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 / 이동순
가난한 밥상 위에서
쓸쓸하게 차려내는 판잣집 아침 식사
무슨 별것인가 했더니
호박잎이네
똥개네 아부지
피어나지 못한 삶처럼
여기저기 담장 밑 둘레 아무 곳에나
힘겹게 제멋대로 돋아서
사립문 곁으로 기운차게 뻗어가는 한여름 아침
신새벽부터
부지런히 길어다 물 부어주니
여기도 탱글 저기도 탱글 청보석처럼 빛나는 호박
아름다워라 사랑이여
상 위에 올라 드디어 자태를 뽐내는
한여름의 청춘이여
가난한 밥상머리에
똥개네 온가족 둘러앉아
구수한 된장에 푹 담구었다가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워가며 한 장씩 쌈 싸먹는
감격의 호박잎이여
이동순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발견의 기쁨》 등 13권, 민족사서시
《홍범도》(전 5부작 10권), 평론집으로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등 각종 저서 47권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의 시작품을 수집 정리하여 《백석시전집》을 발간하고 문학사에 복원시킴
난고문학상, 시와시학상 수상. 현재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당신에게 좋은인연으로
오래도록 기억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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