것이 걸림돌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장래를 약속 할 수 있는 애인을 하기엔 선뜻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뭐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돈 많은 것도 아닌데 그것을 따지며 평가하는 게 너무 속보인 것 같아서 조금은 부끄러웠다. 혹시 동생처럼 잘 해 주다가 정이 들면 어찌 해야 하는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녀에게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한 쪽을 찾기 전에는 조심하기로 했다.


그런데 동생 이상으로는 생각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하였다. 그녀와 사귄지 어느덧 8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달라 진 것이 아직 없었다. 똑같은 생활이 언제나 반복 이였다. 회사의 생산라인이 증설되어서 20여명의 여직원이 새로 충원되었다. 60명의 여사원들과 함께 결함이 없는 좋은 수출 상품으로 만들어야 했다. 순진하고 착한 여사원들은 꾀를 부리지 않고 일을 잘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가끔씩 골탕을 먹일 때가 있다. 생산 라인에서 자리를 비울 때도 있고 또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엉뚱하게 작업 하면 라인이 스톱 할 때가 있다. 생산차질이 생기면 작업보고에서 공장장에게 꾸중을 맞기도 했다. 회사에서 그녀와의 관계를 눈치를 챈 사람들이 이미 있었다. 오늘도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일이 바빠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 요즈음은 늦게 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언제나 피곤해서 아무런 관심도 보여주지 못 했다. 그런데 새로 충원 된 20명 중에서 출퇴근길에서 집이 바로 이웃인 것을 알았다. 그간 새로 들어온 신입 여사원을 석훈은 눈여겨봤는데 그중에 한사람이 이웃집에 살고 있었으니 그냥 반가웠다. 말하자면 내가 평소 생각했던 이상형의 여자가 충원된 사람 중에 있었던 것이다. 즉 어느 정도의 키와 동그랗게 생긴 곱상 얼굴과 그리고 경상도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오빠하며 누이동생 하기로 했던 그녀와 이름이 똑같이 김 귀분 이었다. 특히 흔하지 않은 귀분 이라는 이름과 또한 성까지 같으니 내겐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부서에 같은 이름이 두 명이 있으니 구분하기 난처했다. 이전에 알고 있는 한 사람은 키가 작았고 이번에 새로 충원된 사람은 그 보다 키가 컸다. 그래서인지 여직원들도 작은 김양 큰 김양 이라고 벌써 부터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한사람은 내가 좋아하려는 큰 김양이었고 또 한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작은 김양이다. 그러니 잠시 석훈은 혼란스러웠다. 큰 김양을 그전부터 깊이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 했었다. 그런데 내가 관리하는 라인에서 같이 일을 하게 되니 곤란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문제는 두 사람 중에서 내가 누굴 선택해야 하고 또 서로 불편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김양도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두 사람이 동시에 석훈에게 장난을 청하기도 하고 말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특히 큰 김양은 평소에 그에게 관심이 있었기에 장난은 싫지 않았다.


차츰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가곤 하지만 아직은 그러했다. 무엇보다도 복스럽게 생긴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부터 두 여자 사이에서 내가 공격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한 여자는 내게 공격을 해야 하고 다른 한 여자에는 석훈을 공격하는 입장이 되었다. 삼각관계는 아니지만 혼란스러웠다. 오늘은 수출검사에서 불합격 되어서 전수 재작업 했다. 밤늦게 까지 커튼박스를 전부 풀어서 재검사를 하고 재포장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이 동시에 작업을 도와서 잘 마무리하였다. 두 사람 서로에게 잘 해야지 아무 탈이 없을 것 같았다. 오늘 보니 작은 김양이 큰 김양에게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직 누구에게도 깊은 정을 주지 않았다. 퇴근을 하려고 문을 나서는데 작은 김양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데 석훈은 받아주지 못했다.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 있는 것을 그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즉 큰 김양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제 부터 두 여자 사이에서 공격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석훈은 한 여자는 공격을 하고 나는 다른 한 여자에게는 공격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 다시 며칠 후 작은 김양에게 하이네 시집을 선물 받았다. 책을 좋아하는 문학적인 소질이 그에게 있었다. 팝송과 문학을 좋아하니 그런 게 같은 동질성을 갖게 하여 대화가 잘 통했다. 오늘 그에게 뜻밖에 책을 선물로 받고 보니 고마웠고 시집 안쪽에는 가지런히 쓰인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 내용은 더 친해지고 싶다는 말과 일요일 남산에 놀러가자는 말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많이 의지 하고픈 소녀였다. 그냥 오빠처럼 어려움을 잘 보살 펴 주며 더 예뻐해 주며 잘 해 주고 싶었다.




