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지훈 솔새김남식
조지훈(1920~1968)은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중 지병으로 49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 하였다
묘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에 있다.
어머니의 고향이 남양주이고 어머니가 묻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죽으면 어머니가 묻힌 곳에
함께 묻히기를 바랬기에 유지를 받들어 결국 어머니 무덤옆에 묻히게 되었다.
부친 조헌영은 1,2대 국회의원을 지내다가 6.25때 납북되었다
1940년대 왕성하게 활동한 우리나라 詩계보의 한 획을 긋는 청록파 시인은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세사람이었다
보통 사람이 죽으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묻히는 게 일반적이지만
청록파 시인 세 사람 중 박두진(안성)을 제외한 박목월(慶州 용인가족공원)과 조지훈은 타향에 묻혔다.
조지훈은 혜화전문시절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 지에 "고풍의상" 을 발표하고 시인으로 데뷔하였다
1941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강원외전강사를 지냈고, 불경과 당시(唐詩)를 탐독했고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1946년 전국 문필가협회와 청년문학가 협회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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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승무, 1940년에 봉황수를 발표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6·25 때는 종군작가로 활약했다
조지훈 시인의 본명은 '동탁'이라 묘지에는 '지훈한양조공동탁지묘;라고 적혀있다.
조지훈 시인의 묘 뒷 쪽에 있는 묘는 어머니 것으로 "전주류씨지묘' 라고 적혀있다.
경춘선 마석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뒷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조지훈시인묘 이정표가 있으나
초행자는 길목을 찾기가 좀 어렵다
묘에서 내려다 보면 마석역의 철길과 지하철이 지나는 소리가 들려 오는데...
묘지 바로 산 아래 마석역 뒷쪽으로 옛날 빌라 집들이 모두 철거 되었고
지금은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 선다고 하는데 머지 않아서 묘 앞쪽으로는 아파트 숲으로 막힐 것 같다
승무(僧舞) - 조지훈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훠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마을 뒷 山 길에는 군데군데 조지훈시가 목판에 걸려 있어서 산보하기 좋다
낙화(落花)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서울 성북국 성북동 삼선교에 있는 조지훈 조형물
기다림
고운 임 먼 곳에 계시기
내 마음 애련하오나
먼 곳에나마 그리운 이 있어
내 마음 밝아라.
설은 세상에 눈물 많음을
어일 자랑삼으리.
먼 훗날 그때까지 임 오실 때까지
말없이 웃으며 사오리다.
부질없는 목숨 진흙에 던져
임 오시는 길녘에 피고져라.
높거신 임의 모습 뵈올 양이면
이내 시든다 설을리야......
어두운 밤하늘에 고운 별아.
女人
그대의 함함이 빗은 머릿결에는
새빨간 동백이 핀다.
그대의 파르란 옷자락에는
상깃한 풀내음새가 난다.
바람이 부는 것은 그대의 머리칼과
옷고름을 가벼이 날리기 위함이라
그대가 고요히 걸어가는 곳엔
바람도 아리따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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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 思慕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해야 할 말이 남아있음을 알았을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있었다.
불러야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전 두고 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 흘김으로
미워서 미워 지도록 사랑 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잔은 미리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나 혼자 마시노라
조지훈생가 가는길
경북 영양군에서 10여키로 올라가면 일월면 주실마을에 조지훈 生家가 있다
이곳에는 21살에 병마로 요절한 未完成是認 형 조동진과 함께 조지훈 시비가 길 양편에 서 있다
주실마을로 들어서면 문학공원과 문학관 그리고 생가 한양조씨 호은종택이 있으며 마을은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다
조지훈 문학관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을 세번째 방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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