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솔새김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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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볼에 남은 앳된 젖살과 어쩐지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해서 불안하긴 해도 세상이 궁금하고 새로운 것에 늘 관심으로 껌벅이던 참으로 순진하게 맑았던 두 눈이 매력적인 여자이다. 사십을 막 넘긴 나이에 나름대로 멋진 삶을 꾸리고 산다고 환상에 젖었던 때 누가 봐도 아직은 처녀라고 한 몸매 한다는 나는 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5월초 봄비라 하기에는 좀 늦은 것 같았다. 굵은 빗줄기는 아니고 조금씩 실비가 내리는 오후쯤 딸랑딸랑 방울소리와 함께 낡은 망토 젖히듯 가게 문이 열리고 그리고 이어서 어쩐지 우수에 차 보이는 얼굴의 남자가 우리 가게로 들어섰다. 들어오기 전 아마 출입구 앞에서 탁탁 우산도 털었는지 바닥으로 우산에 빗물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그는 필름 하나를 내밀면서 지금 좀 바로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은 라보엠에 나오는 가난한 시인 루돌프같이 적지 않게 우수에 차 있었다. 하루에도 수 십 명의 고객을 상대하는지라
흔히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잠시 기다려 주시면 바로 해 드리겠습니다."
항상 하는 말투 그대로 말하곤 작업을 시작하고 고객과 주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맘이 쓰여서 작업 도중 간간히 얼굴을 훔쳐보았다. 이것은 다른 손님과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대강 나이를 짐작해 보니 이제 갓 정년퇴임을 한 정도의 나이였다. 그리고 얼굴은 왠지 모르게 밝은 기색은 없었고 좀 우수에 찬 얼굴이었다. 작업을 하면서도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 순간적으로 잠시 고객용 소파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내가 읽고 있던 책 더미 쪽으로 손을 가져가며 대강 훑어 내린다. 기억에 아마 제목들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런 말없이 잠시간 침묵이 흐르고 필름 작업은 내 손을 거쳐 상대에게 전해 졌다.
“모두 얼마지요”
“19520원입니다”
그 남자는 이만원을 냈고 나는 그걸 받아서 금고 통에 넣고 480원을 거슬려 주었다
그가 돈을 받으면서
“불자시군요?"
그 단 한마디를 끝으로 그 남자는 가게 문을 나섰다. 내가 보던 책은 ‘그림자 없는 성자’라는 수월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담아낸 ‘물속을 걸어가는 달‘ 이란 책을 읽고 있었다. 책 내용은 이승을 떠나는 순간까지 평생 동안 일 하면서 중생을 부양하는 행적을 따라 가며 그의 삶과 지혜를 그려냈다.
필름 현상소라는 게 주초에만 바쁘지 주중에는 그리 바쁘지 않고 한가하다. 나는 읽던 책을 마저 읽으며 다음 손님이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갔다. 우연인지 어떤 건지 그 남자가 다시 찾아왔다. 오랜 시간을 줄곧, 처음 다녀간 뒷날 아마 그날도 비가 내리던 초여름 이었다.
배달 온 점심 한 공기를 깨끗이 비우고 손님도 한 동안 뜸해서 시시한 얘기지만 졸음이 오는 것 같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 전날 저녁 무슨 일인가로 잠을 좀 설쳤던 것 같았다. 손님이 들어오면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잠을 깨우면 그래도 깊이 잘 수는 없는 형편이다. 눈을 감았다 떴다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깐 가게 설명을 좀 하자면 흔히 말하는 지하철 역세권으로 지하철 3호선 불광역 4번 출구 계단을 막 올라서면 바로 세븐칼라 현상소가 내가 일하는 곳이다. 내가 사장은 아니고 말하자면 나는 종업원이다. 사장은 아침에 출근해서 간단히 하루 매출과 기계의 작동상태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나가 버리면 하루 종일 나 혼자 있다. 낮에는 내가 사장이고 종업원까지 두 가지 일을 다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되자 이듬해 대학에 들어 갈 아들 녀석에 학비라도 저축할 요량으로 이 일을 시작하였다.
가게 앞은 좀 널찍하여 사람들이 약속 장소하기엔 아주 멋진 곳이다. 우리 가게는 사방이 통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을 훤히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지나는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는 게 재미있었다. 가게는 아주 멋진 곳에 나만의 공간을 잡았던 것 같았다.
오가는 사람들에 표정 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죄의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차 한 잔을 타서 행인들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이 어느 때인가 부터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재밌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제법 교통요지인 이곳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환승하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길이라서 그런지 시비를 걸고 싸우는 사람도 보이고 정겨운 모습도 보이기도 하고 때론 이상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할 일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는 매일같이 같은 시간대에 그곳을 지나는 사람도 있다. 그날도 뜨거운 녹차 한잔을 타서 막 의자에 앉아 나만의 사색을 즐기려는데 며칠 전 왔다간 그 남자가 우산을 접으며 들어섰다.
"또 왔습니다. 인원수대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잊었어요, 수고스럽지만 기다렸다가 가져가고 싶은데요. 집이 좀 멀어서요."