점심시간이면 작은 김양은 혼자서 책 읽는 모습이 보였고 큰 김양은 친구들과 어울려서 수다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며칠 후 지난번 선물 답례로 습작한 시작노트를 석훈은 작은 김양 에게 주었다. 시를 좋아하고 낭만적이며 고상한 생각을 많이 가진 것 같았다. 시집을 받더니 매우 반가워하며 석훈을 여러 번 처다 보더니 얼굴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않아 주었다. 아직은 여린 마음인 그녀에게서 따뜻하고 볼록한 작은 가슴이 살짝 와 닿았다. 꼭 안아주었다. 잠시 이성으로 그녀의 목덜미 속에 있는 숨겨진 보물을 살짝 바라보았다. 혹여 사랑의 표시 인 줄 알 것 같아서 키스는 하지 못하고 손을 꼭 잡아주었다. 눈을 아래로 감은 그녀 얼굴이 더 붉어졌다. 가끔은 어른스런 대도 있지만 아직은 나이 어린 21살 소녀였다.


아마 나를 어느 이상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이성으로 생각 한다면 큰일이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생각 했기에 조심스러웠다. 집에서 회사를 가려면 신작로 옆 논길을 따라서 5분여 걸어서 그리고 정신병원을 지나고 다시 변전소앞길로 걸어서 10여분을 더 가야한다. 그런데 변전소 앞에서 뜻밖에 큰 김양을 우연히 만났다. 무어라 말 하고 싶지만 그냥 아는 척 하고 먼저 보냈다. 회사생활이 재미가 있는지 물어보며 친하고 싶었다. 그냥 싱긋이 웃기만 하는 그녀를 보면 행복이 가득한 사람 같았다. 오늘은 그와 장난을 하면서 집이 어디냐고 직접 물어 보았다. 석훈의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그녀가 살고 있었다. 둘이서 재밌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 멀리에서 누군가 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작은 김양이었다. 그걸 보고는 조금은 미안했다. 다음날 그녀에게서 또 편지를 받았다. 나를 분명히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싫지는 않지만 너무 어리고 키가 작아서 흠이다. 그 생각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었다. 아마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아서 이다. 그냥 착해 보이는 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에 신경을 써주고 잘 해주고 했더니 그런 것 같다. 지금 특별히 누굴 좋아하거나 깊이 사귀는 사람은 없다. 며칠 전 에도 편지가 왔기에 답장 해준 적이 있다. 편지라고 대학 노트에 적어서 석훈에게 슬쩍 주는 그런 편지였다. 그래서 그냥 편지를 받고 또 답장을 해주고 했다. 오늘도 작은 김양에게 편지를 받았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때가 묻지 않은 고귀한 오빠에게

빛나던 태양도 잠들고 쓸쓸한 달과 무수한 별 떨기만이 다정스레 이 애기를 나누는 적막한 이한 밤에 슬픔은 차디찬 대지위에 내리고 설움은 복 받쳐 옵니다. 태어 날 때부터 저주를 받은 저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을 의식하며 마음의 고통은 더욱더 넓게 번져 만갑니다. 평온과 낭만의 밤이 지나고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 오면 아직 나라는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실의에 찬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항상 죽음에 사로잡혀 끝없이 동경했지만 내 생명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알고 난 뒤 체념 한 채 제 갈 길만 재촉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빠란 나에게 불필요한 존재며 꿈에도 생각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고 경멸해 왔습니다. 항상 겸손과 자비를 갖추고 자기 자신에 성실한 그 마음 속 깊은 곳에 샘처럼 솟는 지혜와, 생각하며 행동하는 고고한 인간상의 석훈 오빠!


