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강건너 등불 솔새김남식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이 혼자의 힘으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쉽게 사랑하는 것도 바보가 하는짓 이라 생각했다. 사랑이란 어떤 순리든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 진리를 깨닫게 되는 날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랑이란 애가 탐으로서 성숙하고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녀가 먼저 약속을 해 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몇 주일이 지나도록 그를 만나지 못 했다. 얼마 동안은 냉전이 필요 하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만남의 약속을 기다리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는 것 같았다. 얼었던 강물이 봄 바람에 녹듯이 그냥 제풀에 지졌으면 했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를 않았다. 어느 덧 가을이 시작되는 9월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혜진이 성북동 친구 집에서 모임 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 냉전이 계속 될수록 마치 남들이 비웃는 것 같았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아무 일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들과 만나는 날을 디데이로 하고 그와 부딪히기로 했다. 그날따라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저녁 날씨는 조금 쌀쌀했다. 골목 어귀에서 처량하게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자존심은 이미 달아나 버렸다. 얼마를 기다렸는지 모임을 끝내고 친구들과 아무 것도 모르고 재미있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현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만나자, 촌스런 싸움은 지난 번 처럼 계속되었다. “혜진아! 우리 예전처럼은 될 수는 없어도, 그렇게 야속하게는 하지 않기야?” “집에 갈래요. 늦었어요” 그는 한마디로 귀찮다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아무 애기도 하기 싫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겠다는 혜진이 생각 이었다. 현우는 길목에서 그를 가로 막았다. “이유가 뭐야. 혜진이가 이러는 행동은 나빠 ” “제가 뭘 어쨌는데요.” “아무리 그렇다고 무시하는 것은 잘못야 ” “전 이러는 것이 싫단 말예요 ”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퍼젔다. 밤은 깊어가고 빗줄기는 굵어지고 있었다. 그가 간다고 길을 나서면 다시 심술쟁이처럼 가로 막고 설득을 하고 다시 지친 듯이 있다가 또 그가 간다고 하면 다시 길을 막고 무조건 그를 귀찮게 했다. 이렇게 하는 행동이 나쁜 것 이라는 것도 모르는 현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그와 점점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자꾸만 일이 난처하게 꼬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밤이 늦도록 혜진을 괴롭혔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때로는 포기도 해야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래야 내 자신이 더욱 초라해지지,’ 하며 자신을 돌아보지만 현우의 마음은 꼭 무엇에 쫓기듯이 조급해 있었다. 미련이 모든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가고 두사람의 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우산도 쓰지 않고 남에 집 담벼락에 기대여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얻기 위해 비를 맞고 끝도 없는 다툼을 하고 있는지 그것은 마치 미로의 사랑싸움 같았다. 시간은 흐르고 서로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의 미움만 더해 갔다. 이제 오랜 시간이 되었고 서로가 지쳤는지 누가 먼저 애기 했는지 승패도 없이 그냥 휴전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현우는 택시를 타고 그를 데려다 주어야 했다. 만나면 화를 내지 않고 천천히 설득해야 된다고 생각 하면서도 그를 만나면 대화의 흐름은 막히고 이상한 분위기로 변해가며 종말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제 또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얽혔던 쇠사슬의 힘은 점점 멀어지는 것을 현우는 느끼고 있었다. 현실에 착실하게 지내는 것이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현우도 그리고 혜진이도 당분간 연락이 없었다. 서로가 제 풀에 꺾었으면 하였다. 그가 정말 미워지게 되면 자신에 모습은 어떻게 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떠날 때를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처럼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현우는 이유 없이 아무에게나 요즈음은 짜증을 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항상 늘 그랬듯이 조급한 것은 언제나 현우였다. 한달이 지나도록 소식을 끊을 수는 없었다. 다시 그를 만나야 무슨 일이 풀릴 것 같았다. 남자는 여자가 떠난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면 그 사람을 잊는다고 했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 하는지 현우는 아직은 모를 것 같았다. 그가 만나기 싫어 하는데도 끈질기게 전화를 하였다. 