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원사 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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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독립문 네거리에서 연대방향으로 금화터널 지나면 바로 오른쪽 산자락에 봉원사(奉元寺)가 있다
봉원사는 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으로 조선 근대화에 등장하는 사찰이다.
조선말기 개화승 이동인 이곳에 기거하여 김옥균과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한글학회 표지석도 있다.
‘
이 명부전은 선덕왕후의 명복을 비는 흥덕사를 지면서 명부전의 현판을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쓰라고 명했다
그러나 심술쟁이 이방원이 서대문에 있는 선덕왕후의 묘를 정릉으로 천장시키면서 관리를 하지않았다
그후 260년이 지난 1669년 현종때 선덕왕후가 묘호를 받고 비로서 종묘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100년이 지난 1794년 원찰 흥덕사(현재돈암동있슴)를 재건하게 되는데
이때 명부전은 태고종(太古宗) 본 산이 있는 이곳 봉원사에 이전하게 된다
이 명부전 편액 왼쪽을 보면 정도전이라는 낙인 글씨가 있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숙부라 부르며 한때는 뜻을 갖이한 동지였으나 여심이 큰 이방원을 눈치챈 이성계는 선덕왕후 소생을 세자로 책봉한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으로 세자 방석과 함께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살해된다 이때 두아들도 함께 제거되어 큰 아들만 살아 남는다
그후 이방원은 정도전을 폄하하기 위해 정몽주를 추상하고 역적으로 조선사에서 낙인하게 되는데 ...
그래서 인지 정도전의 묘는 아직도 오리무종
정도전은 이방원의 칼에 맞기 직전 자신의 삶 최후를 정리하는 자조(自嘲)라는 시를 남겼다
{ 조존과 성찰 두곳에 온통 공을 들여서 책 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저버리지 않았네
30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 놓은 사업 송현방 정자 한 잔 술에 그만 허사가 되었네 }.
사후 500여년이 지난 1865년 고종때 공신 칭호를 돌려받았으며 관작을 회복시키고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명부전 양기둥 6곳에 쓰여진 주련은 을사오적 이완용의 글씨라고 하는데......왜 그곳에 있는지는 몰겠다
지금 봉원사에는 연꽃들이 한창이다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안산 자락에 위치한
봉원사(奉元寺)는 한국불교태고종의 총본산으로 신라 진성여왕 3년(889)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태고종은 한국불교 27개 종단의 하나로 사찰의 개인소유 인정과 승려의 결혼문제를 자율에 맡기고 있으며,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유지 운영할 수 있습니다.
전국에 약 3,200여 개의 사찰과 7,200 여명의 승려, 그리고 약 500만 명의 신도를 두고 있다.
7월에는 서울문화연꽃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도심 속의 사찰을 열린 공간으로 활용하여
불자와 시민들의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7월 20일경 봉원사에서 가면 연꽃 축제를 볼수가 있다
개화승 이동인 추모비
봉원사를 가려면 서울역에서 7024를 타고 종점에 하차하면 된다
안산 (295 m)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산으로 인왕산과 맥을 같이 하는 바위산이다. 정상에는 군부대가 주둔하여 그 옆에 있는 봉화대가 정상 역할을 한다. 봉화대 동쪽 측면은 거대한 암벽으로 암벽훈련장으로도 이용되며 말의 안장인 길마와 같이 생겼다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재, 추모련, 봉우재라고도 불러왔다. 낮은 산이지만 서울을 조망하는 전망이 좋고 수맥이 풍부한 27개의 약수터가 있어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발달하였다. 안산 남서쪽 기슭에는 태고종의 총본산인 봉원사가 있으며 봉화대 등 역사유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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