무한한 힘에 끌려 지향 없이 따라 갈수 밖에 없는 제 자신 처음엔 내 욕심만 차려 오빠라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보잘 것 없는 인간 이하의 쓰레기에 불과한 제가 감히 성급하게 건방진 행동을 죄스럽게 생각 합니다. 미움만 안고 혼자 쓸쓸히 죽는 그날까지 반항하지 않고 말없이 가려 했는데 뜻밖에 저에게도 다정다감한 오빠 가장 훌륭한 오빠가 계시다니 제 인생에서 크나 큰 영광입니다. 혼자 쓸쓸히 죽는 그날까지 반항하지 않고 이제 있는 힘을 다해서 굳게 살아 보렵니다. 마음속 깊이 굳게 닫혀있던 문이 이토록 쉽게 열릴 줄이야 몰랐으며 저 자신도 괴이한 일이라 생각 합니다. 감정이 메말라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점이 있었지만 편지를 받은 순간 한편 으로는 무척 기뻤고 한편은 제가 동생으로써 이행할 만한 능력이 부여 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뒤 한동안 잠시 침울해 졌습니다. 그러나 이미 제 마음은 언제부터인지 오빠에게 가려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연약한 자를 속이거나 해치려 하고 있는데 내게는 때가 묻지 않은 고귀한 오빠만이 충만합니다.

강석훈 오빠를 무척 존경합니다. “

 


지난번 편지와는 다르게 뭔가 느낌이 왔다. 봄이라 그런지 모든 사람들 얼굴이 화사 해지고 아름답고 밝은 옷을 입고 다닌다. 이 봄에 좋은 일이 있어야 하겠지 하는데 두 사람의 틈바구니에서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허공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아무 생각 없이 퇴근 후 작은 김양과 시내 구경을 나갔다. 회사일이 바빠서 그 동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종로3가 쉘부르 음악실에 들렸다. 마침 mbc FM에서 방송을 하는 박원웅이 DJ를 하고 있었다. 찻집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음악실에 온 기념으로 레이 피터슨이 부른 Tell Laura I Love Her 를 신청해서 들려주었다. 그녀를 위해서 오늘은 모처럼 즐겁게 해주려고 가사 내용도 덤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냥 착한 여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고 싶었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표정을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서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했지만 아직은 아니다하며 망설이고 있었다. 어떤 말을 생각 없이 해서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며 책임지지 않으려면 입이 무거워야 한다. 만약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꼭 결혼을 해서 배우자로 생각 한다면 작은 김양보다 큰 김양에게 정이 더 가는 것 같았다. 오늘부터 조립 공정이 하나로 통합이 되었다. 두 사람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라인이 통합 되면서 더 조심해야 했다.


다시 며칠 후 뜻밖에 일이 생겼다. 바로 큰 김양이 데이트 신청을 했다. 오늘 저녁을 사달라고 했다. 내가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었지만 작은 김양 때문에 그간 망설였는데 마침 잘됐다고 생각하였다. 그녀 마음을 떠보고 사귀야 할지 생각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얼굴이 복스러운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 퇴근길 통근버스를 타고 청량리에서 내렸다. 그리고 로터리 시장 입구에 있는 경양식 레피아에서 오무라이스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동일 극장도 들어갔다. 영화 구경을 하고 동산 음악다방에 들어가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작은 김양하고는 두 코스 이상하지 않은데 큰 김양하고는 세 코스를 같이하게 된 것이다. 집이 서로 이웃에 있으니 돌아오는 버스도 같이 탔다. 고향은 전북 김제이고 동생과 자취를 한다고 한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가 짠돌이라고 소문나서 어찌하나 보려고 저녁 사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한다고 했다. 참으로 귀중한 시간 이였다. 이제 사랑의 화살은 누구를 택하여야 할 지 분명한 대답이 나왔다. 그렇지만 아직 누구에게도 뜻을 전하지 못했다. 그냥 직장 동료이다. 그런데 작은 김양이 문제였다. 석훈을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어떡해 해야 할지 고민이 앞섰다.


