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再婚 短篇小說) 솔새김남식 편하게 입은 중년 남자와 말끔하게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마주 앉아 있다. "아빠도 이제 아빠 인생을 살아 가세요." 민우는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오는 길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골라 주며 딸이 한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서울에서 뷰티들만 모여 산다는 강남 한복판 제법 큰 호텔 내부에 있는 카페이다. 평일인데도 다들 뭘 먹고 사는지 빠까들만 가득하다. 한가하게 커피만 마셔대는 서울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하긴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지금 여긴 온 이유를 잠시 착각하고 있었다. 방금 아가씨가 가져다 준 커피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왜, 재혼을 생각 하셨어요?” 여자는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남자를 쏘아 본다. 순간 당혹스러워 눈길을 어디에 둬야할지 망설이던 민우는 낯선 사람과 마주앉아 선 보는 것 자체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혼자 사는 게 이제는 지겨워져서 그래요.” “남에 말 하듯 하시네요.” “그렇게 물으시니 좀 ” “제가 좀 당돌한 편이지만 뭐든 분명한 게 좋아서요.” “제 이야기는 소개소에서 다 듣고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상처하신지가 오래 되었더군요.” “네” “지금까지 독신으로 지내신 것을 보면 아내를 무척 사랑했나봅니다” “남매를 남기고 갔지요.” “그런데 왜 이제껏 혼자 사 셨는지요?” 여자는 남자의 커피 잔을 넘겨다 보더니 비어있는 것을 보고 손을 들어 일하는 사람을 부른다. “뭐가 필요 하세요?” “여기 커피 리플 좀 해줘요.” 말이 적은 민우에게서 대답을 끌어 내려는 심산인지 얼굴에 잔주름이 잡히는 것도 모른 채 얼굴을 내밀고 누굴찾는 것처럼 탐색하듯 이리저리 살피고 있다. “막내 따님 시집 보내면 더욱 외로우시겠네요?” “네! 그래서 딸이 시집 갈 준비로 이렇게 내 보낸 거랍니다.” “그럼 따님이 이벤트 회사에 등록한 것 인가요?” “네. 이렇게 되고 보니 피할 일도 아닌 것 같아서 나왔죠.” “그럼 결혼할 생각은 있으시나 봅니다.” “좋은 사람이라 생각이 들면 할 생각입니다.” “대강 알고 나오셨겠지만 유통회사를 하는데 여자라서 한계가 있어서 너무 힘들고 의지 할만 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요.” “유통업이면 구체적으로 뭘 하시는데요?” “백화점에서 나오는 재고 물건을 받아서 다른 곳으로 넘기는 일을 하죠.” “아, 땡처리 하는 거군요.” “네 잘 아시네요. 주로 여성용품을 많이 합니다.” “그럼 매출이 크겠네요.” “돈이야 뭐 사는 데 지장 없을 만큼은 벌었습니다.” “이젠 편히 사셔야지요.” "...........". 민우는 팔자가 센 과부가 남자를 휘두르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사업하는 여자하고는 격이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혼자 산다는 게 못 견디게 쓸쓸해서요.” 그 여잔 전혀 쓸쓸한 것 조차 느끼지 못할 사람 같았다. “저는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합니다.” “저도 지금 당장 정리 할 수는 없어요.” “그냥 이렇게 만난 것을 좋은 기억으로만 간직해야 될 것 같네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에게 맡기면 되긴 합니다만” 여자가 자신이 없는지 말 끝을 흐린다. 민우는 여자가 첫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자리를 끝내고 싶었다. “저는 오늘까지 여섯 번 만났어요. 사장님은 오늘 처음이라면서요?” “예, 사실 좀 어리둥절하죠. 어린 나이도 아니고, 첫 눈에 누구에게 반할 나이도 아니니 마치 시장에 나를 팔려고 내놓은 물건 같아 쑥스럽네요.”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민우는 슬며시 자리를 끝내고 헤어질 뜻을 비쳤지만 말 꼬리를 무는 여자가 이젠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이 먹은 여자들은 왜 그런지 모른다고 혼잣 말을 해본다 그리고 시계를 들여다 보는 척하고 민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이 오래 됐네요, 서울 올라 오면서 친구하고 약속을 해 놓았거든요.” “아, 그러세요? 제가 저녁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려고 했는데” “말씀은 고맙습니다.” “그럼, 바쁘시다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뭔가 찌꺼기를 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말을 잇는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저도 기대 할게요.” 세상이 좋아진 것일까? 재혼 중매도 상품이 되어 팔리고 있는 세상이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주고, 임박한 시간에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나이든 사람들이라 그런지 척척 알아서 만난다. 휴대전화도 한몫을 거든다. 어긋난 사람도 만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겠지만 시장터에서 맘에 맞는 사람을 팔고 사는 인생사가 너무 씁쓸하였다. 딸의 결혼 날짜가 정해지가 딸의 성화에 못 이겨 맞선자리를 나갔지만 실패한 인생을 변명 하는 것 같아서 두 번 다시 그런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호텔 찻집을 나왔다.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인지라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볼 기분이 아니었다. 서울 올라 온 김에 미리 약속이 된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친구는 요즈음 재혼은 초혼 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것 이라고 귀띔을 해주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준다. 