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生活수필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시인김남식 2012. 4. 21. 11:56

시어머니와 친정엄마    솔새김남식


가을이 시작이 된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다. 어느새 떨어진 낙엽 이제는 거리에서도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며 가을이 짙어가고 있었다. 벼랑 끝에 선 인생처럼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은 브레이크 없이 내 나이 속도로 달아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속상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냥저냥 서글퍼지고 막걸리 한 잔으로 세월을 묶어 놓을 수만 있다면 연일 취해도 좋을 것 같다.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약간 흐리기는 하지만 포근한 휴일 날 오후 마침 명동에 볼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나는 을지로 입구 롯데 백화점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백화점 문이 열릴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 가고 하는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만 저 곳을 힘차게 들어 갈 수가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화려한 옷차림의 두 아주머니가 백화점을 나오고 있었다. 양손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쇼핑 가방이 두개씩이나 들려 있었고 나이에 걸맞게 고운 얼굴 모습을 보니 어디를 보나 둘 다 부잣집 사모님 같았다. 백화점 언저리도 못가본 집에서 투덜거리는 아내와 비교를 해보니 마누라가 고연히 측은해 보였다.

나는 우연히 그 아주머니와 같은 702번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간간히 들리는 대화의 한 토막이 내 귀를 솔깃하게 하였다. 그들은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듯한 아주머니로 여고 동창생의 대화였다. 각자 백화점 쇼핑을 나왔다가 우연히 만나서 서로에 안부를 묻고는 이왕 만났으니 친구 집에 들려 차 한 잔의 여유를 하려는 것 같았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한 친구 집 으로 가는 길인 것 같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를 지나자 한 아주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차암 딸은 잘 있지?"

"그럼~ 팔자가 늘어졌어!"

"시집을 잘 간 모양이지?"

"남편을 잘 만났지 뭐야. 살림은 죄다 가정부가 해 주고"

".........."

"미장원이다. 동창회다. 백화점이다. 그저 돌아다니는 게 일이지"

한 아주머니는 신이 난 듯 이야기하고 다른 아주머니는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시부모는 안 모시는 가봐?"

"으응~"

"..........."

"결혼 할 때 시부모를 모시지 않기로 했대. 요즘 젊은 애들이 누가 시부모 모시려고 해?"

".........."

그러고 시부모가 아직 젊으니까 먼저 나 가서 편히 살라고 했대

“...........”

"회장님이 외국 바람 쐬고 오랬다며 5월에 딸 사위가 엘에이 지사장으로 나간대"

다른 아주머니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냥 듣는 척 하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잠시 두 사람의 대화가 멈추었다. 아직 이른 오후라서 차 안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제 버스가 서울역을 돌아서 서대문을 지나고 있을 때 딸 자랑 하며 뻐기던 그 아주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참 작년 가을에 결혼한 아들은 잘 있고?"

"그저 그렇지 뭐"

"며느리는 좀 어때? 잘해?"

"말도 마! 우리 애가 운이 없지. 어디서 그런 애를 만났는지"

"!"

"집안일은 돌보지 않고 허구한 날 밖으로만 쏘다녀서 죽겠어!

툭하면 아프다고 친정 가서 며칠씩 있다 오고. 내가 오히려 시집살이를 해"

"그러면 쓰나"

"누가 아니래"

"색시가 곱던데"

"요즈음 누가 인물 뜯어 먹고 살아"

"며느리가 직장에 안 다녀?"

"처음엔 유치원 교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글쎄 보모라나 머라나

“..........”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오는 우리 애를 보면 참 안 됐어."

좀 기분이 언짢았는지 퉁명스런 표정을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자 회장댁 사위를 둔 그 아주머니의 대답이 걸작 이였다.

"아무튼 여자는 잘 들어와야 해"

"........."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좀 씁쓸해 하였다. 다들 자기편해서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속으로

"! 그럼 자기 딸은 잘 들어와서 살림은 죄다 가정부가 해 주나?"

잘난 아주머니와 못난 아주머니의 두 대화는 그래서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그들은 홍제 동 아파트촌에서 내렸다. 누구든 아들딸이 잘 되기를 싫어하는 부모는 없으며 내 딸이 편했으면 내 아들이 장가를 잘 갔으면 한다. 그러나 내 며느리를 이해해야지 내 사위를 이해해야지 하지만 모든 이들은 생각처럼 그렇게 인심이 후하지는 않다.

하긴 요즈음은 시어머니가 도로 시집살이를 한다고 하니 세상살이가 사뭇 걱정이다. 어느 휴일 날, 볼 일이 있어서 큰딸 집에 들렀더니 자기 딸은 누워 있고 사위가 설거지 하며 청소를 하는 걸 보고 어찌나 사위가 예쁘던지 칭찬을 하고 다시 저녁에 작은 아들 집에 가서 보니 며느리는 TV를 보고 아들이 설거지하고 청소 하는 걸 보고 어찌나 속상한지 그냥 돌아서 나 오는데 물 묻은 손으로 배웅을 나오는 아들에게

이런 들 떨어진 놈 같으니....”

라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서로의 입장 차이가 아닐까 생각 하면서도 참 우스운 이야기가 종종 들리는 요즘 현실이다. 최근엔 한 술 더 떠서 사위는 장인이,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자식들이 이혼하도록 빌미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참으로 어찌 보면 철없는 젊은 세대나 나이 먹은 부모들이나 모두 자기 잣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부모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상을 올바르고 현명하게 처신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즉 집에서 자랄 때부터 사리가 밝은 좋은 딸은 시부모에게 잘 하며 또한 그녀의 남편도 처가에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옛 어른들 말처럼 사람이 잘 들어와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욕심을 버리고 사심을 버리고 모든 이들은 그렇게 해야 만이 올바른 가정 올바른 사회가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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