만약에 큰 김양을 선택한다면 작은 김양 그녀에게 어떤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된다. 세사람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게 석훈의 바램이었다. 청량리를 다녀온 후 큰 김양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갑자기 친해지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퇴근길에 같이 집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특히 한동네 가까이 살기 때문에 작은 김양보다 만나기도 더 쉬웠다. 그래서 퇴근길에 만나서 데이트를 했고 자취하는 집도 알아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다. 마음에 무언가 자꾸 끌리고 있었다. 작은 김양은 중화동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느껴보지 못한 연정이 조금씩 다가서고 있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걱정이었다. 너무 빨리 다가서는 것 같았다. 작은 김양이 큰 김양과 청량리 가서 데이트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식 중에 멀리하는 것을 눈치 챗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조금은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냥 지금처럼 동생의 관계가 좋다는 그런 말을 전해 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어색한 분위가 되었다. 팝송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해서 취미가 같지만 평생을 같이 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것 같았다.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향한 사랑을 거절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었다. 석훈은 자신이 엄청 잘난 사람도 아닌데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 정말 미안했다. 김귀분에게 언제나 오빠처럼 늘 곁에 있겠다고 했다. 딱 거절 표시는 하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우리 생각을 해보자라고 했다. 점심시간에 작은 김양과 함께 작업실 뮤직 박스에서 ‘Beautiful Sunday를 들었다. 어제 했던 말에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이 느껴서 풀어주고 싶었다. 당시 이 노래가 유행을 했는데 노래를 같이 불렀다. 마침 뮤직 박스에서 일하는 장영기 친구가 오더니 두 사람 틈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잘 좀 하라고 내게 이른다. 어느덧 큰 김양도 나와 작은 김양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특별히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세 사람이 서로의 관계를 각자가 다 알고 있는 셈이 되었다. 조금 이라도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이 서로가 오해는 없어야 했다. 물론 어느 한 사람과는 헤어지겠지만 그 아픔은 작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지금은 누구편도 아니다. 아직 확실하게 누구를 결정한 것은 아직 없다. 인간은 만남과 이별을 언제나 반복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헤어 질 때는 미움이나 증오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만 있어야 한다.

그 추억을 나보다도 그 사람에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었다. 퇴근길에 작은 김귀분양을 만났다. 큰 김양에게서 어떤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시기나 질투는 아니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던 같다. 그래서 인지 오늘 작은 김양을 만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중량천 뚝 길을 걸었다.


그녀 자신에게 고민이 있는지 아니면 가정이 어려운 일이 있는지 가끔 어두운 그림자를 내게 보이곤 했다. 그래서 웃는 얼굴을 잘 볼 수 없었다. 언제나 예전처럼 마찬가지로 그냥 석훈의 뒤를 졸졸 따라 오기만 했다. 그리고 묻는 말만 대답하고 자기표현의 감정은 특별히 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좋아서 그래서 내게 말하기 어렵고 힘들다고 했다. 그쪽에서 보면 사랑일까? 말괄량이처럼 털털거리며 조잘대는 여자가 좋은데 그러하지는 않았다. 까불고 조잘대는 여자는 실없어 보이고 진실성이 약해보이지만 작은 김양은 깊은 속은 아직 잘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너무 순진하고 착한 게 탈이었다. 그래서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라고 했다. 어려운 일이나 힘이 들면 언제나 연락 하면 힘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아무런 감정의 표현은 하지 않았다. 늘 바라보면 그냥 착한 모습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작은 김양을 알고 지낸지가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었건만 아직 이성으로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작은 김양은 아니고 큰 김양을 선택하기로 했다. 큰 김양을 안지가 벌써 석 달 이 되었다. 그를 알고부터는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근무시간에 가끔 아는 척도 해주고 장난도 하고 그에게 관심 있다는 표현을 보여 주었다.