상대의 재산을 탐내기 위해서 사기성 재혼도 있으니 조심하라 이른다. 아까 그여자가 한 사업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술 한 잔 하자는 것을 뿌리치고 곧 바로 고속버스에 몸을 싣었다. 버스는 엔진소리 요란하게 내며 어두운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승객들은 드문드문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거나 무엇을 찾아보려는지 차창에 얼굴을 붙이고 내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버스는 막 힘없이 청주로 달려가고 있는데 눈을 붙여도 잠이 오지를 않는다. 눈을 지그시 그냥 감아 본다. 지나간 세월이 활동사진처럼 어둠이 짙은 달리는 차창에서 활동사진처럼 지나가고 있다. 꼭 20년 전 민우가 아내를 먼저 떠나 보냈던 일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새롭게 떠 오른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아내의 말을 여러 번 들었기에 별로 대수롭게 생각을 하였다. 아내는 신경이 예민해서 몸은 좀 통통한 편은 아니었다. 회사일로 출장을 다니며 늦게 들어오고 하니 매일 잔소리를 심하게 하여 그래서 신경성 소화불량이러니 생각했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 집들이를 준비하던 이틀 전의 일이었다. 아무래도 속이 안 좋다던 아내는 스스로가 병원을 다녀온 후에 내일은 보호자와 같이 동행하라는 말에 모든 일 뒤로 하고 다음날 같이 병원을 찾아 갔다. 환자를 밖으로 보내고 의사선생님 말씀이 암이 인파와 폐 복부까지 전이가 되었다고 하며 6개월의 사형선고를 내렸다. 다음날 좀 더 확실한 진단을 위해서 암에 권위 있는 서울에 있는 다른 병원에 입원을 하고 일주일동안 검사를 다해 보았지만 최초 발견된 부위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냥 전이 된 상태에서 알게 되었으니 전이성 암이라고 했다. 수술도 못하고 항암 치료만이 최선이라고 하면서 치료를 잘 받으면 2년 정도 연장된다고 한다. 미리 알지 못한 게 우선 내 커다란 착오이고 실수였다. 슬픔과 한숨만 가중되어서 더 이상 할 말을 잠시 잃었다. 정말 하늘이 노랗다는 말은 병원을 나서면서 알았다.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지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런데 당사자는 어떠하라 생각하며 아내에게는 딴청을 할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차선책으로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치료 가능성이 높다던 인파성 암이라고 하고 항암 치료만 끝나면 암이 사라진다고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아픈 병보다도 치료 과정에서 사람을 더 죽이는 말로만 듣던 항암 치료를 다음날부터 시작 하였다. 아내는 나이 이제 막 서른을 넘겼다. 그런데 그 젊은 나이에 암이 찾아 올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우선 1차로 시작하여 6차까지 주사약을 맞아야 하는데 1차 치료는 5일 동안 링거 주사를 온 몸속으로 파고들게 해야 했다. 그것이 끝나면 집에 가서 3주 동안 쉬었다가 몸이 회복되면 다시 2차 과정이 시작 되는 것이다. 그리고 쉬었다가 다시 반복적인 치료를 하였다. 아내를 간신히 설득해서 우선 1차 치료 부터 시작하였다. 주사약이 환자의 몸속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오바이트를 하는데 정말 힘든 치료였다. 정신이 혼미 할 정도로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고 병원에서 나는 특이한 약품 냄새 때문에 너무나 민감해서 식사 때가 되면 마스크를 하고 병원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환자를 간호한다는건 환자보다도 간병인이 더 건강해야 한다는것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밖으로 나가면 그나마 오바이트를 조금 멈출 수가 있었다. 환자가 주사약을 맞고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무엇을 먹었나, 어느 정도 배설 하였나 상세하게 기록해 놓아야만 했다. 물 2모금 삶은 감자 조금 등 시간마다 조목조목 적어서 다음날 간호사에게 주어야 했다. 5일을 맞아야만 하는 주사약인데 워낙 허약 체질이라 4일 맞고 두 손을 들었다. 겨우 기다시피 해서 집에 오면 약 일주일 동안은 너무나 힘들어 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환자의 신경은 매일 날카로웠다. 환자 비유를 맞추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다. 2차 치료 때문에 병원 예약을 며칠 앞두고 머리를 감다가 갑자기 비명 소리가 나서 목욕탕으로 가보니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놀랄까봐 앞에서 표현은 못하고 그냥 웃으면서 말했다. 치료를 받으면 머리가 뭐 다 빠지는 거잖아 하면서 별일 아닌 척 내숭을 떨어야 했다. 치료를 위해서 병원에 입원한 날 빠지는 머리가 신경에 걸렸는지 병원 지하에 있는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다 밀어 버리자고 했다. 아내는 울먹이며 그 긴머리를 깎아야 했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검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백혈구 수치가 낮다면서 며칠 동안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하루에 한대씩만 맞았다. 의사들은 환자와 간호인에게 그냥 듣기좋게 대개 하는 말로 좋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진찰한 의사의 얼굴만 보아도 환자의 건강상태를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다. 그러자 문득 아내와의 지금이 언제인가 이 세상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생각을 고처 먹었다. 환자복을 벗고 영화도 보러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시장도 데려가고 고궁도 구경을 다녔다. 이승에서의 추억을 남편에게 선물 하고 싶었다. 하루 건너씩 외출 하면서 기쁘게 해주려 했지만 아내는 내 뜻을 아는지 아픈 모습을 감추고 나보다도 더 밝은 모습이었다. 