필름이 든 봉투를 내밀며 그 남자는 내 옆얼굴을 보고 있었다. 막 뜨거운 차 한 잔을 한 모금 입에 삼키던 순간이라 자칫 입안을 데일 뻔 하였다. 그리고 어찌나 놀랬던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황하는 순간이었다. 나만의 시간을 갖으려 했는데 뜻밖에 불청객이 나타나니 별로 반갑지 않았지만 고객이 왕인지라 자리에서 곧 일어섰다. 그리고 여느 고객처럼 똑같이 웃으면서
"아 네! 그러시죠.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해 드릴께요.”
“여기서 필름을 체크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갔네요.”
“흔히 있는 일인데요. 뭐”
그러고는 잠시 나와 같이 쉬고 있던 현상 기계를 작동 하였다. 작업을 하면서 조용한 공간이 거북하여 혼자 차를 마시려니 신경이 쓰였던 건지 그 남자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녹차를 좋아하시면 한 잔 드릴까요?"
"실례가 되지 않으면 한잔 주시면 감사히 마실게요."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책상위에 있는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또 내가 읽던 책 중간 정도가 그 남자의 손에 의해 접혀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사진 작업이 완료되어 내 손에서 그에게로 넘어 갔다.
"생각보다 장수가 많네요.”
“몇몇 친구들이랑 사진 찍으러 다닙니다.”
“네”
“비가 오는데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계산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는 그 남자를 다시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 키에 등이 살짝 굽은 아주 가냘프게 보이는 뒷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왠지는 모르지만 지하철 역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나는 유심히 보고 있었다. 아! 길 건너편에 사시는 분이시구나, 그렇게 생각을 접고 그러고 한참을 지나서 책을 읽다가 잠시 눈이 피곤해서 건너편 쪽을 바라다보았다. 그것은 내가 늘 있는 일이었다. 도로가 좀 넓은 6차선 도로이다 보니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누가 서 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항상 무심코 그냥 처다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순간 버스정류장에서 이쪽으로 보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바로 조금 전 우리 가게를 다녀갔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도 집에 가지 않고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을 쓰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버스를 타고 가도 열두 번도 더 갔을 시간이었다. 마음에 의문이 일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 부터였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버스가 아직 오지 않아서 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다음 손님이 와서 내 일손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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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후 다시 길 건너를 바라다보았을 때는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궁금증을 자아냈던 사람이 보이지 않자 집에 갔나 보다하며 나는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 남자는 삼사일에 한번 씩 우리 가게를 찾아와서 그렇게 시작된 고객과 주인에 입장이 서너 달 정도 지나갔다. 어디서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아니면 찍은 것을 모아 놓았다가 매일 갖고 나온 것 같기도 하였다. 아니 동네에 사는 주위 사람들에 필름을 모두 수거해 온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점점 통수를 늘려서 매일 가게를 방문하는 고객으로 어느 사이 단골이 되었다. 사진의 내용은 다양했다. 풍경사진도 있었고 들꽃 사진도 있었고 어느 때는 역사의 흔적이 담긴 사진도 있었다. 가끔 인물사진도 있었지만 주인 입장에서 고객들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다만 계산을 하기위해 매수를 셀 때 사진을 딱 한번을 볼뿐이다. 그 남자는 다양한 채널을 가진 사진을 찍어서 매일 방문 하였다. 사진으로 현상을 할 때 마다 사진을 보고는 암튼 참 재미있는 분이라 할 정도로 가볍게 넘어갔다. 보통 사람들은 가게로 들어오면 이런저런 잡다한 말을 시키지도 않은데 바삐 일하는 나를 귀찮게 하지만 이 남자는 가게에 들어오면 신기 하게도 특별히 다른 말이 없었다.
"그냥 기다렸다 가져가고 싶은데요."
"인원수대로 부탁해요"
아주 상투적인 말 이외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나보다 한참 나이니까 행여 무슨 말을 했다가 잘못 실수를 할까봐 그래서인지 나도 그 남자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예의 그 자세 그대로의 좀 어른처럼 점잖은 고객이었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을 알 정도이면 좀 배움이 있는 사람 같았다. 필름 통수가 많아지고 인원수대로 만들다 보니 가게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 질 때도 있었다. 특별히 친절하게 대화의 상대도 아니기에 침묵이 길어지면 좀 답답해지기도 하였다. 대개 가게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딱히 다른 곳을 들릴 때가 없는 사람들이 가게에서 사진이 나올 때가지 기다리면 주인이나 고객이나 서로 신경 쓰일 때가 많다. 어디 나갔다가 시간에 맞춰서 사진을 찾으러 오면 내가 좀 편할 터인데 그 남자는 기다리는 일이 거의 다반사였다. 영락없는 고객의 시집살이를 살아야 하니 은근히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단골고객이라 실은 표정으로 내색 할 수도 없었다.
