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生活수필

똥통사건

시인김남식 2012. 3. 18. 20:48

똥통 사건   솔새김남식


지금부터 아주 오래 된 이야기 이다
 겨울 방학을 며칠 앞둔 초등학교 5학년 3반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이놈에 자식들 도데체 누가 그 짓을 한거야"
"누구야! 주동자가 누구란말야! 어서 말해!"
나는 친구들고 같이 교무실에서 벌을 서고 있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자 선생님의 목소리는 더욱 더 크게 들려왔다
물론 주모자는 나였지만 아이들에게 쪼크를 주었다.
"느그덜 선생님에게 이르지 마라 그러면 우린 다 같이 죽는거다"
한 시간이 끝나고 두시간 끝나도 선생님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고
"선상님 잘못 했어요 다신 그런 짓 안 할께요"
당시 군대에서 갓 제대한  최선생은 호랑이였다.
모두들 잘못 했다고 빌었지만 누가 주모자인지를  말하지 않자 선생님은 우리를
교실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얼음이 얼은 세멘트 바닥위에서 주먹을 쥐게 하고 엎드린 자세로 벌을썼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는 아주 힘든 벌이었다
손등이 너무 시러워 서로 손을 바꿔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하기에 군대에서 배운 속칭 원산폭격이라는 벌이었다
요령을 피고있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차렸 자세로 몸하나 흐트러지 않고 지켜서서 야단을 계속했다
"아무래도 네가 주동자인거 같은데 어서 말해"
"아니라요."
"암마 너 때문에 친구들에게 미안치 않나? 말썽쟁이 같은 넘"
체벌을 한참하고 있는데 그때 마침 읍내 병원에서 큰누나 같은 우리 담임 선생이 돌아왔다. 



"최선생님 애들 이제 그만 하세요. 모두가 제 잘못이예요"
"윤선생님 병원에 다녀 온 아저씨 좀 어떠세요?"
"그 정도로 괜찮아서 퍽 다행이예요.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이예요"
우리는 계속 잘못했다고 선생님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날의 사연은 이랬다.
실력있는 좋은 중학교에 가려면 방학때도 학교에 나와야 한다면  선생님은
우리를 채근했지만 놀기 좋아하는 우리들은 적극 반대를 하였다
그러나 학급회의에서 2주일만 학교에 나와서 자습 하기로 선생님과 결정하였다.
재작년 교육대학을 갓 졸업한 꽤 실력이 있는 여선생님이었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한 미모 했으며 체육을 담당하는 최선생님과는 서로 좋아하는 그런 사이였다.
그래서 친구들하고 꿰를 냈다.
"야! 우리 공부하기 싫지. 좋은 방법이 있다. 모두 나를 따르라"

마치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처럼 위기가 있을때 마다 앞장을 섰다
방학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돤다는 좋은 아이디어에 친구들은 환호를 했고
우리는 같이 선생님을 골려 주기로 계획을 하였다.

우리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 학교에서 큰 길로 나가는 골목길로 나갔다 

그 길에 삽과 괭이를 갖고 와서 언 땅을 파서 무릎 높이 정도의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속에 인분(똥과오줌)과 재를 썩어 웅덩이에 절반정도 넣었다.
그리고 나무가지와 솔가지를 걸처놓고 표시가 나지 않도록 그 위를 흙으로 다시 살짝 덮었다.

길위에는 아무 표시가 나지 않았다
누가봐도 진짜 골탕 먹이기에 좋은 것이었다
사방이 어스름해질 초저녁 무렵에 선생님이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곳에 빠지면 분명히 다리를 다칠 것이고 그러면 자율학습에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참으로 단순한 우리들 생각이었다
장난꾸러기와 심술꾸러기들이 모여서 며칠을 생각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뒤에 닥처올 엄청난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정말 천재가 아니면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천재는 뭔가 달랐다. 

.



그리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선생님이 지나 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저녁해가 넘어가려해도 담임 선생님은 그곳을 지나가지 않고 있었다.
애들이 추운데 그만 가자고 했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곳에서 큰일이 벌어 졌다. 
읍내장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던 한 아저씨가 웅덩이에 그만 빠저서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쿠 쿵하는 비명소리가 들리자 네명에 친구들은 겁에 질려 꽁지 빠지도록 도망을 갔다
집에 오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땀이 흠벅젖어 있었다.
엄마는 어디 갔다가 저녁도 안먹고 이제야 오냐고 야단 했지만 아무말도 못했다

겨울방학 하는 다음날 우리는 교무실로 불려 갔다
그래서 지금 옆반 담임선생님에게 고통스런 벌을 받고 있었다.

사고나기 전날 담임선생님은 방학 과제물 프린트 준비로 학교에 있었다고 한다
막 일을 마치고 교문은 나서는 순간 길에 넘어져서 아파 신음하고 있는 아저씨를 
우리 담임 선생님이 발견하고 함께 읍내 병원에 갔다고 한다.
넘어진 아저씨는 구두와 양말이 엉망이였다 
발목부위를 약간 다처서 기부스 했다고 하며 그래도 더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잘못을 빌었고 치료 해주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다친 아저씨의 보름간 치료비는 우리 담임 선생님이 모두 변상해 주었다
부모님들이 부담 하겠다고 했지만 우리들은 정말 좋은 선생임을 만난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재밋고 싱거운 장난이었다

.
좋은학교 보내려는 실력좋은 선생님과 공부하기 싫어서 잔꽤를 부렸던
그때가 아득한 옛일로 매년 겨울이면 생각이난다
그일이 있은후 체벌로 방학 한달을 학교에 나와야 했으며 우리들은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때 한미모했던 담임선생님은 할망구가 되셨으며
얼마전 동창회에서 뵌 적이 있는데 우릴 보고는 반색을 하셨다
선생님 두분이 결혼 했으니 어쩌면 우리들이 엮어준 셈이었다
개구장이들은 두사람을 떼어 놓으려 했는데 심통은 물거픔이 되어 버렸다는 잊지 못할 
소년 시절의 추억으로 우리들은 이 사건을 똥통사건이라 말하며 
친구들과 추억을 함께 할 때는 아주 배꼽을 잡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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