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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 청포도

시인김남식 2017. 6. 5. 08:40

이육사  (1904 ~ 1944년

  

경북 안동 도산면 원천리 불미골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원록(源祿)이다

아호인 '육사'는 대구형무소 수감 번호 264 에서 따온 것으로 

그의 형제들이 모두 항일 독립 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을 했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고 하는 그는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염원하는 시를 썼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이후 10여 차례 투옥했다.


1933년 귀국해 언론기관에 근무하면서 '육사'라는 필명으로 시를

발표했으며 1937년에는 신석초·윤곤강·김광균 등과 시동인지

자오선을 펴냈다.



북경과 서울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3년 4월 서울에서 검거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이듬해 겨울 건강이 악화되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를 했다

문인들이 대부분 일제 말기때 변절해서 친일행위를 한 반면 그는 끝까지 민족적인 신념을 가지고 저항했다.



이육사문학관은 안동 도산서원을 지나서 낙동강이 보이는 도산면 원천리 마을에 있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선생의 14대 손으로 선비 정신을 본받아 성장했으며 어린시절 한문을 배워서

깊은 소양을 길렀다고 한다.


1925년을 전후한 청년 시절 義烈團에 가입하는 등 독립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활동 하게 되는데...


육사가 생존했던 해방 직후는 民族史的으로 볼때 가장 불행하고 암울했던 시기로 
민족의 주체성과 국권의 상실이라는 일제 강점기에서 유구한 역사와 민족 자존이 크게 훼손된 시대였다. 


그는 투쟁과 저항으로 독립 운동을 통하여 나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순국 함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이자 민족 운동가였다.


그의 유해는 동생이 수습하여 서울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을 했고 광복이후 1960년 이곳으로 이장 하였다




그는 여러개의 가명을 쓰며 서로의 본명도 몰랐던 그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문서를 남기지 않았다고 하며 

특히 점조직으로 움직였기에 그들의 활동 전모가 지금까지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이육사는 시를 쓰고 언론활동한 작가였지만 그가 의열단이었던 사실은 주위에 누구도 알지를 못 했으며


특히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육사가 의열단이었다는 것

조선정치 군사간부 학교를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의문시 되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詩人 가운데 가장 여러번 감옥에 드나든 사람이었다는 사실 정도이다


1990년 그에게는 '건국포장', '건국훈장 애국장',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하였고

그의 일생은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번 조명되었다



문학관 외부에는 청포도 샘, 동상, 시비, 생가 육우당이 있다 



원래의 생가는 안동땜으로 수몰되자 1976년 안동으로 이전했으니 기능이 퇴색되고 떨어져 이곳에 다시 설치 하였다

 

이육사 묘소는 문학관 뒷쪽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는 건지산 줄기 능선 부근 약 2.8km 위치에 있다   


해발350m의 가파른 오르막 길로 왕복 3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집념이 없으면 이육사 墓의 참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묘소까지 1시간 반가량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돌아 간


그러나 힘들게 올라서면 낙동강이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지는 그것은 알 수가 없으나 조국 광복을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라는 뜻이 아니었나 ??  


중국 베이징에서 화장을 한 유골은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 되었다가 1960년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묘비에는 민족시인 육사 본명 이원록지묘라고 적혀 있으며 1983년에 작고한 부인 순흥안씨와 함께 있다

.

육사 선생의 생가 마을을 중심으로 낙동강이 바라 보이는 오솔길도 만들어 문학관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문학관앞에서 나들이 걷기 테크가 낙동강변 까지 이어져 있다


안동시내에 복원된 이육사 生家는 kbs방속국 입구에서 송현동 쪽으로 오르는 언덕길 주택가 초입에 있다


경북민속자료 10호인 이육사 생가는 안동땜으로 수몰되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주택가에 있어서 그냥 지나치면 모를 수 있으나 옛 모습대로 흙 돌담으로 만들었고 대문에 이육사생가 팻말이 있다

 

外部人의 訪問은 사전에 허락을 맡아야 한다


이육사 詩 모음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하여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친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고선 지고
큰 강물이 드디어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청포도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제겨디딜 곳조차 없다
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ebs 5분한국사 


부근에 도산서원과 함께 농암종택등 가볼 곳이 있는 좋은 힐링장소이기 때문에 좀더 시간이 허락 된다면 

봉화 청량산까지 1박 2일 코스도 좋겠다. solsae k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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