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상궁 옥구임씨 묘역

시인김남식 2015. 8. 2. 11:10

상궁 옥구임씨 묘    솔새김남식

 

당시 딸 가진 부모는 딸을 궁녀로 보내고 싶었다

궁여지책 호구지책으로 보내는 이도 있지만 양반가문이거나 일반가문이거나 딸을

궁에 들여 보내서 좀 우찌 해보려는 속셈이 더 있었다

사실 딸을 궁에 들여 보내서 출세를 하고 권력을 가진이도 많았다

 

 

상궁의 비석 은평구 진관동 제각말 사거리에서 산에 오르는 작은 숲길을 따라 200여 미터 오르면 

허물어져 가는 초라한 상궁 옥구임씨 묘와 안내판을 볼 수가 있다

 

 

제각말이란 조선시대 부터 마을 전체가 제각(祭刻)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해서 철종때 제각말이라 불렀다 하는데

은평뉴타운 사람들은 이 지명을 반가워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묘와 비석이 많기 때문이다.

 

 

뉴타운의 형성은 최근까지도 군사지역이었던 이말산(山)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상궁과 내시 그리고 요직에 있었던 수많은 옛 무덤들이 아직도 수천개 남아 있다.

 

 

상궁 옥구임씨 묘역 모습은 거의 지표와 같고 비석과 상돌과 상석들이 묘의 흔적을 말해 주며

아직도 사적 보관 정리가 다 안되었는지 출입금지의 금줄이 처친 상태였   

 

 

최근에 발견된 것으로 보이는 임상궁 묘는 비석을 세운 것은 아주 드문 경우로

묘비엔 씌어진 글을 풀어서 구청에서 안내판을 세웠

 

 

“상궁은 성이 임씨이고 본관은 옥구이다. 아버지는 임효원으로 동지중추부사(종2품)를 지냈는데

재산을 가벼이 여기고 위급을 구제하였기 때문에 동네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할아버지는 임회인데 통정대부(정3품)를 지냈으며 어머니는 해주오씨 금금의 딸이다.

1635년 5월 26일에 태어나 나이 13세에 대궐로 들어가 세손궁에 소속되었다.

이때는 (뒷날의)현종이 새로 원손이 된 때로 이후 옆에서 30년을 모셨으되,

일찍이 실수를 하는 경우가 없었고 내명부 정5품관인 상궁에 이르렀다.

 

1683년 명성태후(현종의 비, 숙종의 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3년상을 마치고 다시

장열태후(인조의 2번째 왕비)전으로 옮기었으나, 1688년 장열태후마저 돌아가시자

숙종 임금이 그전 부터 임상궁을 이모와 같이 여겨서 밖에 나가서 살도록 명했다.

그리고 임상궁 개인집에서 1687년 죽은 막내 여동생 명안공주의 제사를 받드는 것을 주재하도록 하였는데

 1709년 정월 11일 병으로 죽으니 향년 75세였다.”

 

.

 

임금이 임상궁이 여러 해 수고하며 삼가서 조심하고 언행을 바르게 한 것을 생각하여 관(棺) 만드는 재료와

베, 비단을 하사하고 신혈리 서쪽 교외(郊外)의 동남 방향에 장사지내게 하니

부모와 조상이 묻힌 선영이었다. 장사 지낸 4년 후 묘비를 세웠다.

 

 

숙종이 상궁을 이모와 같이 여겨서 사가에 나가 살라했다는 것과 동생 명안공주의 제사를 받드라 했다고 하는데 

이름없이 사라진다는 상궁의 묘가 있다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고

상궁의 장례에 필요한 관과 각종 자재를 도와주었다는 비문이 있는것으로 보아서

일반 상궁보다는 확실히 다른 대우를 받은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상궁 옥구임씨 묘역을 저모습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복원 할 것인지는 추후 두고 보자

 

 

.

명안공주(明安公主, 1667년 ~ 1687년)

현종(顯宗, 1641~1674, 재위 1660~1674)과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 1642~1684)의 3녀로

조선시대 공주들 중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본명은 이온희(李溫姬)

위로 두 언니가 모두 일찍 죽었기에 현종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며 1679년(숙종 5) 서인의 핵심 인물인

오두인의 아들 오태주(吳泰周)와 정혼하여 이듬해인 1680년(숙종 6) 12월 18일, 하가하였다.

 

 

명안공주는 아들 오원(吳瑗)을 낳고 1687년 죽었으며 무덤은 경기도 안산시 사사동에 있다.

명안공주와의 결혼으로 해창위(海昌尉)에 봉해진 남편 오태주는

1689년 시아버지 오두인이 인현왕후 폐위와 관련해 올린 상소 사건으로 멸문지화를 입을 뻔하였으나

숙종의 배려로 여동생 시가에 화를 피할수 있었고 삭탈됐던 오태주 작위도 복직 되었다

 

 

상궁옥구임씨 묘역 안내도 k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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