그는 전화를 받으면 끊고 그러면 현우는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예나에서 그를 만나고 싶다고 일방적인 전화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예나에 들렸을 때는 그녀는 없었다. 오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설마하고 기다렸던 것이 또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정말 초라하고 측은해 보였지만 예나를 당당히 나섰다. 화가 난 현우는 피아노 학원에 가면 그가 있을 것 같았기에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학원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차에 그와 마주첬다. 집에 가려고 학원을 막 나섰던 것 같았다. “혜진아! 약속 왜 안 지켰어! 응?” 현우는 무조건 큰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찾아 와요 ” “왜 오면 안돼! 그럼 약속을 지켜야 할께 아냐.” 화난 현우의 큰 소리에 놀란 원생들과 선생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피한걸 눈치 챈 혜진은 현우를 붙잡고 학원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내가 화를 낸다고, 거기서 똑 같이 화를 내면 어떡해요.” “그것은 정말 미안해. - 그렇지만 기다려줘야 하잖아?” “지금 막 갈려던 길이예요. ” 그 말은 그녀의 변명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예나에 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좋아! 그럼 예나에 가자고” “싫어요. 지금 그 곳에 갈 기분이 아니예요.” 두사람은 또 체면도 없이 시내 중앙로에서 다툼을 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휠끔 처다 보고 있었다. 지난번 하지 않으려고 현우는 흥분을 가라 않혔다. 중앙로를 벗어 날 때까지 어떤 애기든 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기대 할 수 없었다. 현우는 다시 또 바보가 되고 말았다. 그날은 낯선 사람들이 헤어지듯이 아주 멋쩍게 그와 헤어졌다. 뻐스를 타고 집에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수아사 옆에 있는 주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구석진 곳으로 혼자 자리를 잡았다. ‘바보! 잘 나지도 못 한게 튕기고 있어. 나쁜 기집애. 야! 지가 뭔데. 지 아니면 여자가 없을라구‘ 얼마나 술을 먹었던지 현우의 혼잣말에 이제 술잔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이 혼자의 힘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쉽게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이였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바보라고 생각하였다. 시간은 두사람의 관계를 이미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혜진은 헤어짐을 하기 위해 벌써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마음에 동요도 움직임 없이 깨끗하게 그가 연출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혜진이 마음이 곧 바로 달려 올 것 같은 생각은 떠나지를 않았다. 미련은 언제나 구름처럼 그에게 밀려오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만나기는 더욱 어려웠고 어쩌다 우연히 스치면 그때마다 혜진의 마음은 더 차가운 얼음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그 가을의 한달은 혜진의 뒤를 따라 다니면 귀찮게 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어떤 때는 혜진에 마음을 알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달려드는 그것들은 현우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갖은 수모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을 꾹 참아야 했다. 한편으로 그를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그것은 그의 진실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서로를 위해 그의 각본에 의해 연출도 하고 주연도 하는 것 이라 믿었다. 그해 가을 현우는 가장 슬프고 힘겨운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다. 어쩌다 약속해서 만나게 되면 똑같은 소리를 혜진에게 반복적으로 들었다. 그럴 때마다 만나지 않아야 하지하면서도 정신을 가다듬지만 먼 발치에서 그가 따라 오라 손짓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어 미련을 버리지 못 하였다. 현우는 차츰 모든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할 일없이 거리를 방황하고 또는 다방으로, 다방에서 주점으로 어딜 가나 그에 그림자가 늘 따라 다녔다. 한잔의 술잔을 비우고 나면 다시 술잔 속에 비추는 영상은 현우를 괴롭히고 있었다. 돌아 갈 사람 이라면 어떤 아픔이 오더라도 보내야 한다. 이렇게 초라한 것은 지푸라기라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해 가을은 이별의 서곡이 시작 되였다. 토요일 오후에는 혜진을 만나기 위해 예전에는 시간을 항상 비워 두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싫다고 하는 그녀를 따라 다니며 귀찮게 하기도 이제는 싫증이 나 있었다. 돌아 올 수 없는 사람 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못해 그를 설득 시키려 했던 것도 어쩜 바보스런 일인지도 모르는 것 이였다. 어쩌다 만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처럼 그녀는 ‘또 시작이네’ ‘왜 신경 쓰세요’ 하며 핀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다림을 주지 않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린다고 돌아오지는 않는다. 