가게를 비우지 못하고 꼼짝 없이 잡혀있는 형국이니 화장실인들 자유롭게 갈 수도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작업 중간 중간에 훔쳐보는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아마 서로가 훔쳐보기 시합이라도 했을 것 같았다. 우선 입고 있는 옷을 보면 항상 정장에 아주 중절모까지 반듯하게 쓰고 다니는데 다시 가만히 보면 막 퇴직을 한 사람 같기도 했고 외모는 그리 잘 생기지는 않았으며 깡마른 체격에 꼭 다문 입술이 깐깐한 성격에 소유자 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주 인자한 인품이 묻어나는 암튼 마스크가 순수한 사람으로 젊었을 때는 미남형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다만 간혹 아주 차가운 얼굴은 나를 좀 닮아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 남자와 고객과 주인 입장에서 숨죽이는 시간이 서 너 달 정도를 가고 어느 날 인가부터 발길이 뚝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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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부담스러웠던 손님이라 솔직히 별로 기다리지 않았지만 혹시 어디 멀리 여행을 갔나? 아니면 다른 필름 현상소에 자리를 옮기지는 않았나? 또는 아프지는 않은 것인지 고연히 걱정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바로 사진을 많이 찍는 계절인데 왜 필름을 가져오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배부른 장사라 할지 모르지만 계절이 가을인지라 거의 밤샘 할 정도로 바빴던 호황기였다. 얼마나 바쁜지 거의 점심을 굶을 정도였고 가끔 휴일 없이 일할 정도로 자주 밤을 새기도 하였다. 위치가 역세권이다 보니 멀리서 오는 고객이 무지 많았으며 특히 장사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는지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되어주었다. 그 남자에 대해서 깊이 생각 하지는 못 한 채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또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내 기억에서 그 남자를 아주 지워 버렸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내게 생기고 말았다. 그날도 아마 좀 늦게 까지 작업을 한 것 같았다. 가게 문을 닫기 위해 카운터 정리를 하고 서랍에서 자물쇠를 꺼내 놓을 때 가게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하고 잠시 겁에 질려 바라보고 있는데 세상에 바로 그 단골 고객 그동안 궁금해서 조금은 기다렸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만취상태였다.
술 취한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히스테릭한 부분이 내게 있었기에 아주 큰 대형 사고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몰라라 할 입장도 아니고 진퇴양난이었다. 그래서 택시를 잡아서 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 하고는 그 남자를 간신히 부축해서 큰 길로 나가서 여러 번 시도 해 보았지만 택시는 취객이라 승차 거부를 하였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까지 함께 가야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술 취한 남자이라서 만에 하나 차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여자의 몸으로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것도 여자 입장에서 낯선 중년 남자를 집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에 여러 번 망설였다. 그 남자의 인품으로 내게는 그동안 하나의 소중한 고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행여 불미스러운 일이 없을 거라 믿고 또 굳게 믿었다. 어쨌든 그 남자에 대해서는 고객이외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 집으로 연락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취객이라고 파출소에 넘길 수도 없고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다가 까짓것 집까지 데려다주면 되겠지 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분명히 나와 그 사람사이를 오해 할 것도 같은데도 주저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왜 그렇게 결정 했는지 그것은 나도 모르는 행동이었다. 주차장까지 가면서 넘어지고 부축이고 하면서 차에 시동을 걸고 간신히 차에 부둥켜서 태웠다.
"선생님 댁이 어디세요?"
"여기서 좀 먼 곳인데 그냥 택시타고 갈 테니 적당한 곳에 날 내려 주고 가시죠."
젠장 그럼 처음부터 바로 갈 것이지 주차장까지 와서 웬 사람을 골탕을 먹이고 있을까라고 싫은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을 꾹 삼키고 말았다.
"아닙니다. 금방일 테니 제가 모셔다 드리고 가면 되요"
"아주 먼 데. 저기 정류장에 내려 주면 택시 타고 갈게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그럼 집이 시내가 아닙니까? 어디세요?"
"좀 멀어요. 파주예요"
세상에 이런 일이 그곳은 서울에서 한 시간도 족히 걸리는 곳이다. 이미 버리고 갈 수는 없는 상황이고 그 남자 집까지 가야 할 형편이 되었다. 차에 태우면서 이렇게 저렇게 옥신각신 말씨름을 하다 보니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고 난 아연실색하여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를 출발 시켰다. 파주는 여러 번 다녀봤지만 어두운 밤이라서 운전하기에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 남자는 뒷좌석에서 머리를 쥐어박고 누워 어느새 코를 골고 있었다. 평소에 내가 안하던 짓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내가 봐도 참 이상했다. 그렇다고 그 남자를 좋아 할 정도의 호감형은 더욱 아닌데 밤늦은 시각에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나 자신도 모를 지경이었다. 밤길을 한 시간여 달려서 아파트에 도착 하니 시간은 이미 자정이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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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실에 있던 사람이 뛰어 나오더니
"아니 교수님! 이 시간에 어디 다녀오세요? 만취가 되셨네요."
하면서 반색을 한다. 교수님? 선 채로 그 사람들에 대화를 듣다가 난 망연자실 하였다.
교수라는 직업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보통사람이라 생각했던 내가 우스웠다. 갑자기 그 자리에 더 이상 서 있기가 싫었다, 경비아저씨에게 그 사람을 부탁하고 아파트를 나 올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저 그냥 갈게요. 교수님을 댁까지 잘 부탁해요”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약주를 이렇게 많이 드셨나요.”