그러자니 언뜻언뜻 내 얼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비치고 있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니 설움이 복바첬다. 처재가 와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만 아내가 아프니 아이들도 풀이 죽었다. 내 인생이나 아내의 인생이 왜 이처럼 꼬여가고 있을까 생각하니 설음이 복 바치기도 하고 미안함이 한없이 밀려왔다. 어느 때는 눈물을 너무 흘려서 휴지 한 통을 모두 버려야했다. 그래서 당신이 내 곁에 있는 동안 추억을 만들고 주고 싶었다. 생전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은 종마목장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좀 더 먼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서울을 벗어나면 위험하니까 가까운 곳에서 산책 하라고 병원에서 이른다. 지금은 봄이 한참 진행 중인 5월 중순이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그동안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언제 피었는지 길가엔 제비꽃과 민들레가 봄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종마목장으로 넘어 가는 은사시나무 길을 걸으며 내게 말한다. "유나 아빠! 나 없어도 이젠 되겠지.“ “당신 여기잖아 어디가?” 나는 의아스러운 듯이 대답을 하였다. “만약 내가 없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당신 곧 낳을 거야“ “그렇지만 느낌이 이상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내 몸에 비스듬히 기대어 걷던 나는 아내의 손을 얼른 내치며 “당신이 왜 죽어 내가 있는데 " 그러나 얼른 다시 손을 잡으며 아내를 달랬다. "당신! 얼른 건강해서 우리 재미있게 살아야지. 애들이 요새 참 예쁘게 크잖아.“ “근데 아프잖아” "그러니까 아프지 마." "누가 아프고 싶어 아픈가" "우리 애들 유나와 유민이 생각하면 당신이 얼른 힘을 내야 돼.“ “알았어.” “나 당신 아픈거 낳게 할꺼야” 기운이 없다고 걷기 싫다는 아내를 억지로 걸어서 어느덧 종마목장에 들어섰다. 나무로 된 목책 안에는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마침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 목장 쉼터까지 올라왔다. 평일인대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특히 연인 보다는 가족들이 많았다. 빈자리에 앉으면서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유나 아빠, 나 이렇게 가면 당신한테 너무 미안 할 것 같아” "그런 소리 하지 말랬잔어" "좋은아내 좋은 엄마를 하고 싶었는데........" 아내의 그말에 울컥 눈물이 앞을 가려서 두 사람은 소리없이 울고 말았다
종마 목장은 볼 것은 별로 없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있는 서삼릉이 있고 푸른 초원을 바라보며 잠시 마음에 여유로움으로 산책하기에는 딱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잘 찾는 곳이다. 운 좋은 날은 웨딩 촬영하는 것도 볼 수가 있다. 이곳은 데이트 바람 코스이다. 누구나 처음 결혼 할 때는 건강한 부부였지만 살아가면서 세파에 의해서 늙고 병들어 결국은 어느 한 쪽이 먼저 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가는 사람이야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남은 한쪽은 많이 슬퍼하고 동반자를 잃어버린 허탈감에 한동안은 삶에 상실까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찌된 일인지 결혼 할 때는 건강했던 아내가 나를 만나서 아프다하니 미안함이 가득 하였다. 맞벌이한다고 서로 건강에 소홀했던 게 아닌 가 자책을 하고 후회를 해도 이미 때가 늦었다. 애들을 생각하면 기적이라도 생겨 얼른 건강하기를 바랄뿐이었다. 아내의 몸이 다소 건강해지면 다시 반복으로 우리는 5차 치료까지 할 수 있었다. 워낙 몸이 약해서 그리고 거부 반응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치료 할 때마다 4일 이상을 치료를 못 했다. 그런데 5차 치료 때부터 복부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마른 사람이 배가 계속 나오더니 숨이 차서 너무 힘들어 했다. 그때부터는 배에 주사기를 넣고 물을 빼기 시작하는데 음식을 먹은 것도 없는데 마른 몸에서 그렇게 링거 병으로 한 병 반은 보통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통증을 호소하였다. 진통제 맞는 시간이 줄여 들면서 계속 아픔을 호소했다. 그해 여름 날씨는 왜 그리 덥던지 무지무지 덥던 나날이었다. 아내도 나도 고통의 시간이었다. 통증이 계속되어 먹는 진통제로는 안 되었다.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병원에 다시 입원 하여야만 했다. 몸은 더 이상 마를 것도 없을 만큼 말라버렸다. 식사는 전혀 못하고 겨우 물만 넘기던 그 무더운 여름날 아내는 아이들을 남겨놓고 혼자 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내의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원망스런 눈물과 아픔으로 가득했다. "난 이 여름이 지나고 추운 겨울에 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많은 것 잊고 살다보니 별로 실감 나지 않지만 그날을 생각하며 먼저 간 아내에게 여러 가지로 미안하고 그의 인생이 너무 불쌍했다. 맞벌이로 서로 출근한다고 회사의 외적인 일에만 신경을 썼지 진작 내적인 일에는 너무 무관심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젊은 나이에 그런 몹쓸 병이 생기기라고는 예측하지 못한 게 남편으로서의 큰 잘못이었다. 내 간호가 부족했던지 6개월간의 투병을 뒤로하고 아내는 내 곁을 떠났다. 우리 가족들에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 슬픔은 더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말았다. 인생 이라는 게 너무나 허망하였다. 옛날 어른들 말씀처럼 이제 살만하니까 라는 표현이 우리에게 딱 맞았었다.
