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生活수필

인생에 대하여

시인김남식 2017. 2. 12. 10:13

    인생 개똥철학       솔새김남식



    누구나 일상을 바삐 살아가다 보면 행복이라는 걸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크게 아프지 않고 그간 가정이 다복한 것으로서 그것이 행복이고 그게 인생이라 해야겠다. 사람 사는 건 누구나 그러듯이 정해진 목표에 따라 결혼을 하고 자식 낳아서 열심히 정신없이 살다가 뒤 돌아본 어느 날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내 아버지 나이를 지날 때만 해도 멀게만 느껴진 인생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내 할아버지 나이에 들어서고 보면 인생이 그리 멀지 않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래서 인생에 절반을 넘어서 종반으로 가게 되면 좀 배부른 소리라 하겠지만 뭔가 허전 하다고 한다. 집에 들어오면 가족들이 외면하고 친구들이 멀어지고 그러다보니 마음이 외로워 쓸쓸해지고 어쩌다 몸이 아프면 엉뚱한 생각이 들어 혹시 걱나강에 이상이 오지않나 두려움이 몰려온다. 모두가 지나온 세월탓이다. 가끔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매일 다니던 지하철 출구를 간혹 잊거나 또는 낯선 길을 헤매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다들 그 고비를 잘 넘기고 사는데 하며 스스로 자신을 추스르며 위로하지만 이미 망가진 수레는 어쩔 수가 없다. 세월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데 받는 사람마다 그 흐름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에 자신을 움츠리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보람 있게 사는 게 인생의 최대 과제이다. 우선 자신을 돌아 봤을 때 후회하는 삶이 아니어야 한다. 어느 늦은 아침 주차해 있던 차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골목길을 나서는데 허한 마음에 고연히 움츠려 든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그렇게 되는 대로 사는 건데 왜 이리 잘 풀리지 않을까하며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어느덧 큰 길로 접어들자 삶의 곡마단 전쟁터로 떠나는 차량들 소음때문에 또 한 번 머뭇거린다.



    저 사람들은 어딜 바삐 가는 걸까 밤이 되면 다시 들어 왔다가 아침이면 떠나는 차와 사람들 우리 사회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골목길에는 이따금씩 보이는 차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노란 차들이 분주하다. 다섯 살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 시키려고 차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 엄마와 그리고 지근거리에서 또 다른 차를 기다리는 세 사람이 보였다.

    그 중 두 분은 노인이었고 한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이윽고 아이들은 태운 유치원 차가 골목을 돌아 나간 다음에 이어서 또 다른 노란차가 다시 도착을 한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머니를 할머니의 남편 할아버지와 며느리가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부축해서 차에 태운 뒤 잘 다녀오라고 배웅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할머니가 탄 차는 데이케어 쎈터라고 쓰여 있다. 여섯 살 어린이를 데리고 간 유치원 차도 노란차이고 할머니가 탄 그 차도 바로 노란색이었다. 잠시 생각해보니 길 건너 사거리 건널목 신호등도 노란색이다.

    차가 떠난 뒤에 할아버지에게 그 사연을 들어보니 그간 치매 아내를 집에서 간병 하다가 센터를 찾게 된 후로 좀 시간적 여유를 찾았다고 한다. 집에서는 온가족이 할머니에게 매달려 아무 일도 못 했다고 한다.

    아마 아이를 돌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상황 일 것이다. 요즈음 도시의 아침은 이렇게 아이는 유치원으로 여든넷 할머니는 노치원으로 가면서 하루가 시작이 된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아이나 어른 모두 아마 똑 같을 것이다. 손을 들고 흔드는 유희놀이와 그림 그리기와 종이 접기 등 상당 부분이 아이나 어른이나 서로 같을 것이다.



    식사 보살핌도 보호자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마 서로가 닮은꼴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유모차라면 거동 불편한 노인에게는 일명 실버카라고 하는 까만 전동차가 이동 수단이 된지 참 오래 되었다. 지금이야 좋아서 전동차를 사용 하지만 옛날 노인들은 그저 지팡이에 몸을 의존하며 지내야 했다.

    사람이 태어나 성장을 하고 정점을 지나서 어느 세월 어느 나이가 지나서게 되면 누구나 하향 포물선을 천천히 그어진다고 한다. 아이는 상승 곡선을 따라서 정점으로 향해 갈 것이고 노인이 되면 끝 지점으로 가는 하향곡선을 따라 가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똥오줌 못 가리다가 죽을 때도 마찬가지로 똥오줌을 못 가린다.

    그런데 사람은 태어나서 똥오줌 가리는 것을 아주 자랑하면서 살고 있으니 참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또한 태어나는 순간의 고통과 죽을 때 순간의 고통은 본인 스스로가 그 아픔을 느끼지 못 한다고 한다.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두려움을 본인 스스로 알지 못하게 조물주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만약 자신이 그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태어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나왔다가 돌아 갈 때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잠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와 있을 때가 되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갖는 다섯 가지의 복이 있는데 그 으뜸은 부자로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덕을 베풀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 한다.

    이를테면 고통 없이 죽는다던가 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떠난 자리에 내가 어떻게 어떤 흔적이 남길 것인가이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떠날 채비가 되었다면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유명한 말은 극히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초로에서 태어나 그저 이름 없이 소리 없이 살다간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이다.

    그래서 남길 것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은 무거운 육신도 남기지 말라하여 국가에서 화장까지 하라고 종용을 한다. 다행히 예술인이나 정치가로 살았다면 유명한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할 것이고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영광을 누릴 것이다. 즉 가수는 노래를 남기고 배우는 작품을 남기고 작가는 글을 남기고 정치가는 명예를 남기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전체 인구의 불과 몇 퍼센트밖에 되지 않으니 그리 흔치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자신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지금의 순간이 바로 소중한 시간으로 항상 돌아 봤을 때 후회하는 삶이 없어야한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악조건의 환경에서도 존속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만물에 영장이라는 사람은 존속법칙을 지키지 않으려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내 유전자 하나쯤은 꼭 남겨야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의무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이 죽는 마당에 부질없고 부끄러운 기억만 갖고 간다면 그 보다 더 허무한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를 어지럽게 흩트려 놓고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잡음에 시달려 마감하는 개운치 안은 삶을 간혹 보면 뒷맛이 씁쓸해진다. 그래서 당신이 죽을 때는 세상은 울고 당신은 미소 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구나 단 한번뿐이 삶이기에 늘 힘찬 기운으로 그래서 언제나 좋은 생각으로 어제보다 더욱 신나게 행복은 내가 만들고 즐겁고 멎지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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