아니 경비아저씨는 내가 이 남자와 함께 술을 먹은 것으로 착각 하고 있는 듯 했다.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드시고 저희 가게에 와서 도움을 청해서 할 수 없이 모시고 왔어요.”
“아! 네”
정중하게 그 남자를 댁까지 안내를 부탁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있을까 갈수록 모호한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 같았다. 하여튼 생각을 지우지 못한 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낯선 거리를 늦은 시간 어떻게 운전하고 집에 왔는지를 모르겠다. 서울로 돌아와서 밤늦은 시간이 아니었다면 방랑벽에 분명 어느 카페 도어를 열고 들어갔을 것 같았다.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 아주 날 처연하게 만들기에 어디서든 잠시 쉬고 싶었다. 그리고 왜 그 남자가 술이 취해서 우리 가게에 들어 왔는지 그것도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남자를 좋아 할 만큼의 여유 있는 여자는 분명 아니었다. 암튼 여러가지 좀 복잡한 마음을 추스리고 집에 돌아 와서도 잠을 이루지 못 하였다. 하루의 절반이상을 가게에서 보냈기에 몸을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데 정신은 오히려 말똥말똥한 참 묘한 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물론 미안해서 인지 무슨 사정이었는지 아님 술 취한 사람들이 흔히 있는 필름이 끊겨져 사리 분별을 못했던지 그 후 그 남자는 한동안 무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좀 바쁜 오후 시간 우체부 아저씨가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하는 말
"사장님! 희한한 편지네요"
우편물이 워낙 많이 오다 보니까 낯익은 사람이다.
"그래요. 무슨 편지 길래 아니! 이게 뭐야? 누구지 겉봉에 씌워진 주소가"
편지를 받아 들고 봉투를 보니 서울시 은평구에서 끊기고 뒤에 이어진 주소는 불광 지하철역 4번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50미터 지점 세븐칼라 현상소 사장님 앞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상에 이런 편지가 배달이 되다니 한참을 서로 웃다가 발신자 주소를 보니 파주시 금촌2동 236번지 무지개아파트 15동 304호 박동혁 예의 무례하기 그지없는 그 남자가 보낸 것이었다. 지난번 일 때문에 아마 사과의 편지 일 테니 하고 혼자 지레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겉봉에 주소를 바라보다가 그 남자가 왜 주소를 그렇게 써서 보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왜냐면 그동안 그 사람과 주고받은 사진 인화 봉투 뒷면에는 가게 주소가 아주 친절하게 정확하게 인쇄가 잘 되어 있다. 혹여 멋스럽게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도 정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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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아니고 이런 주소로 편지를 보내다니 생각하면 참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 했다. 마침 기다리던 고객이 여러 명 있어서 선뜻 편지를 지금 읽을 분위기가 아니었고 또한 하던 일이 밀려 있기에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 또 며칠 지났지만 그 편지를 읽지 못하고 서럽속에 있었다. 굳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읽고 싶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그 남자가 오만 했다고 느꼈다. 술이 취해서 가게로 왔을 때 모른 채 할 것을 연민의 정도 아니고 그헣다고 경로사상이 있어서도 아니고 왜 집에 까지 데려다 주었는지 내 스스로 생각해도 참 이상하였다. 차후에 그런 일이 두 번 있을 시 에는 절대로 모른 채 외면하기로 굳게 다짐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냥 그대로 일에 파묻혀 날짜를 또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우편물에 묻혀 읽혀 지지 않은 편지가 며칠간 사무실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또 일주일이 지난 후 등기우편 하나가 그 남자로 부터 다시 배달되었다. 주소는 예전과 똑같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먼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 없자 확실한 방법으로 등기로 보낸 것 같았다. 봉투를 보고서야 잠시 잊어버렸던 그 앞의 편지를 찾아 보았다. 우선 첫 편지가 궁금했다, 휴지통에 버려지거나 자칫 읽혀 지지 않았을 편지가 될 번 한 그 속에는 그날의 사과와 함께 자신의 소개를 자세하게 적었다. 그리고 뒤에 등기로 보낸 편지에는 자신이 넘 무례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조심스럽다는 글과 함께 앞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 주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주면 감사하겠다는 좀 생뚱맞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아울러 사연이 많은 사람은 등이 굽은 법이지요 라는 글귀와 함께 보낸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 참 유별스러웠다. 경기도 예술고문, 서운여자대학 교수모임 회장 박 동혁 그리고 지역봉사 활동이나 포럼에도 관계를 하고 있는지 그 외 몇 개의 직함이 더 있었다. 사연이 많은 사람은 등이 굽은 법이지요 라는 글귀 처럼 어떤 깊은 사연이 있기에 그것을 들어 주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간 우리가게 고객으로 시작한지가 6개월 정도 되었다. 아직 고객의 입장에서 손님으로 대했을 뿐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지난번에 본의 아니게 내가 과잉 친절로 엉겹결에 집까지 데려다 준 것 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길건너 버스정류장에서 이쪽 가게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여러번 본적이 있었는데 혹시 그것이 나한테 관심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수록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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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은 두통의 편지를 받고 며칠 후 토요일 오후쯤 이었다. 두 사람의 방문이 있었다. 그 수수께끼 같은 분과 고운 모습 참으로 여성스럽게 자상하게 생긴 여자와 동행이었다. 대충 짐작컨대 여자는 50대 후반 인 것 같았다. 그녀는 가게를 들어서면서 주인을 찾더니
"아! 이곳이었군요? 일전엔 먼 곳까지 우리 집 양반을 모셔다 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그날은 비도 오고 약주가 많이 취해서 ....”