밤새 하얗게 날아 간 당신 때문에 지금 이승은 태풍입니다 남아 있는 둥지가 마음에 걸려서 어떻게 손을 털고 가시였는지요 아름다운 세상 내 어히 혼자 보라고 사랑의 둥지속 먹이를 물어 올 당신이 아직은 더 우리 곁에 있어야 하는데 무엇이 급해 그리도 서둘렀나요 당신과 함께 살아온 지난 날 당신이 남기고 간 사랑의 발자욱 앞으로 어떻게 지우며 살아가야 하는지 눈물이 앞을 가리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지난날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아이들과 열심히 살께요 알콩달콩 살아보지도 못한 결혼생활을 의미 없이 보내게 된 민우는 아내의 빈자라기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느꼈다. 그간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독신을 고집하며 지켜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민우가 더욱 쓸쓸하게 보였던지 다음해 봄에 시집가는 딸이 재혼 이라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련한 추억에 잡혀서 민우는 재혼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민우는 아내를 보내고 난 뒤 후 아이들 키우면서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을 때 그에게 다가선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거래처에 근무하던 여직원 미경이었다. 그녀는 막 피어오른 꽃봉오리 같은 나이의 처자였다. 거래처 회식장소에서 우연히 민우의 사정을 알게된 그녀가 처음에는 동정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덧 일년이 지나면서 사랑에 덫에 민우는 올가미가 되었다. 그러나 미경이 집에서도 두 사람이 만나는 것에 대하여 반대가 무척 심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아이들이 있는 유부남에게 허락 할 부모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나이차도 띠동갑 이었다. 민우가 미경이 집을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정을 하고 애걸하고 구걸도 했지만 부모님은 완강히 거절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는 회사에 사표까지 내개 만들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확신하였기에 자신들 행복을 위해서 억지 결혼까지 생각 했었지만 그렇게 힘든 사랑에 민우는 자기의 처지를 알아 차렸는지 주변을 정리하며 그녀를 멀리 하기 시작 했던 것이다. "지금 어디예요" "퇴근 길, 회사 앞 버스 정류장" "그렇잖아도 전화를 기다렸는데......" "그랬어?" 오랜만에 들어보는 상냥한 그녀의 목소리였다. 가까이 있는 듯 하면서 항상 멀리 있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지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무던히도 오랫동안 긴 시간을 참아왔다. 그것은 그녀를 보내기 위해서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었다. "미경아 보고 싶은데 지금 나올 수 있어?,” "네. 알았어요. 갈게요." 그녀에게 가르친 긍정적인 대답 “네 알았어요.” 를 민우는 오랜만에 들어 본다. 알았어요 라는 대답은 순종이요 믿음이며 곧 사랑이라고 여러 번 그녀에게 귀가 달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부탁이나 시킴을 하여도 거부 하지 않고 민우의 청을 다 들어 주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신뢰는 사랑으로 발 돋음 하였고 오래도록 관계를 이여 주었다. 그러나 때로는 세상은 내 뜻과 의지에 상관없이 다르게 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했다. 겨울이 가기 전에 그들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결혼 한다고 사표를 내고 당당히 떠났던 그녀가 1년이 넘도록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민우 때문에 혹시 시집을 안 가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솔직히 이제는 그녀를 놓아 주고 싶지만 혹여 흔들리는 빛이 보인다면 주저하지 않고 얼른 잡고 싶었다. 그러나 만약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면 웃음으로 마음에 짐을 그녀에게서 덜어주고 싶었다. 퇴근길 시내로 나가는 길은 차들로 무척 복잡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시내 안쪽 길로 접어들었다. 연말이 며칠 남지 않아서 그런지 들뜬 기분에 취객들로 거리가 가득했다. 약속 장소는 성안로 초입에 있는 예나 찻집으로 그들만의 분위기 있는 아지트이다. 찻집은 사람들 때문에 좀 어수선 했지만 쉽게 그녀를 찾을 수가 있었다. “일찍 나왔어?” “네, 별일 없죠?” “응! 그냥 자네가 보고 싶은 거 빼고는” “이제 그런 말도 못 들을 것 같아요” 이윽고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이런저런 근황을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미경은 힘들게 힘을 열었다. “내년 봄에 결혼해요. 축하해 줄 거죠?” “만나자 마자 그 이야기” “미안해요” 민우는 고연히 심통이 났다. 어차피 떠나야 할 사람 이였기에 아무런 전율은 흐르지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가 그녀의 곁을 이미 떠나 버린 앙상한 나뭇가지의 낙엽과도 같았다. "정말 가는 거야" "사촌언니가 중매 했어요." 결혼한다고 수없이 그녀에게서 말을 들었지만 아직도 그녀는 시집을 안 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노처녀로 있을 수는 없지. 진심으로 축하해.” “미안해요 모처럼 만났는데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서.” “아냐 괜찮아 ” 그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은 민우는 솔직히 불편한 심기였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배를 피워 물었다. 