자신을 멀리하는 그를 미워 하면서도, 또 한편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한 것 인지도 모른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만남의 인연이 있었다면 그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우는 그 조그마한 연민의 정을 떨처 버릴 수가 없었다. 그에게 갖은 수모를 받아 가면서도 늘 그를 이해 하려고 했다. 다만 한가닥 인연의 끈을 단단하게 매 놓지도 못한 채 차즘 잊혀저 가는 것이 아쉬웠다. 그들도 만남이 없어지면서 그리움이나 아쉬운 생각이 희미 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아무 미련도 없이 가을은 그들을 외면한 채 깊어갔다. 이제 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정말 어쩌다 만나는 일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두사람은 서로가 모른채 그냥 스쳐갔다. 미움으로 변해있는 것과 그를 멀리 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자꾸만 생각이 멀어 진다는 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참담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 세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선지도 벌써 여러 날이 되었다.
다가 오는 12월의 크리스마스와 빛나는 새해 아침도 이제 혼자서 쓸슬히 맞이해야 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으며 눈도 무척 내렸다. 세월의 시간은 벌써 12월이 되었지만 현우에겐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와의 만남의 끈은 쓸어가는 삼팔선 같았다. 이제 머지않아 어느 팝송 가사처럼 ‘네가 떠나가자 마자’ 지구의 종말이 다가 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금방 현우 곁에 다가 올 것 같았다. 그 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다가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고 먼저 연락하기에는 이젠 그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깐 진달래가 한창 피는 4월 중순에 정말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봄 햇볕을 따라 시내 중앙로에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바삐 오가는 인파속에서 그녀를 발견하였다. 뒷모습만 보아도 단번에 혜진인 줄 알았다. 가지 않으려는 그를 무조건 데리고 커피숖으로 갔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반가움을 채 표현하기도 전에 얼굴이 붉혀지고 있었다. 인연의 끊을 확인하려는 그것을 부정하며 다툼은 시작 되었다. 싫다는 사람을 붙잡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아무 결론도 없는 이야기에 두 사람은 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참으로 끈질긴 인연이었다. “그래 잘 났어 ” “이게 왜 이래 응” “그래 잘 가” 이런 모습이 그에게 추한 꼴을 보였고 이래야 속이 시원한지 입에 담을 수 없는 다툼이 연속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 했으리 만큼 그들은 심하게 다투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별을 선언하고 말았다. 긴 여로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에 시간을 보내야 했었던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을 큰소리로 자랑이나 하듯이 몇 번씩 다짐을 하였다. “미안해 정말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혜진아! 이제 약속도 하지 않겠어” “인연이 없었던 것으로, 그리고 잠깐 지나처 버린 것으로 잊어 버려요” “이렇게 싸움을 하면서 헤어져야 한다는 거, 독하게 마음먹고 잊지 않을거야” “미안해요 저도 이런 것이 아니였어요. 모든 것이 우스운 일이 라는 것을 알았어요. 헤어지는 것은 아프겠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이예요” “미안해 혜진아. 이제 정말 연락하지 않을게” “우리 서로 아는 척도 하지 말아요” “우리는 이래야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수워” 현우는 목이 메었다. 현우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울고 있었다. 이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 설 수 없는 혜진이 마음을 돌려놓기는 이미 현우의 힘이 부족 한 것 같았다. 이제 헤어지기로 결심하였다. 보기 싫은 사람은 떠나보내야 한다. 어떤 아쉬움 없이 혜진과의 작별 여행을 떠나야 했다. 현우는 혜진을 보내 놓고 며칠은 괴로움으로 잊으려고 술을 먹었지만 이제 모든 연출은 끝이 났다. 팝송가사 처럼 그가 굿 빠이 라고 하자 아름다운 이 세상은 이미 끝나 버렸다. 이별 연출이야 어쨌든, 한때 그를 좋아했고 그로 하여금 어떤 어려움도 굳굳하게 걸을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던 그 였다. 사람을 만나기보다도 헤어지기가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가슴 아픈 것은 더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쉬운 일이다. 더구나 작별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 드려질 때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떠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더 이상의 상처는 기억 속에 아픔만 남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가는 사람을 붙잡는 것 처럼 자신이 초라해진다는 애기를 들었던 현우는 아무 일도 없는 것 처럼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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