“약주를 좋아하시다 보니 간혹 실수를 하시는데 젊으신 분에게 혹 실수나 하지 않았는지
인사가 늦었음을 이해해 주세요.”
“약주가 많이 취해서”
“오늘은 여권이 만기 되어서 사진 찍으러 왔어요. 내달 환갑기념으로 여행을 가야 합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촬영을 하였다. 기분 같아서는 샘통이 나서 약간 둘 사이를 띄워서 촬영하고 싶었지만 그러하지는 않았다. 촬영이 끝나자 부인은 또 다른 볼일이 있다면서 먼저 일어나 가고 그 분은 가게에서 나와 같이 또 남겨졌다. 여느 부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고 아주 돈독하게 여행을 같이 갈수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인생의 황혼을 아름답게 보내는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절엘 자주 가는 편이기에 산에서 등산하고 내려오는 노부부를 종종 보면 언제 부터인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 한 적도 있었다
“지금 사진을 가지고 가셔야 하나요?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지금 퇴근해야 합니다. 제가 주소를 알고 있으니까 우편으로 보내드리면 안 될까요? 길이 멀어서 다시 나오시기가 불편하실 텐데 두 번 걸음 하시게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구요"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그날은 나만을 위해서 쓸 시간을 아침부터 마련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왠지 좀 기분이 찜찜해서 일부러 둘러치기 하였다. 내색은 안했지만 우리 가게 온 것이 질투 아닌 질투로 내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았다. 사실 질투 할 일도 아니지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암튼 한 것 같기도 하고 안한것 같기도 하고 그 분위기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생각해보니 웃음 나는 일인 것은 틀림이 없었지만 여하튼 더 일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떤 일을 누군가에게 좋다고 해 놓고는 슬그머니 빠지는 바람 같았다.
"아 그래요? 바쁜 게 아니니 그러셔도 될 것 같네요”
“네 감사합니다.”
“참! 전번 일 사과도 할 겸 한번 시간을 내 주시면 차라도 한 잔 대접을 하고 싶은데 워낙 사장님이 바쁜 것 같으니 말씀드리기가 좀 그러네요.”
“아! 아닙니다. 제가 자꾸만 무례를 하는 군요. 굳이 우편으로 보내주실 필요까진 없고 시간을 내서 다시 들리지요.”
“가정과 가게 두 가지 일을 해야 하니까 늘 시간이 없답니다.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그럼! 이만"
그 남자가 내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 같이 보였다. 처음부터 헤프게 네 라고 할 수는 없었다. 머리가 희긋하고 외소한 체격에 그리 호남형은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수에 있었다. 다만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 사람이라 생각 했다. 내 거절에 서운한 듯 가게를 나서서 지하철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진짜로 등이 좀 구부정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부부가 같이 가게로 오지 않았다면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자존심과 그리고 약간의 질투가 내게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한편은 사진을 해줄 것을 고연히 두 번 오게 하지 않았나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저 분이 우리 가게를 어떻게 오게 됐는지 그것이 궁금하였다. 왜냐면 이곳 지하철역 주변으로 우리 가게 말고 현상소가 두개나 더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을 되돌아 보면 무언가 작정하고 우리 가게를 찾아 온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한참 하다가 이상하게 그 날은 작업이 되지 않기에 모처럼 일찍 셔터를 내리고 나만의 시간을 찾아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딱히 어딜 갈 때도 없고 근무하는 친구를 불러 낼 수도 없었다. 백화점에서 가벼운 아이쇼핑을 마치고 아직 저녁의 어둠이 시작되기 전 오래간만에 자주 가던 영풍문고에 들렸다. 간혹 누굴 기다리거나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면 부담 없이 이곳에서 일차로 미팅을 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아지트로써 돈을 들이지 않고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가 서점이었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장소이다. 신간 서적이나 구경하면서 마음에 양식을 가져 보리라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참으로 어이없게 우연히 그 남자와 맞부딪치게 되었다. 머리를 식히러 갔다가 아픈 머리가 더 지끈지끈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책장과 책장 사이에 끼여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경지에 몰렸다. 놀라움과 반가움과 기쁨의 표정으로 서로가 서 있었다.
“어머! 교수님”
나는 그동안 그 남자 그분이라고 속으로 호칭 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사장님은 여기 웬일이세요.”
우리는 우연 치고는 그래서 필연이 되고 말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엉겁결에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굴이 나도 모르게 참으로 이상하게 불그레지고 있어서 얼른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가게에서 주인과 손님으로 대면 할 때 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얼른 지하 한쪽에 있는 작은 찻집으로 내려갔다. 서점 지하에 있는 간이 찻집에는 좌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은 커피를 안드신 다기에 음료수를 주문하고 나는 커피를 시켰다. 이곳은 젊은이들 상대하는 찻집이라서 국산차는 없었다. 낮에 우리 가게에서 헤어지고 4시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서울시 인구가 천만이니까 천만분에 일정도의 확율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연 치고는 그래서 필연이 되고 말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엉겁결에 인사를 나누었다.
