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서/야담설화

수경원

시인김남식 2008. 9. 18. 17:39

수경원 솔새김남식

연세대 동문에서 정문으로 이르는 작은고개가 있다

지금은 자동차 길이지만 예날에는이고개를 벌고개(蜂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는 영조의 후궁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묘 수경원이 있었던 자리이다

사람들이 산 능선을 넘어 다니게 되면 등성이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묘의 혜손이 우려되어

영조는 통행을 금지시켰고 만일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벌을 내렸다하여 벌고개라 했다고 한다 

 

 

연대에 있는 수경원은 조선왕조 제21대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원묘이다.

연대가 확장하면서 1968년에 수경원이 서오릉 터로 옮기고 남아있는 수경원의 부속 건물인 정자각과 비각은

뜰 안에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리고 연세대학병원의 연원(淵源) 광혜원을 그 자리에 복원 시켜서  "연세 역사의 뜰" 이라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자리는 연세대100주년 기념관 앞에 "연세역사의뜰" 이라는 곳이다

 

 

 

한옥 건물은 복원된 광혜원이다

 

 

영빈 이씨의 묘를 관리했던 수경원 정자각이다

 

 

 

 

 

 

1968년 지금의 서오능으로 이장하였으나 당시의 정자각과 비각은 지금도 여기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수경원 영빈 이씨(1696년 ~ 1764년)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로 1701년에 궁녀로 입궁하여

1726년 11월 16일 내명부 종2품 숙의에 책봉 1728년에 귀인이 되었다가 마침내 1730년 내명부 정1품 빈(嬪)의 첩지를 받아 영빈이 되었다.

4명의 옹주와 후일 사도세자가 되는 원자를 출산하고 그 밑으로 옹주 하나를 더 낳았다.

 

 

영빈이씨는 1764년 사도세자가 죽은지 2년후 사망하였다.
아마 어미로써 속을 많이 아팠던 것 으로 사료되며 뒷날 고종대에 이르러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되자

묘(墓)가 원(園)으로 승격되면서 수경원(綏慶園)의 원호를 받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의 중심에 서 있었던 여인 영빈 이씨
아들이 죽음을 당한 이후에는 삶의 의욕을 포기했을 정도로 그녀가 가졌을 슬픔은 상상하기 어려울정도 인지도 모른다.

 

 

영빈 전의이씨 지묘 暎賓全義李氏之墓 라고 새겨져 있는 전의는 영빈 이씨의 본관을 의미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의 중심에 서 있었던 여인 영빈 이씨
그는 세손(정조)을 살리기 위해서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에 무방비 동조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수경원잔존 물이 아직 연세대에 있어서 서오릉에 있는 묘의 외관 치장은 그리 많지를 않다   k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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