이제는 필요한 한 사람에게 다가서야 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랑을 하게 되면 커다란 낭패일 것 같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쓸데없이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눈길 주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이든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인생에서 주저하는 것만큼은 남 보다 후퇴 할 수가 있단다. 분명한 내 입장이 정리 되어야 한다. 중랑천 뚝 길을 다시 걸으며 작은 김양에게 내 뜻을 전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도록 그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도 해주었다. 어차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 내가 찾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된다. 요즈음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 오늘은 왕십리 동화극장에 구경을 같이 갔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영화를 보면서 내 뜻을 전달했다. 김귀분양은 그냥 동생처럼 사귀는 사람이고 내 반려자는 당신 큰 김양이라고 했다. 다행이 그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유월의 따스한 태양은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제 한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석훈에게 다가오고 또 한 사람은 이제 떠나보내야 했다. 어차피 하나가 될 수 없다면 빨리 보내야 한다. 조금은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는 진실이었다. 그것이 이기심 이었다면 질책을 받아야 한다. 아까운 사람이다. 인연의 끈이 차츰 멀어지는 것 나 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했다.


어느덧 한여름 8월의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자 작은 김양보다 큰 김양을 만나는 횟수가 더 많았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 어찌된 일인자 작은 김양보다 큰 김양을 만나는 횟수가 더 많았다. 장영기 친구와 모처럼 용마산에 올라갔다. 푸른 나무들이 이제 제법 온통산야를 녹음으로 만들고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아직 시골티가 벗어나지 않은 중곡동은 공기도 좋고 특히 용마산이 있어서 일요일 산에 오르는 재미가 있다.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니 고향 같은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팝송은 기분을 말끔하게 해주었다. 친구가 새치 머리에 까만 약을 발라 주면서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으니 젊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는 흐르는 계곡 물에 그냥 머리를 감고 내려왔다.


산에서 까만 염색물을 감는다는 것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금은 개천을 복개를 해서 도로가 되었지만 용마산에서 중랑천 진입까지 물이 흐르는 시냇가였다. 장영기에게 김귀분양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본인도 키가 작아서 싫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강요하지 못했다. 며칠 지나서 다방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다른 특별한 뜻은 없고 난 그냥 예전처럼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내자고 말했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주고 부탁 할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라 했다. 마치 아이를 대하듯 말을 했다. 오늘도 그녀는 아무런 말이 듣기만 했다. 저녁 퇴근길에 작은 김양에게 편지를 받았다. 궁금해서 집에 가는 길에서 꺼내 보았다. 이미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을 알았는지 모든 것을 체념한 고별이 담긴 편지였다. 그에게 미안하였다. 미안함을 무엇으로 표시를 해야 할지 걱정하였다. 어쨌든 내 마음은 큰 김양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떻게 그에게 내 뜻을 전해야 하는지 그에게 조금 미안했다. 혹시 작은 김양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평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을 정리 하여야 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그리고 오해가 없도록 처신해야 한다. 내 인생에 반려자가 될 한 사람을 선택했으니 한사람과는 당연히 헤어져야 했다. 그래서 작은 김양과 청량리로터리에 있는 동산다방에서 만났다.