“어머! 교수님”
나는 그동안 그 남자 그분이라고 속으로 호칭 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사장님은 여기 웬일이세요.”
그리고 얼굴이 나도 모르게 참으로 이상하게 불그레지고 있어서 얼른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가게에서 주인과 손님으로 대면 할 때 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얼른 지하 한쪽에 있는 작은 찻집으로 내려갔다. 서점 지하에 있는 간이 찻집에는 좌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은 커피를 안드신 다기에 음료수를 주문하고 나는 커피를 시켰다. 이곳은 젊은이들 상대하는 찻집이라서 국산차는 없었다. 낮에 우리 가게에서 헤어지고 4시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서울시 인구가 천만이니까 천만분에 일정도의 확율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는 사장님이 아니 예요. 교수님”
“마땅한 호칭이 없어 서요”
“제 이름은 한 영순, 가게에 있는 명함 안 보셨어요?”
“아 그렇군요. 사장님을 그냥 편하게 미스 한이라고 부를게요.”
“그러세요. 교수님”
“미스 한”
“네”
“내 이름은 알고 있죠.”
“네, 박 동혁 교수님”
“고마워요. 이름을 기억해줘서”
“지난번에 제게 등기 편지 보냈잖아요. 그래서 기억하죠.”
“그때 우리 집까지 바래다준 거 정말 고마웠어요.”
“그 밤에 무슨 용기가 있어서 겁 없이 금촌 까지 갔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날 내가 실수한 거 죄다 용설 빌게요.”
“ㅎㅎㅎ”
낮에 우리 가게서 헤어지고 4시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서울시 인구가 천만이니까 천만분에 일정도의 확률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어떤 새로운 인연이 되려는지 겸연쩍으면서도 사실은 반가웠다. 우리 가게가 아닌 찻집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고 보니 약간 이상한 감정이 돋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 사람과 마주앉아서 진지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우선 집이 이곳이 아닌데 어떻게 우리 가게를 찾아오게 되었는지 물어 보았다. 특히 집이 전혀 엉뚱한 방향이고 정말 이해 할 수가 없는 부분이라서 뜻 밖에도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가 발동해서 도대체 우리 가게는 어떻게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의 설명은 이러했다. 절친하게 지내시던 동료 교수분이 얼마 전 이 부근에 새로 지은 북한산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그 집에 초대되어 가던 길이었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다가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들국화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그냥 스쳐 지나갔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닮아서 며칠간 숨어서 봤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 그간 필름현상을 맡겼는데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우리 가게로 옮겼다고 했다. 세상에 어딘지 모르게 쌀쌀맞고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인상의 나에게서 지나간 옛 여인의 짙은 그림자를 만났다고 하니 반가워해야 할지 아니면 거절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왜 들국화 여인을 못 잊으세요.”
“모르겠어요. 왜 그런지”
“들국화여인을 언제 만난 거예요”
“한 30년쯤 될 거예요. 아주 외롭고 힘들어할 때 그때 만났죠.”
“그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호기심이 가득한 나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미스 한, 여긴 찻집이니까 우리 다른 곳으로 옮길까요?”
그래서 우리는 찻집을 나왔다. 밖은 아직 저녁 해가 남이 있는 듯 어두워 지지 않았다. 인사동 쪽에 푸짐한 집이라나 뭐라나 하는 그 사람이 다니는 단골집이 있었다. 예술인들이 모여 드는 허름한 술집 같았지만 낭만과 운치와 웃음이 있는 곳이었다. 카페니 레스토랑이니 하는 곳보다 이런 곳이 솔직히 편했다. 아주 분위기 고상한 그릴이나 멋진 장소엔 가 본 기억이 없어서 인지 소박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같았다. 의자와 의자사이가 칸막이가 되어 있었고 실내는 좀 어두웠다. 사람들이 많아서 가게 안은 좀 시끄러웠다. 남자들끼리 술을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남녀가 앉아있는 좌석도 엿보였다. 가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외간 남자와 둘이서 이렇게 앉은 것은 대학 다닐 처녀 때 말고는 처음이었다. 자리는 빈틈없이 가득했다. 결백증이 있어서 어두운 곳을 피해서 자리를 잡았다. 그 사람이 필경 술 한 잔 하자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저녁때인지라 우선 낙지볶음으로 저녁을 시켰다. 일반 식당이 아니라서 저녁메뉴가 마땅치 않았지만 낮에 점심을 거른지라 맛있게 먹었다. 이어서 추가로 빈대떡과 두부김치로 안주를 시켰다. 아무래도 술이 한 잔 들어가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것 같았다. 나보다 나이가 월신 많은지라 우선 한잔을 그 사람에게 먼저 따르고 내 잔은 따르려하니까 그 사람이 얼른 술병을 받아서 내게 한잔을 따랐다. 그리고는
“미스 한, 들국화 여인이 되어 주실래요.”
“꼭 제가 되어야만 하는지요.”