무조건 그를 이해하고 좋은 일에 축복해 줘야한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구와 결혼하는지 그런 것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니 그냥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늘 거짓말을 늘어놓던 예전과는 달리 오늘은 사실인 것을 직감한 민우는 갑자기 심난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실 오늘 만남은 그녀를 잡 을 수만 있다면 잡고 싶은 마음으로 오랜 방황 끝에서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만나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결혼 한다는 것은 축복이고 민우 자신에게는 어쩌면 방황의 늪이 여기서 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축복해 주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사람은 이미 만 날 때 떠날 것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는 어떤 싯 귀가 생각이 났다. 이제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돌아오질 않을 사람이기에 웃으며 보내야 한다. 이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민우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순리라면 거역하지 말고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었고 그것이 고마워 사랑으로 변했지만 이제는 정말 그를 웃으며 보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약하게 보여서도 안 된다. 그래서 초라해지지 않으려고 민우는 목에다 힘을 잔뜩 주었다. 담배연기 그늘에 가린 민우의 얼굴을 미경은 알아 차렸는지 한마디 거든다. “오늘 술 한잔해요” "괜히 기분 참 묘하다.” 그냥 심통이 가득한 민우가 투정을 한다. “어린애 같이 그러지 마세요.” “모르겠어. 나도 왜 그런지를 자네를 보면 마음 약해진다.” 미경은 애써 웃음을 보이며 민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예나’를 나와 네온불이 찬란한 성안로 길을 걸어 나오며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밤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떤 느낌을 알았는지 미경은 민우에게 팔짱을 얼른 낀다. 어깨 위로 수진의 체온이 한 겨울의 군밤처럼 따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민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가 있었으므로 모든 일에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갖고 놀던 장난감을 다른 아이한테 빼앗기는 기분이다. 오늘 만나자 한 것은 그녀에 마음을 좀 더 알고 싶었었는데 어느덧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먼저 그녀를 선택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미안했지만 혹시 내 곁을 떠나길 망설이고 있는 눈치가 보이고 잡고 싶었다. 다가 설 수 없는 사랑이기에 늘 망설이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였다. 어디 가서 그것을 찾아야 할지 쓸쓸함이 머리를 스치고 있었다. 어디에서 그 정을 다시 찾을 수가 있으랴 생각하며 따스한 그녀의 품도 이제는 다시 느끼지 못하리라는 생각하니 심통이 가득하였다. 복잡한 시내 거리를 조금 벗어나 한가로운 길로 접어 들었다. 무작정 걸었다. 겨울 밤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얼마를 걸었을까 서문대교를 지나서 사직동 시계탑 오르막 길로 접어들자 민우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미경은 밤길에 민우를 도저히 미끄러워서 따라 갈 수가 없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뛰어온 것은 일부러 미경이를 골탕 먹이려고 한 민우에 심통이었다. 밤 길을 촘촘히 걸어서 두 사람이 들어선 곳이 사창동 부근에 있는 '실크로드'라는 뮤직 카페였다. 실내에는 조용한 피아노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무 말도 않은 채 똑같이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늘 만나면 민우 곁에 바짝 붙어서 참새처럼 조잘대던 미경은 오늘은 민우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무 말이 없다. 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서 쓸쓸함으로 반전되고 있었다. 이윽고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오자 민우는 술을 따르면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내 자신이 바보인 줄 몰랐다.” 미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안해 미경아!“ "......" "자넬 꼭 잡아야 했는데" 민우는 그녀에게 술잔을 권하자 미경에 눈에서 슬픔이 가득 있었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지금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지금은 서로가 각자 주연 배우가 되어서 이별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선가 피아노 음률이 건반위로 튀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오면 늘 듣던 음악이었고 카페분위기를 낯설지 않게 들려주던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다. "처음부터 정을 주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랬지.” "미안해요 오래 곁에 잊지 못하게 돼서“ 몇 잔의 술이 벌써 서로 오고 가고 있었다. 헤어짐을 모르는 그들이 아니었기에 아쉬움은 더하고 술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민우가 정신을 차츰 잃어가고 있었다. 빨간 젤리, 노란 젤리가 각테일 술잔에서 제멋대로 춤을 추는데 민우에 술잔은 누군가에 의해서 계속 비워가고 있었다. “임마!, 넌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돼. 알았지” 민우는 몇 번씩이나 술 챈 목소리로 횡설수설 하고 있었다.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지난 추억은” “임마! 