그녀도 이미 짐작을 했는지 숙연한 자세였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좋아하지만 아직은 맘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문학을 좋아하고 팝송도 좋아해서 함께 친구가 되어준 것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펜으로 습작한 시집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그리고 같이 찍은 사진 몇 장과 지난 일 년의 생각을 적은 일기도 함께 그녀에게 주었다. 그에겐 아마 생각지 못한 기대이상의 큰 선물이었던지 그녀는 선물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살며시 어깨에 기대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여자에게 눈물을 안겨준 셈이 되었다. 그냥 동생으로 사귀고 싶었는데 그녀는 그게 아니었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가정적으로 많이 외로운 여자였다. 그녀를 받아주고 보듬어주고 사랑을 해주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다. 특별히 잘난 사람도 아닌데 작은 김양에게 석훈은 너무 미안하였다. 그래도 회사에서 종종 볼 수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회사 출근 하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그녀가 말하지 못한 내용을 글로 적어서 주었다. 지난번 청량리에서 만나고 일주일 지난 후 대학 노트 종이 두 장에 가득 적은 편지를 받았다. 내게 받은 상처를 의식한 듯 자신을 비관하고 내용도 있었고 태어 날 때부터 저주를 받은 저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오빠란 불필요한 존재며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 >中谷洞

존경하는 오빠 당신에게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야속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면 무엇 합니까? 만남이 있으면 어차피 헤어짐이 있는 것인데 결코 서러워하지 않으렵니다. 언젠가 그런 날들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왜 그런지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하지만 오빠께서 온 정성을 다 기우린 시집과 사진을 매일같이 볼 수 있는 기쁨이 아직 제겐 있으니 마음은 아주 편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따스한 한마디 말 다정스런 미소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진실을 더 좋아했나 봅니다. 당신을 만날 때면 연기자가 대사를 줄줄 외우듯이 할 말을 미리 간직한 채 당신을 만나고 나면 그 많던 말들이 어디로 사라지고 맙니다.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헤어지고 나면 또 한 번 바보가 되었다고 후회합니다. 그래도 다시 만나는 날을 무척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또 마찬가지 만나기전의 기대가 산산이 부서질 때면 이제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거역 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 늘 멈칫하고 맙니다. 당신을 좋아 한다고 사랑한다는 말하기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엔 부족한 것이 많은가 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당신을 무척 좋아했나 봅니다. 별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순수한 인간 본연의 자세에서 어떠한 때는 제 자신도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했나 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과는 비교 할 수 없지만 그 이상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들 그리고 즐거웠던 일 보다도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파옵니다. 하지만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 중에 처음으로 당신을 알게 된 것 제게는 무척 기쁜 일입니다. 아직은 당신과 거리감이 생겼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겉으로 표현을 못하고 안타까워했을 뿐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을 그리워했나 봅니다. 그래도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오빠를 정말 그 누구 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아직은 먼발치에서 당신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제게 남아 있으니까 비록 자주 만날 수 없더라도 몹시 따르고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아마 오랫동안 잊지 않을 거예요. 석훈 오빠 당신을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어요. 아마 오랫동안 잊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저를 잊는다 해도 저는 잊지 않을 거예요. 제게 어떠한 변화가 생기면 소식 드릴게요.“

 

편지 내용에서 작별을 예고한 듯 이미 짐작한 것 같다. 표현도 이인칭 단어인 당신이라고 하였다, 김귀분양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가 아닌 상대가 먼저 나를 좋아해 주었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직 결정한 것도 없지만 그녀가 상처를 받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일 없는 듯 열심히 출근하던 어느 날 사표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보름이 지난 어느 날 뜻밖에 그녀가 집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다방에 마주 앉았다.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고 빌어주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2년여의 긴 시간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빠, 언니랑 행복해야 되요.“ 언니는 큰 김양을 말하는 것이다. 어떡해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흔한 말로 남을 주기엔 그냥 이렇게 보내기엔 아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욕심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하나를 버려야 했다. 그녀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리라 약속을 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생기면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눈물을 보이며 떠나는 그녀에게 죄를 진 것 같아 미안하고 송구했다. 그가 내게 해준 사랑을 잊지는 못할 것 같다. 떠나는 길을 바라다 주며 그에게 좋은 사람 만났으면 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와의 2년여 사랑은 다른 한 사람을 만나면서 소홀히 했고 그녀와는 이별 아닌 이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큰 김양을 내편에 서 있게 만들었다.

그 후 그녀의 소식은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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