“그래서 이곳까지 같이 온 게 한 것 입니다”
“ㅎㅎㅎ”
“미스 한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들국화여인을 닮았지요. 그래서 가게를 자주 들렸고요.”
“얼굴이 닮았다고 꼭 그런 건 아니잖아요.”
“뭐가 문제 있나요.”
“이를테면 얼굴은 닮았을지 몰라도 내적인 것은 안 닮을 수도 있잖아요.”
“차차 닮아 가면 되지 않겠어요.”
“어떡해요”
“내적인 성격도 마음도 모두 닮아가도록 노력하면 안 됩니까? 나를 위해서”
“네”
“그게 힘듭니까?”
“전 성격이 온전치 못해요.”
그러는 사이 그 사람에게 술잔이 몇 잔 올라갔다. 나는 처음 받아 놓은 술잔에서 절반 밖에 줄지 않았다.
“미스 한이 불가의 책을 보는 것을 보면 내적인 것도 닮은 것 같아요”
“아네요. 한 성질해서 다들 사납다고 해요”
“그런데 참 불가의 책을 특별히 보는 이유가 있나요 혹 절에 다니세요.”
“네”
“어느 절 이예요.”
“그건 제 프라이버시예요”
“꼭 무슨 사연이 있는 여자 같기도 하네요. 하하하”
“제가 그렇게 보여요”
“네”
나는 남아있는 술잔을 마저 비웠고 그래서 한잔을 다 마신 셈이다. 그 사람이 내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정말 오랜만에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 난 느낌이었다. 술 한 잔으로 그간의 압박과 설움에서 온통 피로가 모두 풀리는 듯했다. 지나온 내 삶이 아쉬운 듯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두 번째 잔을 들어서 그 사람과 부딪치며
“들국화 여인이 되도록 노력해 볼게요. 그러나 너무 기대는 마세요. ㅎㅎㅎ”
.
.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의 돌출 행동 발언 이었다. 가게에서 몇 번의 대화는 했지만 서너 시간의 긴 대화는 정말 나의 특별한 배려였다. 그래서 그 사연을 듣게 되었다. 사랑의 아픔으로 비구니 스님이 되어버린 한 많은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해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사는 남자 그날 그 분의 눈가에 이슬 맺힘을 보고 차마 떨쳐 버리고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박동혁 교수, 그 사람은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임용을 기다리다가 대구에서 잠시 섬유회사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함께 근무하던 장소희라는 여자와 객지에서의 외로움으로 깊은 사랑에 빠졌답니다. 그냥 사귄 정도가 아니라 동거를 하게 되었답니다. 당시 공장 기숙사에 있던 그 여자는 아담한 키에 자기가 좋아하는 외모로 문학에 소질이 있었고 교양도 있는 보기 드문 여자였답니다.
그래서 곧 결혼식을 해야겠다고 했지만 집에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고 결혼식을 올리자고 약속했고 그래서 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지만 곧 유산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섬유회사를 퇴직하고 왜관에 있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고아였고 그래서 반대가 더 심했답니다. 그 여자의 부모님이 어려서 불의에 사고로 일찍 죽었고 그래서 유아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답니다.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받은 들국화 여인은 동거 3년차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엘 와 보니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떠나 버렸더랍니다. 그 날 이후 그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답니다. 다른 사람과의 결혼도 미룬 채 한 3 년을 찾아 다녔는데 들국화 여인은 그 당시 불심이 유난히 깊었던 사람이라서 주로 사찰을 찾아 다녔답니다. 그리고 한 2년 지난 어느 날 편지 한통을 받았답니다. 자기는 부처님의 여인이 되어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니 제발 찾지 말아 달라는 주소 없는 편지를 받고서 넉 나간 사람처럼 세월을 보냈답니다. 그 뒤 강원도 어느 암자에서 그 여인을 찾았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교수님 그런데 그 여자와 들국화는 무슨 관계예요”
“들국화를 무척 좋아했죠.”
“그런데요”
“들국화라는 말은 단어에서 어머니 품처럼 좀 온화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그 사람의 부모님이 늦가을에 돌아가셨나봅니다. 미락공원묘지에 산소가 있는데 한번 가봤지요”
“네”
“성묘 갈 때는 따로 꽃다발을 사가지 않아도 될 만큼 그 곳엔 온천지 들국화가 피어 있었죠. 그래서 부모님이 환생해서 피어난 것 같다며 그 사람은 들국화를 무척 좋아했지요.”
“네”
“그리고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위해서 어린 시절 부터 절에 다녔다고 해요”
“참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이네요. 잘 돌봐 줘야 했나 보네요.”
“네,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들국화처럼 다소 곳 했죠.”
“그런데 왜 교수님 곁을 떠났지요?”
“집에서 결혼을 반대하니까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특히 우리 집은 기독교이고 그 사람은 부모님 때문에 절에 다녔지요.”
“서로 종교의 믿음이 다르면 화합이 어렵긴 해요. 어느 한쪽이 포기하지 않는 한....
그래서 그 사람 마음을 사려고 제가 불교로 전향했죠.”
“네”
“그녀는 가족이 때문에 아마 비구니가 되려는 뭔가 있는 것 같았어요.”
“아마 교수님을 많이 사랑했나봅니다”
“그 깊이는 잘 모르지만 사랑했던 것은 맞아요.”