얼마나 내가 널 좋아하는데” “저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고맙고" "왜 진작 자넬 만나지 못 했을까?" "제게 늘 잘 해주셨지요." "세상에는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 정말 너무 많다. 특히 자네가" "그래도 제게는 처음 받아본 소중한 사랑이예요. 그런데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마음 아파요” "미경아 꼭 가야 되니?" “.........." "미경아 .사랑해." "네. 잊지 않을게요. 저 이뻐 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거 오래도록 못 잊을 거예요." 미경은 세상에서 흔히들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 는 비교 할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은 순수한 마음 그 이상 이였다고 자신하였다.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결혼이라는 문턱에서 더 이상 나가지를 못하고 1년을 버티며 지내왔다. 아내를 잃고 시름에 빠져 힘들게 생활하고 있을 무렵 민우의 마음을 달래주던 사람 이었다. 그러나 늘 가슴속에 그녀가 자리 잡고 있지만 사랑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내 욕심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떳떳이 그녀를 보내야겠다고 오래전 부터 다짐을 했었다. 그들은 6개월 만에 오늘 다시 만난 것이다. 그들에게 간간히 맥을 이어 주었던 것은 전화 목소리였다. 살아 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던 그녀였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뜨고 있었다. 카페에서 무작정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미경은 얼른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끝내고 민우를 부축한다. 그녀의 따뜻한 부축을 받으며 가누지도 못한 몸을 이끌며 거리로 나섰다. 자정이 지나서인지 흥청거리던 밤거리는 조용해졌다.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너어,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야 돼” "......." "알았어? 몰랐어? 왜 대답을 안 해. 임마!" "알았어요." 온몸으로 술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쓸쓸한 미소가 길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민우는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그녀에게 어떤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미경이네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온몸으로 술기운이 독하게 스며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차는 다시 큰 길을 지나서 금천대교를 지나 외곽으로 나가는 제방 도로에 접어 들었다. 민우에게는 어디를 보아도 모두가 빈 하늘 같았다. 그녀를 이렇게 보내면 안 된다고 가슴에서 말을 하지만 머리는 말을 듣지 않는다. 차거 운 밤 하늘위로 교회에서 뿜어내는 크리스마스의 오색 불빛이 민우 마음에 거슬리고 있었다. "예수님이 어디 있고 하나님이 어딨어? 우리 사랑도 못 만들어 주는데" "손님 많이 취하셨군요." "네에, 이 사람이 내가 싫대요, 어쩌지요? " "그러면 얼른 잡아야죠." "어떡해요." 술이 과했는지 민우가 횡설수설을 하고 있다 "다 왔어요. 정신 차려요” "벌써” "이것 좀 드세요" 어디에서 구했는지 그녀의 손에는 이온음료가 들려 있었다. "고마워" "좀 어때요" "응 괜찮아. 내가 좀 잣지?" "좀 잤어요." "미경아 고마워 모두 모두가 그냥" "걱정 마세요 " 잠시 후 택시가 마을에 입구에 도착했다. 어떤 여유의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이별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오늘의 무대는 새벽녘 어느 골목길에서 어떤 대사의 내용도 없이 즉흥적으로 주연 배우들이 쓸쓸하게 연출하고 있었다. “저어, 내릴게요.“ "안 돼. 내리지마" 민우가 미경이 에게 강하게 명령을 주문한다. 아쉬운 듯 차에서 나오지를 않고 뒷 자석에 앉아 미경의 손을 꼭 잡고 손을 놓아 주지를 않는다. 이제 손을 놓치면 영영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떡해 집에 다 왔는데 내려야 돼요“ “가지마.” “안돼요” 미경이가 차문을 열고 나가려 하고 있었다. “내 곁에 있어주면 안 돼” 이별은 잠시 순간이여야 한다고 믿기에 차에서 먼저 그녀가 내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각본에 정해져 있는 연출 순서에 따라 힘없이 두 사람에 손은 이미 풀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유나에게 잘 해 주세요" 유나는 3살 된 민우의 딸 이름으로 미경이를 임오라고 불렀다. "널 보내고 난 누구에게 또 내 마을을 줄까?" 민우의 마음이 순간 동요되어 것 잡을 수없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반쯤열린 택시 문틈 사이에서 아쉬움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미경에 눈에서도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미경아” 기쁘게 보내기 위하여 민우는 억매인 가슴은 다스려야 했다 “..........” "미경아" "너무 마음 아파하지는 마세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미경아" "자꾸 그러시면 전 어떡해요" "얼굴 좀 다시 한번 보자" "민우씨" "사랑한다. 미경아!" "........“ 두 사람은 서로 꼭 껴않고 작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한사람을 다시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순간 이였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보내야 한다. 끝도 없는 미로의 싸움에서 언제까지 민우 곁에서 엮매여 있을 수는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행가처럼 사랑이란 같이 있는 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민우는 어떤 말이라도 전하고 싶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이 막히어 말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의 돌발 행동에 동네 개들이 놀라서 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퍼지고 있었다. 