“교수님 가슴속에 있는 그 사람과 저와 일직선으로 생각하지는 마세요.”
“서두르지 않을게요.”
그리고 이야기가 다시 계속 되었다. 그 사람은 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서는 고등학교 교사직을 사직하고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을 해보니 어느 날부터 인가 그 사랑도 소멸되어 가고 있었고 미국에서 2년간 체류하다가 돌아와서도 그 여자를 또 잊지 못하고 다시 그 절에 찾아가 보니 이미 그 곳을 떠났다고 했다. 그 뒤엔 영원히 소식을 알지 못한 채 지금까지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 부산 모 여자대학에서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하다가 최근 퇴임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자를 그리는 詩 들국화 여인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한 여인을 너무 사랑했고 그 여인을 잊지 못하여 평생을 가슴에 담고 독신으로 지냈다고 했다.
“그럼 사모님하고는 언제 결혼하신 거예요.”
“나이가 49살이 되어서 뒤 늦게 결혼 했으니 꼭 10년 되었네요.”
얼른 그 사람의 나이를 계산했다. 그러면 올해 59살이면 나와는 12살 차이였다.
“사모님하고는 어떻게 만나신거예요”
“그 여잔 석녀예요. 애를 못 낳는”
“네”
“아는 사람소개로 만났는데 한번 결혼 했던 사람으로 이혼하고 독신으로 지내다가 나를 만났지요. 우린 자식이 없어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와 결혼 하시지 그랬어요.”
“때가 너무 늦었죠. 자식 복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들국화여인의 사랑이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평생 독신으로 자식 없이 지낸 것 너무해요”
“부모님에게 불효 한 셈이죠.”
“교수님, 후회하진 않으세요?”
“팔자로 생각해요”
“지금의 사모님은 뭐하시는 분이예요”
“중학교에서 영어 가르쳐요”
“저번에 뵈었을 때 좋으신 분 같았어요.”
“내가 하는 일에 간섭을 잘 안하죠. 그 사람은 그림도 그리는 화가예요”
그러면서 어떤 계기로든 인간의 삶이 그렇게 다르게 살아 갈 수가 있는지 자신도 자신을 모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부인하고는 인생을 서로 의지하며 각자의 삶을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계약결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부인이 석녀가 되어서인지 히스테리가 심하다고 하며 아내가 주말에는 화실에 나간다고 하였다. 한 사람은 글 쓰는 시인이고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 취미가 다른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 원만한 생활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시와 그림은 함께 공생하는 시화가 있는 문학예술이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잘 하면 커다란 작품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 주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했던 편지글이 문득 떠 올랐다. 아울러 사연이 많은 사람은 등이 굽은 법이지요 라는 글귀도 생각이 났다. 내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정말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푸념과 하소연을 들어주어야 했다. 나도 그 보다 더 많은 사연을 않고사는 여자라는 것을 안다면 어떤 내색을 할지 조금은 궁금했다. 어찌 되었던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별 수 없이 그 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마음속 애인이 되었던 것은 분명 한 것 같았다. 들국화 여인의 충실한 하녀처럼 그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미리 알고 주위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시선이 쏠리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채 술시중을 하게 되었다. 영락없이 올가미가 되어서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들어 주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인 들국화 여인이 되어버렸다.
아직은 내 맘이 순수했음이었던지 초로의 노신사에 슬픈 눈이 그렇게 애절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긴 시간을 함께 한 탓에 그 사람이 술이 많이 취해 있었다. 그래서 또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집 까지 같이 가야 했다. 아니 사연이 너무 아파서 차마 그냥 홀로 가게 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을 금촌 집에 까지 같이 택시를 타고 갔다 돌아오는 밤길에 들국화 꽃을 머릿속에 떠올려 상상해 보았다. 우리에게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은 국화과의 야생종으로 피는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등을 모두 통 털어서 그냥 들국화라 부른다. 산국은 산에 피는 국화로 꽃이 노란색이지만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꽃을 쉽게 구별하지 못 한다. 그래서 잎도 모양도 비슷하다. 구절초는 연분홍과 흰색으로 피고 쑥부쟁이 연보라색으로 피어 있다. 구절초의 꽃말은 사랑, 순수이고 쑥부쟁이의 꽃말은 그리움, 기다림이다. 가을 길에서 흔히 보는 쑥부쟁이는 조금은 이름이 낯설긴 하지만 고향을 그리워 할 때 마음속으로 따라오는 꽃이다. 그래서 바로 쑥부쟁이가 대표적인 가을의 전령사 들국화 이다. 그 시간 이후로 그 분의 삶은 제 언저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은 대학교 시간 강사로 나가는데 서울에 오면 꼭 우리 가게를 들려서 커피를 마시고 돌아가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모임 장소는 불광동 오븐칼라 현상소 근처로 좁혀져 왔고 정말 하루도 안 보면 안 되는 고약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 내가 먼저 특별하지도 않은 여자로써 도도하게 거리감을 두고 있었지만 그날 부터 타의 반, 자의 반으로 그렇게 그분과의 인연은 메마른 대지위에 하얀 눈이 쌓이듯 소복히 이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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