그에 놀란 미경은 엉겁결에 차안으로 민우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택시 문이 닫히자 차는 그 곳을 서서히 출발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이별 연출은 순간 드라마처럼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택시는 어둠 침침한 골목길을 미련 없이 빠져 나오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멀어지는 그녀 모습을 바라보며 민우는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어차피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순서를 밟은 지 꼭 1년 만에 그들은 이별을 쓸쓸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미경은 차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로를 위해서 이제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택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을 골목을 빠져 나와 빠르게 큰 길로 접어 들었고 그리고 무심천 제방도로 힘차게 올라서고 있었다. 때마침 택시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거리에서’ 란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 노래가 민우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긴 터널에서 나온 민우는 조용히 눈을 감고 노래를 음미해본다. 우암산 언덕길 시내 쪽으로 불빛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까만 밤하늘 위로 갑자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차가 지나는 아스팔트길 위로 하얀 눈발이 자동차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시간은 자정이 지난 지 오래된 것 같다. 시내로 들어오자 거리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으로 쌓여 있었다. 어디선가 새벽 교희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있다. "손님 오늘이 크리스마스 예요" 졸고 있는 민우에게 운전기사가 멋쩍게 한마디 한다. 조금 전의 이별 연출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기에 민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두 분에 깊은 사연은 모르지만 만남이란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민우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손님 좋은 사람을 다시 또 만날 거예요" 이제 제법 큰 눈송이로 변해 가고 있었다. "기운 차리세요." 운전기사 치고는 보기 드문 참 싱거운 사람이었다. 거리에는 어느새 눈이 가득 쌓이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어디선가 아기예수 탄생을 축복하는 성가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거리가 너무 쓸쓸해 보였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 주세요.” 민우는 어딘지 모르는 낯선 거리에서 내렸다. 눈이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다. 인연이란 언젠가는 풀어져 제 갈 길로 각자 가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다. 새벽 공기가 차게 느껴지는 거리를 무작정 걷고 싶었다. 지금의 심정은 마치 전쟁터에서 패잔병이 되여 쓸쓸히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제는 정말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도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며칠 있으면 연말이고 곧 새해가 다가온다. 이제 내년에는 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어머니가 딸아이 돌봐 주고 있지만 아이가 엄마를 찾아 달라고 칭얼거릴 때는 혼자서 너무 힘이 든다. 아내의 빈자리 엄마의 빈자리가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에 또 얼마를 걸었는지 모르겠다. 어디쯤에서 내렸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그가 찾아 간 곳은 불빛이 보이는 모충동 언덕위에 있는 작은 교회였다. . "자매님, 어서 오세요 어디에서 이렇게 늦었습니까?" "상당히 춥네요." "술을 드셨군요." "네" 술을 깨니 민우는 너무 추웠다. 쓸쓸한 크리스마스 이다. "몸을 녹이고 조금 있다가 갈게요." "커피를 드릴까요?" 목사가 민우에게 커피를 권한다. "근심 걱정이 있으세요? " "............: "아니면 외로우세요?" "............." "하나님을 벗 하세요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십니다." "고맙습니다. 더 외로우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귀찮아서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커피를 마시고 추위가 가시자 민우는 교회를 나섰다. 크리스마스 날 시내 거리에 아침 새벽공기는 겨울 날씨로 무척 싸늘했다. 지금은 겨울이란 계절 중간쯤에 와 있기에 이제부터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된다. 미경이 마음도 많이 아파온다. 아니 아쉬운 듯 마음은 울고 있지만 같이 있는다고 함께 한다고 사랑은 아니다.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민우를 따듯하게 위로 해주던 게 덫이 되고 말았다. 집에서 반대하더라도 눈 딱 감고 결혼 해버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녀에게는 그걸 용기가 아직 없었다. 그 사람을 사랑은 하지만 아직은 무언가 확신이 서지 못하였다. 부모님에 반대를 이겨낼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냥 바람같이 스치는 사람이라고 민우와의 인연이 애써 부인하였다. 그녀의 손에는 민우가 남기고 간 작은 흔적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작별의 수순을 밟으면서 오랫동안 열병을 많이 앓았다. 새해가 되면 이제 그녀의 나이 스물여덟이다. 여러 곳에서 혼처가 들어 왔으나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 민우를 옆에 두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가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와 헤어져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 했기에 민우를 만나면 그동안 마음에도 없이 쌀쌀하게 대했던 것은 자신과 민우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 했다. 사랑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민우에게 정말 미안했다. 가슴이 자꾸만 울컥 치밀어 오른다. 서로를 위해서 이제는 머뭇거릴 시간이 정말 없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보내야 한다. 좋은 여자와 재혼해서 행복하기를 미경은 눈물로써 진심으로 빌어본다. 끝도 없는 미로의 싸움에서 언제까지 자신도 민우 곁에 억매여 있을 수는 없었다. 그해 겨울은 그렇게 두 사람을 갈라놓고 한해의 계절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은 또 어딘가를 정처 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참 좋은 인연이라 했지만 다시 만났다는 소식은 아무도 듣지 못 하고 방황의 늪에서 벗어난 민우는 자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 후 이런저런 이유로 20여년을 독신으로 여태 지내고 있다. 그리고 딸의 성화에 마지못해서 재혼 이벤트에 오늘 나갔지만 상대가 마음 내키지 않았다. 서울을 다녀 온 후 민우는 서둘러 딸의 결혼식을 마쳤다. 민우와 10년 남짓 살다가 먼저 떠나간 아내와의 이별 그리고 구세주처럼 다시 인연을 갖다 준 미경이 둘 다 민우에게는 인생의 상처만 남기고 간 사람들이다. 연인과 이별한 사람들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다 병이 생기듯이 민우는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쉽게 이어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실패와 좌절로 힘들고 불안정할 때 도움을 주고 정을 받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또 다른 상처를 받을까봐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의처심이 강하다. 바로 민우를 두고 한 이야기 같았다. 오늘은 아내의 흔적이 남기고 간 딸이 반찬을 준비해서 집에 오겠다고 조금 전 연락이 왔다. 머리도 감고 곱 단장을 해야 한다. 딸 유나에게 민우는 여간 시집살이가 아니다. 홀아비 행세 하지 말고 깔끔하게 다니라고 매일 전화로 잔소리를 늘어 논다. 어미 없이 홀아비가 혼자 키워온 딸인지라 부끄러워했지만 사돈집에서 잘 이해를 해주어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머지않아 외손자가 태어난다고 하니 민우에게는 더 없는 고마움이었다. 직장에서 퇴직한 민우는 봉명동에 작은 화랑을 하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거나 또는 등산을 가거나 아니면 대청 땜에서 낚시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오늘 아침 화장실 거울 앞에서 하얀 새치를 발견하고 세월이 참 많이 지난 것을 민우는 새삼 느꼈다. 미경과 헤어진 게 어느덧 25여년이 지난 것이다.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그녀가 어어 받아서 지켜 줄 것이라 믿었지만 사랑도 세상일인지라 혼자서는 이룰 수가 없었다.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미경을 왜 당차게 잡지 못 했나 후회를 많이 해보지만 인연이 아니었다고 애써 변명 해본다. 아직도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 하는 민우 세월의 무상함에 혼자서 술 잔을 기울 일 때면 추억 속에서 눈물 짖기고 하다가 먼저 떠난 아내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폭언하기도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참 무상한 것 같다. 미경인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어디에서 잘 살고 있겠지! 무심한 사람 민우는 조용히 눈을 감아 본다. 그를 만난 것도 그리고 그와 헤어진 것 모두 모두가 운명이라 생각 한다. 그리고 다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다. 새해가 되면 민우의 나이가 환갑이니까 그녀 미경의 나이도 아마 막 쉰은 넘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절은 꿈으로 만들어져 허공 속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 사랑 하나로 내 삶의 일부를 눈물로 채워서 빈 가슴을 담아 낼 수 만 있다면 좋은 추억이다. 당신하나 생각으로 충분히 이 세상을 혼자 살아 갈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민우는 그것이 사랑이요 행복이 아니겠냐며 오늘도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해마다 돌아오는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민우에게도 좋은 사람이 있어야겠지만 상처가 너무 커서 겨울을 또 혼자서 그렇게 또 보낼 것 같다. 지금은 미경과 헤어지던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잠시 들렸던 모충동에 있는 소망 교회를 나가고 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아내의 빈자리를 하나님과 벗하며 성실하게 목회 활동을 한 덕분에 지금은 교회 장로 일을 맡고 있다.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아내와의 상봉길도 어느덧 이제는 한결 가까워고 있었다. - 끝 - - 글쓴이 솔새김남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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